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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시인 - 맹호연
2017년 04월 20일 23시 48분  조회:4808  추천:0  작성자: 죽림
 
출생 689, 후베이 성[湖北省] 샹양[襄陽]
사망 740
국적 중국, 당(唐)

요약 중국 당대의 시인.
(병). Meng Haoran. (웨). Meng Haojan.

 
맹호연(孟浩然)
맹호연(孟浩然)

맹호연의 시 [만소당죽장화전 晩笑堂竹荘畫傳]

어린시절 고향에서 묻혀 지내다가 나중에 장안으로 가서 진사과에 응시했으나 실패한 이후로 평생 벼슬을 하지 못했다. 장쑤 성[江蘇省]과 저장 성[浙江省] 등지를 자유로이 유람했으며 장구령에게 초빙되어 그의 막객을 지내다가 얼마 후 병으로 죽었다.

시의 소재는 넓지 않은 편으로 주로 전원의 산수경치와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심정을 묘사한 것이 많다. 시어가 자연스럽고 풍격이 청담하며 운치가 깊어서 당대의 대표적인 산수시인으로 꼽힌다. 왕유(王維)와 더불어 이름을 날렸으므로 왕·맹이라 병칭된다. 〈맹호연집 孟浩然集〉이 있다.



[Daum백과] 맹호연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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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제자등현산)
            -孟浩然(맹호연;689-740)



與諸子登峴山(여제자등현산)-孟浩然(맹호연;689-740)
여러 사람들과 현산에 올라

人事有代謝(인사유대사) : 사람의 일이란 흥망이 바뀌는 법
往來成古今(왕래성고금) : 지난 일과 오는 일이 역사를 만든다
江山留勝跡(강산류승적) : 강산은 좋은 형적, 형산을 만들었나니
我輩復登臨(아배부등림) : 우리들 다시 올라 왔다네
水落魚梁淺(수락어량천) : 물 빠지니 어량은 바닥 드러나고
天寒夢澤深(천한몽택심) : 날 추워지니 몽택은 깊어진다
羊公碑尙在(양공비상재) : 그 옛날 善政을 펼쳤던 羊祜公의 追慕碑가 아직도 남아있어,
讀罷淚沾襟(독파누첨금) : 비문(碑文)을 읽고 나니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 

*감상

ㄱ. 내용 : 작자는 고향인 양양에서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고 불우하게 은거하던 시기에 쓴 시로 
친구들과 현산에 올라 옛날 양호장군의 비를 읽으며 인사의 흥망성쇠를 서글픈 느낌으로 표현한 시임.
ㄴ. 형식 : 하평성12 침侵을 압운한 오언율시로 첫 구가 하삼측에 평측이 전연 안 맞았으나 
나머지부분은 비교적 잘 맞음.

*낱말

1.현산峴山:현수산峴首山이라고도 하며 호북성 양양襄陽 남쪽에 있음. 여기서 
제자諸子는 시인 맹호연의 여러 친구를 지적함.
2. 대사代謝:교체交替와 변화變化를 뜻함.
3. 왕래往來:옛것이 가고 새것이 옴을 뜻함.
4. 부등림復登臨 : 옛날 양호羊祜가 이곳 양양을 지킬 때 일찍이 그의 친구들과 
자주 이 현산에 올라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음. 
5. 어양魚梁:모래섬 이름. 양양 녹문산鹿門山의 흐르는 물 가운데 있음. 
6. 몽택夢澤:운몽택을 가리킴. 옛날 큰 늪지대. 
7. 양공비羊公碑:후인들이 서진西晋 명장인 양호羊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작자 소개

맹호연孟浩然(689?740),
이름이 호浩,자는 호연浩然,호가 맹산인孟山人,
현재 호북성 양양襄陽 사람. 그는 일찍이 벼슬을 하지 않았음. 당나라 때 저명한 
산수전원파山水田園派 시인. 왕유王維와 장구령張九齡과 함께 망년지교를 맺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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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오언율시

與諸子登峴山(여제자등현산)
                  - 
孟浩然(맹호연)

여러 벗들과 현산에 올라

 

 

  

 

與諸子登峴山(여제자등현산)

 

孟浩然(맹호연)

 

人事有代謝(인사유대사)往來成古今(왕래성고금)

江山留勝跡(강산류승적)我輩復登臨(아배복등림)

水落魚梁淺(수락어량천)天寒夢澤深(천한몽택심)

羊公碑尚在(양공비상재)讀罷淚沾襟(독파루첨금)

 

  

<원문출처與諸子登峴山作者孟浩然

全唐詩·160 /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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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은 바뀌고 변하기 마련

세월이 오가면서 고금을 이룬다

 

강산에 명승고적이 남아 있어

우리들 다시 산에 올라 굽어본다

 

물이 빠지니 어량주(魚梁洲)가 드러나고

날씨가 추워서 운몽택(雲夢澤)이 깊어졌구나

 

양공(羊公)의 비문이 여전히 남아 있어

읽고 나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

 

[通釋

사람의 일은 흥하기도 쇠하기도 하여 변화가 있고세월이 흘러 지나간 과거와 다가오는 현재가 생겨난다강산에 뛰어난 명승고적이 남아 있어 우리가 좋은 기회를 만나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다시금 오게 되었다.산 위에서 바라보니 비가 오지 않아 수위가 낮아져 어량주(魚梁洲)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나뭇잎이 다 떨어진 추운 겨울에 호수가 더 넓어 보인다양공을 기념해서 세운 비석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기에 읽어보니나도 몰래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누나.

  

[解題

이 시는 맹호연(孟浩然)이 현산(峴山)에서 양공(羊公)의 비석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노래한 것으로 옛날을 회고하며 오늘날을 슬퍼하는 정서가 시 전체에 흐르고 있다. 1·2구에는 시공 속에서 덧없이 소멸하는 인간의 무상함이 표현되어 있다. 3·4구에서 시인은 현산(峴山)에 오른다여기서는 1·2구의 고금을 이어받았는데, ‘강산에 남긴 뛰어난 자취는 옛날을 상징하고, ‘고적을 다시 찾은 시인과 그의 벗들은 오늘을 의미한다. 5·6구는 산에 올라가 내려다본 경관을 묘사하면서 작자의 처연한 심사를 표현했다. 7·8구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양호(羊祜)를 슬퍼해서가 아니요, ‘오늘 우리가 오른 것을 후세에 누가 양호(羊祜)처럼 생각해주겠는가라고 하는 데에 있다양호(羊祜)와 자신의 처지를 대조시킴으로써 이룬 것 없이 끝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 묵묵히 매몰될 시인 자신을 애탄(哀歎)한 것이다.

 

 

---------------------------------------

 

 

○ 峴山(현산맹호연(孟浩然)의 고향인 지금의 호북성(湖北省양양현(襄陽縣남쪽 9리 지점에 있는데일명 현수산(峴首山)이라고 한다.

 

○ 代謝(대사흥체(興替)라고도 하며 새것이 와서 묵은 것을 대신하는 것,곧 교체되어 바뀌는 것을 말한다.

 

○ 往來(왕래일왕월래(日往月來), 세월이 오고감을 가리킨다.

 

○ 勝跡(승적명승고적(名勝古蹟)으로 여기서는 현산(峴山)을 말한다산 위에 양호(羊祜)의 타루비(墮淚碑)가 있다.

 

○ 登臨(등림): 높은 곳에 오름

 

○ 魚梁(어량양양(襄陽녹문산(鹿門山부근의 沔水 중간에 있는 모래섬을 지칭한다水經注(수경주)≫ 〈沔水(면수)에 의하면 어량주(魚梁洲)는 면수(沔水중간쯤에 있는데 동한(東漢)의 은사(隱士)인 방덕공(龐德公)이 살던 곳이라 기록되어 있다일설에는 둑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곳이라고 보기도 한다.

<참고>[당시삼백수] 52.夜歸鹿門山歌(야귀녹문산가) - 孟浩然(맹호연)

 

 

○ 夢澤(몽택운몽택(雲夢澤)으로 고대 초()나라 땅에 있었던 큰 늪의 이름이다지금의 호남성(湖南省익양현(益陽縣)과 상음현(湘陰縣이북호북성(湖北省)의 강릉현(江陵縣)과 안륙현(安陸縣이남 및 무한시(武漢市이서의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지금의 동정호(洞庭湖북안(北岸일대의 지역으로 추정되는데여기서는 산 위에서 보이는 일반 소택(沼澤)을 가리킨다.

 

○ 羊公碑尙在(양공비상재: ‘이 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양공비(羊公碑)는 곧 현수산(峴首山위에 있는 타루비(墮淚碑)를 말한다()나라 무제(武帝때 양호(羊祜)가 양양(襄陽)을 진압하고 늘 여기서 술을 마셨다그는 산수를 즐겨서 자주 현산(峴山)에 올라 놀았는데종사(從事추담(鄒湛)에게 이르기를 우주가 있을 때부터 이 산이 있었으니예로부터 현사(賢士)들이 여기 올라 조망하였을 것이다나와 그대 같은 사람이 많았을 것인데 모두 다 사라져 아는 이 없으니 슬프다내가 백년 뒤에도 혼백(魂魄)이 있다면 다시 이 산에 오르리라.” 하였는바晉書(진서)≫ 〈羊祜傳(양호전)에 이러한 내용이 보인다양호(羊祜)가 죽은 뒤에 양양 사람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현산에 비()를 세우니보는 사람들이 슬퍼하여 눈물을 떨어뜨렸으므로 두예(杜預)가 그 비()를 타루비(墮淚碑)라 하였다.

 

 

 

※ <이백의 양양가에는 양공의 타루비가 나온다>


襄陽歌(양양가) - 李白(이백)

 

君不見晉朝羊公一片石(군불견진조양공일편석),​龜頭剝落生莓苔(구두발락생매태)淚亦不能爲之墮(누역불능위지타)心亦不能爲之哀(심역불능위지애)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나라 양공(羊公)의 한 조각 비석이

거북머리 깨져 떨어지고 이끼만 끼어 있네.

눈물도 이 때문에 떨어뜨릴 수 없고 마음도 이 때문에 슬퍼할 수 없다오.

 

○ 羊公一片石(양공일편석) : ()나라 양호(羊祜)의 추모비를 이른다양호는 형주제군사도독(荊州諸軍事都督)으로 양양(襄陽)에 주둔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 그 부()가 현산(峴山)에 속하게 되었다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생전에 그가 노닐던 땅에 비석과 사당을 세워 매년 제사를 지냈는데보는 자들이 모두 그를 사모하여 눈물을 흘리므로 두예(杜預)가 타루비(墮淚碑)란 이름을 붙였다.北堂書鈔

 

///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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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中感秋 寄 遠上人

(진중감추 기 원상인)

孟浩然(맹호연)

 

 

一丘常欲臥(일구상욕와)三徑苦無資(삼경고무자)

北土非吾願(북토비오원)東林懷我師(동림회아사)

黃金然桂盡(황금연계진)壯志逐年衰(장지축년쇠)

日夕涼風至(일석량풍지)聞蟬但益悲(문선단익비)

 

 

秦中感秋寄遠上人作者孟浩然

唐詩三百首》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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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덕에 항상 눕고 싶었는데

세 오솔길 만들 돈이 없음이 괴롭다

 

이곳 북토(北土)는 내가 원하는 바 아니요

동림사(東林寺)에 있는 우리 대사(大師)를 그리워하네

 

황금은 계수나무로 불 때는 데 다 썼고

씩씩했던 마음은 해가 갈수록 쇠약해지니

 

해 질 무렵 서늘한 바람 불어오는데

매미 소리 들으니 슬픔만 더할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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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나는 항상 산림을 찾아 은거하고 싶지만 은거할 기반을 마련할 돈이 없다지금 여기 북쪽장안에서 떠돌고 있는 것도 생계 때문에 온 것일 뿐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으니마음속으로는 항상 동림사(東林寺)에 있는 대사(大師), 그대를 그리워하고 있다여기 장안의 물가는 너무 비싸서 돈을 쓰는 것이 마치 계수나무로 불을 때는 듯하여 가진 돈을 다 써버렸고씩씩했던 의지와 기개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쇠약해져 간다저물녘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매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더욱 아파온다.

 

[解題

맹호연은 개원(開元) 16그의 나이 40(728)에 장안에 가서 진사시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이 시는 낙방한 직후 장안에 머물고 있을 당시,가을이 오자 客中의 괴로운 상황을 묘사하여 원상인(遠上人)에게 부친 시이다원상인은 동림사(東林寺)의 승려로 행력(行歷)이 자세하지 않다.

당시 작자는 매우 곤란한 처지에 있었다벼슬길에 나아가 관리가 되는 것이 그의 진정한 소망이었지만 그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고물러나 산림에서 은거하고자 한 바람은 부득이한 것이었지만 그 또한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이 시는 원상인을 대상으로 쓴 것이지만 東林懷我師(동림회아사)’ ()를 제외하고는 원상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결국 시의 전체 내용은 시인이 자신의 궁고(窮苦)함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특히 7·8구는 이른바 감추(感秋), 비추(悲秋)의 시정(詩情)이면서 시인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사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시종일관 처량하고 괴로운 심사를 드러낸 시어(詩語)들이 맹호연의 다른 시들에서 보이는 기개(氣槪있는 운치(韻致)와 풍격(風格)과는 걸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이 때문인지 全唐詩(전당시)≫ 교주(校註)에 어떤 본에는 崔國輔(최국보)의 시로 되어 있다.[一作崔國輔詩]”고 하였고소계종(蕭繼宗)孟浩然詩說(맹호연시설)의 경우 이 시를 언급하지 않았다그러나 사관(仕宦)과 은거(隱居사이의 심리적인 갈등이 맹호연 시의 핵심적인 주제이고이 시 역시 그러한 주제의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맹호연의 시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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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秦中寄遠上人(진중기원상인全唐詩(전당시)에는 시 제목이 秦中感秋寄遠上人(진중감추기원상인)’으로 되어 있고사부총간본(四部叢刊本)孟浩然集(맹호연집)에는 ()’자가 없다여기서는 장섭본(章燮本)을 따랐다. ‘秦中(진중)’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중부 지역인데 곧 관중(關中)이다여기서는 당()의 수도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遠上人(원상인)’은 이름이 원()인 화상(和尙)으로 생평(生平)이 자세하지 않다상인(上人)은 승려의 존칭이다.

 

○ 一丘常欲臥(일구상욕와: ‘一丘는 은거하는 산림을 지칭한다는 작은 산인데 여기서는 산언덕山林의 뜻이다. ‘는 은거한다는 뜻이다.

 

○ 三徑苦無資(삼경고무자: ‘三徑(삼경)’은 은거하는 장소 또는 시골집을 가리키는 것으로三徑苦無資(삼경고무자)는 은거할 기반을 마련할 돈이 없다또는 내가 사는 시골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이는 장안으로 와서 벼슬을 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三輔決錄(삼보결록)에 장후(蔣詡)는 자()가 원경(元卿)으로 집 안의 대나무 아래에 세 오솔길을 만들고 오직 양중(羊仲)과 구중(求仲두 사람과만 교유하였다.[蔣詡字元卿 舍中竹下開三徑 惟羊仲求仲從之遊]”고 하였다晉書(진서)≫ 〈陶淵明傳(도연명전)에 (:淵明)이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애오라지 지방수령으로 있으면서 은거할 밑천을 마련하고 싶은데 가하겠는가?’ 하였다상관이 그 얘기를 듣고 팽택현령(彭澤縣令)으로 임명하였다.[潛謂親朋曰 聊欲弦歌 以爲三徑之資 可乎 執事者聞之 以爲彭澤令]”는 기록이 있다도연명은 歸去來辭(귀거래사)에서 세 오솔길에 잡초가 무성해도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히 남아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 했다.

 

○ 北土(북토북지(北地)인데 진중(秦中)을 가리키며여기서는 장안을 말한다.

 

○ 東林(동림동림사(東林寺)인데 진대(晉代자사(刺史환이(桓伊)가 고승(高僧혜원(慧遠)을 위하여 여산(廬山동쪽에 지어준 절이다여기서는 원상인(遠上人)이 살고 있는 절을 지칭한 것이다.

 

○ 燃桂(연계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곧 땔나무를 태우는 것이 계수나무를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戰國策(전국책)≫ 〈楚策(초책)에 ()나라의 음식은 옥()보다 귀하고 땔나무는 계수나무보다 귀하니지금 저는 옥을 먹고 계수나무로 불을 때고 있습니다.[楚國之食貴於玉 薪貴於桂 今臣食玉炊桂]”라는 기록이 있다.

 

○ 日夕(일석) : 저녁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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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연(孟浩然, 689년 ~ 740년)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이름은 호이며, 자는 호연이며 호(號)는 녹문거사(鹿門處士)이다.

양양(襄陽) 사람으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하였다. 한때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살면서 시 짓는 일을 매우 즐겼다. 40세 때 장안(지금의 시안)에 나가 시로써 이름을 날리고, 왕유·장구령 등과 사귀었다. 그의 시는 왕 유의 시풍과 비슷하며,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5언시에 뛰어났다. 격조 높은 시로 산수의 아름다움을 읊어 왕유와 함께 ‘산수 시인의 대표자’로 불린다. 맹양양(孟襄陽)으로도 불리며 저서에 ‘맹호연집’ 4권이 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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