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이자 시론가인 루이스가 쓴 <젊은이를 위한 시>라는 책을 참고하여 이 형기님은 시를 쓰는 단계를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시의 종자'를 얻는 단계이고,
두 번째는 이 종자가 시인 정신 내부에 성장하는 단계이고.
세 번째는 하나하나 언어를 골라 거기에 구체적인 표현을 부여하는 단계 이다.
한 단계씩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개개인들의 시 쓰는 방법을 연구해 보자.
1. 첫 번째는 '시의 종자'를 얻는 단계
'아, 이거 시가 되겠다' 싶은 인상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있으면 시의 종자가 될 수 있다. 이 종자는 반드시 노트에 적어야 한다.
그 종자를 당장 한 편의 시로 만들려고 서두를 것은 없다. 시를 쓰려고 서두르면 상상력이 종자 자체에만 얽매어 표현이 단조롭고 내용이 빈약한 시가 되기 때문이 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조급증을 부리지 말고 지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힘 을 기를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의 종자를 붙든 순간에 펜을 들어 단숨에 한 편의 시를 써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율이 높고 성실성도 문제 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그렇게는 시를 쓰지 말아야 한다.
또 시의 종자를 노트에 적는 것이 중요한데 시의 종자를 노트에 적지 않으면 완전 히 까먹어 종자가 싹터서 자랄 수 없는 멸실(滅失)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노트에 꼭 적어 두어야 한다. 노트가 곧 시의 종자의 생명력을 보증하는 비망록이라고 볼 수 있다.
2. 두 번째는 종자의 성장과 시적 사고를 하는 단계
종자 얻기 과정을 거치면 다음에는 그 종자가 시인의 정신 내부에서 성장하는 단 계에 접어들게 된다. 종자의 성장은 며칠 동안 속성(速成)으로 자랄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성장이 느리다면 수 년 동안 시를 몇 편 쓰지 못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갖지만 우리 속에 자라는 시의 종자가 하나일 수 없다. 여러 개의 종자가 동시에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의 종자가 혼자 힘으로 소망스럽게 쑥쑥 자란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제대로 싹틔우고 자라게 하려면 정성어린 노력이 필요하다. 전 날 쓴 노트를 펼쳐 그 종자를 보며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하게 되면 성장과 발전의 단계에 접어 들게 되는 것이다.
서정주 님은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쓰고 나서 이런 말씀을 그의 자서전에 남겼다.
"내가 어느 해 새로 이해한 이 정밀한 40대 여인의 미의 영상은 꽤 오랫동안 -아마 2-3년 동안 그 표현을 찾지 못한 채 내 속에 잠재해 있었다가 1947년 가을 어느 해 어스름 때 문득 내 눈이 내 정원의 한 그루의 국화꽃에 머물게 되자 그 형상화 공작이 내 속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서정주, <시작 과정>에서
그러니까 그 종자의 획득은 2-3년 동안 지속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떠오를 수 있게끔 시적 사고를 거듭하면서 준비를 해온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세 번째는 구체적인 언어 표현 찾기 단계
이 단계에 이르면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가장 적합한 표현의 언어를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을 집중해도 척척 풀리지 않을 때, 시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이를테면 뜰을 거닐거나, 목욕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아니면 침대에 누워 명상에 잠긴다.
< 국화 옆에서>를 쓴 서정주 님의 말을 빌리자면 몇 시간 누었다, 앉았다 하며 비교적 쉽게 1-2연을 썼고, 마지막 연은 좀처럼 생각이 안 나서 잠 자버리고 며칠 동안 그대로 묵혀두었다가 완성했다고 한다. 서정주 님도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국화 옆에서>를 완성했는데 하물며 시의 초심자의 경우는 어떤 자세로 시를 써야겠는가? 그러나 고통이 아무리 크다해도 작업의 결과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되면 그로써 고통은 절로 보상된다.
마지막 단계에 하나 더 붙인다면 퇴고(推敲)이다. 초고를 1주일 정도 설합에 넣어 두었다 꺼내면 자신의 시라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 때 초고(草稿)를 다시 검토하면 완성된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은퇴한 아버지는 유명 카페 가맹점을 냈다
커다랗고 똑같은 간판이 싫단다
하지만 아무도 간판 보고 찾아오지 않는다 지도앱을 이용하지
어쩌다 한 번 이메일을 받았다 검색창에 내 이름을 넣어도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는 말
널 치면 네가 다니는 회사 네가 먹은 저녁이 뜨는데
너의 이름은 유별나고 거칠고 물고기처럼 덥석 무니까
정다운 원룸이나 어린 여배우가 나오는 내 것과는 아주 다르다
내가 너를 기억하는 방식은 그 길을 머릿속으로 다시 걷는 거
지하철역에서 포장마차를 지나
아파트에 둘러싸인 움푹한 공터까지 가면
아무도 없는 새벽의 낮은 흥분과
누가 베란다 밖을 내다 볼 것 같은 불안이 거기 있다
너는 꿇어앉고 나는 그 마음을 자꾸 묻고
그런 게 대체 어디 있다고
우린 그렇게 어렸고 그렇게 들쑥날쑥했다
사람들은 목을 구부리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납작한 지도 위를 잘도 걸어 다닌다
이제 기억은 골목처럼 구부러지는 게 아니라 목록처럼 길어져서
인기 많은 아빠의 가게가 있고
검색되지 않는 내가 저 밑에 있고
너는 몇 쪽쯤 찾아보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유명해야 유명해질 수 있다’, 영국 작가 조지 기싱의 1891년 출간 소설 ‘신 삼류문인의 거리’에 나온 말이다. 유명한 건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한번 이름나야 이름이 더 알려지고, 더 알려진 이름은 더욱더 알려지게 마련이다. 기싱 시대에도 그랬거늘 하물며 이 인터넷 시대에는 ‘아무도 간판 보고 찾아오지 않는다 지도앱을 이용하지’. 손님은 카페 간판에 담긴 업주의 마음이나 꿈 같은 건 관심 없다. 이미 ‘유명 카페’가 올라 있는 ‘지도앱’만을 신봉한다. 이렇듯 유명하다는 것은 장사에도 아주 이익이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음식점이나 어떻게든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 한번 올리기를 그토록 원하는 것.
외부를 향한 공적 영역뿐 아니라 마음이나 추억 등의 개인적이고 내적인 영역도 인터넷에 내준 사람들이 많다. 옛 애인이나 친구가 그리우면 이 시 3연의 화자처럼 추억의 장소를 기억 속에서 더듬거나, 실제로 찾아가 하염없이 거니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런데 ‘너’는 대뜸 검색창을 두드려보는 사람. 왜 ‘나’를 만인의 ‘근황’과 ‘소문’의 긴 목록인 검색창에서 찾는가. 그리고 뭘 잘했다고 못 찾겠노라는 메일을 보내는가. 검색창에 뜨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건가. 영혼 없이 나를 찾지 마오. 나는 2차원의 납작한 존재가 아니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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