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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시 모음
2017년 04월 10일 22시 54분  조회:3108  추천:0  작성자: 죽림
 
20세기 서양회화
 

 

<단시 모음>


아름다운 여인 -H. 헤세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셔버리고

 


다음날엔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고 있는 아이와 같이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같이 조그만 손으로 장난을 하며

내 마음이 고뇌에 떠는 것을 돌보지도 않습니다.

 

 

감각 -A. 랭보

 


푸른 여름 저녁, 보리날 쿡쿡 찔러대는

오솔길 걸어가며 잔풀을 내리 밟으면,

꿈 꾸던 나도 발 밑에 그 신선함을 느끼리

바람은 내 맨 머리를 씻겨 줄게구.

 


아,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래도 한없는 사랑 넋 속에 올라오리니

보헤미안처럼, 내 멀리, 멀리 가리라.

여인 데리고 가듯 행복에 겨워, 자연 속으로



 

 

서  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푸쉬킨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지느니.

 

 

 

나그네

 


박목월

 


강 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무지개

 


W.워즈워드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내 가슴은 뛰누나

내 어렸을 때도 그랬고,

늙어서도 그러기를 바라노니

그렇잖음 차라리 죽는 이만 못하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삶의 하루 하루가

자연에의 경건으로 얽어지기를

 

 

 

사  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에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동  화

 


G .벤더빌트

 


예전에 어느 小女는

날마다 날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기를

바라면서 살았답니다.

 

 

 

그리움

 


청마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J. 꼭또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소리 그리워라

 

 

 

 


산비둘기

 


Jean Cocteau

 


두 마리의 산비둘기가

상냥한 마음으로

사랑하였습니다.

 


그 나머지는

차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호  수

 


정지용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충  고

 


괴테

 


너는 자꾸 멀리만

가려느냐

보아라 좋은 거란

가까이 있다.

 


다만 네가 잡을 줄만 알면

행복은 언제나 거기 있나니.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 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지하철 정거장에서

 


E. Pound

 


군중속에 낀 얼굴들의 환영,

비에 젖은 검은 나뭇가지에 걸린 꽃잎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 위의 꽃잎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 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5月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한한 슬픔의 봄을.

 

 

 

 


묵도

 


모윤숙

 


나에게 시원한 물을 주든지

뜨거운 불꽃을 주셔요

덥지도 차지도 않은 이 울타리 속에서

어서 나를 처치해 주셔요

 


주여 나를 이 황혼 같은 빛깔에서 빼내시와

캄캄한 저주를 내리시든지

광명한 복음을 주셔요

이 몸이 다아 시들기 전에 오오 주여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수만 있다면

 


E.디킨스

 

 

 

제가 만일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 수만 있다면

저의 삶은 헛되지 않아요.

제가 만일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주고

고통 하나로 식혀줄 수 있다면

그리고 또한 힘이 다해 가는 로빈새 한 마리를

그 둥지에 다시 올려줄 수 있어도

저의 삶은 진정 헛되지 않아요

 

 

 

 


문둥이

 


서정주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어

 

 

 

저 산 너머

 


칼 부세 (독, 1872-1918) 

 


저 산 너머 또 너머 저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기에

남을 따라 나 또한 찾아갔건만

눈물지으며 되돌아 왔네.

저 산 너머 또 너머 더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건만……

 

 

 

 


귀천

  
천 상 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반복가

 


게오르그 트라클

 


한낮의 화사함은 흘러가 버렸네

저녁을 물들이는 갈색과 푸르름

목동의 피리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네

저녁을 물들이는 갈색과 푸르름

한낮의 화사함은 흘러가 버렸네

 

 

 

눈뜸


J.R 히메이네스

 


너를 위해 나는 언제고 꽃이고 싶다

꽃잎을 달고 끝없이 풍요한 꿈을

 


밤이 끝나고

새벽과 함께 필 때 그 꿈의 정을

활짝 한꺼번에

퍼뜨리는 꽃이고 싶다.

 

 

 

기도서


R.M. 릴케

 


내 눈을 감기세요. 난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를 막으세요. 난 그대 음성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나는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께 맹세할 수 있습니다.

팔이 꺾이면, 나는 당신을

내 마음으로 잡을 겁니다.

심장이 멎는다면, 나의 머리가 울릴겁니다.

만약 당신이 머리에 불을 지르면

나는 그대를 내 피 속에 실어 나르렵니다.

 

 

 

술 노래


W.B.  예이츠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뿐

 


술잔을 입에 대면서

나는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 짓는다.

 

 

 

 


모음들(Voyelles)


A. 랭보

 


A는 흑, E는 백, I는 홍, U는 녹, O는 남색(파란색, 청색)

모음 을이여 네 잠재의 탄생을 언젠가는 말하리라

A(아), 악취(냄새)나는 둘레를 소리내어 나는

눈부신 파리의 털 섞인 검은 코르셋

그늘진 항구, E(으), 안개와 천막의 백색

거만한 얼음의 창날, 하이얀 王者, 꽃 모습의 떨림.

 


I(이), 주홍빛, 토해낸 피, 회개의 도취련가,

아니면 분노 속의 아름다운 입술의 웃음이련가

 


U(우), 천체의 주기, 한 바다의 푸른 요람,

가축들 흩어져 있는 목장의 평화,

연금술을 연구하는 넓은 이마에 그어지는 잔 주름살

O(오), 기괴한 날카로운 비명이 찬 나팔소리려니,

온 누리와 천사들을 꿰뚫는 침묵

오오, 오메가! 신의 시선의 보랏빛 광선.

 

 

 

 


교감(상응; Corespondences)

 

C.P. 보들레르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선 살아있는 기둥들이

이따금 어렴풋한 말들을 하고

사람은 다정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상징의 숲 속을 지나간다.

 


어둡고 깊은 조화 속에

멀리서 합치는 메아리처럼,

밤처럼 그리고 광명처럼 한없이,

향기와 색채와 음향이 서로 화답한다.

 


어린애의 살결처럼 신선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초원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 또 한편엔 썩고, 풍요하고 승리에 찬 향기가 있어,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으로 퍼져나가

정신과 감각과 환희를 노래한다.

 


1)자연이 하나의 사원이어서 거기서 살아있는 기둥들은

때로 혼돈한 언어를 숨으로 내쉬니

인간은 친밀한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그 안으로 들어간다.

 


어둠이며, 빛처럼 광활하며

아둡고도 깊은 통일 속에

멀리서 뒤섞이는 긴 메아리처럼

색채와 음향과 향기가 서로 응답한다.

 

 

 

가을

 

Thomas Ernest Hulme (영. 1881-1917)

 


가을 밤의 싸늘한 촉감

나는 밤을 거닐었다.

얼굴이 빨간 농부처럼

불그스레한 달이 울타리 너머로 굽어보고 있었다.

나는 말은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도회지 아이들 같이 흰 얼굴로

별들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오카모토 쥰

 


올라가니 산이 있었다.

내려가니 골짜기였다.

산에도 골짜기에도 눈이 있었다.

하나님도 짐승도 만나지 않았다.

 


안개

 

 칼 샌드버그

 

안개가 온다 
작은 고양이 걸음으로 
그건 웅크리고 앉아 
항구와 도시를 바라보다가 
다시 움직여 간다

 

Fog
C.Sandburg

 

The fog comes
on little cat feet.
It sits looking
over harbor and city
on silent haunches
and then moves on.

 

 

  봄은 고양이로다

 

              고월  이 장 희(1900-1929)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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