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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에서 시의 1행이 주조행(主調行)이라 할수 있다...
2017년 03월 16일 18시 54분  조회:2602  추천:0  작성자: 죽림

 

 

 

호북성 의창시 황화(黃花)진 쌍두사(雙頭獅)풍경구역에서ㅡ 


한 편의 시가 태어나기 까지 4 /이희정 




그러면 이제부터 몇몇 시인의 구체적인 시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며 지금까지 얘기해온 것의 의미를 실제적으로 알아보자. 먼저 외국시부터 한 편 본다. 


Children look down upon the morning gray 
Tissue of mist that veils a valley"s lap: 
Their fingers itch tear it and unwrap 
The flags, the roundabouts, the gala day. 
They watch the spring rise inexhaustibly― 
A breathing thread out of the eddied sand, 
Sufficient to their day : but half their mind 
Is on the sailed and glittering estuary. 
Fondly we wish their mist might never break, 
Knowing it hides so much that best were hidden: 
We"d chain them by th spring, lest it should broaden 
For them into a quicksand and a wreck. 
But they slip through our fingers like the source. 
Like mist, like time that has flagged out their course. 

아이들은 아침 안개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느 골짜기의 개울가에 보얗게 서린 아침 안개를: 
아이들의 손끝은 이 베일을 찢어버리고 싶어 설렌다. 
깃발과 회전목마와 명절날을 싸고 있는 걸 벗겨버리고 싶다.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그칠 줄 모르는 샘물을 지켜보고 있다― 
잔모래가 소용돌이치는 속에서 숨쉬고 있는 한 가닥의 실, 
어린 날엔 그것으로 충분하리 : 그러나 어린 마음의 절반은 
돛이 달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河口쪽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아이들의 아침안개가 내내 끊이지 않길 바란다, 
안개는 숨겨져도 좋은 것을 그렇게도 많이 감추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저 샘물로 묶어두고 싶다, 샘물이 흘러 개울폭이 넓어지면 
거기에는 모래더미와 難破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샘물처럼 우리의 손끝에서 빠져나간다. 
안개처럼, 또한 경주로의 길가에 있는 깃발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과도 같이. 


이 시는 아일랜드 출신의 세실 데이 루이스라는 시인의 <아이들의 시간>이란 시인데 시인의 시작과정을 직접 들어보자. 

“이 시의 씨앗은 나의 두 아이에 대해 내가 느낀 어떤 격렬한 감정이다. 이건 세상의 대개의 부모들이 조만간에 갖는 감정, 즉 자기의 아이들도 얼마 안 가서 어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 위태롭고 살기 힘든 세상 한가운데로 진출해야 한다는 슬픔의 감정이다. 누구나 젊을 때에는 자기 부모가 이런 기분을 갖는 데 대해 가끔 불만을 느끼는 법이다. 아이들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혼자 독립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그런데 한번 더 앞의 시를 읽어보면 거기에는 두 개의 테마 또는 주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뒤의 6행에 나타나 있는 내 자신의 감정으로 그것이 본디 테마다. 또 하나는 처음 8행에 나타나 있는 안타까운 듯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아이들의 감정으로서, 이들 두 개의 테마가 서로 밸런스를 유지하며 서로 대비되는 듯한 기분으로 이 시는 씌어지고 있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펜을 잡기 전에 나는 시의 1행이 실제로는 이미 내 머릿속에 떠올라있음을 흔히 발견한다. 그 1행은 그 시가 전개하는 그 시의 주제와 바탕모양에의 계기를 내게 주는 것, 즉 음악으로 말하자면 主調音에 해당하는 일종의 主調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14행 시를 쓰려고 내가 책상 앞에 앉았을 때, 그런 의미의 한 행이 곧 내 머리에 떠올라왔다. 그 한 행은(이 한 행만이 나중에 손을 댈 필요가 없었는데) <깃발과 회전목마와 명절날>이었다. 나는 이 한 행에 대해 생각하고 이 한 행이 명절날, 즉 아이들이 몹시 기다리는 것의 이미지임을 알았다. 분명히 이 이미지는 어린이가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어른의 세계를 상징(대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안타까움의 관념을 기초로 하여 다시 또 다른 행― 처음의 3행을 덧붙이기로 했다. 

여기에서 강 유역을 덮고 있는 새벽안개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그것은 어린이들이 생일날에 받는 선물의 얇은 종이를 찢어보고 싶은 하는 하나의 막―어린이를 어른의 세계에서 가로막고 있는 막을 말한다. 이 이미지는 몇 년 전의 어느 날 나의 기억이다. 내가 나의 아이를 데번셔 주의 초등학교에 데리고 가서는 어느 언덕 위에서 쉬면서 안개로 덮인 아래 골짜기를 바라보았을 때의 기억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때 그 안개가 마치 얇은 종이처럼 보이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시를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그 사건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나는 처음의 4행에 표현된 테마의 변주곡으로서 그 테마를 보조하는 다음 이미지를 바라게 되었다. 여러분은 5행에서 8행까지에서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즉 땅위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샘과 숨쉬고 있는 한 가닥의 실을 바라보려고 앞으로 쭈그리고 있는 어린이의 묘사다. <숨쉰다>라는 단어가 이전의 이미지에 대한 손잡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샘은 생명의 원천이요, 젊은 생명을 나타낸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생명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다. <어린이의 절반>은 마치 시냇물이 확대되어 하구가 되듯, 그들의 생명이 확대되고 위대한 사람이 되고 지극히 많은 생활을 영위할 시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샘의 이미지도 안개의 이미지와 같이 나의 기억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것은 아일랜드의 어느 시골 저택 근처에 있던 실제의 샘으로, 나는 어릴 때 그 샘에 몹시 매력을 느꼈었다. 나는 몇 시간이나 그 샘을 지켜보며 어째서 이렇게 자그마한 한 가닥의 물줄기가 이 대지에서 힘차게 솟아나는지 이상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그 다음에 나는 또 하나의 다른 테마를 덧붙일 필요를 느꼈다.―즉 아이들이 세상에 진출해 가는 데 대해 부모가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해 주기 바라는 것은 이 테마는 이 시의 근본씨앗이 되고 있으나 이 시에서는 비교적 작은 부분(9행에서 12행까지)을 차지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시를 쓸 때 흔히 있는 일이지만 완성된 시는 처음에 생각하고 있던 것과 완전히 다르게 되어버리는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한 편의 시가 어떤 형태의 것이 되는지 그 시를 다 쓰기 전까지는 짐작을 못하는 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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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속의 방
―허혜정(1966∼)

 

 

검은 마분지로 만들어진 갈피마다 하얀 습자지로 덮여 있는 빛바랜 사진들. 하나의 방처럼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모여든 얼굴들이 기억의 영사기에 비춰오듯 흐릿하다. 딱히 언제 사진인지 짚어낼 순 없어도 앨범 속에 죽어 있던 풍경이 스며드는 방. 산 자와 죽은 자의 장소는 다르다고 믿어왔지만 사진 속의 일몰은 나의 창에 물들고 있다. 푸르게 젖어가는 옥양목 마당 너머에는 바라볼수록 여백이 넓어지는 하늘. 늦가을 바람에 창살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 녹이 먹어버린 문고리와 발바닥에 닳아 얇게 패인 문턱들. 몇 세대가 머물다 간 낡은 집으로 그들은 바람처럼 돌아와 바스락댄다. 슬픈 아이가 잠결에 따스한 체온을 느끼듯이 혼자가 아닌 것 같아. 세대의 눈빛 안에 고여 있는 나의 눈이 어떤 슬픔을 꺼내놓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비워낸 시공간을 옮겨 적는 것. 잊었던 말들이 밀려온다. 스쳐가는 그림자의 방에서.

‘검은 마분지로 만들어진 갈피마다 하얀 습자지로 덮여 있는 빛바랜 사진들’, 사진 한 장 한 장을 소중히 갈무리한 이런 앨범이 집집마다 다락이나 장롱 깊은 곳에 있었다. 가족 앨범은 대개 스냅사진으로 채워진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흘러갈 시공간을 찰칵찰칵 잡아채서 우리는 기억을 닳고 바래게 하는 시간의 물살에 대처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진으로 남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 삶이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인생은 저마다 기록해 남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리라.

 

 

화자는 낡은 앨범을 보고 있다. 검은 마분지도 하얀 습자지도 바싹 말라 화자는 조심스레 앨범을 넘길 테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모여든 얼굴들’, 오래된 과거와 가까운 과거가 모여 있는 앨범이다. ‘몇 세대가 머물다 간 낡은 집’, 조부모님의 젊은 모습, 아버지나 고모 삼촌의 어린 모습…, 잘 모를 사람의 모습도 있겠지만 모두 화자의 혈족일 테다. ‘세대의 눈빛에 고여 있는 나의 눈’, 당연히 그럴 테다. 이미 작고하셨건 구존해 계시건 그들은 어딘가 화자와 닮았을 테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장소는 다르다고 믿어왔지만 사진 속의 일몰은 나의 창에 물들고 있’단다. 사진 속의 풍경이 화자의 회상과 포개지며 현재 공간을 아스라이 물들인다. 오래된 가족 앨범을 보면서 제가 세상에 불쑥 던져진 돌멩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힘을 얻는 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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