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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수영복의 유래
-비키니(bikini)는 위아래가 떨어진 여자 수영복을 가리키는 이 말은 본래 태평양 상에 떠 있는 작은 섬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비키니 수영복은 프랑스의 디자이너 루이 레아드가 1946년 7월 9일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발표한 옷이다. 이 패션쇼가 있기 4일 전인 7월 5일에 미국이 태평양 상에 떠 있는 비키니 섬에서 원자폭탄 실험을 했는데, 디자이너는 이 수영복이야말로 패션의 원자폭탄과 같은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 옷에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최초의 비키니 수영복은 신문지를 도안해서 프린트한 무늬의 면 수영복으로 당시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요즘은 위아래가 떨어진 투피스 모양의 여자 수영복을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1961년에 (주)한국샤크라인의 전신인 백화사가 상어표 수영복이란 브랜드로 수영복 시장을 열었다.
때는 1946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에임이 초소형의 수영복을 개발, '아톰'이라고
이름 짓고 그 상표 이름을 공중에 쓰는 곡예 비행으로 광고 했다.
이에 라이벌 디자이너가 때마침 비키니 원자 폭탄 실험이 충격을 주고 있음을 타고 '비키니'란 수영복을 개발, 역시 곡예 비행으로 맞섰다
이렇게 해서 유사 이래 숨겨온 여성 알몸의 90%를 노출시키고 만다. 비키니 수영복이 디자인 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영복은 발목까지 가리는 치마였다. 다리를 노출시킨다는 것은 바로 외설이었다.
영국의 경우 피아노의 다리마저도 양말을 신겼으며 숙녀 앞에 닭다리를 내놓는 것도 큰 실례였다. 그러나 7월 5일, 파리 모리토르 수영장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 자동차 기술자 출신의 루이 레아드(1897-1984)가 만든 수영복을 보는 순간 1만 명의 관중은 넋을 잃었다.
모델이 남자 손수건 절반만한 크기의 천으로 가슴과 아랫도리를 가리고 나온 것이다. 아무리 수영복이라도 배꼽과 허벅지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비키니 수영복의 모델이 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키니를 만든 레아드는 카바레 스트립 댄서인 미셸 베르나르디니를 기용했다.
사진 작가와 뉴스 영상 기사들이 정신없이 그의 모습을 담았다. 덕분에 그는 이듬해 5만 통에 이르는 팬레터를 받았다고 한다.
방송매체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점잖은 이들의 반응은 직선적이었다.
바티칸은 '부도덕'하다고 비난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은 법적으로 비키니를 입는 것을 금지시켰다. 소련은 '퇴폐적 자본주의의 또 다른 샘플'이라고 매도했다.
그 후에 비키니를 만든 레아드는 곧 상표를 등록했다. 그러나 별 재정적 재미를 못봤다. 극소수 육체파 여배우를 제외하면 입으려는 여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 여배우 다이애나 도어스가 55년 베니스 영화제에 밍크로 만든 비키니를 입고 나타나고,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서 비키니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60년대 들어 바뀌기 시작했고. 60년 브라이언 헤이랜드가 비키니를 주제로 부른 노래가 히트 치며, 히피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비키니가 점차 대중화되었다. 64년에는 가슴 가리개 부분이 없는 더 과격한 모노키니까지 등장했다. 70년 신축 소재인 라이크라가 개발되면서 더욱 작고 다양한 스타일이 가능해졌다.
패션 저널리스트들은 종종 비키니가 '여성 해방의 상징'이라 주장하였다. 이렇게 비키니의 인기와 여성의 노출은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때부터 인가 그것이 보편화 되었다.
1961년에 (주)한국샤크라인의 전신인 백화사가 상어표 수영복이란 브랜드로 수영복 시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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