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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飮一杯無)
이철성 우리술문화원 향음 이사, 전 JP모간 상임고문
춤(舞), 노래(歌), 시(詩), 그리고 술(酒)...
이 네 가지 요소는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지키면서 각기 발전해 오기도 했지만, 때로 각 요소끼리 이리 저리 붙어서 서로의 가치를 높여 왔다. 시와 술의 관계가 특히 그러하다.
중국에 '인간관계는 시(詩)와 술(酒)과 차(茶)로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다. 차(茶)가 냉정과 이성과 현실을 담아낸다면 술(酒)은 열정과 초탈과 예술세계를, 시(詩)는 이 모든 것을 버무려 담아내는 용광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술이 없었다면 이백의 시도 없었다' 중국의 시를 살펴보면 예나 지금이나 술과 관련된 시(飮酒詩)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중국 성당(盛唐) 시기의 주선(酒仙)으로 불리는 이백(李白)이 지은 1,100여 수의 시중 170여 수가,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두보(杜甫)의 시 1,400여 수 중 300여 수가 술을 소재로 삼았다. 이백의 경우 술을 마시면서 시상(詩想)에 겨워 쓴 시 까지 포함할 경우 사실상 그의 모든 시가 음주시라 할 것이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그가 술을 먹지 아니하고 맨 정신으로 지낸 시기는 당 현종 때 2년 남짓 한림공봉(翰林供捧, 일종의 황제의 藝人)의 직책을 수행하던 기간, 그것도 현종을 알현할 때의 극히 짧은 시간에 그쳤다고 한다.
두보가 지은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보면 이백의 음주 행태가 눈에 선히 그려진다. 성당(盛唐) 시기에 유명했던 酒仙 8인(李白, 賀知章, 李適之, 李璡, 崔宗之, 蘇晉, 張旭, 焦遂)의 술 실력에 대해 묘사를 하고 있는 이 시는 특히 이백에 대해 가장 긴 문장을 할애하며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백은 술 한 말에 백 편의 시를 쓰고
李白一斗詩百篇
한 말의 술에 시 백편이 쏟아져 나오고, 당 현종이 불러도 강 건너 저잣거리에서 술을 퍼 마시다가 취한 상태에서 의관을 겨우 갖추고 현종 앞에 허겁지겁 나타나는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진다. 어디 이백과 두보 뿐이랴. 도연명, 백거이, 소동파 등 중국의 시사(詩史)에서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인생 역시 술을 빼놓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떼어내고 싶어도 그리 할 수 없는 술이란 존재는 도대체 어떻게 인간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백주 시조 의적·두강, 후세엔 상표권 다툼 사실 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머루와 같은 과일이 자연적으로 발효하여 알코올을 함유하는 액체가 된 것은 오히려 인류의 탄생 훨씬 이전부터 진행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맛있게 마시는 과일주의 초기 형태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술의 발전사를 크게 자연 발효 단계, 인공적 발효 단계, 증류 단계의 세 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그 첫 번째인 자연발효단계는 이와 같이 이미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저절로 발효된 술을 인류 중 누가 처음 발견하고 마시기 좋은 형태로 제조하기 시작하였는지도 궁금한 일이다.
어느 나라에나 술의 기원에 관한 설화가 있지만 중국 사람들은 夏나라 禹王 시기 의적(仪狄)이란 사람에게 술 발명의 공을 돌리기를 좋아한다. "옛날에 제녀(帝女)가 의적으로 하여금 좋은 술을 만들게 하여 우(禹) 임금에게 받쳤으며 우임금이 이를 달게 마셨다.", "우 임금이 이를 달게 마시고 뒷날 술로서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면서 의적을 멀리 했다" 등등의 얘기가 «世本», «吕氏春秋», «战国策» 등에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의 얘기다.
허난성(河南省) 핑딩산(平頂山)의 바오펑현(宝丰县)에 생산되는 바오펑주(宝丰酒)라는 술이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옛날 의적의 설화가 전개된 곳이 자기네 고장이라며 이 술이 의적의 대를 잇는 적통주 라고 주장한다. 이 술을 생산하는 공장의 정문에는 의적의 동상까지 세워져 있다.
오늘날 술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杜康"을 중국 술의 시조라고 보는 주장도 많다. 두강(杜康)은 中厦시기 사람으로, 먹다 남은 밥을 주먹밥으로 만들어 뽕나무의 구멍 속에 넣어 두었는데 며칠 지나 우연히 술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 이것이 두강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강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世本》, 《吕氏春秋》, 《战国策》, 《說文解字》 등과 같은 고서에 다수 기록되어 있는 만큼 실존 인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두강주는 중국의 한시에도 자주 등장한다. 위나라의 武帝였던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에는 "무엇으로 근심을 풀까, 오직 두강이 있을 뿐이네 (何以解憂, 唯有杜康)" 라는 구절이 나온다. 또 진대(晋代)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시인 완적(阮藉)은 "벼슬길에 나가는 것은 즐겁지 아니하고 오로지 두강주만이 중하도다 (不樂仕宦,惟重杜康)"라며 두강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또 시성(詩聖)인 두보(杜甫)는 '題張氏隱居'에서 "봄풀에는 사슴들이 울어대고 두강주는 권하기 바쁘다(春草鹿呦呦 杜酒偏勞勸)"라고 두강주 마시는 즐거움을 묘사하고 있다.
시인들이 다투어 두강을 찬미하였기 때문일까. 중국내의 이런 저런 지역(陝西省의 白水懸, 河南省의 汝陽縣 및 伊川縣등) 양조회사들은 자기네 술이 적통 두강주라 서로 주장하며 상표권 분쟁도 불사하고 있다.
이상에서 인류의 역사를 같이 하는 술의 기원과 시와 술의 관계, 전설과 시로부터 탄생하게 된 전통 명주 등에 대해 살펴봤다. 다음 회 부터는 1000여 년 전의 기라성 같은 중국 시인들과 함께 음주시의 세계를 여행해 보기로 하자. 술을 인생철학의 경지로 승화시키며 자연과 함께 무위의 생활을 한 도연명, 술을 인생과 시의 소재로 삼고 호방 표일한 술 속의 삶을 살았던 이백, 술을 벗 삼으면서도 냉철한 이성으로 엄격한 시 미학세계를 구축했던 두보, 스스로 술을 담고 음식을 개발하며 불우했던 긴 기간을 백성과 함께 하였던 소동파 등이 우리 여행의 반려자가 될 것이다. 이 여행을 통해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하는 여유를, 회재불우(懷才不遇)의 한을, 때로 인생 득의의 달콤한 감격을 느끼면서 우리네 고단한 인생살이를 술 한잔 시 한수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 이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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