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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러시아의 우화작가.
겉으로는 순진한 동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를 통해 당대 사회의 인물들을 풍자했으며, 압축된 문체와 구어체 관용구를 사용함으로써 러시아 고전주의 문학에 사실주의의 색채를 더해주었다. 그의 경구들은 대부분 러시아의 일상용어로 뿌리내렸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9세 때부터 사환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10대 소년시절에 이미 오페라·희극·비극 등을 쓰기 시작해 1789년 이후 풍자적 저널리스트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정부의 검열로 활동을 방해받았다.
1805년에는 장 드 라 퐁텐의 우화를 번역하기 시작했으나 독자적인 우화 창작이 자신의 진정한 표현 매체임을 깨달았다. 1809년 첫번째 우화집을 발표하면서 황실의 후원을 받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의 명예직에 올랐고 30년간 이 직책에 있었다. 그밖에 운문으로 씌어진 8권의 우화집을 발표했으며 수많은 훈장을 받았다.
그가 다룬 주제 중 일부는 이솝과 라 퐁텐에게서 빌려온 것이지만 나름대로 이를 변모시켰다. 여우와 까마귀, 늑대와 양은 교활하든 어리석든간에 언제나 뚜렷하게 러시아적인 특징을 띤다. 상식·근면·정의를 강조하는 신랄하고 진솔한 우화를 통해 그는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한 최초의 러시아 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모든 계층의 독서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독자 개개인은 그의 작품 속에 러시아의 민족적 특성이 구현되어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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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안드레예비치 크릴로프(Ива́н Андре́евич Крыло́в, 1769년 ~ 1844년)
우화시를 주로 쓴 러시아의 시인이다.
모스크바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렸을 때 육군사관이던 부친을 잃고 역경 속에서 자랐다. 178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긴 뒤 평생을 그 곳에서 보냈다.
1789년부터 풍자 잡지의 편집에 종사하는 한편, 수편의 희극 및 희가극을 썼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게다가 농노제에 대한 풍자를 이유로 잡지는 정간처분을 당했다. 그 뒤 수년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1805년 우화시 《떡갈나무와 갈대》를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이솝이나 라퐁텐의 우화를 모방하였으나 차츰 독창적인 러시아의 우화를 창작하였다. 1809년에 최초의 《우화》 시집을 발간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부터 명성이 높아져, 우화시 창조를 천직으로 하여 평생을 통해 205편을 써서 우화시를 민중생활에 도입했다. 또한 민중어를 자유로이 구사하여 러시아 문장어의 발전에 끼친 공이 크다.
크릴로프의 우화는 시 형식으로 되어 있고 총 205편이 있다. 이 가운데 45편은 이솝(기원전 6세기경의 사람), 라 퐁텐 등의 개작인데도 자작의 것과 다름없을 만큼 러시아화되어 있다. 작자의 생전에 약 7만 5천 부가 팔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취재범위가 넓으며 동물과 식물 등 온갖 것이 등장하여 인간의 우매함, 아첨, 허영, 사회관습, 전제정치 체제 등을 풍자한다. 그리고 이 풍자는 모랄리스트로서의 작자의 성격과 건전한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의 우화는 민중의 말을 대담하게 도입하여 민중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점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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