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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막에서 려행하는 한마리 락타를 닮은 탐험가이다...
2017년 07월 24일 04시 11분  조회:2164  추천:0  작성자: 죽림

3

상상한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꿈을 꾼다. 꿈이 꽃이라면 상상력은 꽃받침이다. 아니 그 반대일까.

어쨌든 인간은 꿈을 꾸기 때문에 소통한다. 소통은 희망이다. 다시 희망은 길이며, 구원이다.

가짜 희망일지라도 필요한 건 희망이 우리를 역동적인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며, 다시 꿈을 꾸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희망은 모든 이유가 되어준다.
롤랑바르트는 이 시대를 '한 마디로 육체가 없는, 눈만 가진 인간의 사회'라고 정의했다. 이 영상의 세기, 상상력의 그림자는 무수히 분열된다.

끊임없이 확장된 이미지들은 이제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까지 닿는다.

이미지의 지대는 갈수록 확장되고, 우리는 그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탄생과 성장, 죽음까지 이미지로 형성되어 이미지를 통하여 진행된다.

사랑도 희망도 이젠 이미지를 통해 풍경의 몸을 입고서야 우리에게 길도 열리는 것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안개 속 풍경}도 서정적인 한 편의 영상시이다.

대사를 가능한한 응축시킨, 영상미학이 뛰어난 이 영화를 다 보고나면 가슴 속에 아주 투명한 슬픔 하나가 남는다.

그리스. 아버지를 찾아 독일행 열차를 무임승차로 탄 어린 남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여행하는 두 아이는 수많은 사건과 풍경에 부딪친다.

눈에 비친 세상은 매우 서정적인 은유로 가득한 장면들로, 느리게 진행된다.

틈틈이 여자아이는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마음의 편지를 보낸다.

"우린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렸을까요.", "정말 멀리 계시네요. 우리는 여행을 계속해요."
두 아이가 무임승차에 걸려 경찰서로 붙들려갔을 때 눈이 오기 시작한다.

'눈이 오네' 중얼거리며 사람들은 거리에 나가 정물처럼 서서 눈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눈을 기다려온 것일까.

마술에 걸린 듯 모두 정지된 화면처럼 서 있는 거리를 두 아이는 자유를 찾아 뛰쳐나온다.

새로운 세계를 예감하게 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리하여 다시 상상 속의 그리움을 향한 여행은 이어진다.
주운 필림조각에서 안개 뒤 멀리에 나무가 있는 풍경을 읽는 유랑극단의 오레스테스.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필림조각. 그 풀향기 같은 상상력, 그것은 아름다운 은유이다.

꿈과 환상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작가는 인간에게 구원의 이미지를 선사하고 싶었던 걸까.

한 군인의 적선으로 남매는 다시 기차를 타고, 마침내 국경에 닿는다.

어둠 속에서 국경의 강을 건너는 아이들. 수비대의 불빛, 울리는 총성. 아침이 오고 아이들은 안개 풍경 속에 있는 나무를 발견한다. 동생이 말한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어. 그러다 빛이 생기고……". 
남매가 죽었으리라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남매가 달려가는 안개 속 나무밑. 그곳은 결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상상 속의 그리움, 역설적 희망의 세계이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아름다움으로 간주하려는 것이 비극의 힘이라면, 이는 곧 인간에게 희망을 남겨놓으려는 의지이리라.

그것은 마치 오래 기다린 어둠의 창가에 마침내 오렌지 불빛이 환하게 밝혀진 순간처럼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것. 
이러한 영상미의 추구는 결국 상상력에 대한 가치 부여에 연결된다.

상상력은 곧 자유와 혁명이며, 탈현실적 상상은 바로 자아의 경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상상력이 인간의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예술에서 나온다.

백일몽이라고 정의되었던 예술 자체가 이미지의 왕국이라는 말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인간의 역사는 상상력의 역사인 것을. 수많은 비행기처럼, 수많은 신데렐라처럼 상상 속 꿈들이 현실로 나타난 게 오늘의 문명인 것을. 
자연사 박물관에서 찍은 케르테츠의 사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묵언. 존재의 내면을 비추듯 숙연한 분위기. 고개 돌린 박제된 새 앞에서 고개를 숙인 남자는 무엇을 생각할까. 다시 소통을 꿈꾸는지 모른다.

잃어버린 자기를 박제된 새로부터 보고 있는 걸까. 새가 날던 숲을, 태초의 어떤 언약을 기억하는 걸까. 언어든 영상이든 이미지엔 삶의 직접적인 체험과 내면의 어떤 원형적인 상상력이 작용한다.

 일차적 영역을 벗어나 그것의 상징을 해독하려는 노력은 결국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깨닫고, 삶을 사랑하려는 의지이리라. 여기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만큼이나 긴, 새로운 시간이 다시 놓인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1]

대나무 이미지가 아름답다. 굵고 푸른 대나무 마디에서 끌어낸, 깊은 밤을 달리는 기차. 그 기차는 꿈의 고향인 대꽃 피는 마을로 간다.

이 아름다운 은유를 읽으며 영혼의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어두운 현실이 달려가는 곳은 곧 희망 속의 고향. 기차 이미지는 마치 삽화 같은 현실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면서 백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푸르다. 
자기 마음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이미지와 말은 서로 교환작용을 하며 더욱 풍부해진다. 이미지는 부단한 움직임으로 언어를 낳고, 언어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낳으며 상상력의 바다를 깊게 한다.

자유로운 상상력은 은유를 통해 사유의 장을 확장시키고, 아름다운 내적 언술을 풀어낸다.

 이미지의 언어적 보완성은 우리를 그만큼 자유롭게 하는 것. 
결국 소통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떤 서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우리의 내면 속에 던지는 어떤 울림이다.

그 이미지는 우리 속에서 또 다른 우리를 찾아나서게 되는 표지목이 되고, 그 이미지가 낳는 다른 이미지는 우리를 끊임없이 사막을 여행하는 한 마리 낙타를 닮은 탐험가로 만드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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