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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국 당대의 시인.
(병). Meng Haoran. (웨). Meng Haojan.
어린시절 고향에서 묻혀 지내다가 나중에 장안으로 가서 진사과에 응시했으나 실패한 이후로 평생 벼슬을 하지 못했다. 장쑤 성[江蘇省]과 저장 성[浙江省] 등지를 자유로이 유람했으며 장구령에게 초빙되어 그의 막객을 지내다가 얼마 후 병으로 죽었다.
시의 소재는 넓지 않은 편으로 주로 전원의 산수경치와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심정을 묘사한 것이 많다. 시어가 자연스럽고 풍격이 청담하며 운치가 깊어서 당대의 대표적인 산수시인으로 꼽힌다. 왕유(王維)와 더불어 이름을 날렸으므로 왕·맹이라 병칭된다. 〈맹호연집 孟浩然集〉이 있다.
여제자등현산)
與諸子登峴山(여제자등현산)
孟浩然(맹호연)
人事有代謝(인사유대사),往來成古今(왕래성고금)。 江山留勝跡(강산류승적),我輩復登臨(아배복등림)。 水落魚梁淺(수락어량천),天寒夢澤深(천한몽택심)。 羊公碑尚在(양공비상재),讀罷淚沾襟(독파루첨금)。
<원문출처> 與諸子登峴山/ 作者:孟浩然 全唐詩·卷160 /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
사람의 일은 바뀌고 변하기 마련 세월이 오가면서 고금을 이룬다
강산에 명승고적이 남아 있어 우리들 다시 산에 올라 굽어본다
물이 빠지니 어량주(魚梁洲)가 드러나고 날씨가 추워서 운몽택(雲夢澤)이 깊어졌구나
양공(羊公)의 비문이 여전히 남아 있어 읽고 나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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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解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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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峴山(현산) : 맹호연(孟浩然)의 고향인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 남쪽 9리 지점에 있는데, 일명 현수산(峴首山)이라고 한다.
○ 代謝(대사) : 흥체(興替)라고도 하며 새것이 와서 묵은 것을 대신하는 것,곧 교체되어 바뀌는 것을 말한다.
○ 往來(왕래) : 일왕월래(日往月來), 세월이 오고감을 가리킨다.
○ 勝跡(승적) : 명승고적(名勝古蹟)으로 여기서는 현산(峴山)을 말한다. 산 위에 양호(羊祜)의 타루비(墮淚碑)가 있다.
○ 登臨(등림): 높은 곳에 오름
○ 魚梁(어량) : 양양(襄陽) 녹문산(鹿門山) 부근의 沔水 중간에 있는 모래섬을 지칭한다. ≪水經注(수경주)≫ 〈沔水(면수)〉에 의하면 어량주(魚梁洲)는 면수(沔水) 중간쯤에 있는데 동한(東漢)의 은사(隱士)인 방덕공(龐德公)이 살던 곳이라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둑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곳이라고 보기도 한다. <참고>[당시삼백수] 52.夜歸鹿門山歌(야귀녹문산가) - 孟浩然(맹호연)
○ 夢澤(몽택) : 운몽택(雲夢澤)으로 고대 초(楚)나라 땅에 있었던 큰 늪의 이름이다.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익양현(益陽縣)과 상음현(湘陰縣) 이북, 호북성(湖北省)의 강릉현(江陵縣)과 안륙현(安陸縣) 이남 및 무한시(武漢市) 이서의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 지금의 동정호(洞庭湖) 북안(北岸) 일대의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서는 산 위에서 보이는 일반 소택(沼澤)을 가리킨다.
○ 羊公碑尙在(양공비상재) : ‘尙’이 ‘字’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양공비(羊公碑)는 곧 현수산(峴首山) 위에 있는 타루비(墮淚碑)를 말한다. 진(晉)나라 무제(武帝) 때 양호(羊祜)가 양양(襄陽)을 진압하고 늘 여기서 술을 마셨다. 그는 산수를 즐겨서 자주 현산(峴山)에 올라 놀았는데, 종사(從事) 추담(鄒湛)에게 이르기를 “우주가 있을 때부터 이 산이 있었으니, 예로부터 현사(賢士)들이 여기 올라 조망하였을 것이다. 나와 그대 같은 사람이 많았을 것인데 모두 다 사라져 아는 이 없으니 슬프다. 내가 백년 뒤에도 혼백(魂魄)이 있다면 다시 이 산에 오르리라.” 하였는바, ≪晉書(진서)≫ 〈羊祜傳(양호전)〉에 이러한 내용이 보인다. 양호(羊祜)가 죽은 뒤에 양양 사람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현산에 비(碑)를 세우니, 보는 사람들이 슬퍼하여 눈물을 떨어뜨렸으므로 두예(杜預)가 그 비(碑)를 타루비(墮淚碑)라 하였다.
※ <이백의 양양가에는 양공의 타루비가 나온다>
君不見晉朝羊公一片石(군불견진조양공일편석),龜頭剝落生莓苔(구두발락생매태)。淚亦不能爲之墮(누역불능위지타),心亦不能爲之哀(심역불능위지애)。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진(晉)나라 양공(羊公)의 한 조각 비석이 거북머리 깨져 떨어지고 이끼만 끼어 있네. 눈물도 이 때문에 떨어뜨릴 수 없고 마음도 이 때문에 슬퍼할 수 없다오.
○ 羊公一片石(양공일편석) : 진(晉)나라 양호(羊祜)의 추모비를 이른다. 양호는 형주제군사도독(荊州諸軍事都督)으로 양양(襄陽)에 주둔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 그 부(部)가 현산(峴山)에 속하게 되었다. 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생전에 그가 노닐던 땅에 비석과 사당을 세워 매년 제사를 지냈는데, 보는 자들이 모두 그를 사모하여 눈물을 흘리므로 두예(杜預)가 타루비(墮淚碑)란 이름을 붙였다.《北堂書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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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中感秋 寄 遠上人 (진중감추 기 원상인) 孟浩然(맹호연)
一丘常欲臥(일구상욕와),三徑苦無資(삼경고무자)。 北土非吾願(북토비오원),東林懷我師(동림회아사)。 黃金然桂盡(황금연계진),壯志逐年衰(장지축년쇠)。 日夕涼風至(일석량풍지),聞蟬但益悲(문선단익비)。
秦中感秋寄遠上人/ 作者:孟浩然 / 《唐詩三百首》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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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덕에 항상 눕고 싶었는데 세 오솔길 만들 돈이 없음이 괴롭다
이곳 북토(北土)는 내가 원하는 바 아니요 동림사(東林寺)에 있는 우리 대사(大師)를 그리워하네
황금은 계수나무로 불 때는 데 다 썼고 씩씩했던 마음은 해가 갈수록 쇠약해지니
해 질 무렵 서늘한 바람 불어오는데 매미 소리 들으니 슬픔만 더할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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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解題] 당시 작자는 매우 곤란한 처지에 있었다. 벼슬길에 나아가 관리가 되는 것이 그의 진정한 소망이었지만 그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고, 물러나 산림에서 은거하고자 한 바람은 부득이한 것이었지만 그 또한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시는 원상인을 대상으로 쓴 것이지만 ‘東林懷我師(동림회아사)’ 구(句)를 제외하고는 원상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결국 시의 전체 내용은 시인이 자신의 궁고(窮苦)함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특히 7·8구는 이른바 감추(感秋), 비추(悲秋)의 시정(詩情)이면서 시인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사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시종일관 처량하고 괴로운 심사를 드러낸 시어(詩語)들이 맹호연의 다른 시들에서 보이는 기개(氣槪) 있는 운치(韻致)와 풍격(風格)과는 걸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 때문인지 ≪全唐詩(전당시)≫ 교주(校註)에 “어떤 본에는 崔國輔(최국보)의 시로 되어 있다.[一作崔國輔詩]”고 하였고, 소계종(蕭繼宗)의≪孟浩然詩說(맹호연시설)≫의 경우 이 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관(仕宦)과 은거(隱居) 사이의 심리적인 갈등이 맹호연 시의 핵심적인 주제이고, 이 시 역시 그러한 주제의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맹호연의 시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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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秦中寄遠上人(진중기원상인) : ≪全唐詩(전당시)≫에는 시 제목이 ‘秦中感秋寄遠上人(진중감추기원상인)’으로 되어 있고, 사부총간본(四部叢刊本)≪孟浩然集(맹호연집)≫에는 ‘遠(원)’자가 없다. 여기서는 장섭본(章燮本)을 따랐다. ‘秦中(진중)’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중부 지역인데 곧 관중(關中)이다. 여기서는 당(唐)의 수도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遠上人(원상인)’은 이름이 원(遠)인 화상(和尙)으로 생평(生平)이 자세하지 않다. 상인(上人)은 승려의 존칭이다.
○ 一丘常欲臥(일구상욕와) : ‘一丘’는 은거하는 산림을 지칭한다. 丘는 작은 산인데 여기서는 산언덕, 山林의 뜻이다. ‘臥’는 은거한다는 뜻이다.
○ 三徑苦無資(삼경고무자) : ‘三徑(삼경)’은 은거하는 장소 또는 시골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三徑苦無資(삼경고무자)는 은거할 기반을 마련할 돈이 없다, 또는 내가 사는 시골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이는 장안으로 와서 벼슬을 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三輔決錄(삼보결록)≫에 “장후(蔣詡)는 자(字)가 원경(元卿)으로 집 안의 대나무 아래에 세 오솔길을 만들고 오직 양중(羊仲)과 구중(求仲) 두 사람과만 교유하였다.[蔣詡字元卿 舍中竹下開三徑 惟羊仲求仲從之遊]”고 하였다. ≪晉書(진서)≫ 〈陶淵明傳(도연명전)〉에 “잠(潛:淵明)이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애오라지 지방수령으로 있으면서 은거할 밑천을 마련하고 싶은데 가하겠는가?’ 하였다. 상관이 그 얘기를 듣고 팽택현령(彭澤縣令)으로 임명하였다.[潛謂親朋曰 聊欲弦歌 以爲三徑之資 可乎 執事者聞之 以爲彭澤令]”는 기록이 있다. 도연명은 〈歸去來辭(귀거래사)〉에서 “세 오솔길에 잡초가 무성해도,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히 남아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 했다.
○ 北土(북토) : 북지(北地)인데 진중(秦中)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장안을 말한다.
○ 東林(동림) : 동림사(東林寺)인데 진대(晉代) 자사(刺史) 환이(桓伊)가 고승(高僧) 혜원(慧遠)을 위하여 여산(廬山) 동쪽에 지어준 절이다. 여기서는 원상인(遠上人)이 살고 있는 절을 지칭한 것이다.
○ 燃桂(연계) :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 곧 땔나무를 태우는 것이 계수나무를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 ≪戰國策(전국책)≫ 〈楚策(초책)〉에 “초(楚)나라의 음식은 옥(玉)보다 귀하고 땔나무는 계수나무보다 귀하니, 지금 저는 옥을 먹고 계수나무로 불을 때고 있습니다.[楚國之食貴於玉 薪貴於桂 今臣食玉炊桂]”라는 기록이 있다.
○ 日夕(일석) : 저녁.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 ---------------------------------------
맹호연(孟浩然, 689년 ~ 740년)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이름은 호이며, 자는 호연이며 호(號)는 녹문거사(鹿門處士)이다. 양양(襄陽) 사람으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하였다. 한때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살면서 시 짓는 일을 매우 즐겼다. 40세 때 장안(지금의 시안)에 나가 시로써 이름을 날리고, 왕유·장구령 등과 사귀었다. 그의 시는 왕 유의 시풍과 비슷하며,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5언시에 뛰어났다. 격조 높은 시로 산수의 아름다움을 읊어 왕유와 함께 ‘산수 시인의 대표자’로 불린다. 맹양양(孟襄陽)으로도 불리며 저서에 ‘맹호연집’ 4권이 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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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시삼백수]與諸子登峴山(여제자등현산) - 孟浩然(맹호연)|작성자 swings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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