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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론 / 김호웅
2017년 05월 20일 01시 20분  조회:2564  추천:0  작성자: 죽림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 윤동주론

김호웅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으로 불리는 윤동주의 생애는 순결하고도 아름답다. 그의 시는 “천체의 미학”, “부끄러움의 시학”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나의 넋이 맑아짐을 경험한다” 라고 한 문익환 목사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그의 젊음, 그의 맑음, 그의 애처로움과 장함은 그의 인생과 그의 시를 접하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애경과 불망(不忘)을 심어준다.

 

제1회 윤동주문학제를 맞는 이 자리에서는 윤동주가 연변에 알려진 경과를 소개함과 아울러 그의 대표적인 시들을 통해 그 사상, 예술적 매력과 현대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윤동주 시인과 연변

 

윤동주가 연변에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중엽이었다. 그것도 한 낯모를 일본학자에 의해서였다. 1985년 4월 12일,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라고 하는 50대의 일본인이 연변을 찾아왔다. 제주도출신의 조선인 부인 아키코(秋子)를 동반한 걸음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인데, 체류 명목상 연변대학에서 일본어교수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짬만 나면 승용차를 타고 용정으로 달렸다. 사실 그는 옛 북간도에서 활약했던 문학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문학적 업적을 추적하고 정리할 목적을 가지고 왔던것이다. 워낙 중국문학을 전공했던 오오무라 교수는 1956년경부터 한국문학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한국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최서해, 김정한, 정지용, 리육사, 윤동주 등 많은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에 몰입했다. 그러나 크나큰 매력을 느끼고 깊이 파고든것은 윤동주였다. 윤동주의 작품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그의 인간적인 면을 좀 더 깊이 알려고 하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일본 도쿄에서 윤동주시인의 아우인 윤일주를 만나게 되었다. 윤일주는 40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윤동주의 묘는 옛 은진중학교로 이어지는 구릉의 동산교회 묘지에 있다고 했다.

 

 

 

오오무라 교수는 연길에 도착한 후 곧장 사람을 띄워 윤동주의 묘소를 찾게 했다. 오오무라 교수의 부탁을 받은 사람은 옛 동산교회 묘지를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연길시만은 1985년 2월 개방도시로 돼 외국인도 자유롭게 다닐수 있게 되였지만 윤동주의 묘는 연길시가 아니라 룡정현 룡정진의 교외에 있었다. 공안국의 허가증이 나오자 5월 14일 오오무라 교수 내외는 연변대학의 승용차를 타고 직접 룡정으로 향했다. 연변대학 민족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권철 교수와 연변대학 조문학부의 리해산 교수가 동행했다. 먼저 옛 대성중학교 터에 있는 룡정중학교를 방문하고 룡정지역 력사에 밝은 한생철 선생을 동행으로 요청했다. 옛 동산교회 묘지로 올라가는 길, 승용차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구릉의 경사지에 밭과 어설픈 숲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조선의 회령으로 이어지는 길이 서북에서 동남으로 지나가고 그 좌측에 멀리 바라보이는, 끝없이 이어진 구릉의 여기저기에 펑퍼짐한 둔덕과 어설픈 묘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산등성이 아래쪽의 묘비들은 넘어지고 부서진게 상당히 많았다. 그들은 윤동주의 묘소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쑥밭을 헤치며 앞장을 서서 걸어가던 리해산 교수가 큼직한 비석을 찾아가 정면을 보니 “시인 윤동주지묘(詩人尹東柱之墓)”라는 글발이 보인다. 끝내 찾은것이다.

 

 

 

원래 봉긋하게 성토를 했을 무덤, 그 앞에 서남쪽을 향해 묘비가 서있었다. 오오무라 교수 등의 조사에 의하면, 받침돌 위에 세운 비석 본체는 정면과 뒤면은 상부가 약간 둥근 모양을 띠고 중앙의 가장 높은 곳이 세로가 1m, 좌우의 낮은 곳이 0.93m, 옆으로의 폭은 0.395m다. 측면은 세로 0.93m, 폭 0.17m로서 주변의 다른 비석에 비해 약간 컸다. 정면에 "시인윤동주지묘"라고 새겨져 있고 뒤면에 22자 8행, 정면으로 보아서 우측면에 22자 3행, 좌측면에 25자 3행에 걸쳐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비문을 한문 투로 훈독(訓讀)하면 다음과 같다―

 

 

 

아! 그 선조가 파평인 고 윤동주시인. 어린 시절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화룡현립제일교 고등과에 편입한 뒤 다시 룡정의 은진중학에서 3년의 학업을 마치고 평양의 숭실중학으로 전학하였다. 학업을 닦느라 그 곳에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룡정으로 돌아와 마침내 우수한 성적으로 광명중학부를 졸업하였다. 1938년에는 경성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여 4년의 겨울을 지내고 졸업을 하였다. 공부는 이미 성공의 지경에 이르렀으나 스스로는 아직 미진타 하여 이듬해 4월에는 책을 싸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지사대학 문학부에서 진리의 탁마에 정진하였다. 그러나 어찌 뜻하였으랴, 배움의 바다에 파도가 일어 몸은 자유를 잃고 형설의 생애는 조롱에 갇힌 새의 운명이 되였고 게다가 병이 더욱 깊어져 1945년 2월 16일을 기해 운명하였으니 그 때 나이 스물아홉. 사람됨은 당대에 큰 인물이 됨직 했고 그의 시 비로소 사회에 울려 퍼질만 했는데 춘풍이 무정하고 꽃은 피우고도 열매를 맺지 못 하였나니. 아아, 애석하도다 그대여. 하현어른의 손자며 영석선생의 아들인 그대, 영민하고 배우기를 즐겨했고 신시를 좋아해 작품이 많았으니 필명은 동주라 하더라.

 

 

 

1945년 6월 14일 해사 김석관 짓고 씀

동생 일주 광주 삼가 세움

 

 

 

윤동주의 묘소를 찾은 뒤를 이어 오오무라 교수와 연변의 학자들은 선후로 룡정중학교에서 윤동주의 학적부를 발견했고 송몽규의 무덤, 윤동주의 생가터, 유서깊은 명동교회를 비롯하여 윤동주의 삶의 궤적과 그 주변의 많은 사실들을 밝혀냈다. 오오무라 교수의 노력은 연변에 윤동주의 붐을 일으켰다. 연변의 문학인들을 비롯한 연변사람들은 이 땅에서 자랐고 이 땅에 불멸의 아름다운 시편을 남기고 이 땅에 영원히 묻혀있는 위대한 시인의 처절한 삶과 주옥같은 시편들을 두고 커다란 감동과 흥분에 잠기게 되였다. 윤동주는 연변이 낳은 자랑스러운 “저항시인”으로 각광을 받아 한국에서 들여온 그의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돌려가며 읽었다. 그러한 독자들의 열망에 부응해서 연변의 문인들은《문학과 예술》(1985년 제6기)에 윤동주 시 10수를 실었다. 윤동주의 모교인 룡정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윤동주시연구회”를 결성하고 시랑송회, 묘소참배 등을 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있고 연변학자들도 윤동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4년 6월 14일 용정에서 “민족시인 윤동주 50주기 기념학술연구회의”가 개최되었고 한국의 지성인들과 연변의 지성인들의 공동한 노력에 힘입어 윤동주의 생가와 명동교회가 복원되었으며 윤동주의 삶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명동촌, 룡정중학교, 옛 동산교회 묘지 등은 일약 력사유적으로,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아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있다. 그리고《연변문학》지와《중학생》지는 문인들과 청소년들을 상대로 각각 윤동주문학상을 설립하였으며 연변대학 고적연구소에서는 1999년 한국어와 중국어로《윤동주유고집》을 펴냄으로써 윤동주시인을 13억 중국인들에게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2. 윤동주 시의 사상, 예술적 매력

 

윤동주의 이름과 함께 가장 사람들의 애송을 받고있는 시《별 헤는 밤》을 읽어보자.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佩, 鏡, 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에 계십니다…

 

 

 

고향 북간도 명동을 멀리 떠나 있는 시인은 맑고 그윽한 가을의 밤하늘을 보면서 별을 헤고 있다. 별 하나 하나에 고향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보며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젖어있다.

 

 

 

대관절 시인에게 북간도란 어떤 곳인가? 시인 윤동주는 북간도에 이주한 집안의 제3세대로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북간도는 태를 묻은 고장이다. 그러므로 윤동주의 시심(詩心)은 북간도의 터전에서 움이 튼것이다. 하기에 시인은 북간도에서 지낸 어린 시절을, 그리운 모든것을 별에 부쳐서 노래하고있다. 아니, 잃어버린 아름다운 모든것들이 하늘의 별빛으로 승화하고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성좌의 복판에는 어머님이 계셨던것이다. 말하자면 “아슬히” 멀리 있는 북간도와 어머니를 비롯한 그리운 것들과 시인과의 수평적 관계는 별세계와의 대응, 즉 수직적관계로 변함으로써 시인의 추억은 그처럼 아름답게 승화하고 형상화되는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마치 아름다운 별세계와 같은 고향에 가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고 무서운 상실감에 젖게 된다. 그에게는 김북원의 경우처럼 “낙동강물 에워 젖처럼 마시며” 잔뼈 굵어진 고향도 없고 송철리의 경우처럼 “하염없이 쓰러보는 파란―꽃송이에/ 무지개마냥 아롱지는 흘러간 옛마슬”에 대한 추억도 없다. 말하자면 북간도에서 살았던 많은 시인들의 경우엔 남쪽의 어느 특정된 고장이 향수의 대상, 그리움의 대상으로 되지만 윤동주에게는 마냥 북간도와 함께 어머님이 성좌처럼 안겨온다. 윤동주에게는 북간도가 고향이요, 북간도가 시적상상의 원점이 된다.

 

 

 

하지만 정작 북간도를 찾아온 시인은 병들고 찌든 고향에 환멸을 느낀다. 어머님과 동년의 꿈을 찾을수 없는 시인은 별빛이 내린 언덕에 자기 이름자를 쓰고 그것을 덮어놓으면서 슬픔에 젖기도 하고 잃어버린 자기, 소외된 자기를 두고 비탄에 잠기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쉽게 씌어진 시》에서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들어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무서운 시간》에서

 

 

 

이처럼 시인은 무서운 소외감과 고독감에 빠져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자신을 괴로워하지만 역시 고향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었다. 하기에 시《길》에서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방황한다. 시인은 이 길은 담을 끼고 뻗어있는 길이며 담우에 푸른 하늘이 넓은 공간을 암시하여주지만 길을 막은 담으로 하여 잃은 물건을 찾을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찾기 전에 시인은 완전한 사람이 될수 없었다. 이 시의 마지막부분에서 시인은 말한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시인은 끝내 꿈결에나마 북간도를 찾는다. 하지만 북간도 역시 그가 뿌리내릴 땅이 아니며, 그를 외면한다. 하여 실향의 아픔, 자기 상실의 그늘은 점점 짙어간다. 윤일주씨의 기록에 보면 시인은 1942년까지 매년 겨울과 여름 방학에 고향에 내려갔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향은 그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고장이 아니다. 고향에 돌아온 시인은 역시 고향상실의 비애와 불안을 느끼고있다.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房은 宇宙로 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드려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

 

 

 

―《또 다른 고향》에서

 

 

 

역시 윤동주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시에서는 윤동주의 뿌리 깊은 고향상실의식과 그 비애, 불안한 심리, 강박관념과 함께 새로운 고향 즉 열린 세계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잘 나타나있다. 시인은 그처럼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고향은 이미 령혼과 육신이 편안히 안주할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이미 유년의 평화와 아름다운 동심은 사라지고 어둠으로 가득 찬 불안의 장소로 퇴색한 고향일뿐이다. 말하자면 죽은 자신의 시신(屍身)과 만나는 음산한 곳이고 “어둔 방”으로 집약하여 표상할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고향은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이 어두운 현실과 갈등을 이루는 장소이다. 따라서 “백골”, “나”, “아름다운 혼”이라는 이 시의 상관관계들이 밝혀진다. “백골”은 본질적인 자아, 즉 고향을 그리고 고향에 안주하려는 자아를 말한다면 “나”는 현실적인 자아, 즉 고향의 어둠에 질식을 느끼고 쫓겨가는 자아를 말하고 “아름다운 혼”은 리상적인 자아를 말한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중심 련으로 되는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드려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라는 시구들은 어둠속에서 점점 상실되여 가는 삶의 터전에 대한 본질적인 자아, 현실적인 자아, 미래적인 자아의 탄식을 형상화한것이다. 또 이 세 가지 자아는 서로 모순되고 갈등을 빚어내고 있으니 현실적인 자아는 본질적인 자아를 포기하고 미래적인 자아를 동경하는것이다. 하기에 시인은 밤을 짖는 지조 높은 개에게 쫓기듯 “아름다운 고향”을 찾아 또다시 정처 없이 떠나는것이다. 이 점에서 고향상실과 그 비애 및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념과 동경은 윤동주 시세계의 정서적인 원형을 이룬다고 볼수 있다. 사실 시인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대랍자로, 평양으로, 다시 룡정으로, 다시 서울로, 또 일본 동경으로, 경도(京都)로, 후코오카(福岡)로, 마침내 유골이 되여 북간도에 돌아와 묻힐 때까지 스물여덟 짧은 생애를 줄곧 표박(漂泊)의 혼으로 떠돌아다녔다. 어두운 일제치하에 그가 뿌리내릴 고향은 끝내 없었던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준 고향 북간도가 “어둔 방”으로 되고 자기의 시신과 함께 자리를 해야 할 음산한 “병실”로 되였을 때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참회하고 마침내는 그 어떤 비장한 사명감에 젖게 된다. 그의 시가 저항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근거 또는 전환의 계기가 여기에 있다.

 

 

 

윤동주의 시창작은 1936년 중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초기에 동시를 많이 썼고 또 이렇게 시작된 1930년대의 시들에는 시인의 사회의식이나 력사의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민족의 력사적인 수난속에서 발견한 자아가 아니라 그같은 대사회적 사명감으로부터 고통을 의식하기 이전의 순수하고 행복한 자아였다. 하지만 실향의 아픔을 경험하고, 북간도는 물론 뿌리내릴 고향이란 전혀 없음을 깨달은 시인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고 비장한 죽음을 선언하기도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의 서시다. 이미 딱딱한 껍질 속에 동체(胴體)와 촉각을 움츠리고 해와 달과 산과 들을 노래하던 시인은 아니였다. 사회와 력사를 떠나서 저 혼자만의 서정적인 감각이 주는 쾌감과 그 피난처의 안식에는 그 이상 머무를수 없었던것이다. 사회와 력사를 보는 눈이 불현듯 밝아지고 나 개인속의 “나”가 아니라 “력사속의 나”, “민족속의 나”를 하나의 사명감으로 인식했다. 이미 6~7년간 시를 썼지만 이 시에 《서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바로 그러한 자각이 있었기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얼마나 고고하고 지순(至純)한 세계인가? 물론 이와 같은 변화는 아무런 예고 없이 다가왔다고 말할수는 없다. 시인은 여러 시에서 어두운 현실에서 오는 울분, 아픔, 진통, 반발을 조용히 읊고있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 이의 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試鍊, 이 지나친 疲勞, 나는 성내 서는 안 된다.

 

 

 

―《병원》중에서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 무나 괴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돌아와 보는 밤》중에서

 

 

 

시인이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시인은 현실을 부정적인것으로 받아들이며 어두운 현실의 중압에 지쳐 있고 피로를 느낀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과의 결별을 다짐하며 비극적인 감정에 젖는다.

 

괴로웠던 사나이,

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중에서

 

 

 

이처럼 윤동주는 고통과 시련의 동굴 앞에서 망설이다가 이렇게 드디어 십자가를 짊어지게 된 것이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고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갔던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저항시라고 하며 암흑기의 한줄기 빛이라고 한다.

 

 

 

세상에 일어나는 슬픔을 슬퍼할 자유도 없어서 자연과 원시와 신앙의 세계로, 또는 의미를 완전히 배제해버린 백치의 세계(순수시의 경우)로 도피해 버리거나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하고 일제의 총칼 앞에 아부, 굴종했던 시대, 일반인에게는 그것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윤동주의 시는 그야말로 밤하늘의 한줄기 빛줄기처럼 소중한 것이요, 비록 그 당시 해빛을 보지 못했지만 해방전 우리 시단의 가장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시문학의 유산으로 남는다.

 

 

 

 

3. 윤동주 시의 현대적 의미

 

한국의 김우종 선생은 윤동주의 생애와 그의 시가 가지는 의미를 아래와 같이 나누어본바 있다.

 

 

 

첫째, 그는 강인한 저항정신을 지녔지만 이를 사춘기 소년과 같은 청순한 감각으로, 겸허하고 유연한 언어로 써나갔기 때문에 다수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는다. 또한 그는 저항시인이였지만 그 기본정신은 결코 타민족에 대한 배타주의가 아니라 평화주의이고 인도주의였다.

 

 

 

둘째, 그의 정신은 렴치사상(廉恥思想)이다. 렴치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서 례의(禮義)와 더불어 참된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그것은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정신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 그의 사상은 정신적 순결주의이며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렴치사상과 다름없다.

 

 

 

세째, 그가 남긴 가장 빛나는 시는 사명시(使命詩)이다. 우리 민족 또는 온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통해 순수한 동심, 겸허한 자세, 평화주의와 인도주의를 되찾을수 있고 자기반성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으로 거듭날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윤동주를 통해서 이 세상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놀라운 자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민족을 위한 사명이며 세계적인 평화를 위한 사명이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명이다. 우리는 이를 자각하고 실천하는 대열에 나섬으로써 진정한 삶의 목표와 가치를 찾고 긍지를 갖게 된다.

 

 

 

2010년 10월 28일

 

주해:

 

1)문익환,《동주형의 추억》,《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68년.

2)오오라 마스오,《나는 왜 윤동주의 고향을 찾았는가》, 정영민 엮음,《윤동주연구》, 문학사상사, 1995년.

3)김우종,《암흑기 최후의 별》(권영민 엮음, 《윤동주연구》, 문학사상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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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과연 당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질수 있는 용기가 있는기여?"... 2018-01-07 0 2273
917 {쟁명} - 하이퍼시는 단일체가 아니라 다양체와의 춤사위이다 2018-01-05 0 2471
916 {쟁명} - 하이퍼시는 자아가 아니라 타자와 노는것이다... 2018-01-05 0 2324
915 詩人 김파님께서는 갔으나 詩伯 김파님께서는 가지 않았다... 2018-01-05 0 2569
914 이상(李箱)의 시는 이상(李箱) 이상(以上)이었다... 2018-01-04 0 2390
913 "솔숲은 늘 푸른데, 숲에 난 발자국은 모두 다르더라"... 2017-12-28 0 3228
912 교육선구자 김약연과 명동학교를 아십니까?!... 2017-12-28 0 2819
911 <시간> 시모음 2017-12-28 0 2873
910 해골의 노래에 맞춰 무도회는 잘도 돌아간다... 2017-12-27 0 3157
909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2017-12-26 0 3041
908 <말(言)> 시모음 2017-12-24 0 2257
907 시와 시작론 2017-12-22 0 1897
906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7 2017-12-22 0 2133
905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6 2017-12-22 0 2042
904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5 2017-12-22 0 2286
903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4 2017-12-21 0 2411
902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3 2017-12-21 0 2300
90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시조, 동시, 시 차이점?... 2017-12-21 0 3382
900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2 2017-12-21 0 2392
899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 2017-12-21 0 2115
898 세상에서 제일 보배로운 동요동시를 내 눈언저리에 붙혀주렴... 2017-12-21 0 2260
897 웃음은 모든 인간들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 2017-12-20 0 2271
896 <돌> 시모음 2017-12-19 0 2462
895 산골물 / 윤동주 2017-12-17 0 2773
894 애독자 비행기 조종사가 유명한 작가 비행기 조종사를 죽이다... 2017-12-17 0 3674
893 윤동주, 백석, 릴케 - "삼종(三鐘)의 종소리 웁니다"... 2017-12-16 0 3902
892 "암울한 시대에 시를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2017-12-16 0 3374
891 치욕의 력사에서 참회의 역사로 바꾸어 놓은 시인 - 윤동주 2017-12-16 0 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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