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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2017년 07월 24일 04시 51분  조회:2106  추천:0  작성자: 죽림


3. 시의 세계 

문학의 세계에 대해 말하면서 시의 특성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암시 했지만, 시의 초보자들이 제일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시와 시 아닌 것 을 구별하는 일이다. 같은 문학의 범주에 들지만 시와 소설 혹은 시와 희곡은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장르의 이론을 취급할 여 유도 없고, 또한 그러한 이론은 여러가지 까다로운 문제점들을 제기하기 때문에 소박하게 시의 특성만을 요약해보기로 한다. 다른 문학적 쟝르와 구별되는, 시만이 보여주는 특성으로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 들이 있다.*⑧ 첫째로 사고의 단위가 산문의 경우에는 문장임에 비하여 시의 경우 에는 시행 line이 된다. 대체로 모든 시는, 정형시든 자유시든, 행각이 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시인들이 행을 가르는 이유는 소리와 의미의 효과 는 사고와 관계된다. 소설가나 수필가들의 글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강 
하게 나타지 않는다. 그들의 경우 하나의 사고는 하나의 문장이 끝 날때 완성된다. 이를테면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강박관념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일이다. 시의 경우가 그러했다. 

처럼 사고의 단위는 문장으로 나타난다. 이 글은 쟝 그르니에가 쓴 「알베르 까뮈」(이재형 옮김)의 일부이다. 여기서 그는 두 개의 생각을 진술한다. 하나의 사고는 첫째 문장, 다른 하나의 사고는 둘째 문장으로 로 진술된다. 그렇지만 시인들은 이렇게 문장을 연결하면서 자신의 사 고를 발전시키지 않는다. 김소월의 「가는 길」에서 읽을 수 있듯이 시인들은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처럼 시행들을 연결하면서 자신의 사고를 발전시키거나 완성한다. 그러니까 형태상으로 모든 시는 원칙적으로 행갈이를 하고 있다. 행갈이 의 유형에는 한 행이 한 문장 이상으로 되어 있는 유형이다. 둘째로 행갈이를 한다고 해서 모두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필요 이상으로 
산이 많이 
나오는 
이른바 
위산과다증은 
세 가지 증세로 
나타납니다. 

첫째가 
속쓰림 
둘째가 
소화불량 
세째가 
더부룩함 

같은 글은 행갈이를 하고 있지만 시라고 할 수 없다. 이 글은 약을 팔기 위해 위산과다의 증세를 설명한 신문광고의 일부이다. 표제는 「위산과다의 증세」로 되어 있다. 이 글이 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형태 상으로는 행갈이를 하고 있지만, 글의 목적이 위산과다증에 대한 객관 적 정보를 전달하고, 또한 그런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약을 판매하기 위한 실용적 가치만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행갈이를 하지 않는 글로서 이를테면 

저물어가는 가을녘은 어쩌면 이처럼 폐부를 찌르듯 감동적인가! 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슴을 파고든다! 왜냐하면 그 파문이 농도 를 거부하지 않는 어떤 감미로운 감각들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무한보다 더 예리한 송곳은 없는 법. 같은 글은, 형태상으로는 산문처럼 행갈이를 하지 않고, 문장에 의해 사고가 연결되고 있지만, 엄연히 시라고 불리운다. 이 글은 보드레르 의 산문시 「예술가의 고해의 기도」(윤영애 옮김)의 일부이다. 이 글 을 시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글이 가을 저녁에 대한 객관적인 정 
보를 전달하거나,우리들의 삶에 실제적인 효율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가을 저녁에 대한 심리적 반응 내지는 시적 명상을 드러내기 때문이 다. 결국 시는 형태상으로는 행갈이의 원칙, 곧 사고의 단위가 행으로 되어 있지만, 형태상의 행갈이만으로는 시의 특성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행갈이의 원칙에 대해서는 이 책의 "시의 리듬"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세째로 산문작가들은 사고의 단위를 연대기적으로 연결하고, 시인들 은 그것을 연상에 의해 연결한다. 산문작가들이 그렇다는 것은 그들의 경우 사고의 단위, 곧 문장들이 계기성에 의해 연결됨을 뜻한다. 다음 글을 살펴 보자.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기다려 탔다. 택시는 불을 켜고 빈 영동 거리를 달렸다.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제 3한강교를 건널 때 나는 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나가자 시원한 공 기가 몽롱한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난간을 짚고 이제 희뿌연 빛을 반사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운전기사가 따라 나와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 자세로 담배를 피우며 나를 보았다. 날이 밝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누워 난 한겨울 동안 어머니는 취로장에 나가 일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설 때마다 맞았던 그 새벽의 빛깔을 이제 알았다. 


이글은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일부이다. 문장이 연결되는 방식은 시간적 질서, 곧 연대기의 순서를 따르고 있으며, 또 한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인과적 질서, 곧 계기성이 드러난다. 그렇지 만 시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를테면 

불이 켜진다 
밤이면 집집마다 
불이 켜진다 

멀리 가까이 
우는 듯 속삭이는 듯 
불이 켜진다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하는 이들의 
우는 듯 속삭이는 듯 
불이 켜진다 

같은 시에 드러나는 사고의 연결방식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시는 김 춘수의 「밤이면」의 전반부이다. 밤이 되어 불이 켜지는 현상을 노래하고 있지만, 사고의 연결은 시간적 질서나 인과적 질서를 따르기보다는 연상의 질서를 따르고 있다. 밤이 되어 불이 켜지는 현상에서 시인은 울음과 속삭임을 연상하고, 다시 거기서 사랑하는 이들의 울음과 속삭 임을 연상한다. 야콥슨은 산문작가란 접촉성을 토대로 문장들을 연결 하고, 시인은 유사성을 토대로 시행들을 연결한다고 말한 바 있다.*⑨ 네째로 산문에는 리듬이 없지만, 시에는 리듬이 있다. 물론 산문의 경우에도 리듬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산문의 경우 그것은 대체로 단편적이거나, 시행의 길이가 아니라 문장구조에 의해 창조된 다. 이와는 다르게 시의 경우 리듬은 한 편의 시를 지배하며 전통적으로는 문장구조보다는 시행의 길이에 의해 창조된다. 시에 있어서의 리 듬문제는 이 책의 "시의 리듬"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끝으로 시는 산문에 비해 압축된 진술의 형식을 취한다. 산문작가들 이 확장적인 방식으로 글을 쓴다면, 시인들은 수렴 혹은 압축적인 방식으로 글을 쓴다. 시인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은, 실증주의자들에 의하면, 우리들의 정신적 에너지를 경제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스펜서는 정신적 에너지의 경제를 모든 문체의 보편적 법칙으로 규정하고, 베잴로프스키는 시적 문체와 산문적 문체를 구별하면서, 전자는 모음생략, 모음제거, 구두점 같은 몇가지 수단으로 산문에서는 불가능한 목적을 성취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시적 문체에서는 리듬, 각운 등이 산문이 저지르는 에너지의 낭비를 방지한다고 본다.*⑩ 물론 스펜서나 베젤로프스키의 이런한 견해는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가 쉬클로프스키에 의해 비판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형태상으로는 언어의 경제적 사용은 모든 시의 원리가 되고 있다.*⑪ 시에서 언어가 압축적으로 사용된다는 말은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가 짧아야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시인이 시행들을 암시적으로 처리하며 개인적 경험에 더욱 많은 관심을 둔다는 사실을 뜻한다. 시인들이 자 신의 사고나 느낌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으로는 앞에서 말한 리 듬 외에 비유, 상징, 이미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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