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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하여 시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지름길을 찾아라...
2017년 05월 17일 23시 20분  조회:2209  추천:0  작성자: 죽림


7. 시어 선택과 작가 의도 파악하기

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시를 통하여 작가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다.작가의 의도를 독자가 알아차린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도 기쁜 일이다.

그러면 작가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뭐니뭐니 해도 시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 내려고 했는가 하는 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에서 '무엇'은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對象)'일 것이며, '어떻게'는 '표현 기법'일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데, 어떤 언어를 사용하여 이를 대치(代置)시키고 있으며, 대신한 그 나름대로의 표현 기법에 의하여
어떠한 의미로 환기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아차리는 일이 시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이다.

작가의 창작 의도에 대한 깊이에 대하여 이해하려는 나의 눈높이를 맞추고 그 지점에서 대상과 다듬어진 시구(詩句)를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원리이다. 이에 대한 쉬운 이해는 다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김소월, '길' 제 1연)

'갈 길을 잃은 나그네의 비애(悲哀)'를 주제로 한 김소월 시 '길'의 첫 연이다. 여기에서 시의 전체적 분위기를 압도하는 시어는
'가마귀'이다. '가마귀'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모진 신세나 어두운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다고 판단한 작가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만약
선택된 시어가 '가마귀'가 아니고 '참새'였다면 이 시는 어떤 모습일까?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참새 짹짹 울며 새었소.

이와 같은 모습일 텐데, 분위기는 너무나 달라진다. 작가 자신의 길 잃은 나그네로서의 모습을 형상화시키기에는 뭔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일 뿐이다. '참새'가 아니고 '까치', '종달새' 등의 다른 새였다 해도 '가마귀'가 드러내는 분위기만큼의 정서는 표현해내지 못 할
것이다. 즉 어두운 분위기를 위해서는 가장 잘 선택된 시어라고 여겨진다. 박목월의 시 '청노루'를 보자.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살펴 보아야 할 핵심 소재(제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청노루'다.

시의 유기적 구성을 위해 동원된 시어가 모두 자연물이라면 그 중에는 유일하게 동물로 선택된 '청노루'가 있다 작가는 거기에 이 시의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 뻔하다. 작가의 깊은 마음을 이러한 식으로 헤아렸다면 '청노루'라는 제재를 가운데 두고 해석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그런데 우리에게 의심스러운 것은 청(靑), 즉 푸른 색깔의 노루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노루는 송아지처럼 누런 색깔일 뿐이다.

그럼 이 시를 '황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 구름'이라고 시어를 바꾸어 보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이 시가 주는 이미지는 신선함이
아니라 칙칙함이다. 이렇게 되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신선한 봄, 아름다운 봄의 이미지는 본래의 의도와 벗어나게 되는 실패작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작가는 실재(實在)하지도 않는 '청노루'라는 시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이해하여야 한다. 시어의 선택면에서 '청노루'와는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개나리'라는 시를 한번 읽어보자.

샛노란 얼굴빛으로
앙증스런 눈웃음으로
너의 가여린 몸짓은
이 봄날을 위해
고스란히 탄생되었고……

티없이 맑은 하늘을 우러러
대지의 언 가슴을 녹이는
너의 기도는
무언의 고독으로 떨고 있구나

오늘쯤 나는
너를 만나러 가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고 싶다

개나리 화관을 머리에 이고
개나리 목걸이를 목에다 걸고
개나리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나풀나풀 날개짓으로
너를 만나고 싶다

노오란 꽃잎이 먼저 스러져야만
연두빛 잎사귀가 트이는
너의 엇갈린 슬픈 사연을 듣고 싶다

나의 빈 가슴 하나 가득
너를 부비고
온통 싱그러운 마음으로
돌아오고 싶다.

(김영실, '개나리'(주부 백일장 시부문 장원작))

이 시는 '청노루'에서처럼 작가의 의도적 시어 선택이 흔적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나리'에서도 '청노루'를 해석하는 방법은 똑같이 통할 것 같다. 즉 시 전체를 통하여 가장 특징적인 시어를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나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나리'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눈길보다도 '나비'의 시선이 더욱 정확하고 예리할 것이라는 것을 작가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음직하다. 그리하여 '오늘쯤 나는 / 너를 만나러 가는 / 한 마리의 나비가 되고 싶었던 것이며, '노오란 꽃망울이 먼저 스러져야만
/ 연두빛 잎사귀가 트이는' 개나리의 '엇갈린 슬픈 사연을'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정확한 관찰이 가능했던 것이다.

더욱이 작가는 여섯 연으로 이루어진 '개나리'전 편을 통하여 3연에만 단 한 번의 '나비'를 등장시키고 있어 핵심 시어의 절제면에서도 무척이나 돋보인다.



8. 서정적 자아의 위치 확인하기

시나 소설이 자서전이나 수필 등의 글과 다른 이유로는 서술자의 실체 문제를 들 수 있다. 자서전이나 수필 같은 글의 경우 서술자인
'나'는 곧 작가이다. 그러나 시나 소설의 경우 서술자는 곧 작가라는 등식을 곧이 곧대로 믿어버리면 크나 큰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소설 작품에서 한 작가가 서술자로 하여금 성행위를 하는 표현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고 가정할 경우, 서술자는 곧 작가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게 되면 그 작가의 가정(家庭)은 곧바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내용이 이성(異性)과 이별한 뒤에 오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표현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작가의 경험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음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지만 적어도 작가를, 서술자와 일치한다는 등식 위에서 인식하는 것은
작가 혹은 독자들이 피해야 할 기본적 예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 소설은 수필이나 자서전과 다른 장르가 되는 것이며 시에서는 서술자를 서정적 자아(시적 화자 또는 시적 자아)소설에서는 작중 화자라고 일반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소설에서의 시점(視點 - 1인칭, 3인칭)이 시에도 있다면 의아해할 지도 모르겠다. 1인칭과 3인칭의 차이는 서술자의 위치가 작품 속에 있는가 작품 밖에 있는가에 있다. 그러니까 시의 경우 서정적 자아인 '나'가 작품 속에 있는가 작품 밖에 있는가 하는 점이 소설로 말하면 1인칭 시점 혹은 3인칭 시점이 되는 셈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절정(絶頂)')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서정적 자아인 '나'가 작품 속에 있으며(소설로 말하자면 1인칭 시점), 이육사의 '절정(絶頂)'은 '나'가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생략된 경우로서 역시 같은 경우에 속한다.

박목월의 '나그네'에는 '나'가 작품 밖에 위치하고 있어 소설로 말하자면 3인칭 시점에 해당한다.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같은 내용도 서정적 자아의 위치를 바꾸어 보면서 창작을 시도해 보면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작품의 내용이 서정적 자아와 밀착되어 있는 '진달래꽃', '절정(絶頂)'을 읽을 때에 독자는 자신의 위치와 서정적 자아를 동일시하게
됨으로써 작품 속에 푹 빠지게 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반대로 '나그네'의 경우는 작품의 내용을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제 삼자의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마치 독자가, 독자로부터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감상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전자의 경우는 자신의 일을 서술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감정이 위주가 된 주정적(主情的)작품이 많은 편이며, 후자의 경우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작품의 내용에 간섭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서정적 자아의 감정을 노출시키기 어려운 문제가 많아 지성이 위주가 된 주지적(主知的)작품이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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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박영근 (1958∼2006)

저 탑이
왜 이리 간절할까

내리는 어스름에
산도 멀어지고
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지고

수백 년 시간을 거슬러
무너져가는 몸으로
천지간에
아슬히 살아남아
저 탑이 왜 이리 나를 부를까

사방 어둠 속
홀로 서성이는데
이내 탑마저 지워지고
나만 남아
어둠으로 남아

 

 

문득 뜨거운 이마에
야윈 얼굴에 몇 점 빗방울
오래 묵은 마음을
쓸어오는
빗소리

형체도 없이 탑이 운다
금 간 돌 속에서
몇 송이 연꽃이 운다




하늘엔 먹구름 느리게 흘러가고, 그 아래 벌판을 화자는 정처 없이 걷고 있었을 테다. 축축한 공기 속에서 날이 저물어 가는데, 한 돌탑이 화자의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는다. ‘수백 년 시간을 거슬러/무너져가는 몸으로/천지간에/아슬히 살아남은’ 형상의 돌탑. 어쩌면 절 터였을까. 알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 마을의 어떤 할머니는 들일하러 지나갈 때마다 그 앞에서 합장하고 고개 숙였을 테다. ‘저 탑이 왜 이리 나를 부를까.’ 들판에 버려진 듯 홀로 서 있는, 풍상에 닳고 닳은 돌탑에서 화자는 제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내리는 어스름에/산도 멀어지고/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서 산도 멀어지고, 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진 제 인생의 어스름을 보듯이. 
 

 

화자는 천지간에 마음 둘 곳 없이 ‘사방 어둠 속/홀로 서성이는’ 나그네다. 화자의 외로움과 비애가 정갈한 시어에 실려 독자의 가슴이 자욱이 젖어드는데, ‘문득 뜨거운 이마에/야윈 얼굴에 몇 점 빗방울/오래 묵은 마음을/쓸어오는 빗소리’! 

형체 없이 닳아도 탑에는, 그 금 간 돌 속에는 몇 송이 연꽃이 있을 테다. 돌탑의 희미한 연꽃 문양이 비에 젖어 선명해지듯이, 일생의 먼지가 쌓여 진흙탕 같은 화자의 ‘오래 묵은 마음’에 연꽃이 피어나려 움찔거린다. 박영근 시에는 남성적이면서 섬세한 서정이 깃들어 있다. 청정하고 우미(優美)한 연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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