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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난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물려받을 유산이 많은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왜 포크도 나이프도 아닌 숟가락일까요?
동서고금,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사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이지만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 빈부귀천을 가르는 경우가 많지요. 나무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사람과 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사람의 형편이 어떻게 다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빈부귀천이 따로 없던 시절, 최초의 숟가락은 조개껍질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숟가락을 쓰기 시작한 중세에는 나무를 깎아 만들었는데 그중엔 공들여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어서 훗날 인기 있는 기념품이 된 것도 있습니다. 바로 영국 웨일스에서 나오는 ‘사랑의 숟가락’입니다. 웨일스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나무 숟가락에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서 사랑의 증표로 주었는데 비록 은 숟가락은 아니라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특별한 숟가락이었습니다.
특별한 숟가락은 우리나라의 각 가정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숟가락이지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다른 식구들 것과 섞이지 않도록 특별히 따로 챙겨두었습니다. 또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어야 비로소 식구들의 식사가 시작됐지요. 이처럼 아버지의 숟가락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그 숟가락에 밥이 담기고 국물이 담겨 입으로 들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가족을 꾸릴 힘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무것도 담지는 못하지만 집을 수 있는 젓가락이 등장한 것은 5천 년 전 중국에서였습니다. 그때는 요리를 익힐 때 필요한 연료가 대단히 귀해서 음식을 빨리 익히려고 식재료를 잘게 잘라서 요리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 불을 내는 연료로 사용했던 나무의 잔가지 한두 개를 이용하면 작은 음식 조각을 쉽게 집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이것이 젓가락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비록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느냐는 달라도 예외없이 평등한 일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는 일 같습니다. 만약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면 병들거나 죽음을 맞이했다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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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우리말 ‘젓가락’은 ‘箸’와 ‘가락’(가늘고 긴 모양을 이르는 말)을 합한 것이다. 숟가락도 유사한 조합이다. 젓가락을 사용하게 된 것은 중국에서부터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젓가락을 筷子라 하는데, 중국인에게 젓가락은 세끼 식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왜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하게 됐을까?또 ‘筷子’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중국 고대에는 지금 한국과 마찬가지로 젓가락을 ‘箸’라고 불렀다. ‘사기’의 ‘宋微子世家’에는 “紂王이 象牙로 젓가락을 만드니 箕子가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드는 것을 보니 필경 옥으로 잔을 만들겠구나!’라고 탄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象箸란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말하는데 기자가 주왕의 사치가 극에 달할 것임을 예측한 것이다. 약 3천 년 전 은나라 말기에 중국에서 젓가락이 널리 사용됐고 상아와 같이 특수한 재질로 만든 젓가락도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중국 전설에 따르면 물을 다스리는데 큰 공을 세운 大禹는 젓가락의 달인이었다. 대우는 물을 다스리기 위해 애쓰던 시기에는 자신의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쳤음에도 단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공사 진행을 지체할까 염려해 들판에서 식사를 하고 음식이 익으면 바로 먹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음식이 탕 속에서 펄펄 끓고 있을 때는 손으로 건져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잘라 고기나 야채를 건져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젓가락의 시초다. 箸가 등장하는 또 다른 고대문헌으로는 ‘禮記’가 있다. ‘禮記 曲禮上’에 “기장밥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사용하지 말라(飯黍毋以箸)”는 구절이 나온다. 당시에는 밥을 먹을 때 손으로 먹는 것이 바른 예절이었고, 젓가락으로 밥을 헤집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또 같은 편에는 “국에 나물이 있는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되 나물이 없으면 사용하지 않는다(羹之有菜者用梜,其無菜者不用梜)”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梜은 나무로 만들어 음식물을 사이에 끼우는 젓가락을 말한다. 지금도 일부 중국인들은 젓가락을 가리킬 때 협제(梜提)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중국은 先秦시기에 이미 젓가락을 널리 사용했지만 용도에 제한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밥을 먹을 때는 주로 손으로 먹고, 젓가락은 뜨거운 국에서 건더기를 건질 때만 썼다.
중국 역사상 젓가락을 보편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기는 漢나라 때로 여겨진다. 또, 젓가락을 가리키는 단어가 箸에서 筷子로 변한 것은 明나라 이후의 일이다. 명나라 때 陸容이 지은 ‘菽園雜記’에는“민간에도 避諱가 존재하는데 특히 吳中 지방이 심하다. 가령 ‘住(머무른다는 뜻)’나 ‘飜(뒤집힌다는 뜻)’을 휘해 ‘箸’도 ‘快兒’라 한다”고 적혀 있다. 오중 지방은 수운이 발달한 곳이라 배를 타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가장 불길한 단어는 배가 뒤집히거나 혹은 멈춰서는 것이라 이와 비슷한 발음을 지닌 단어들을 꺼렸다. 그런데 멈출 住와 젓가락을 뜻하는 箸의 중국어 발음이 ‘zhù’로 같았다.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젓가락을 지칭할 때 ‘箸’라 하지 않고 ‘快兒’라고 불렀다. 빨리 움직인다는 의미인데 나중에 젓가락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대나무 竹을 덧붙여 ‘筷’로 만들었다. ‘筷子’라는 단어는 이렇게 생겨났다. 한편, 쾌자가 외형이 곧고 굽은 곳이 없어 선인들은 젓가락에 여러 가지 美德을 덧붙였다. 예로, 五代 王仁裕가 편찬한 ‘開元天寶遺事’에 따르면 당 현종 시대에 宋璟이란 재상이 있었는데 지조가 굳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이에 현종은 자신이 사용하던 금 젓가락을 하사해 그의 강직하고 굳센 지조를 표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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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쇠젓가락이 발달한 이유
원래 한국인들도 나무로 된 젓가락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쉽게 변형되고 오래 쓸 수가 없자 한국인들은
우리들만의 아주 독특한 쇠젓가락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금속을 다루는 문화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쇠를 수저에 이용하는 방법이 보편화된 것이죠.
그런데 왜 우리 민족은 금속으로 만든 젓가락을 선호하였을까요?
신라시대 때 김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금속을 귀하게 여기는 풍속에서
시작하였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우리네 선조들은 금속젓가락의 내구성과 음식을 잡았을 때 잘 떨어지지 않는 장점을 알았기에
지금까지 선호되어 온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한중일 삼국은 식생활이 달라 젓가락의 크기와 모양이 나라마다 다른데,
중국 사람들은 온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를 해 음식과의 거리가 멀고
반찬에 기름기가 많고 집기가 어렵기 때문에 젓가락이 길고 굵죠.
반면에 일본 사람들은 밥 그릇과 반찬, 국 그릇을 모두
자기 앞에 놓인 상에서 먹기 때문에 젓가락도 짧습니다.
또 가시가 있는 생선이나 껍데기가 있는 해산물,
우동과 같은 면류를 많이 먹기 때문에 젓가락의 끝 부분이 뾰족합니다.
우리의 젓가락은 지리적 위치 만큼이나 중간입니다.
25㎝ 안팎 길이에 끝은 뾰족하지도 뭉툭하지도 않고 차라리 납작한데
김치와 같은 채소를 집게 편하게 앞쪽이 납작해진 것으로 음식문화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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