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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정서의 흐름으로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2017년 04월 06일 21시 49분  조회:2487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박종헌 


라. 시상의 형상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 명령하는 대로 살기 마련이다. 이러한 생각은 다시 말로 표현되고 이를 글로 나타내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발견이나 미적 감동, 깨우침 등을 창작이란 기능으로 다듬어 낼 때, 비로소 시상이 머리 속에 자리 잡는다. 우리가 흔히 '참 표현이 시적이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상의 표현이 언어화되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상의 머무는 단계에서 체험과 의지, 사고력, 역사성, 사회적 배경 등이 작용하면서 재구성되어야만 한 편의 시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시가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는 이러한 재구성의 단계가 분명하며 미적 감동으로 형상화(image) 되었느냐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재구성의 모습은 성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다음에서 보듯이 어린이는 자신의 경험을 사실대로 말하고, 소년기가 되면 수식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성인들은 이를 자신의 경험 세계에 비추어 비유와 상징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청소년들은 단순 수식의 과정에서 상상과 비유의 과정까지 폭넓게 펼쳐지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성인의 단계에 도달한 시를 쓰는 학생이 있는 반면에 아동기의 발상으로 시를 쓰는 단계까지 상당히 넓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청소년의 정신발달과 괘를 같이하는 것이므로 적절히 아이들의 생활시(어린이시)에서 

성인들이 쓰는 일반시로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무너지는 것이 '백일장' 대회란 필요악이다.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백일장의 경우에는 감동보다는 반짝이는 말재주를 뽑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백일장에서 당선작들은 자신들의 삶과 무관한 성인시 수준의 작품을 뽑게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청소년들의 문학적 성장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만 한다. 

아래의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는 삶이 없고 관념만 남은 아동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자/ 너와 나/ 해바라기처럼 항상 웃고/ 친구와의 우정, 슬픔을/ 함 께 나누자/ 추억을 만들기 위해/ 김밥을 싸가 뒷산에서 먹고/ 소풍도 간 날/ "친구야, 오늘 재미있었니?"/ 하고 말하면/ 친구는 "어∼"/ 하고 대답한다./ 마음속에 남는/ 나 의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2000.6.12일자 강원도민일보 어린이 판에 실린 춘천 ㄴ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쓴 동시) 


글쎄? 무엇이 추억 만들기며 마음속에 무엇이 남은 것인지 감이 안 잡힌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김밥 싸 뒷산에 가서 먹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그러니 "재미있었니?" 하고 물어도 "어∼"라는 대답 밖에 더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글에서 솔직한 것이라곤 "어∼"하는 대답뿐이다. 

이런 시들이 잘 된 시로 신문에 실리고, 그것을 본 아이들은 시는 '저렇게 써야 되는구나' 하며 선생님의 말 시 지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이 뻔한 일이다. 교실에서 올바르게 시 지도를 하려 해도 주위의 시들이 이런 모습일 때, 아이들은 오히려 혼란을 느끼게 된다. 정말 아이들의 삶이 베어 나오는 살아있는 아이들 시를 보여줄 수 있도록 아이들 작품을 선별하는 어른들은 신중해야만 한다. 

내 몸집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는 오늘도 학교에 간다. 

성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무겁니? 

아주 공갈 사회책 

외우기만 하는 자연책 

부를 게 없는 음악책 

꿈이 없는 국어책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무겁니? 

잘 부러지는 연필 토막 

검사받다 벌이나 서는 일기장, 숙제장 

검사받다 벌이나 서는 혼식 점심밥통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무겁니?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무겁니? 

얼마나 더 많이 책가방이 무거워져야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집어넣어야 

나는 어른이 되나, 나는 어른이 되나? 

5학년 학생작품 <내 무거운 책가방> 

"나는 이 작품이 아이들에게 감동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확신한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아이들의 가장 절실한 생활문제를 그들의 친근한 일상어로 표현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이답지 못한 좀 지나친 표현이 있어 순수한 아동의 작품임을 의심하게 하기도 하나,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이 그토록 감동으로 읽는다는 데 있다. 아이들이 감동하는 것은 반드시 반항적인 마음이 나타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솔직한 그들의 일상―아무도 어른들이 시로 써 보여주지 않던 그들의 절실한 생활이 과감하게 씌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아동문학에서 동시에서 거의 완전히 망각되었고 버림받았던 것이 아동의 생활세계였던 것이다." 

이오덕 <模作 동시론>중에서,『詩精神과 遊戱精神』 318-319쪽 

아이들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그대로 시가 될 수 있다. 즉 체험의 세계는 사실의 세계요 마음이며, 삶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군더더기를 덧붙이고 깎고 다듬다 보면 감동은 사라지고 재미만 남게 된다. 


생선 비늘이 뛰어 
번뜩거리는 바다 

노오란 지느러미를 펴다가 
그물에 걸려든 
해. 

바다를 휘감고 
퍼덕거린다. 

개펄이 묻은 
장대로 
뛰는 바다를 치면 

그 빠알간 
해의 아가미 속에서 
비린내 나는 
햇살이 쏟아진다. 

이상현 <풍경>, 이오덕 지음『詩精神과 遊戱精神』255쪽에서 재인용. 

이오덕 선생은 이에 대해 "말이 매우 신선하고 매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독자들의 머리 속에 바다의 풍경을 펼쳐 보이는 데 있어서 사물 자체로서 던져지는 살아 있는 말이 못 되고, 적어도 머리 속에서 한 차례 번역을 해야 하는 성가신 과정을 거쳐야 짐작이 되는 이질적인 말의 덩어리, 곧 죽은 말의 조립으로 되어 있다." (위의 책 255쪽)고 지적하면서 감동이 아니라 말재주의 재미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은 시의 본질이 아니라고 했다. 

이러한 감동은 체험이 없는 상상의 세계에서는 오지 않는다. 아이들의 세계는 체험(삶)의 세계이면서 솔직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살아있는 세계다. 그래서 시적인 미숙함이 드러나면서도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이 쓰는 동시는 시적인 완성도는 있을 지 몰라도 감동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이들의 체험 세계에 들어가려는 잘못 된 동시 쓰기의 자세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이상현의 동시에서 '생선 비늘이 번뜩거리는 바다' , '그물에 걸려든 해' , '비린내 나는 햇살이 쏟아진다' 등이 바로 그러리란 개연성(蓋然性) 속에서 빚어진 언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감동이 없는 말장난의 시어가 되고 말았다. 

2. 정서의 흐름 따르기 

시도 일반적인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를 시에서는 정서의 흐름이라고 한다. 일어난 감정의 첫 단계(도입)가 주위의 배경과 함께 확장되고(발전), 감정의 극대화(정점-전환)를 이루고 드디어 정리단계(맺음)로 이르는 4단 구성의 흐름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정서의 흐름이 곧 시의 흐름이며, 이러한 단계는 시낭송을 할 때 감정의 상승과 하강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한 편의 시에 담겨 있는 시인의 감정 상태를 독자는 직감적으로 파악하게 되고, 시를 읽을 때 자연스럽게 그 감정의 오르내림에 따라 어조의 높낮이를 달리해 읽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의 기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시인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의 자작시 낭송을 들어보면 감정의 높낮이나 어조의 변화가 없어 뜻 전달이 전혀 안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경험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오늘의 시가 가지는 낭송의 부적절함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시인들의 상당수는 시가 여전히 나약하고 애처로움 속에서 읽히고 음미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수되어 시를 낭송해보라 하면 백이면 백 모든 학생들이 예쁘게 애처롭게 읽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교과서에 실린 시들의 대부분을 목청을 돋워 침튀기며 낭송할 작품이 별로 없음은 물론, 시는 이런 것이다라는 듯이 한결같이 감정을 내리 깔아야하는 시들이기 때문에 시낭송의 즐거움과 향유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독자들은 이런 시의 감정의 흐름을 1차적으로 파악해가며 시에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정서의 변화나 흐름이 느껴지도록 시를 읽고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시에 담겨 있는 이러한 정서의 흐름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또는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반대로 긍정에서 부정으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러한 정서의 흐름은 시인의 의식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마련이다. 정서의 흐름은 바로 주제 의식과 직결되어 독자의 마음속으로 전달된다. 시적 형상화(이미지)의 모습도 바로 이와 같은 정서의 흐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서정주시선, 정음사, 1956) 

미당 서정주의 대표시로 꼽히는 <국화 옆에서>다.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4단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1연에서는 시상의 진술이다. 2연에서는 촉발된 시상이 확장되고, 3연에서는 누님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며 감정의 극대화에 이른다. 4연은 정리 단계다.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남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읽은 시인은 불교적 연기설을 떠올리며 형상화에 이른다. 

시는 소설과 달리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게 된다. 비유나 상징의 표현을 사용하는 목적도 바로 이 내면의 정서를 보다 구체적으로 또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된다. 이 점에 있어서는 1인칭의 수필이 가지는 고백적 성격과 같으나 수필보다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정서의 변화와 주제 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정지용의 <유리창1>에서 정서의 변화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1930.1 <조선지광>89호에 발표) 

< 유리창(琉璃窓) 1>정지용시집, 시문학사, 1935 

유리창에 어린 영상은 새의 이미지다. 안과 밖을 단절시키는 유리창 속에서 내다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여전히 유리창 속에 머문다. 시적화자는 열없이 유리창에 어리는 물먹은 별의 반짝임을 보고 싶어 입김 자국을 지우고 지우면서 더 잘 보려한다. 이런 행동은 슬프고 애절한 마음의 행동이다. 

여기서 유리창은 이승(밝음,화자의 세계)과 저승(어둠, 죽은 자식의 세계)의 경계이며,투명한 유리의 속성에서 보이듯 서로를 연결시키는 영매적 세계이다.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 죽어버린 자식은 산새처럼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 별의 이미지는 죽은 아들의 이미지와 아버지의 눈에 고인 눈물의 이미지로 복합되어 있다. 죽은 영혼과의 교감은 격리된 유리창을 통해 가능하지만 유리창을 열 수 없고 다만 '지우고 보거나, 유리를 닦는'행위로 밖에 자신의 안타까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 

< 유리창2>에서는 정서의 변화가 더 구체적이다. 모더니즘 계열의 정지용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밖의 세상은 어둡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잣나무는 자란다. 그것은 희망이다. 일제하의 어둠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아직 요원하다. 목이 마르다. 나는 유리항아리 속에 갇힌 금붕어다. 목마름을 달랠 물도, 희망의 등대가 될 별도 보이지 않는다. 갇힌 나를 꺼내달라고 외치지만 현실을 꿈쩍도 않는다. 현실과 타협할 수 있다면 이 고통도 사라지리라. 그러나 시인에게 허용될 수 없는 차가운 입맞춤에 지나지 않는다. 쓰라리고 아련한 향기는 멀리 도회의 하늘을 피어오르는 화재의 불꽃처럼 멀리만 있는 것이다. 


내어다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 앞 잣나무가 자꾸 커 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쪼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랏빛 유리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연정스레이 

유리에 부빈다, 차디 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서 고운 화재가 오른다. 

< 유리창(琉璃窓) 2> 정지용시집, 시문학사, 1935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은 정서의 흐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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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박소란(1981∼ )

담장 저편 희부연 밥 냄새가 솟구치는 저녁
아아,
몸의 어느 동굴에서 기어나오는 한줄기 신음

과일가게에서 사과 몇 알을 집어들고 얼마예요 묻는다는 게 그만
아파요 중얼거리는 나는 엄살이 심하군요
단골 치과에선 종종 야단을 맞고 천진을 가장한 표정으로
송곳니는 자꾸만 뾰족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직
아침이면 무심코 출근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누군가를 찾아 밤을 보내고
그러면서도 수시로 아아,
입을 틀어막는 일이란
남몰래 동굴 속 한 마리 이름 모를 짐승을 기르는 일이란
조금 외로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동물도감 흐릿한 주석에 밑줄을 긋던 기억

 

 

아니요 말한다는 게 또다시 아파요
나는 아파요
신경쇠약의 달은 일그러진 얼굴을 좀체 감추지 못하고
집이 숨어든 골목은 캄캄해 어김없이 주린 짐승이 뒤를 따르고
아아,

간신히 사과 몇 알을 산다 붉은 살 곳곳에 멍이 든 사과
짐승은 허겁지겁 생육을 씹어 삼키고는 번득이는 눈으로
나를 본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길을 가다가 마주 걸어오던 청년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여장남자 같아.” 같이 찧고 까불던 그의 일행이 일순 조용해지며 아무도 웃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나를 두고 한 말이 분명했다. 그런가? 늙고 살이 찐 뒤 바그너같이 생겨진 것도 같다. 이제 지나가던 젊은 남자가 친구들 웃기자고 함부로 대할 만큼 늙은 여자가 된 것인가. 늙은 것은 서럽지만, 서러운 젊음도 있다. 박소란의 시를 읽노라면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 청춘의 가슴 저린 시간들이 떠오른다.


화자는 활달하고 낙천적인 사람이 아니고, 환경도 밝지 않은 듯하다. ‘수시로 아아,’ ‘한 줄기 신음’인지 한숨인지 ‘몸의 어느 동굴에서 기어나온’단다. 절망감과 외로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는 것이다. ‘아침이면 무심코 출근하는 직장’은 호구지책일 뿐 아무 즐거움이 없는 곳, 거의 매일 곧바로 퇴근해서 돌아가는 집도 ‘캄캄’하다. 저녁의 긴 그림자를 밟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는, 박소란이 그리는 필경 가난하고 외로운 청춘의 초상에 젊은 여성 독자는 더 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의 시를 하나 더 소개한다.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늘//안간힘으로/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그러니 모두/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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