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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상투적인 설명에 그치지 말아야...
2017년 04월 18일 17시 00분  조회:2423  추천:0  작성자: 죽림


 

3. ‘못 하나’ 그 세부 묘사의 진실성과 구체성을 보자


사람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게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저 사람은 어떤 인간일까. 그녀는 어떤 성격일까. 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분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해결했을까...... 다른 사람에 대한 궁금증은 끝이 없다.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특히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자연히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많이 쓰게 된다. 
사람이 최초로 접하는 죽음의 문제도, 사랑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경험한다. 가족을 단위로 한 삶에서 함께 겪는 최초의 경험들, 보살핌과 사랑에 대한 욕구,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등, 가난과 행복, 시련과 어려움, 학창시절의 힘든 과정, 개인과 집단의 갈등과 조절, 불화와 화해, 이별과 그리움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경험들을 유.소년기부터 성장기에 걸쳐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함께 겪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글에는 가족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가족과 함께 자기 경험의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이웃, 친구, 선생님,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하게 된다. 
그러나 글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면서 가장 일반적인 것이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대상의 특징과 특별히 기억하게 되는 부분들을 충실하게 그리고 읽는 이들의 기억에 깊은 인상으로 남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테드 휴즈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인물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보인다고 해서--예컨대 ‘그의 코는 크고 그의 머리는 벗겨졌으며 그는 주로 청색 옷을 잘 입지만 때로는 갈색도 입는다. 그는 갈색 눈을 가졌던 것 같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그러한 말로써 그를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수는 없다. 그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즉 묘사된 그 인물은 수백만의 다른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묘사로부터 아무 것도 확실하게 할 수는 없다. 
  
눈썹 위에 있는 그의 이마는 너비가 정확히 23센티이고 이마 위쪽 머리 경계 부위의 중앙에 있는......그의 머리카락은 떫은 코코낫 색깔이고......그의 머리 어느 부분의 머리카락도 8센티 이상 긴 것은 없다.
이런 식으로 한 인물을 묘사하려면 한 권의 책을 써야 할 것이며 그 첫구절을 읽는데도 지루해지고 말 것이다. 이 인용문의 어느 한가지라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있을까. 있다. 그 사람의 머리색이 떫은 코코넛 색깔이라고 묘사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정확히 무슨 색깔을 가리키는 것인가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 결과 거칠고 뻣뻣한 상태라는 것까지도 느꼈다. 이 비유는 상상력을 움직이는 것이다.
두 개의 사물이 은유나 직유와 같은 비유로 표현되면 그것들이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따로따로 언급될 때보다 훨씬 더 뚜렷하게 보이게 된다. 

만일 당신이 당신 아버지에 관해 20줄 이내로 설명해 보도록 요청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그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분케 해주는 그에게 있어 가장 특징적인 행위나 행실을 묘사하려고 할 것이다. 당신은,‘그는 매일 매일 일하러 간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인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투창 챔피언이라거나 그는 늘 손가락 관절을 꺾으며 앉아 있다거나 그의 이는 송곳처럼 생겼다는 식으로는 말할지도 모른다. 잡담이나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세부들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것이다.1) 
                                            
위의 글에서 우리는 사람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할 때 유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세부 묘사의 중요함과 진실성이라고 하는 점이다. 똑같은 대상에 대해 시를 쓰더라도 하고자하는 중심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글과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경험과 근거가 되는 인상적인 장면들로 이루어진 글은 전달되는 느낌에 큰 차이가 있다. 세부묘사가 잘 된 글이 훨씬 더 생생하며 설득력이 있다.
상투적이고 누구나 다 아는 설명에 그치지 말고 그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읽는 이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시를 보자.
  
용산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좋아라
머슴 만득이 지게에서 점심을 빼앗아 이고 달려오던 누나
수수밭을 매다가도 새를 보다가도 나만 보면
흙 묻은 손으로 달려와 청색 책보를
단단히 동여 매주던 소녀
콩깍지를 털어 주며 맛 있니 맛 있니
하늘을 보고 웃던 하이얀 목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지만
슬프지 않다고 잡았던 메뚜기를 날리며 말했다
어느 해 봄엔 높은 산으로 나물 캐러 갔다가
산뱀에 허벅지를 물려 이웃 처녀들에게 업혀와서도
머리맡으로 내 손을 찾아 산다래를 쥐여주더니
왜 가버렸는지 몰라
목화를 따고 물레를 잣고 
여름밤이 오면 하얀 무릎 위에
정성껏 삼을 삼더니
동지섣달 긴 긴 밤 베틀에 고개 숙여
달그당잘그당 무명을 잘도 짜더니 
왜 바람처럼 가버렸는지 몰라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이내 달려나올 것만 같더니
한번 가 왜 다시 오지 않았는지 몰라
식모 산다는 소문도 들렸고
방직공장에 취직했다는 말도 들렸고
영등포 색시집에서 누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용산역전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던 내 팔 붙잡다
날랜 발,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
                      ---이시영 「정님이」
  
지금 시속에서 말하는 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용산역 늦은 밤의 거리이다. 그 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떤 여인이 자기의 팔을 잡아끌다 화들짝 놀라 손을 놓고 사라져 가는 걸 보았다. 그 순간 화자는 현재 시점에서 회상 시점으로 이동하면서 그 인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 사람과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낸다.
구체적으로 짚어 보자. 우선 화자는 그 여인이 정님이 누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님이 누나는 어떤 누나로 그려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그 모습이 떠오르도록 묘사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찾아보자. 정님이 누나는 이마에 흉터가 있고 그 흉터를 긴 머리로 가리고 있었다. 발이 날래어 운동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했었다. 지금 놀라서 손을 놓고 달려간 여인의 모습을 보며 그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정님이 누나는 학교도 못 다녔고 농사를 거들며 살았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냥 농사꾼이었다고 하지 않고 “수수밭을 매거나 새를 보다가 나만 보면 흙 묻은 손으로 달려와 책보를 단단히 동여매 주기도 하고 콩깍지를 털어 주기도 했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이얀 목, 하얀 무릎을 가진 누나로 기억 속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대한 세부묘사만 생생한 게 아니라 화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님이 누나가 어떤 인물인지 선명하게 떠오르도록 형상화하고 있다. 부모 없는 고아이면서 슬퍼하지 않는 모습, 이 부분 뒤에 따라오는 “메뚜기를 날리며 말했다.”는 시적 진술은 읽는 이들을 유년기 농촌 정서 속으로 끌고 가면서 마음을 더 애틋하고 선하고 아련하게 만든다.
꿋꿋하고 웬만한 시련과 아픔도 잘 견디어내던 정님이 누나에 대한 시적 화자의 이야기 속에는 정님이 누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낸 부분이 없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정님이 누나는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이내 달려나올 것만 같”은 거리에 있다. 심리적 거리가 매우 가까운 자리에 정님이 누나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내 기억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아직도 화자는 정님이 누나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목화를 따고 물레를 잣고 삼을 삼고 베틀에 무명을 짜던” 농사꾼인 정님이 누나는 식모, 방직공장 노동자, 영등포 색시집을 전전하는 힘들고 가파른 삶의 길을 걸어야 했고 결국 그 삶의 끝은 용산역 앞에서 몸을 파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방금 그 여자가 정님이 누나라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유추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대에 이런 수많은 정님이 누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누구도 정님이 누나의 맵고 쓴 삶에 대해 확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간접화법으로 진술하고 있지만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은 정님이 누나라는 한 개인을 통해 인간의 운명과 삶의 여정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거꾸로 우리가 가장 천박하게 여기는 사람의 삶을 역순으로 짚어나가면 그가 본래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힘과 선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시대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농민의 아들딸들이 도시화, 산업화되는 시대의 흐름에 이끌려 도시빈민이나 노동자가 되었다가 자본의 논리에 휩쓸려 들어가면서 결국 어떤 삶의 결론에 이르고 마는 가를 종합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정님이 누나가 섰던 자리는 정님이 누나 한 사람의 어두운 발걸음이 머물다 간 자리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 시대와 운명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인간에 대한 새롭고 깊은 이해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생각하며 함께 서 있게 하는 자리이다.
  
너의 고향은 아가야 
아메리카가 아니다.
네 아버지가 매섭게 총을 겨누고
어머니를 쓰러뜨리던 질겁하던 수수밭이다.
찢어진 옷고름만 홀로 남아 흐느끼던 논둑길이다.
지뢰들이 숨죽이며 숨어 있던 모래밭
탱크가 지나간 날의 흙구덩이 속이다.

울지 마라 아가야 울지 마라 아가야
누가 널더러
우리의 동족이 아니라고 그러더냐
자유를 위하여 이다지도 이렇게 
울지도 피 흘리지도 않은 자들이
아가야 너의 동족이 아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아름답다고
고궁을 나오면서 손짓하는 저 사람들이 
아가야 너의 동족이 아니다.

초승달 움켜쥐고 키 큰 병사들이 
병든 네 엄마 방을 찾아올 때마다
너의 손을 이끌고 강가로 나가시던 할머니에게
너는 이제 더 이상 
묻지 마라 아가야
그리울 수 없는 네 아버지의 모습을 
꼭 돌아온다던 네 아버지의 거짓말을 
묻지 마라 아가야

전쟁은 가고
나룻배에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 
그 늙은 뱃사공은 어디 갔을까
학도병 따라가던 가랑잎같이
떠나려는 아가야 우리들의 아가야
너의 조국은 아프리카가 아니다.
적삼 댕기 흔들리던 철조망 너머로
치솟아 오르던 종다리의 품속이다.
               ---정호승 「혼혈아에게」

울면서 외국으로 입양 가는 혼혈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울지 마라 아가야 울지 마라 아가야’이렇게 말하면서 시를 읽는 이들을 울리고 있다. 지금 시속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그릴수도 있고 사회문제의 하나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역사적인 기록보다도 더 뛰어나게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를 시로 형상화하고 있고 어떤 신문 잡지의 기록 사진보다도 더 생생하게 장면 장면들을 그리고 있다.
혼혈아가 생길 수밖에 없던 장면을 그리고 있는 이 시의 1연,‘찢어진 옷고름만 홀로 남아 흐느끼던 논둑 길.’‘지뢰들이 숨죽이며 숨어 있던 모래밭’이런 묘사들을 보자. 찢어진 몸뚱이 대신 찢어진 옷고름이라고 표현한 이 부분이 갖는 뛰어난 형상화와 그 옷고름이 홀로 남아 흐느낀다고 묘사함으로써 겁탈 당한 뒤 혼자 버려진 여인과 그 여인으로 상징된 민족적인 비극, 능욕 당한 것은 여인이 아니라 곧 우리 국토임을 말해주는 논둑 길. 질겁하던 수수밭. 이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고 있다.
지뢰들이 숨죽이며 숨어 있던 모래밭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지뢰가 터지지 않고 가만히 묻혀 있는 모래밭일 것이다. 똑같은 사실을 전자는 미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후자는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크다. 단순하게 전쟁의 위험성만을 나타내는데 그치지 않고 곧 폭발할지도 모르는 분노까지도 그 속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초승달 움켜쥐고 키 큰 병사들이 / 병든 네 엄마 방을 찾아올 때마다’이런 표현이나 ‘적삼 댕기 흔들리던 철조망 너머로’이런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 시는 세부묘사를 충실하게 해냄으로써 진실성과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다.

누님. 누님들 중에서 유난히 얼굴이 희고 자태가 곱던 누님. 앞산에 달이 떠오르면 말수가 적어 근심 낀 것 같던 얼굴로 달 그늘진 강 건너 산 속의 창호지 불빛을 마루 기둥에 기대어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던 누님. 이따금 수그린 얼굴 가만히 들어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얼굴 가득 담겨지고, 누님의 눈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그 그렁그렁한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누님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었지요. 왠지 나는 늘 그랬어요. 나는 누님의 어둔 등에 기대고 싶은 슬픔으로 이만치 떨어져 언제나 서 있곤 했지요. 그런 나를 어쩌다 누님이, 누님의 가슴에 꼭 껴 안아주면 나는 누님의 그 끝없이 포근한 가슴 깊은 곳이 얼마나 아늑했는지 모릅니다. 나를 안은 누님은 먼 달빛을 바라보며 내 등을 또닥거려 잠재워 주곤 했지요. 선명한 가르마 길을 내려와 넓은 이마의 다소곳한 그늘, 그 그늘을 잡을 듯 잡을 듯 나는 잠들곤 했지요.

징검다리에서 자욱하게 죽고 사는 달빛, 이따금 누님은 그 징검다리께로 눈을 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지요. 강 건너 그늘진 산 속에서 산자락을 들추며 걸어나와 달빛 속에 징검다리를 하나둘 건너올 누군가를 누님을 기다리듯 바라보곤 했지요.
   
그러나 누님. 누님이 그 잔잔한 이마로 기다리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니라는 것을, 누님 스스로 징검다리를 건너 산자락을 들추고 산그늘 속으로 사라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을 세월이 흐른 후, 나도 누님처럼 마루 기둥에 기대어 얼굴에 달빛을 가득 받으며 불빛이 하나둘 살아나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누님이 그렇게나 기다리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니며 그냥 흘러가는 세월과 흘러오는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나도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과 헤어져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이며 아픔과 괴로움을 겪었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고 또 무엇인가를 기다렸는지요.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아픔과 슬픔인지요 누님.
누님, 누님의 세월, 그 세월을, 아름답고 슬픈 세월을 지금 나도 보는 듯합니다.   
  
누님, 오늘도 그렇게 달이 느지막이 떠오릅니다. 달 그늘진 어둔 산자락 끝이 누님의 치마폭같이 기다림이 세월인 양 펄럭이는 듯합니다. 강변의 하얀 갈대들이 누님의 손짓인 양 그래그래 하며 무엇인가를 부르고 보내는 듯합니다. 하나둘 불빛이 살아났다 사라지면서 달이 이만큼 와 앞산 얼굴이 조금씩 들춰집니다. 아, 앞산, 앞산이 훤하게 이마 가까이 다가옵니다. 누님, 오늘밤 처음으로 불빛 하나 다정하게 강을 건너와 내 시린 가슴속에 자리잡아 따사롭게 타오릅니다. 비로소 나는 누님의 따뜻한 세월이 되고, 누님이 가르쳐준 그 그리움과 기다림과 아름다운 바라봄이 사랑의 완성을 향함이었고 그 사랑은 세월의 따뜻한 깊이를 눈치챘을 때 비로소 완성되어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님, 오늘밤 불빛 하나 오래오래 내 가슴에 남아 있는 뜻을 알겠습니다. 누님, 누님은 차가운 강 건너온 사랑입니다. 많은 것들과 헤어지고 더 많은 것들과 만나기 위하여, 오늘밤 나는 사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하여 그 불빛을 따뜻이 품고 자려 합니다. 누님이 만나고 헤어진 사람을 사랑하며 기다렸듯 그런 세월, 그 정겨운 세월…… 누님의 초상을 닦아 달빛을 받아 강 건너 한 자락 어둔 산 속을 비춰봅니다.    
                                 ---김용택 「섬진강 4-누님의 초상」

이 시에서 이야기하는 누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까. 어찌 보면 너무나 흔히 보던 서정적인 그리움의 대상으로서의 누님일수도 있고 관념적인 모습의 누님 상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연의 누님에 대한 그리움, 2연의 누님의 기다림, 3연의 누님의 세월, 4연의 누님이 가졌던 사랑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잔잔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누님의 모습은 단순히 평이하지마는 않고 삶의 깊이를 지니고 있으며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는 누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아주 진한 그리움의 장면 장면으로 이어지는 세부 묘사의 사실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며 다음과 같은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님이 그렇게 기다리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니며 그냥 흘러가는 세월과 흘러오는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나도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과 헤어져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이며 아픔과 괴로움을 겪었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고 또 무엇인가를 기다렸는지요.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아픔과 슬픔인지요 누님.”
그리고 그런 누님의 사랑은 “세월의 따뜻한 깊이를 눈치챘을 때 비로소 완성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내는 철학적 깊이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서 이 시를 단순히 평이하게만 만들지 않는다.
누님이 사랑하던 사람은 그늘진 산 속에 있었다. 그 산자락을 들추며 산과 누님 있는 곳 사이를 이어주던 징검다리를 건너올 그 사람을 기다리다 누님 스스로 운명의 징검다리를 건너 산그늘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시속의 서정적 자아인 나는 오랜 세월 누님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누님의 기다림과 그리움과 누님이 그렇게 보낸 세월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구조로 이 시는 짜여져 있다. 누님이 사라진 그 산은 역사적인 공간이며 산 속을 향한 누님의 선택이 따라서 역사적 실존에 대한 선택일수도 있으며 그런걸 떠나 보편적으로 삶과의 사별로도 해석이 가능해지게 하는 상상력을 이 시는 열어두고 있다.
서정주, 고은, 송기원 등의 시를 통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한국시 속의 누님--이른바 남성시인의 여성지향성, 모성컴플렉스와 맥을 같이하면서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역사의 공간으로 누님의 이미지를 끌고 가고 있다.
몇 편의 시를 더 보도록 하자.       
    
역을 지날 때면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산을 굽이 돌아 멀어져간
철길처럼
이제는 가물가물한 어머니.
낡은 사진첩 속에
한 장 빛 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는 언제나 
50의 중년
나는 해마다
연륜의 그릇을 하나씩 비워내고
한 걸음씩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간다.
어머니와 나의 나이가 가까워지는 만큼
어머니와 나의 인연은 멀어져 가고,
때 없던 목메임도 뜸해져 간다.
불현듯 어머니가 그리운
마음이 허전한 날이면
꿈이 길고 긴 꿈 내내
어머니는 뒷모습만 보인다.
           --- 김경호 「사모곡」

먼 길 떠나시던 
아버님 발자욱이 보인다

어두운 밤 홀로 흰 두루막자락 날리시며 
검은 산 넘어 넘어
먼 길 가시던 날 
     
어머님이 감추시던
눈물어려 몇 방울

내 이젠 나이 들어 어린 딸 거느리고
여름 저녁 한 때 언덕에 서면
    
만주땅 어느 곳에 잠들어 계실
아버님 모습……
  
풀벌레들 정적 더하던
고향 옛집에서
철모르던 우리 남매 잠재워 놓고

두만강
된서리 묻어온 두루마리 
남 몰래 읽으시던 우리 어머니
     
촛불에도 떨리시던 
당신의 눈물 모두 어려 보인다.
             ---김명수 「북두칠성」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로만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 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 「못 위의 잠」

「사모곡」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시고,「북두칠성」은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주제로 한 시다. 「못 위의 잠」역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모곡」은 역을 지나다가 어머니 생각이 난 것이 시를 쓰게 된 동기 같다. 「북두칠성」은 어린 딸과 함께 언덕에 서서 별을 바라보다가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모곡」에서 어머니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보자. ‘산을 굽이돌아 멀어져 간 철길처럼 / 이제는 가물가물 한 어머니’ 그리고 ‘낡은 사진첩 속에 한 장 빛 바랜 사진으로 남나 있는’ 50대 중년의 어머니이다. 이제는 꿈속이 아니고는 만나볼 수 없는데 꿈속에서도 뒷모습만 보이는 어머니이다.
「북두칠성」에서는 ‘어두운 밤 홀로 흰 두루막 자락 날리시며 / 검은 산 넘어 넘너 먼 길 가시던’ 아버지 모습과 눈물을 감추시던 어머님을 생각한다. 두만강 된서리 묻어 온 두루마리 편지를 남 몰래 읽으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있다. 이 시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은 북두칠성에서 발견한 아버님 발자국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는 일곱 개의 별에서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에 만주로 몰래 떠나시던 아버님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상상력은 뛰어나다. 어둠 속의 별과 어두운 시대를 헤쳐나가던 발자국을 연관시킨 부분과 그 주위에 흩어진 별에서 어머님이 감추시던 몇 방울의 눈물을 떠올리는 장면 역시 집약된 시상의 결정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못 위의 잠」은 제비집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갓 태어난 제비들로 가득한 둥지와 새끼들을 날개로 덮은 채 잠들어 있는 어미 제비를 발견한 것까지는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시인의 섬세한 눈이 찾아낸 절묘한 곳은 박힌 못에서 꾸벅거리며 앉아 있는 아비 제비이다. 이 못 위에서 불안하게 잠자고 있는 제비를 보며 시인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9행부터 시작되는 가족사 속에는 아이 셋을 데리고 버스정류장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실업의 아버지, 굳게 쥐어야 할 주먹으로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걸음 늦게 뒤를 따라오는 아버지 모습을 너무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흙바람이 그치지 않고 몰려오던 가난한 날들과 피곤에 지치도록 일하던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과 좁은 골목길, 이 시의 감동은 충실한 세부묘사와 진실성이 뒷받침되어 있어서 더욱 빛이 난다.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그리움이야 다 같겠지만 「사모곡」이 보여주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목메임이 「못 위의 잠」이 보여주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차이가 있다면 그건 어디서 오는 걸까. 구체성, 세부 묘사의 진실성에서 오는 것이다.
「북두칠성」은 상징성이 잘 나타나 있지만 고전적이라는 점에서는 사모곡과 비슷하다. 고전적이란 말속엔 전형적이란 좋은 의미도 포함시킬 수 있겠는데 그 대신 생생하게 다가오도록 하는 데 있어서는 「못 위의 잠」만 못하다. 세부묘사에 충실했으면서도 「못 위의 잠」은 설명적인 시로 떨어지지 않았다. 제비집에서 출발한 착상이 좋고 어려운 시절의 가족사와 대비시킨 표현의 기법이 아귀가 딱 맞아떨어진다. 그리고자 하는 구체적인 특징과 읽는 이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될만한 인상적인 장면들을 충실하게 그려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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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 ―이정주(1953∼ )

 

 

 


여자는 내 어깨 아래 핫백을 밀어 넣는다
나는 데워진다
따뜻하고 어지럽다
여자는 내 어깨에 멘소레담을 바르고 근육들을 만진다
시원하고 아프다
여자는 내 어깨에 전극을 붙이고 스위치를 올린다
찌릿찌릿하고 간지럽다
여자는 물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미진하다
이 통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내 팔은 다른 것을 찾고 있다
지난여름의 돌을 더듬고 있다
돌에 걸려 넘어져 얼굴이 처박혔던
백사장을 더듬고 있다
얼굴 쳐들고 하늘로 뿜었던 욕설을 그리워하고 있다
옆에서 박수치며 웃던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여자에게 인사한다
여자는 나를 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을 데우고 있다

목이 마르다
하늘에 맑은 물 한 잔과
붉은 알약 하나가 떠 있다



어깨 통증으로 정형외과에 가면 시의 첫 연에 그려진 물리치료를 받으리라. ‘나는 데워진다’ ‘따뜻하고 어지럽다’ ‘시원하고 아프다’ ‘찌릿찌릿하고 간지럽다’. 물리치료사가 처치하는 과정에 따르는 감각을 사실 그대로 진술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관능적 쾌감을 겹쳐 떠오르게 하는 효과를 의도한 화자의 능청. 남자인 화자는 굳이 물리치료사의 성을 가려 ‘여자’라 칭한다. ‘여자는 물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물리치료사가 능숙하고 세심하게 치료를 마친 것을 화자도 인정한다. 통증도 사뭇 가셔서 환자로서는 만족스럽다. ‘하지만’ 몸을 추스르고 치료대에서 내려오며 화자는 ‘미진하’단다. 그의 마음은 속삭인다. ‘이 통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내게 필요한 것은 물리치료사의 손길이 아니라 다른 손길이라고. 
 

 

화자의 어깨 통증은 사랑이 끝난 뒤 생긴 것. 마음의 상처를 꾹꾹 누르면 몸의 통증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예민하면서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 듯하다. 그런 사람이 어두운 욕망이든, 밝은 욕망이든 서로 삼갈 것 없이 ‘뿜었던’ 오직 한 사람을 잃었으니 이중 삼중으로 고통일 테다. 외로움으로 심약해진 화자는 물리치료사가 다른 환자를 보느라 저를 벌써 잊은 것에도 설핏 섭섭하다. 아, 어깨가 도로 아파지는 것 같네. 병원을 나서니 저녁 하늘에 빨간 동그라미로 떠 있는 태양. 잘 익은 버찌 같은 그 해가 화자 눈에는 ‘붉은 알약’으로 보인다. 혹시 진통제? 화자의 어깨 통증에는 마음의 안마, 심리치료도 필요하겠다. 이 시를 씀으로써 화자의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은 풀리지 않았을까. 시 쓰기의 효능은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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