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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온몸으로 온몸을 다해 밀고 가는것이다...
2017년 04월 10일 21시 29분  조회:2164  추천:0  작성자: 죽림

1. 시는 온몸으로 온몸을 다해 밀고 가는 것이다
                            
                                        ---  윤미에게

                                                            

어제는 굴뚝연기가 하늘로 못 오르고 자꾸만 담 아래로 고개를 꺾더니 오늘은 구름이 산 너머로 밀려 내려갔구나. 하루종일 날이 흐려도 앞산에는 진달래 뒷산에는 산벚꽃 피는구나.
너희 학교에는 지금 무슨 꽃이 피었니?
벚꽃이 화사하게 핀 걸 바라보다가 우리가 같이 공부하던 중학교 담 옆에 서 있는 살구나무도 지금쯤 꽃을 피웠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
기억나니? 그 살구나무.
잘 안 난다고? 
초여름이면 애들이 돌 던져서 살구를 따먹다가 혼나곤 하던 그 나무 말이야. 그 살구나무의 꽃은 향기가 얼마나 은은한지 몰라. 달콤한 향기를 풍겨오면서도 결코 요란하지 않고 색깔이 화려하거나 진하지 않은 그저 잔잔한 연분홍 빛이면서도 속되지 않지. 멀리서보면 그저 눈에 잘 안 띄는 평범한 나무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그런 줄 몰랐다고?
시를 쓰는 사람은 자연현상의 작은 흐름 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한단다. 시를 쓰는 사람이 특별한 사람은 아냐. 시를 쓰는 사람과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은 큰 차이가 없어. 시 쓰는 사람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하고 그러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함께 섞여 살아가다가 한번 더 되돌아본다는 점 일거야. 남들은 살구나 열려야 군침을 흘리며 쳐다보는 살구나무도 늘 눈여겨본다는 거야. 꽃이 피기 시작할 때, 꽃이 피었을 때, 꽃이 지고 잎이 돋아날 때, 그 잎에 단풍이 들었다가 잎도 꽃도 다 잃은 빈가지 만으로 겨울을 견디고 있을 때 자주 그 나무를 바라보는 거야.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흘러가는 강물,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를 가다가 한 번 더 쳐다보고 가는 거지. 그러는 동안 나무 한 그루에 담겨 있는 삶의 의미도 볼 줄 알게 되고 나무가 우리에게 건네는 소리를 들을 줄도 알게 되는 거야. 꽃 한 송이를 사랑하게 되고 내가 꽃을, 꽃이 나를 길들이는 사이가 되는 거지.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도 하찮게 보지 않고 사랑하며 지켜보는 동안 사람도 그와 같이 사랑하게 되거든.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바라볼 줄 알게 되고 가여운 것을 가엾게 여기게 되며 옳은 것, 의로운 것을 구분해 낼 줄 알게 되지.
그러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 담겨 있는 삶의 의미는 그냥 계속 쳐다보고만 있다고 보이는 건 아니야. 지혜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거야. 다시 말해서 내 세계관의 눈으로 보아야 보인다는 거야. 그냥 보는 건 ‘관찰’이라고 한다면 마음의 눈, 세계관의 눈으로 보아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읽어 내는 건 ‘간파’한다고 말해. 자연의 모습과 사람살이를 ‘관찰’하는 습관도 있어야 하지만 ‘간파’해 내는 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해. 책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오랜 발자취가 담겨 있고 가장 지혜로운 말씀들이 가득 들어 있어.
나는 중학교 때 『레미제라블』을 읽고 처음으로 사람을 한 쪽 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죄인이라는 편견을 갖고 사람을 끝까지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사람에 대한 사랑 이런 걸 알게 되었어. 알고 깨닫고 다시 바라보면 세상은 다르게 보이는 거야. 바른 지혜를 얻게 되면 바르게 보이고 새로운 걸 알게 되면 새롭게 보이는 거야. 
책을 많이 읽어야 되는 이유는 또 있어. 우리가 시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는 거야. 우리가 시를 읽고 ‘내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한 것 같아.’ 이렇게 말하는 때가 있지. 어떤 날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 때로는 한 편의 시를 읽고 의로운 마음이 생겨 주먹을 쥐기도 하지.
이건 시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거든.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어. 이런 걸 변화의 정서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시가 위대한 거야. 남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다 주기도 하는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거야. 남에게 바른 변화와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생각할 줄 알아야겠지.
그렇게 많이 읽고 깊게 생각한 것이 있으면 자연히 그게 넘쳐서 글이 쓰여지는 거야. 하루하루 학교생활에 얽매여 책을 읽고 생각할 여유가 많지 않다는 걸 누가 모르겠니. 그러나 그 하루 하루의 생활 중에 짧게 5분이나 10분씩 몇 번의 시간을 내는 노력도 해 봐. 요즘은 그런 책들도 많아졌어. 5분이면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면서 긴 여운을 주는 글도 많거든. 그리고 그걸 읽고 난 느낌을 간단히 메모하고 거기 자기 생각을 곁들이는 습관 이런 것도 여러 해 쌓이면 큰 재산이 될 거야. 아니면 한 주일이나 한 달 기간을 정해두고 목표한 책을 읽어나가는 계획도 괜찮지 않을까. 긴 시간이 필요한 책은 방학을 이용해서 읽는다든가 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책을 읽는 것도 좋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이 글이 되는 튼튼한 토대 없이 글 쓰는 재주만을 배워서 손끝으로 쓰는 글은 당장 눈에 띌지는 몰라도 오래 가지 못해. 자기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필요 없다는 게 아냐. 똑같이 보고 느낀 것도 더 생생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 그러나 진실하지 않으면 억지로 만든 것이 곧 드러나게 되고, 손재주에만 의지해서 쓰는 글은 얼마쯤 가다보면 자기 한계를 들어내고 말지. 생명력이 길지 않은 시가 되고 마는 거야. 지금 당장 인정받고 상을 받고 싶은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기교만 부리려고 하거나 남의 것을 표절해서라도 대학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없어.
설령 이름 난 시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바른 길을 가야 해. 오래 걸려도 많이 읽고 깊이 있게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실한 시인이 될 수 있어. 

윤미야, 김수영시인 알지? 
일찍이 김수영시인은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강연에서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여기서 김수영시인이 말한 머리는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이론이나 문학에 관한 지식 또는 생각이나 사상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심장이란 가슴 즉 마음속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정서, 감정 등을 뜻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머리로 하는 것이나 심장으로 하는 게 아니고 몸으로 하는 거라고 말했거든. 
몸으로 한다는 게 뭘까. 육체노동이란 뜻일까. 이론이나 감정, 사상이나 정서 어느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합해져서 하나의 몸을 이룬 상태 그걸 뜻하는 걸 거야. 그냥 몸이 아니라 온몸이라고 덧붙였지. 나는 거기다가 바로 손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보태고 싶어.
그래서 머리나 가슴이나 손끝 어느 하나에만 의지해서 쓰는 시가 아니라 그것들 모두가 합해진 시, 즉 문학에 관한 지식이나 공부, 독서를 통해 다져진 지혜, 그리고 사물과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과 가슴,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느끼고 불쌍한 걸 불쌍하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과 자기 생각을 바르게 표현할 줄 아는 손, 이 모든 것이 합해져서 동시에 온몸으로 온몸을 다해 자기 전 생애를 밀고 가는 것 그게 시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자세만 가졌자면 지금 당장 인정을 받든 받지 못하든 상을 받든 받지 못하든 그건 상관이 없는 거야. 시인의 이름을 얻는 일이 중요한 게 아냐. 나는 지금도 내 이름 앞에 시인이란 호칭을 붙이기가 쑥스러울 때가 많아. 내가 진짜 시인이란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가, 시인이란 이름을 붙여도 좋을 만큼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이런 반성을 하기 때문이야.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학교 다닐 때 문학상을 제대로 받아 본적이 없어. 상에 대한 욕심을 낼 때도 많았고 마음이 조급할 때도 많았지만 상을 받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진 덕분에 더 많이 읽고 쓸 수 있었어. 그러니까 내가 시인의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은 일찍 많은 상을 받고 이름을 떨쳤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실패하고 좌절했기 때문이야. 그 실패와 절망과 상처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밑거름이야.        

윤미야, 여기까지 내 이야기를 듣다가 선생님, 시 쓰는 일이 너무 어려워요. 시인이 되는 길이 정말 이렇게 어려운 길이라면 힘들어서 어떻게 그 길을 가요? 하고 말하고 싶을지 몰라. 그래 시인이 되기 위한 길은 어려운 길이야. 그걸 전제로 하고 시작해야 해. 워드프로세스 자격증을 따는 일이나 일본어 회화를 배우는 일처럼 열심히만 하면 바로 인정을 받고 급수가 올라가는 거와는 좀 달라. 
남의 인생관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고 아니 남의 인생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게 시이고 문학이기 때문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아닐까. 글 쓰는 내가 올바른 세계관을 갖춘 사람이 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글을 써댄다면 그건 폭력일 수 있고 세상을 망치게 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남의 삶을 바르게 가꾸는데 도움을 주는 시인이 된다면 그 사람은 그의 시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한용운 시인이나 조지훈 시인 신경림 시인의 시와 이름을 기억하듯 너의 이름을 우리 겨레가 살아 있는 동안 영원히 기억해 줄 거야. 더 정확히 말하면 네가 뜨겁고 치열하고 참되게 산만큼의 시간 동안 너를 기억하고 사랑해 줄 거야. 그래서 어렵지만 가치 있는 길이 시인의 길이야. 어렵지만 바른 자세로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하는 길이야.  

착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이
망설이고 겁먹고 비틀대면서 내놓는 말들이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 속에서
괴로움 속에서 고통 속에서 내놓는 말들이
어찌 아름다운 별들이 안되겠는가.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꿈을 꿀 것 같다,
내 귀에 가슴에 마음 속에
아름다운 별이 된
차고 단단한 말들만을 가득 주워담는 꿈을.
              --- 신경림 「말과 별」 중에서

윤미야 이 시는 “나는 어려서 우리들이 하는 말이 / 별이 되는 꿈을 꾼 일이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신경림 시인의 시 「말과 별」의 뒷부분이야. 우리들이 하는 말이 별이 되는 꿈이란 어찌 보면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 그러나 우리들이 착한 마음으로 피나는 싸움과 괴로움과 고통을 딛고 내놓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라면 별보다 빛나는 아름다운 언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 아름다운 언어들을 모아 이루어내는 별빛 같은 시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아니야 바탕이 참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너는 그런 시를 쓸 수 있을 거야. 나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네가 시인되는 아름다운 꿈을 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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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뜨린 것들 
―김행숙(1970∼)

여름 과일은 물주머니지
겨울에 물은 얼지
강물이 단단해지고 있어
10센티쯤……

내 얼굴에도 눈이 쌓였으면……
나의 시체처럼
그것은 내가 볼 수 없는 풍경이겠구나

아이들은 흙장난을 하다가 이상한 것들을 발견하곤 하지
어느 날은
야구공이 굴러간 곳에서 이상한 것을 줍지
손을 잃어버린 손가락 같은 것
뭐지?

찾았니? 저쪽에서 한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어
과일을 깎다가 둥근 과일을 떨어뜨리지
향기로운 벌레가 기어 나왔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과일을 깎든, 뜨개질을 하든 고개를 수그리고 나른히 손을 움직이며 빠져드는 상념의 흐름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과일을 깎는다, 손목까지 흘러내리는 과일즙,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달콤한 향기. 과일을 깎는다, 한 손에 과일, 다른 한 손엔 칼! 방심해도 좋을 ‘과일 깎기’란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시인은 방심의 부드러움과 방심의 아슬아슬함을 보여준다. 고삐를 놓으면, 생각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 


‘떨어뜨린 것들’은 자동연상기술의 매력이 담뿍 담긴 시다. 자동연상기술이란 떠오르는 대로 그리는 것, 자유로이 자기 상념에 몰두하는 것. 그리하여, ‘그리하여’가 생략됐기에 시구들에 묘한 뉘앙스가 발생하는 것. 김행숙은 이 뉘앙스를 십분 살리면서, ‘맥락 없이 흘러가는 상념’이라는 그림 안에 미묘하게 맥락의 그림자를 새겨 넣은 홀로그램을 만든다. ‘내 얼굴에도 눈이 쌓였으면’, 얼굴에 흰 눈이 쌓인다면 누워 있는 것일 테지, 누워서 얼굴에 흰, 시트가 덮인 죽은 사람…. 마치 ‘흙장난을 하다가 이상한 것들을 발견하곤 하는’ 아이처럼, 여름 과일을 깎다가 ‘볼 수 없는 풍경인 나의 시체’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니. 김행숙의 시를 읽을 때면, ‘뭐지?’ 싶을 때가 드물지 않다. 누구나 어렸을 때 길바닥에서 정체 모를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뭐지?” 놀라면서 소중히 주운 기억이 있을 테다. 도토리껍질인지 조가비인지 알쏭달쏭한 것, 닳아서 모서리가 둥글어진 유리조각이나 사금파리, 병뚜껑이나 돌멩이 같은 걸 보물이나 되는 듯 두근거리며 주머니에 넣곤 했지. 김행숙의 시, 향기로운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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