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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기본자세는 사물에 대한 애정이다...
2017년 04월 04일 21시 34분  조회:2617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박종헌 


II. 시창작의 실제 


1. 시상(詩想)의 발견 


시상(詩想)이란 좁은 의미로써 시를 직접 마음속에 그려내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상의 시작은 시심(詩心)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심 속에서 싹이 튼 시상은 마음속에 그림처럼 그려짐으로써 시를 일으키는 그 첫 단계가 된다. 

여기에서 시심(詩心)이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이나 자연의 현상, 인간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서 느껴지는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로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슬픔, 고통, 기쁨, 황홀감 등의 일상적 심리상태와는 달리 자기가 일상적 감정으로 느낀 대상과 하나가 되는 순수한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시심은 시상을 일으키는 텃밭이 되며, 시심의 순수함은 시쓰기의 가장 기본이 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애틋함을 느끼는 이같은 시심이 풍부해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청소년들이 자신이 지닌 순수함을 계발하고 드러내어 한 편의 글로 표현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글을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글이란 어려운 단어나 추상적 어휘가 들어가야만 하는 것처럼 오해를 가지는 경우도 있어 자신이 무얼 쓰는지 조차 분명하지 않은 글들이 쓰여지게 되고, 결국은 글과 자신이 멀어지는 결과가 되고 있다. 

시상의 발견은 우연(偶然)이라기 보다는 필연적이며, 수동적이라기 보다는 의지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냥 앉아 있으면 다가오는 것이 아니란 거다. 늘 마음속에 준비하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갈 때 비로소 시상도 찾아온다고 할 수 있다. 

시상을 맞을 준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자세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가.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자. 



관찰이란 이미 자신의 능동적 태도와 마음의 준비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 평소에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갖추어질 수 있어야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사물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것은 '잘 안다'는 것이며, 따라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느냐이다. 시인의 사상과 이념, 그리고 관심 영역에 따라 발견의 깊이와 모습은 달라진다. 자연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에서 바라보면 <나비>처럼 아름다운 시가 된다. 나비가 예쁘기 때문에 예쁜 나비가 앉은 꽃은 당연히 예쁠 수밖에 없다. 꽃이 예쁜 이유는 꽃 자신에게 있던 것이 아니라 예쁜 나비가 앉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나비는 아주 예쁘다. 
나비는 날 때도 예쁘다. 
나비가 앉은 곳에는 
꽃도 예쁘게 피어 있다. 

(성주 대서초등학교 4년 한상재 <나비>) 


다음의 <감자꽃 1>은 시인의 체험 속에서 발견한 시다. 농삿일에 허리가 휘어보아야 감자꽃이 허리 아픈 꽃임을 안다. 그 끊어질 듯 아픈 허리를 찍어누르며 모녀가 오뉴월 따가운 여름 햇살에 감자밭을 매는 모습이 결코 꽃처럼 예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감자꽃이 있기에, 농사를 짓는다는 삶의 진정한 모습이 거기 있기에 그 처절한 삶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앞의 <나비>와 그 발상과 관찰이 똑같다. 10살짜리가 바라본 사물과 50세의 시인이 바라본 사물이 너무도 똑같지 않은가? 

앉아 피어도 허리 아픈 꽃 
자줏빛 흰빛 
서로 물들이며 
어머니도 누이도 
오뉴월 빛 속에 엎드리면 
그렇게 꽃으로 보였다 

(이상국, <감자꽃 1>, 시집 『내일로 가는 소』) 


나. 상상력을 동원한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감정이나 감동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전율할 듯 강한 감동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남이 알 수 있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만의 감동일 뿐 남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이러한 감동의 표현을 위해서는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감동을 구체화시키고 이를 표현하여 전달할 수 있어야 글이 되는 것이다. 

엄마의 일요일 


장마철이 좋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 

비가 많이 오면 늘 밭에서 호미질에 모종에 일만 하는 어머니가 
쉴 수 있는 날이다. 

그래서 난 늘 비 오는 날은 우리 어머니의 일요일로 정했다. 
생전 비라도 안 오면 밭에서 사실 것만 같다. 
비가 가끔 많이 왔으면 좋겠다. 

(대천 여중 3년, 최선화, 창비아동문고 『나도 쓸모 있을 걸』) 

< 엄마의 일요일>에서 시적화자는 비가 오는 날 이외에는 늘 밭에 나가 밭일로 하루 해를 다 보내고 쉬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을 쓰고 있다. 가끔 비가 와서 쉬는 날(일요일)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상상이 있다. 

그러나 다음의 <곰팡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저 시커멓게 썩어버린 곰팡이 자국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바라보려는 시인의 상상력의 깊이를 알 수 있다. 


곰팡이 


곰팡이를 마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현미경 속 
아름다운 흑백의 나선, 벌거벗음을 먹었다 

축축한 회색빛 그늘 속에서 
주검의 흔적처럼 은근한 냄새, 검은 화약자국 
버짐처럼 번지는 
저 말릴 수 없는 거부의 몸짓 
메마른 세상에 너의 터전을 넓혀라 

긴 장마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검게 스미는 불꽃 
하나 됨을 위해 소리 없이 일어서야 하리 

( 박종헌 <곰팡이>) 


다. 늘 보았던 대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보자. 


세상의 모든 글감들은 이미 다른 사람이 모두 다 썼다고 슬퍼하지 말자, 소재는 무궁무진하지만, 만약에 한정되어 있다하더라도 모양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냄새가 다르며 촉감이 다르다면 그것은 내가 쓸 수 있는 소재다. 

즉, 글이란 소재가 아니라, 그 소재에 대한 해석과 의미가 글이다. 따라서 아무리 낡은 소재라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의미가 탄생되는 것이다. 


다음은 같은 제목으로 쓰여진 시들이다. 즉 소재가 같지만 모두 다른 시이다. 

구상(具象)의 강(江) 연작시는 강을 다양한 의미에서 조망하고, 깊은 사유와 관조로 의미를 파악한다. 평등과 겸손, 용기, 자유를 가르쳐 주는 강은 벌써 강이 아니다. 


(江) 16. 

구상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강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 

강은 
헤아릴 수 없는 집합(集合)이면서 
단일(單一)과 평등(平等)을 유지한다. 

강은 
스스로를 거울같이 비춰서 
모든 것의 제 모습을 비춘다. 

강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한다. 

강은 
그 어떤 폭력이나 굴욕에도 
무저항(無抵抗)으로 임하지만 
결코 자기를 잃지 않는다. 

강은 
뭇 생명에게 무조건 베풀고 
아예 갚음을 바라지 않는다. 

강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려서 
어떤 구속(拘束)에도 자유롭다. 

강은 
생성(生成)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무상(無常) 속의 영원을 보여준다. 

강은 
날마다 판토마임으로 
나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 구상연작시집, 시문학사, 1985> 


신경림 시인은 강을 '울음'이 밴 강으로 보고 있다. 역사 속에서 한없이 울기만 했던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강(江) 

신경림 


빗줄기가 흐느끼며 울고 있다 
울면서 진흙 속에 꽂히고 있다 
아이들이 빗줄기를 피하고 있다 
울면서 강물 속을 떠돌고 있다 

강물은 그 울음소리를 잊었을까 
총소리와 아우성소리를 잊었을까 
조그만 주먹과 맨발들을 잊었을까 

바람이 흐느끼며 울고 있다 
울면서 강물 위를 맴돌고 있다 
아이들이 바람을 따라 헤매고 있다 
울면서 빗발 속을 헤매고 있다 

<농무, 창작과비평사, 1975> 


김용택은 섬진강변 시골 분교의 교사다. 그가 바라보는 강물은 어둠의 강물이면서 핏줄이다. 어둠을 씻어주면서 어둠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스민 강이다. 


강 

김용택 


겨울 짧은 해 침침하게 진다 
저뭄에 홀리고 홀려서 
저문 데로 가서 그림자만 부리고 
저물어 돌아오면 누가 그대 온 줄 알겠는가 
하루를 저물게 하여 
강물은 끊임없이 어둠을 실어가 
세상을 다 저물게 한다 

보아라 어두운 강물에 언뜻언뜻 보이는 
강물의 희디흰 뼈 
피도 보이지 않는다 

저물 때 저물어 가서 
저물어 돌아오면 누가 그대 돌아온 줄 알겠는가 
소리없이 흐르는 물 가까이 걷는 
그대의 기쁨을 누가 알겠는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에 
그대 핏줄을 잇고 
핏줄 끝을 잡고 나는 풀잎처럼 쓰러져 강이 된다 

<누이야 날이 저문다, 창작과비평사, 1988> 


강 1 

이성복 


남들은 저를 보고 쓸쓸하다 합니다 
해거름이 깔리는 저녁 
미류나무 숲을 따라갔기 때문이지요 

남들은 저를 보고 병들었다 합니다 
매연에 찌들려 저의 얼굴이 
검게 탔기 때문이지요 

저는 쓸쓸한 적도 병든 적도 없습니다 
서둘러 그들의 도시를 
지나왔을 뿐입니다 

제게로 오는 것들을 막지 않으며 
제게서 가는 것들을 막지 않으며 
그들의 눈 속에 흐르는 눈물입니다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1990> 

이성복 시인의 <강 1>은 의인화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을 생명 있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모든 것을 씻어주고 거두어가는 존재로 보고 있다. 이렇듯 동일한 소재라도 바라보는 이의 시각이 어디에 머물고 있으면 어떤 의식에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재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일이다. 나의 시각에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소재를 발견하는 일은 자신의 몫이다. 소재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시를 쓰는 이의 의식에 달려 있다. 건강한 의식과 건전한 비판 정신, 그리고 사물에 대한 애정은 좋은 시를 쓰는 기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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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박봉우(1934∼1990)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신문을 읽다가 한 흑백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누더기 옷에 보퉁이를 멘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라는 글이 달려 있다. 아, 육이오…,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커튼을 내리고 불을 꺼서 캄캄한 교실,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속에서 빗발치는 포화며 울부짖는 피란민들이며 그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며 기차를 숨죽이고 보던, 1960년대 초등학생 적 기억이 떠오른다. 전쟁에 대한 공포가 가슴을 가득 메웠더랬다. 대부분 사람이 죄 없이 영문 모르게 터지는 전쟁. 어린아이나 동물은 전쟁의 비참을 더 가혹하게 겪는다. 


휴전선에서 다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이라며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을 예상하고 진저리치는 이 시는 전쟁의 상처에서 아직 진물이 흐르는 1956년에 발표됐다. ‘시방의 자리’ 휴전선이 일촉즉발로 여겨지던 때. 세월이 흘러 많은 한국인의 전쟁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삶이 화사해졌지만, 시인 박봉우는 끝내 그 상흔을 벗지 못했다. 민족의 구원을 개인의 구원보다 앞에 뒀던 시인은 술과 가난의 나날을 보냈다 한다. 이제 ‘시방의 자리’가 일촉즉발로는 여겨지지 않지만, 여전히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인 휴전선. 경의선 임진강역 구내에 가면 이 시를 새긴 시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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