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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허구문제를 알아보다(1)
2017년 05월 05일 23시 00분  조회:2630  추천:0  작성자: 죽림

수필의 허구성과 상상력// 유한근

 

1.

수필에 대한 담론 중에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테마는 '수필의 허구성'문제이다수필의 허구성 논의는 상상력 사이의 문제로 이 양자의 유기적 구조와 미학의 문제이다수필의 상상력 문제는 동어반복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말해 왔다수필의 허구성과는 별개의 문제로 그 문제를 상상력으로 문제로 편입시키려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원로 수필가인 김소운도 이 점에 대해 이렇게 고민했던 것이 보인다. "'진실'이란 말은 반드시 '사실 그대로'란 뜻은 아니다사실만을 나열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장을 이루는 것도 아니요하물며 문학이 되는 것도 아닌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나 자신의 글이란 것을 돌이켜보면 실로 '허구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이란 반드시 사실 그대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소위 내가 쓴다는 글은 언제나 '사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목적이 있고읽는 대상을 의식하면서 쓰는 글그것이 과연 옳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사실을 그대로 글로 재현했을 때 그 글이 진실된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는가를 의혹해 하는 글이다동시에 상상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에 따른 수필 문채文彩의 정수를 그는 이렇게 다시 말한다. "윗물을 흘려버리고 뒤에 남은 진국-침전된 알맹이그것이 진정의​ 문장이라면언제나 목적의식을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내 글 따위는 부질없이 흘려버리고만 있는 한갓 '윗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런 뒤그는 자신의 글에 대한 부족함의 이유를 성급한 기질 탓과 공상력 부족으로 돌린다. "내 글이 '사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로는 체질적으로 공상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인간의 생활 그것을 문학이나 예술성보다는 한 걸음 앞서서 언제나 직시하고 분석하려드는 성급한 내 기질에 연유하는지도 모른다할 말이 너무 많고 보면 결론에 도달할 최단거리에 마음이 쏠려 '허구의 진실'같은 복잡한 수속을 밟을 겨를이 없다고 그렇게 보아주는 이는 무척 고마운너그러운 지기知己라고 할 것이다." (김소운의 <사실과 허구를 통한 진실한 삶의 구현>).

 

수필문학에 있어서 사실과 진실사실과 상상력 중 수필의 허구성 문제와 수필 문채에 대한 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이 시대에 논외로 놓아도 좋을 담론 테마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아직도 이 문제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우리가 '수필은 사실의 문학 장르다'라는 문예미학에만 매달릴 때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닐까?

상상력의 한계에 대한 고민도 있을 수 없다시작부터 수필의 허구성을 차단하는 소재를 택했으며그로 인해 신변 잡기류의 잡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좋은 테마이며사실을 토로해야만 한다는 이론(?)에 발목 잡히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우리의 정통 수필은 이런 맥락의 수필에서부터 시작했고 그 맥을 이어왔다언제부터 우리 수필이 자잘한 신변 이야기자기 과시의 주변 이야기류의 수필이 판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수필 때문에 수필의 허구성 담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그리고 수필에 있어서

수필에 있어서 상상력을 통해 구현해 낼 수 있는 수필의 구조 미학의 한 단면을 통해 가능해진다그것은 문학적 상상력으로만이 가능해진다상상력을 통한 구조 미학적 처리다이런 상상의 힘을 빌어 구조적인 수필 미학을 실현할 때문학의 한 장르인 수필문학은 탄탄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수필도 문학이다문학이면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문학은 그것의 소산이기 때문이다상상력이 다소 과장되게 사실을 부풀리더라도상상력이 다소의 허구적인 상황을 전개시키더라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그 '진실'을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그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수필을 사실로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없는 사실을 있는 실로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면불특정 다수를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상상력을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 구조로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인간에 대한 탐구 의식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한 통찰력도 상상력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나는 이쯤에서 상상력은 체험한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환기한다그리고 한국 수필의 발전을 위해서는 문학적이고 창의적인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역설한다.

 

2.

앞서 개진했지만수필의 상상력은 허구의 문제와는 별개이다수필은 허구의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수필은 허구를 용납하지 않는다오히려 수필의 허구 문제를 극복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허구는 소설의 용어이지 수필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적인 용어에서는 제외되어야 한다하지만 수필에서도 상상력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문학의 핵심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상상력(lmagination)은 체험에서 나온다현실적인 체험에서 나오지 않은 상은 이른바 '환상'이라고 말한다코올리지는 사상과 사물과의 조우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를 상상력에서 찾았다즉 정신과 자연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것이다그리고 상상력을 '무한한 존재의 영원한 창조행위를 유한한 정신 속에서 반복하는 일'이라 생각했다신이 혼돈(Caos)으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여그 혼돈된 세계에 질서와 형태를 부여했듯이 유한한 정신(the finite mind)'​ 인간의 정신도 신이 그랬듯이 질서와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그것은 인간의 정신이 신의 정신을 원형으로 삼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조적인데그 창조적인 힘이 문학에 있어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이론을 코올리지나 칸트는 세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이 두 사람의 이론의 용어는 다르지만 개념은 유사하다.

코올리지는 상상력을 공상(fancy)의 차이를 시간과 공간에서 살폈다첫 단계의 상상력인 공상은 연상의 법칙으로부터 미리 준비된 자료를 받아들일 뿐이며시간과 공간의 질서에서 해방되어 나온 기억의 한 형태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이 단계를 칸트는 재생력 상상력(the riproductive imagination)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는 상상력을 일차적 상상력(Primary imagination)과 이차적​ 상상력(Secondary imagination)으로 나누어 생각했다일차적 상상력은 인간의 모든 지각의 원동력이며이 지각의 원동력은 무한한 자아 존재(=신의 존재)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창작 행위가 제약된 존재인 인간의 정신 안에서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그리고 감각과 지각지각과 사상의 중개물로서 대상을 지각하게 할 뿐 아니라개념을 형성하게 하고 사고를 추출케 한다는 것이다이 단계를 칸트는 생산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지성과 오성 사이사상과 세계와 사물의 세계 사이에서의 교량 역할과 상통된 점을 발견하는 단계이다.

그 다음의 단계를 코올리지는 이차적 상상력(Secondary imagination)이라 하고 있는데이차적 상상력은 일차적 상상력의 반향으로 보고 있다이 양자의 차이는 의식의 차에 있다전자가 무의식인데 비해 후자는 '무의식적인 의지'에서 성립된다는 점이다칸트는 이 단계를 미학적 상상력(The aesthetic imagination)혹은 시적 상상력(The poetic imagination)으로서 우리에게 진실로 진실된 그 무엇또는 우주의 구조나 인간 경험의 기초적인 본질표면에 숨어있는 실재그 밖에 이러한 것들이 암시해주는 그 무엇을 보여주는'', '관념화 되고 통일된 미적인 힘'을 보여주는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코올리지와 칸트의 상상력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시나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수필 쓰기에 있어서도 이 상상력의 세 단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필쓰기에서 위의 세 단계 중에서 가장 많이 적용하는 단계는 1단계코올리지의 공상과​ 칸트의 재생적 상상력의 상상력 단계이다많은 수필들이 이 단계에 의존한다과거에 체험한 사건이나 기억들 영상이나 느낌들을 재생하는 단계기억해 내는 단계체험한 사건이나 일들을 재생해서 질서를 부여하고 정리하여 기록하는 상상력에 의존한다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라는 문법에 의해 작가들은 자신이 체험한 일들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는 작업부터 하기 때문이다.

이때 보조적인 상상력으로 두 번째 단계인 일차적 상상력혹은 생산적 상상력 단계의 도움을 받게 된다.이 단계의 상상력은 재생해 낸 상상력 즉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상력이기 때문이다많은 체험 중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하고 질서 있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의미의 맥락에 따라 정리하는 것이 편하고 타당하기 때문이다작품의 주제에 따라분위기나 흐름에 따라 혹은 구성이나 다른 수필의 구성요소에 의해그리고 작가가 원하는 바에 따라 재생적 상상력에 의해서 기억해낸 에피소드를 선택하는 데에는 일차적 상상력생산성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상상력의 세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층위는 미학적 상상력이다이 미학적 상상력의 한계는 무한하다작가에 따라 그 범주는 다르지만그 범주의 깊이 크기에 따라 작가의 역량은 가늠했고감동도 다르게 나타난다발칙하다 할 만큼 까지도 문학은 요구한다.

발칙한 상상력을 수필문학은 허락하지 않는다수필은 개인적 삶의 체험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것을 그대로 그리면 일기문이 되겠지만문학적 상상력에 의해서 삶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상상력이라는 것은 수필을 문학답게 만드는 힘이 된다수필은 허구가 없고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소설처럼 체험한 것처럼 꾸밀 수는 없지만작가가 체험한 사실을 미학적 상상력으로 증폭시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이 때 대두되는 것 중 하나가 발칙한 상상력이다발칙한 상상력은 삶의 도의적 국면에서 사용되는 사전적 의미로서가 아니라도발적이기는 해도 도전적이거나 전위적 혹은 전복顚覆적인 창의적 상상력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이 자아 성찰이나 자신만의 글이 아니고 독자를 염두에 둘 때분명한 것은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이 문제에서 문학의 표현 구조의 제 요소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다참신한 주제와 소재라 해도 그것이 독자의 손에 들어갔을 때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혹은 감동적인가 하는 문제는 표현 구조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작가의 언어 인식표현 구조문장력 등 제 요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과 직결된다작가의 상상력은 그 작가의 사고 구조나 감성 구조그리고 문학에 대한 이해문학관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물론 여기에서 작가의 온축된 삶에 대한 체험가치관 등 자연인으로서의 모든 조건들이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작가의 상상력의 어느 곳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가고 있으며얼마나 깊고 높게 확대되어 나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이 때문에 작가는 고뇌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나타나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하게 되는 것처럼 문학은 죽게 된다폐기 처분될지도 모른다새로운 것에 대한 창조가 문학인의 소명이기 때문이다특별한 문학의 소명이기 때문이다이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확장시켜야 한다비록 그 상상력이 발칙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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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에서의 허구 수용문제와 
현대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 

                                송  명  희 

                          - 부경대교수, 문학평론가 - 

1. 허구 수용 논쟁은 소모적 

  수필문학에서 허구 수용 문제와 관련한 논쟁에 관한 결론은 한 마디로 허구 수용 문제를 논의하는 일 자체가 소모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그것이 어떤 장르가 되었든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이다. 이때 허구라고 하는 개념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가에 의해 그럴 듯하게 만들어진, 즉 가공의 세계라는 뜻이다. 

  흔히 수필문학에서 허구성 논쟁은 허구라는 개념을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내어 쓴다는 의미로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받아들이는 데서 발생한다. 무릇 문학에서의 허구는 거짓과 동의어가 아니며, 따라서 비난되거나 회피하여야 할 요소가 아니라 문학적 감동과 진실을 배가시키기 위해 선택되는 문학적 장치요, 기술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수필도 문학인 이상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허구성을 수용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수필이 단순한 신변잡기를 넘어서서 문학적으로 보다 세련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허구성 수용에 적극적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허구성 수용 문제를 양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자. 

2. 양식적 측면에서의 허구성 

  소설(novel)은 명칭 면에서 픽션(fiction), 즉 허구라고도 칭하는데, 그것은 있을 법한 이야기, 지어내고 꾸며낸 이야기, 즉 허구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허구야말로 소설이란 장르의 가장 큰 변별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서전 연구로 20여 년을 바쳐온 프랑스의 필립 르죈(Philippe Lejeune)은 『자서전의 규약』에서 자서전은 저자와 화자, 그리고 주인공 간의 동일성이 성립해야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소설은 저자와 화자-주인공이 동일하지 않음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 그리고 이야기의 내용이 허구임이 증명될 것 등을 규약으로 제시했다. 즉, 소설의 허구적 성격은 화자-주인공이 저자와 동일인이 아닌 가공의 존재라는 점과 이야기의 내용이 만들어진 허구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을 비롯하여 서정장르인 시도 허구적 성격의 장르이다. 즉, 시의 화자(persona)는 그저 텍스트 속의 화자일 뿐 시인인 저자와 동일인이 아니다. 가령,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의 화자를 여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시를 쓴 김소월과 한용운은 잘 알다시피 남성이지 않은가. 남성인 김소월과 한용운이 여성화자라는 허구의 가면을 쓰고 시를 썼다고 해서 그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며, 마찬가지로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에서 진술된 내용을 거짓말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은 <이별>의 슬픔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탁월한 작품으로 한국인의 가장 큰 애호를 받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김소월과 한용운은 이별의 슬픔을 보다 감동적이고 진실되게 표현하기 위해서 실제작가의 젠더(gender)와 다른 여성화자를 선택하는 시적 기술을 취하고 있으며, 이것이 시적 감동을 분명 배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에서 다루고 있는 이별이란 소재가 소월이나 만해의 현실에서의 직접체험 여부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르죈식으로 말해보자면 저자와 화자가 다르다는 점에서, 또한 시의 내용이 저자의 실제체험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고 만들어진 허구라는 점에서 시는 허구적 장르이다. 

구조시학에서는 실제작가와 구별되는 내포작가 및 화자를 명확히 구분하는데, 내포작가는 작가의 진술 토대 위에 재구축된, 오직 텍스트 안에서만 존재하는 작가이다. 이 내포작가의 가치관이나 태도는 반드시 실제작가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화자는 내포작가와 서사물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 서술된 사건에 참여하거나 혹은 그것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인물로 가정된다. 화자는 작품 속에 극화되어 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텍스트 안에 존재한다. 

  수필장르에서 양식적 측면의 허구성 수용이란 서사적 양식의 차용을 의미한다. 서사(이야기, narrative)란 일차적인 의미로 <사건의 서술>을 뜻한다. 서사의 필수적인 요건은 이야기의 내용과 이야기하는 역할 즉 화자이다. 즉, 사건(event)이라는 내용과 서술(narration)하는 행위에 의해 서사는 성립한다. 그리고 서사물은 서사행위가 결과시킨 것, 일련의 현실 또는 허구적 사건들과 상황들을 시간 연속을 통해 구성해 낸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서사적 양식에 의존하는 서사물에는 소설을 비롯하여 서사시, 극, 신화, 전설, 역사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들은 비언어적 양식에 의존하는 영화, 뮤지컬, 뮤직 비디오 등의 비언어적 서사물과 구별하기 위해 언어적 서사물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언어적 서사물에 서사적 수필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필에서 재미와 감동을 확대하기 위해서 서사적 양식을 수용한 예는 오래 전부터 있어온, 또한 흔히 있는 일이다. 여기서 예를 들어보자.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꼬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고 있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나는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꼬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 피천득의 「인연」에서 

       적막한 아스팔트 위에는 불규칙하게 밟는 나의 발자국소리만 울리었다. 부상당한 병정들을 실은 적십자 자동차 하나가 지나간다. 아마 그가 있는 병원으로 가나 보다 하고 바라다보았다. 빨간 불길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위로 안개 같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불자동차소리도 났다. 북사천로에 불이 붙은 것이다. 불덩이 튀는 소리와 아우성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일본 육전대 방색 가까이 왔을 때 패- 하고 탄자소리가 난다. 이어서 기관총을 내두른다. 나는 그 자리에 섰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 오분이 지났을까, 총소리는 그쳤다. 나는 그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시내 클리닉에 도착하였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위험한 곳에 어떻게 오셨어요." 
       그는 나를 자기 일하는 방으로 안내하였다. 총소리 대포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임으로나 인정으로나 환자들을 내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의 맑은 눈을 바라보았다. 

      - 피천득의 「유순이」에서 

  「인연」은 우리 수필문학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피천득의 대표적 수필이다. 피천득은 일본여행에서 만났던 아사꼬의 이야기를 쓴 「인연」에서만이 아니라 중국 상해에서의 유학시절에 만났던 간호사 '유순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유순이」라는 수필에서도 허구적 양식을 차용하고 있다. 「인연」과 「유순이」란 두 작품에서의 1인칭의 화자는 분명 실제작가인 피천득과 동일인물이다. 하지만 이 수필에서    그리고 있는 사건의 중심인물(주인공)은 아사꼬와 간호사 유순이로서 저자-화자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르죈식으로 말하자면 저자와 화자는 동일인이지만 주인공은 동일인이 아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내용, 즉 아사꼬와 유순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즉, 내용은 허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양식적 측면에서 두 작품은 허구성을 차용하고 있다. 즉, 사건이 있고, 서술하는 화자가 있다는 점에서 서사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마치 1인칭 관찰자 서술의 소설처럼. 하지만 두 편의 수필은 그리고 있는 내용이 작가 피천득이 직접 경험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소설은 아니며, 길이도 짧아 서사적 ! 수필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이처럼 피천득의 수필은 경험적 사실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인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수필에서 허구성 수용은 수필의 내용을 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수필문학은 초창기부터 허구적 요소를 적극 수용하여 왔음을 원로수필가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21세기에도 여전히 허구 수용문제가 쟁점이 된다는 것은 부적절하고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3. 내용적 측면에서의 허구성 

  수필문학에서 허구 수용문제는 수필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만을 적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문제와 늘 상충해 왔다. 즉, '경험한 사실'의 범주를 너무 제한적으로 생각한 데서 발생한 오해이다. 

  필자가 이미 발표한 「수필문학의 허구성」(수필과 비평 99년 7-8월호)이란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수필의 허구성은 환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적 사실 위에 상상적 환상적 요소가 부가됨으로써 수필세계는 더욱 풍부해진다. 즉, 경험적 자아를 넘어서는 내적 자아의 표현, 심적 현실의 표현이 그것이다. 인간의 자아는 밖으로는 외적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안으로는 나의 마음, 즉 내적 세계와 관계를 맺도록 되어 있다. 심리학에서 외적 세계와 관계를 맺는 인격을 외적 인격이라고 부르며, 내적 세계와 관계를 맺는 인격은 내적 인격이라고 부른다. 내적 인격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내적 인격은 인간의 무의식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프로이트(S.Freud)에 의하면 무의식이란 의식으로부터 억압된 것, 망각된 것, 미처 의식되지 못한 심리적 내용,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의식에 의해서 인식되지 못한 채 정신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칼 융(C.G.Jung)은 무의식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모르고 있는 미지의 정신세계라고 정의했다. 즉, 무의식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정신세계이다. 자아가 무의식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의식화하고자 하면 할수록 무의식은 그의 창조적인 암시를 더욱 활발히 내보내게 된다. 어찌 보면 문학은 자아로 하여금 무의식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하며, 그 깊은 층으로 인간을 유도함으로써 창조성을 발휘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필에서 환상성이란 수필가가 체험한 경험적 자아만이 아니라 잠재된 욕구와 무의식적 욕망에 대한 상상적 표현과 미답의 정신영역에 대한 탐구를 의미한다. 문학은 바로 내적 무의식적 꿈을 언어를 통해서 드러냄으로써 창조성을 발휘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언어로 드러낸다는 것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수필이 사실성을 떠나 허구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로 지평을 넓힌다는 것은 인간의 내적 자아, 무의식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러한 수필을 경험적 자아만을 표현하는 리얼리즘 수필과 구별하여 모더니즘 수필이라고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무턱대고 있지도 않은 가공의 사실을 창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서 인간의 잠재의식, 무의식, 미답의 정신영역을 드러냄으로써 사실성을 넘어서는 인간의 내적 진실을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무의식은 직접 관찰이 가능한 정신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관념적인 대상, 어떤 경험사실들에 대한 일련의 연역과 귀납의 결과로서 존재하고 정의되는 실체를 가리키며, 우리의 정신현상내에 결핍되어 있는 어떤 것이라고 장 벨맹 노엘(Jean Bellemin-Nol) 규정했듯 그것은 외적으로 직접 경험한 사실과는 구별되는 정신영역이다. 

  모더니즘 문학의 가장 대표격인 심리주의 소설은 인간의 진실은 인간의 외면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 즉 잠재된 무의식의 세계 속에 더 큰 진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리얼리즘 소설이 그때까지 구축해 왔던 이론을 전복하며, 베르그송의 시간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윌리암 제임스의 의식의 심리학 등의 영향과 이론을 토대로 하여 그때까지 빙산의 일각과도 같던 외적 세계와 의식의 세계만을 다루던 태도를 벗어나 물 속에 잠긴 잠재된 인간심리, 즉 무의식이라는 더 큰 진실의 세계를 그리는 데 기울어져 갔다. 심리주의 소설은 의식의 흐름, 내적 독백, 자동기술과 같은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기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모더니스트들의 인생관과 소설관에서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상징주의 시와 인상파 화가에게서 비롯된 모더니즘은 문학에서는 1910년대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부터 시작된다. 유진 런(E.Lunn)에 의하면 모더니즘은 첫째, 미학적 자의식과 자기반영성을 중시하며 창작하는 과정 자체를 탐구한다. 둘째, 베르그송의 주관적 시간철학의 영향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진행하는 서술적 시간구조가 약화되는 대신에 시간적 동시성, 병치 또는 몽타즈를 즐겨 사용한다. 셋째, 패러독스, 모호성,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한다. 넷째, 개성, 통합적 주체의 붕괴와 비인간화를 특징으로 한다. 

  수필이란 문학장르가 아직껏 직접 경험한 세계만을 다룬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면, 이는 우리의 시나 소설 장르가 90년대부터 모더니즘의 시대를 지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 속에 놓여져 있는데도 수필만이 유독 모더니즘의 전 단계인 리얼리즘 단계에 지체되어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동쪽 복도를 지나 아랍풍의 무늬가 새겨진 문을 빠져 나올 때였다. 한 무리의 인도인 관광객이 내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앞에 가는 한 여성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미라, 이다르 아이예(미라, 이리 와 봐)!" 

그 소리에 한 처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어떤 계시와도 같은 울림이 나를 흔들었다. 아, 그렇다. 내가 전생에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은 미라였다. 이제 모든 것이 생각났다. 그녀의 얼굴까지도, 그리고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그 표정과 웃는 모습까지도! 

  내 마음은 소리쳐 그녀를 불렀다. 
"미라!" 

그 이름이 성의 복도에서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기둥들 사이에선 아직도 그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녀를 만지기 위해 나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현생 속에 존재하고 있었고, 그녀는 전생 속의 사람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엔 한 생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가로놓여 있었다. 

  나는 환영 속의 미라와 함께 성의 복도를 달려가 다시 야무나강이 내려다보이는 망루로 올라갔다. 오렌지색 석양이 서서히 강을 물들이고 있었다. 밀려오는 기억들을 주체하지 못해 나는 성벽 아래 쪼그리고 앉았다. 

   - 류시화의 「전생에 나는 인도에서 살았다」에서 

  인용한 수필은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1997)에 수록된 「전생에 나는 인도에서 살았다」의 한 대목이다. 인용한 부분이 소설의 한 장면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인용한 대목은 영락없이 1인칭의 화자가 전생에서 사랑했던 여인을 만난 사건에 대한 서술이다. 이 작품은 양식적 측면에서 허구성을 채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도 환상성을 띰으로써 허구적 성격이 매우 강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지극히 모호하다. 현실의 화자인 내가 전생의 연인을 만난 환상적 사건은 기존의 사실성에 얽매인 수필에 대한 관념을 전복시킨다. 류시화는 시간적으로 현재와 전생이란 먼 과거 시간의 병치, 객관적 시간관념의 붕괴, 미지의 세계인 전생에 대한 무의식, 여행지 인도에서 만났던 한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환상적 욕망 같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세계에서 충족할 수 없는 결핍과 그 결핍을 메우려는 무의식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결핍된 욕망을 언어로써 메우려는 무의식을 드러냈다고 해서 이를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류시화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유려한 문체와 더! 불어 허구적 요소를 양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 양면에서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이 산문집을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4. 상상력의 확대와 현대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 

  상상력이란 과거에 느꼈던 원물(原物)의 이미지를 재생하는 능력으로서 과거 감각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오는 재생적 상상력(reproductive imagination)과 여러 원물들에서 추출된 요소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합일체를 구성하는 생산적 상상력(productive imagina-tion)으로 제임스(W. James)는 나눈 바 있다. 제임스가 말한 재생적 상상력은 과거 경험했던 감각적 영상이나 인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인 반면 생산적 상상력은 그 경험한 요소들이 새롭게 결합해서 창조적 통일성을 이루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창조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술에 있어서의 상상력이란 인간의 체험적 여러 요소들의 결합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체험 없이는 상상력 역시 구성될 수 없다. 한편 콜리지(S.T. Coleridge)는 상상력을 1차적 상상력과 2차적 상상력으로 구별했는데, 1차적 상상력이란 무한한 자아의 영원한 창조활동이 인간의 한정된 정신 안에서 솟아오르는 무의식적 정신작용을 가리키며, 2차적 상상력은 무제약적인 1차적 상상력을 이념화하고 통일하려는 인간의지가 가미된 지성적이고 사회적인 정신작용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러스킨(J. Rus! kin)은 정신이 사물의 진실을 뚫고 들어가 진실을 바라보는 통찰적 상상력, 서로 분리하면 부적당한 두 개의 관념을 결합시키고 통일시키는 인간지성의 기계적 능력인 연합적 상상력, 대상을 명상하는 가운데 사상과 정서가 나타나서 체험 전체를 통일해서 표현할 수 있는 명상적 상상력 등으로 상상력을 구분한 바 있다. 

  현대수필이 나아갈 방향과 관련하여 제임스, 콜리지, 러스킨의 상상력 이론을 원용하여 논의해 보겠다. 그 동안 한국 수필은 과거에 경험했던 영상이나 인상을 그대로 옮겨오는 재생적 상상력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허구성 수용? 같은 논쟁으로 에너지를 낭비해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재생적 상상력보다는 경험적 요소를 새롭게 결합해서 창조적 통일성을 이루는 생산적 상상력이 더욱 요구된다. 또한 콜리지가 말한 1차적 상상력, 즉 무한한 자아의 무의식적 정신작용을 수필창작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또한 수필문학에서 지성적이고 사회적인 정신작용인 2차적 상상력도 더욱 요청되는바, 수필이 신변잡기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적 폐쇄성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지적 사회적 상상력이 요청되는 지적인 수필, 사회성이 강한 수필도 다수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지성적이고 사회적인 2차적 상상력이 더욱 요청된다고 본다. 법정 스님의 수필은 불교적 명상이 주요한 개성으로 드러남으로써 수많은 고정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법정 스님이 불교적 사유를 통해 대상을 명상하는 가운데 사상과 정서가 ! 결합되어 통일성을 이루는, 러스킨이 말한 명상적 상상력이 풍부한 수필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우리의 수필은 제한적인 경험과 사실의 나열에서 벗어나서 사실을 뚫고 들어가 진실을 바라봄으로써 주제를 심화시키는 통찰적 상상력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양하고 풍부하고 깊이 있는 상상력으로 수필의 깊이와 문학성을 더욱 보강해야만 한다. 

5. 변화에 유연성을 갖자 

  허구적 구성과 허구적 인물의 설정을 배제하며, 작가의 도덕적 비전과 기자의 경험적 시각을 결합한 새로운 소설적 경향인 뉴저널리즘 소설은 소설의 가장 큰 변별성인 허구성을 배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설계에서는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소모적 논쟁을 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오히려 소설의 새로움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메타소설은 실제작가가 화자로 직접 등장하며 소설쓰기의 과정, 즉 제작과정을 노출시킴으로써 소설형식이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가공품임을 환기시키는데, 이는 기존의 소설적 관습을 전복하는 새로운 소설쓰기 방식이다. 기존에 소설은 허구이면서도 허구라는 사실을 감춤으로써 독자들의 동일시를 끌어냈다면 메타소설은 소설에서 재현된 현실이 한낱 언어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 허구라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허구와 현실은 호환 가능한 것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메타소설 역시 뉴저널리즘 소설과 마찬가지로 소설의 기존 관습을 해체했지만 그것 역시 소설의 새로운 양식, 포스트모던 소설의 한 양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현대에 들어와서 소설은 기존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실험적 경향이 강하다. 즉, 현대의 소설가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일에서보다는 사건을 증언하고 보고하는 일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뉴저널리즘 소설),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소설가 자신을 이야기하고자 하며, 소설 쓰기와 소설에 관해서 사고하고자 하는 자의식을 드러낸다.(메타소설)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에 고갈을 느낀 탓인지 과거의 작품을 패러디한다.(패러디소설) 이제 소설의 가장 중요한 변별성으로 여겨지던 허구와 비허구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계가 이런 사실에 대해 소설의 결정적 과오나 결함으로 간주하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움으로 적극 수용한다. 왜냐하면, 문학이란 끝없이 새로움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것이며, 부단히 기존의 형식과 내용을 해체하고 전복하는 데서 새로움과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수필만이 유독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단한 저항에 부딪혀야 하는 것일까? 이제부터는 그 저항이 수필의 새로움을 저해하며, 수필문학의 발전을 장애하는 요소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작품의 새로움, 예술성, 재미, 감동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에 대한 실험적 모색과 부단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이나 시로부터 또한 타 예술로부터 많은 것을 차용하고 수용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수필문학은 변화에 유연성과 적극성을 가질 때에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새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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