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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멀리에 있는것이 아니라 가까운 삶속에 있다...
2017년 04월 03일 01시 12분  조회:2707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는 멀리 있는 게 아닌 가까운 삶 속에> 
-이근배-

끼니때가 되면 온 가족이 다 모입니다. 알 전등이 켜질 무렵에야만 직장에 갔던, 학교에 갔 
던, 밖에 나갔던 온 가족이 모이는 그 때에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이 모이는 거죠. ' 
내 신발은 19문 반 /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곁에 벗어놓으면 / 육문 삼의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하고 노래했는데, 가장인 박목월 선생에게 '눈과 얼음의 길'은 추 
워서가 아니라 바깥 세상이 늘 살얼음판같이 춥고 냉혹하다는 걸 그린 겁니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은 늘 넉넉하고 자신이 있어 
야 함을 말한 겁니다. 영국의 경찰은 뛰지를 않는답니다. 경찰이 뛰면 시민이 불안하다고 해 
서 말입니다. 어쨌든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는 웃습니다.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 여기는 / 지상.' 하는 대목도 얼음집이 아니라, 세상은 그 
렇게 냉혹하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 / 아니 십 구문 반(十九文 
半)의 신발이 왔다.' 하는 대목은 박목월 선생의 절창이라고 봅니다. 일제와 해방과 육이오 
를 지내면서 살아온 십구문반의 신발을 신은 아버지지만, 그는 여전히 웃습니다. 
이런 시 하나를 보더라도 그 시대상 그 자신을 씀으로 해서 시인은 그 시대를 쓴다고 했는 
데, 목월 선생이 사시던 시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미당 선생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린 [수대동시]의 무대인 수대동은 
미당 선생이 나신 마을입니다. 이 시는 사회집에 실려 있고, 41년에 [사회집]이 나왔으니까 
30년대 후반에 쓰신 [자화상]과 같은 무렵에 씌어진 시일 것입니다. 

흰 무명옷 갈아입고 난 마음 
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면 
사뭇 쑥스러워지는 생각, 고구려에 사는 듯 
아스럼 눈감었던 내 넋의 시골 
별 생겨나듯 돌아오는 사투리. 
등잔불 벌써 켜지는데…… 
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았구나. 
샤알 보오드레―르처럼 섧고 괴로운 서울 여자를 
아주 아주 인제는 잊어버려, 
선왕산 그늘 수대동 십사번지 
장수강 뻘밭에 소금 구어먹던 
증조할아버지 적 흙으로 지은 집 
어매는 남보다 조개를 잘 줍고 
아버지는 등짐 서른 말 졌으니 
여기는 바로 십 년 전 옛날 
초록 저고리 입었던 금녀, 꽃각시 비녀 하여 웃던 
삼월의 
금녀, 나와 둘이 있던 곳. 
머잖아 봄은 다시 오리니 
금녀 동생을 나는 얻으리 
눈썹이 검은 금녀 동생, 
얻어선 새로 수대동 살리. 
-[수대동시(水帶洞詩)] 전문 

이 시는 제가 보기에는 미당 선생이 타향에 나와서, 고향인 수대동이라고 하는 마을을 돌아 
다보며 쓰신 시 같습니다. 그런데 제일 처음 이렇게 시작합니다. '흰 무명옷 갈아입고 난 
마음' 저는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가 목화를 따서 명을 자아, 베틀에다 무명을 짠 옷을 입고 
자랐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옷을 자주 얻어 입지를 못했는데, 요새는 얼마든지 시장이나 
백화점 같은 데서 기성품을 많이 사서 입습니다만, 그때는 명절 때나 한 벌 얻어입는 설빔 
이나 추석빔 같은 것이지요. 우리의 시어, 모국어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흰 무명옷 갈아입 
고 난 마음'을 서양 말로 옮겨 놓으면 그 뜻이 전혀 통하지 않겠지요. 
미당의 시를 영어나 불어로 번역하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옷을 갈아입은 게 
어떻단 말이냐 하겠지만, 미당은 당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나 할머니가 새로 지어주신 흰 무 
명옷을 갈아입었을 때의 그 마음, 산 게 아니라 어머니, 할머니가 손수 짜고 손바느질된 것 
을 입었을 때의 기쁨과 편안함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재작년인가 금강산을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장전항에서 배가 돌아오는데, 어둑어둑해 
질 무렵 배가 동해 바다로 돌려고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궁금해서 갑판 위로 나가 보았더 
니 '어머니 어머니!' 부르면서 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향에 부모를 두고 온 이산가족 
들로, 고향 근처까지 왔는데 안부도 전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야 하는 슬픔이 북받쳐 그렇 
게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인지상정이니까 어머니를 부르며 울 수 있겠다 싶어 
서 별로 감동스럽지 않아, 당연하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저를 울린 말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찬 바다를 향해 울부짖으며 하 
는 말 가운데 이런 게 들렸습니다. 
"어머니, 저는 김치만 먹고 살았습니다. 어머니를 그렇게 두고 제가 어떻게 잘 먹겠습니까?" 
저는 이 말을 듣고서, 박완서 선생께 "저건 시인이나 작가들이 상상력으로는 쓸 수 없는 말 
입니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 중에서 '어머니, 저는 김치 
만 먹고 살았습니다.'라고 한 건 참으로 절묘하지요. 이것도 축자적으로 번역한다면, 서양인 
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모국어라는 건 무엇일까요. 김치만 먹고 살았다는 말은 곧 '잘 먹고 잘 살지 않았다'는 
뜻이듯, 축자적으로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 속에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과 어머니의 
가난한 삶과 그리움이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당의 '수대동시'에서도 흰 무명옷으로 갈 
아입고 난 마음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면 / 사뭇 쑥스러워지는 
생각, 고구려에 사는 듯'이라는 대목은 미당의 레토릭(수사법)인데, 왜 고구려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얼마 안 되는 세월이지만 '내가 고향으로부 
터 너무 멀리 왔구나' 하는 감회를 노래한 게 아닌가 합니다. '아스럼 눈감었던 내 넋의 시 
골 /별 생겨나듯 돌아오는 사투리.' 하는 대목도 좋습니다. 고향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내 
넋의 시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스럼 눈감었던'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의 뜻일 것입 
니다. 초저녁이 되면 하늘에서 별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듯이, 고향을 생각하면 고창의 동 
네 아저씨들이며 어머니들이 부르는 소리 들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등잔불 벌써 켜 
지는데…… / 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았구나.' 하고 노래한 걸 왜일까요. 저녁 시간은 늘 자 
기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기 마련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지요. 객지에 와서 사느라 집 
으로 돌아가 어머니가 끓여주는 국밥을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오랫동안 나는 잘 
못 살았구나' 하고 시인은 생각했겠지요. 
'샤알 보오드레―르처럼 섧고 괴로운 서울 여자를 / 아주 아주 인제는 잊어버려' 하는 대목 
은 무슨 뜻일까요. 보들레르는 여자가 아닌 남자입니다. 미당이 그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서울 여자가 '샤알 보오드레―르'가 될까요. 미당이 보들레르의 시를 좋아해서 불 
어로 읽으시는 것도 보았습니다만, 그의 시집에 {악의 꽃}이 있지요. 눈썹이 검은 금녀 같은 
그런 데 살다가 객지에 와서 서울 여자를 보니까, 전부 '악의 꽃들'로 보인 거죠. 이상하게 
사랑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아니고, 돈에 눈이 멀어 있는, 즉 샤를 보들레르 같은 서울 여자 
가 아니라 '악의 꽃들 같은 서울 여자'를 노래한 것입니다. 
중앙일보의 문학담당 전문기자 이경철은 미당을 가리켜 '우리 시의 정부이고 시의 학교이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미당 팔순 잔치 마당에서 황동규는 '이 나라에서 미당 시를 읽지 않 
고 시를 쓴 사람이 있으면 나와 봐라.'라고 했습니다. 미당은 지금 자리에 누워 계십니다만 
그분이 끼친 모국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 모국어를 어떻게 쓰면 다양하게 쓸 수 있나 하는 
것을 보여준 점은 위대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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