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연꽃의 기도....이민영
길 위에 아직 소멸하지않는 엄니의 숨과
떠날 수 없는 엄니의 온기들이 있었다
그때의 숨소리를 따라 빛의 웃음이 이내 자지면
그 모습은 순간을 파악하려는 듯, 알갱이로는 시원
그 始原인 흔들린 영혼이었다
말은 성찬을 이루고
성모상(聖母像)이 여기는 에덴의 동쪽쯤
어디라고 외치는 찰나
우리들은 그 승화되는 세월의 덧상(想)에서
방관의 한 그룹에 남아
보이지않는 이념으로만 존재했었다 .
여기 슬픈 눈을 아프게하는 것들,
슬픔을 감추고 웃어야하는
눈의 가슴을 아프게하는 것들,
그래서 한없이 멸렬하는 가슴의
학문을 조소해야하는 것들 ,
망각이 그대의 귀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담지말라고 애원하던 것들,
기원을 담는 끽연이 흡착되는 사랑의 터널에서
순치(脣齒)로 혀를 깨물던 것들,
어른거르던 날은 뒤돌아보니
과거의 오늘로 회귀해야한다는 것들 ,
이제 훌쩍 커버린 세상사람들의
할배와 딸의 미소 속에서
'천년사직의 주몽'을 바라보던
십육인치의 웃음이,
다시 돌아가 되돌아오는 상념의 가슴속에
자유- 잃어버린 날을 찾아가는 것들,
그런 날, 날마다 성찬을 준비하고
성모상(聖母像)이 여기는 에덴의 동쪽쯤
어디라고 외치는 날
지피는 가슴애피를 입맞춤으로 위무하는 것들의,
생사의 모퉁이 마다 몸통은 눕혀지고
숨의 나래는 눕다가는 물결 위의,
외로웠으나 스스로 타는,
그가 귀애하고 사랑한 기도는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라는, 젖몸살 시린 방죽 가운데
옆도 뒤도 돌아보지않아
하늘로만 향해 두손 모으고 있었다.
가시연꽃.... 송종규
호수는 거의 말랐다는 당신이 보낸 엽서 받았습니다
호수 위에 띄우려 했던 가시연꽃은 당분간
우편함 속에 꽂아놓겠습니다
붉은 뻘 흙 꺼칠한 무늬를 내 집 거실 바닥에
그려놓은 걸 보니 지난 밤 악어가 다녀간 듯합니다
반짝 닦인 추억 너머
호수는 지금 얼마나 수런거릴까요
아침에 일어나니 베게가 흠뻑 젖어 있네요
가시연꽃은 조심스레 뿌리 그쪽으로 내리겠죠
이제 그만 오세요 당신
분홍색 꽃잎 등으로 떠받치고
가시연꽃 / 류인서
당신이 보여준 여름 늪지 가시연꽃은 새를 닮았다
봐라, 물의 꽃대 위에 꽁꽁 묶여있는 저것
가시 숭숭한 큰칼을 목에 쓴 사나운 새 한 마리 물 한가운데 갇혀있다
새는 부어오른 목을 바짝 하늘로 치켜든 채 고통스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내가 아직, 찢어져 꽃핀 저 소리의 갈래길을 헤아리고 있는 동안
검은 울대 위에 얹힌 새의 머리는 피묻은 가시관을 닮아간다
가시연꽃/서안나
가시연꽃은
연못을 건너온 젖지 않는 발이다
연못의 부릅뜬 눈이다
세상은 발 딛는 곳마다 위험하다
잎과 꽃잎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자신을 향한 적의였다는 것을
가을이 다 가서야 깨달았다
물결과 물결사이
연못은 주름살만 키웠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날카로운 연못의 비명들
적은 내부에 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을 때
물의 마음에 가시가 돋는다
가시연꽃/ 김봉용
오늘 하루만이라도
짙은 물음표로 살고 싶어
이른 아침 우포늪에 가본다
늪 한 복판
물안개 깔린 잎 방석 위
가시연이 홀로 아침을 먹는다
고전으로 한복 차려입은 그녀는
이슬 먹고 꽃을 피운다
한번 묻고 싶다
무엇이 세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지
사랑은 선線을 이어서
길 찾아 가는 것
마음이 와글와글 복잡할 때
한 자리에서 기다려주면
문 열어 줄까
가시연꽃은 1년 초이다.
이듬해 봄에 종자에서 싹이 나야 또 다시 꽃을 볼 수 있다.
가시연꽃의 종자에서 나온 새잎은 늦은 봄이나 돼야 볼 수 있다.
그렇게 늦장을 부려서 언제 잎을 키우고 꽃을 낼까 싶은데도
여름 볕을 받으며 한두 달 사이에 커다란 잎으로 쑥쑥 자라 수면을 덮는다.
늦은 여름 수면 위 무성한 가시로 무장한 꽃대가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면서 예쁜 보랏빛으로 수줍게 꽃이 피어난다.
그 자태는 시인의 표현처럼 ‘고전으로 한복 차려입은’ 모습 그대로다.
그 고귀한 꽃이 ‘세상 속으로 돌아가’ 맵시를 뽐내지 않고
아득한 태고의 적막 속에 스스로를 가둔 까닭은 무얼까.
그나마 살짝 열린 꽃잎도 밤이 되면 다시 닫혀 시원의 꿈속에 빠져든다.
어쩌면 ‘마음이 와글와글 복잡할 때’ ‘짙은 물음표’ 하나를 물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기구원을 모색케 하거나,
가시연꽃의 꽃말이기도 한 ‘그대에게 소중한 행운’을
하나씩 안겨주려는 그윽한 자비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닦달 않고 한 자리에서 기다리면 스르르 문이 열릴 수도 있는 일.
1
關西樂府百疊中 七十一疊 / 申光洙
맑은 밤 연꽃 향기피고
달빛 찬 못
얼마동안 길 손이 넔을 잃었다
널판지 깐 부둣가에
붉은 빛 닻 줄
물기슭 다락집
남과 북을 두루 돌았다
치맛자락 날리는 아가씨들 붉은 연꽃 딴다
맑은 달빛 내린 南湖가 아름답네
붉은 연밥 따내니
물결은 어느새 밀려들고
한밤중 서리 머금은슬 심고 돌아가는 배
+ 연못가에서
넓죽한 잎 펼쳐 놓고
어서 오게
하시는데
연꽃 말씀 받아 오실
그런 분
안 계신가
저 위에
사뿐
올라앉을
이슬방울 같은 사람
(박종대·시인, 1932-)
+ 연꽃
아수라의 늪에서
五萬 번뇌의 진탕에서
무슨
저런 꽃이 피지요?
칠흑 어둠을 먹고
스스로 불사른 듯 화안히
피어오른 꽃.
열번 백번 어리석다,
내 생의 부끄러움을 한탄케하는
죽어서 비로소 꽃이 된 꽃.
(이수익·시인, 1942-)
+ 연꽃
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진흙탕에 온 가슴을
적시면서
대낮에도 밝아 있는
저 등불 하나
(이외수·소설가, 1946-)
+ 연꽃
초록 속살 빈 가슴에
떨어지는 이슬비
수정으로 토해내는
깨끗한 연잎 하나
세월의 틈바구니에
삶의 몸을 닦는다
진흙 깊은 연못
물안개 떠난 자리
햇살 퍼질 때
수면 위에 꽃불 밝히고
두 손 모아 합장한다.
(노태웅·시인, 1941-)
+ 연꽃
만삭된 몸
풀 날이 언제인지
탱탱 불은 젖가슴
열어볼 날 언제인지
진흙 밭에 발 묻고
열 손가락으로 문 열며
지긋이 마음 다스리더니
또르르 이슬 구르는 날
반야심경 음송으로
꽃잎 하나 연다
(목필균·시인)
+ 연꽃
불이 물 속에서도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은
연꽃을 보면 안다.
물로 타오르는 불은 차가운 불,
불은 순간으로 살지만
물은 영원을 산다.
사랑의 길이 어두워
누군가 육신을 태워 불 밝히려는 자 있거든
한 송이 연꽃을 보여 주어라.
달아오르는 육신과 육신이 저지르는
불이 아니라
싸늘한 눈빛과 눈빛이 밝히는
불,
연꽃은 왜 항상 잔잔한 파문만을
수면에 그려 놓는지를
(오세영·시인, 1942-)
+ 蓮의 귀
蓮들이 여린 귀를 내놓는다
그 푸른 귀들을 보고
고요한 수면에
송사리 떼처럼 소리가 몰려든다
물 속에 가부좌를 틀고
蓮들은 부처님같이 귀를 넓히며
한 사발 맛있는 설법을
준비중이다
수면처럼 평평한 귀를 달아야
나도 그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길상호·시인, 1973-)
+ 연꽃
떨어져야 하느니라
절망의 아득한 절벽 끝에서
시궁창에 뒹굴지라도
주저없이 온몸을 던져야 하느니라
눈 시린 선홍빛 순결만으로
어찌 쉽게 꽃 피우리라 생각하겠느냐
뭇사람의 비웃음도 받아야 하느니라
비난 어린 손가락질쯤이야
어이 못 참아내겠느냐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져
한 세월을 그렇게 살아야 하느니라
천년을 기다려 하루를 산다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뻘밭 진흙 속을 사랑해서
시궁창이 오히려 따뜻해질 때
길게 깊은 뿌리를 뻗어야 하느니라
그렇게 또 한 세월을 기다려
넓은 잎 가득히
이슬을 담아낼 수 있는
윤기 나는 綠빛으로 태어난 뒤에야
발갛게 촛불 되어 타올라야 하느니라
(김승기·시인, 1960-)
+ 연꽃 - 화산 4
들끓는 용암 속에서
하얀 연꽃 피어날 수 있을까,
사랑이 지극하여 사람을 움직이고
한 마음 기도가 하늘에 닿으면
그대 있는 곳이 천국이 되고
불기둥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
낮달처럼 남이 알아주지 않고
살기 팍팍해도
결코 폭발하지 말아라,
마음 하나 돌이키면
그대는 그 모습 그대로
거룩한 하늘이요
살아있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김윤호·시인, 전북 고창 출생)
+ 연꽃처럼
내 얼마만큼 도를 닦아야 너처럼 흐린 연못에서도 맑게 살 수 있니?
우리가 어느 만큼이나 수행을 해야 둥둥 떠다니지 않고 너처럼 마음을 정하니 ?
모두가 어떻게 살아가야 너처럼 더러운 곳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니?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만 보라.
귀로 듣지 말고
가슴으로 들어라.
너는 소리 없이 말을 하고 미소짓는데
나는 무엇이 되어야 너처럼 고귀하게 행동을 하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너처럼 품위를 잃지 않고 환하게 세상을 밝히니?
모두가 몇 만겁이나 고행을 해야 너처럼 늘 엎드려 위대한 하늘을 우러러 사니?
(최이인·시인, 전북 옥구 출생)
+ 가시연꽃
너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청순한 방울소리가 짤랑거렸다
나의 노새는 지치지도 않고
주인을 위해 흥겨운 걸음을 뒤뚱거렸다
이 나이 되도록 촘촘히 가시만 돋은
내 영혼의 정수리를 뚫고
오, 오늘은 눈부신 붉은 꽃이 피었다
(허형만·시인, 1945-)
+ 그리운 연꽃 등불 하나 - 變歌 1.
초파일에 그리운 연꽃 등불 하나 너를 위해 달았다
금산사 가는 산굽이 위에서
밤은 별들을 초롱같이 켜달았다
이 여름엔 나도 한 점 혼령이 될거나
눈 부릅뜨고 수묵화 같은 너의 숲을 헤매는
철 이른 반딧불이나 될거나.
(한승원·시인이며 소설가, 1939-)
+ 연꽃우체통
바깥소식 궁금해진
버들붕어 송사리가
연못 속 꽃봉오리,
하나 둘씩 밀어 올린다.
어느새
세상에 앉아
제 몸 여는 빨간 연꽃.
일제히 물고기의
말들이 날아오른다.
사람의 마을 향해
환하게 열려있는
저 꽃은
빨간 우체통
두근거리며 바라본다.
편지를 배달하는
체관 물관 분주하고
글 읽는 말간 눈의
물고기가 보인다.
오늘도
연꽃우체통에
엽서 한 장 넣는다.
(배우식·시인, 충남 천안 출생)
+ 연꽃과 진주
맑은 밤하늘이라야 볼 수 있는
어린 벗의 그 작은 별처럼
아주 작고 조용한 마음이다.
비 온 뒤에 나타나는
물방울의 축제, 무지개처럼
아주 곱고 수줍은 마음이다.
그 별 안에서, 그 무지개 위에서
너는 너대로 지금까지
나는 나대로 지금까지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살아 왔다.
묻고 싶군
사람이 꽃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연꽃이 되고 싶다.
묻고 싶군
사람이 보석이 될 수 있을까?
너는 진주를 꿈꾼다.
그 향기 안에서, 그 빛깔 위에서
나는 너 없이도 피어나고
너는 나 없이도 빛날 테지만
어차피 우리는 한 길 위에 있다.
(유용선·시인, 1967-)
+ 연꽃
돈오의 꽃이여
수줍은 새악시 얼굴이로구나
분홍빛으로 단장하고
잎사귀 호위받으며
아름답게 피어있구나
돈오의 꽃이여
진흙 속에 뿌리내리고 있을지라도
이전투구란
사바세계에서만 싱싱한 단어일 뿐
그곳에서는 얼씬도 못하는구나
꽃봉오리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느낌표와 물음표가 교차하다가
마침표로 끝내기가 아쉬워
쉼표를 찍으며 잠시 쉰 후
말줄임표로 묵언정진하다가
처염상정
화개현실이란 의미를 깨닫고 가는구나
돈오의 꽃이여
(반기룡·시인)
*돈오(頓悟): 일순간에 깨우침을 얻는 것. 깊고 묘한 교리를 듣고 단박에 깨닫는 것
*처염상정(處染想淨): 더러운 곳에 머물더라도 깨끗한 생각만을 한다는 의미
*화개현실(華開顯實): 꽃과 열매가 동시에 열린다 하여 인과율을 보여줌
|
연(蓮)
수천만 마리
떼를 지어 날으는 잠자리들은
한 뼘 가웃 남짓한 날빛을 앞에 두고 마지막 타는 안스러이 부서
지는 저녁 햇살을…..
얊은 나래야 바스러지건 말건
불타는 눈동자를 어지러이 구을리며
바람에 흐르다가 한동안은 제대로 발을 떨고 곤두서서
어제 밤 자고 온 풀시 밭을 다시는 내려가지 않으리라고
갓난애기의 새끼손가락보다도 짧은 키를 가지고
허공을 주름잡아 가로세로 자질하며 가물가물 높이 떠 돌아다
니고 있었다.
연못가에서는
인제 마악 자라 오르는 어리디 어린 아그배 나무같이
물 오른 아희들이 윗도리를 벗고 서서
물 가운데 어떤 놈은 물속의 하늘만을 들여다보고 제가끔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허전히 무너져 내린 내 마음 한구석 그 어느 그늘진 개흙 밭에선
감돌아 흐르는 향기들을 마련하며
연꽃이 그 큰 봉오리를 열었다. –김관식, <연(蓮)> 전문.
연
꽃아
정화수(井華水)에 씻은 몸
새벽마다
참선(參禪)하는
미끈대는 검은 욕정(欲情)
그 어두움을 찢는
처절한
미소로다
꽃아
연꽃아 -허영자, <연> 전문.
연꽃
하광(霞光) 어리어
드맑은 눈썹
곧게 정좌하여
구천세계 지탱하고
세정(世情)을 누르는
정길 한 묵도
닫힌 듯 열려있는
침묵의 말씀 들린다. –김후란, <연꽃> 전문.
연꽃
하나의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집단(集團)에서처럼
그것은 어쩌면
뜨거운 신음 같은 것
차라리 입상(立像)같이
차며
향기 없는 미련한 몸짓.
잔잔한 물결로 하여금
이끼가 뜨는
거기 보람은 두고
속으로 거두우기에 충실하여
무거히 가라 않은
꽃이여. -박창균, <연꽃> 전문.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엇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미당.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전문.
양수리(兩水里) 연(蓮) 밭
加平 淸平 푸른 산 빛이
떠내려와 연 잎 되고
驪州 陽平 맑은 물빛이
실려와서 연꽃 됐네
남한강 북한강 둥둥
팔월 한철 뜨는 연 밭
이 저승 보는 법을
연 밭 보듯 바라보자.
슬픈 일 기쁜 일들
짝을 지오 고운 세상
천지도 등불 나들이
연꽃 들고 왔잖은가.
우리도 강물처럼을
흐르다가 서로 만나
산과 물 서로 비추면
연분하여 꽃밭 될까.
한 만평 세월을 펼치면
흔들리는 연밭될까. –백수. 정완영 <양수리 연 밭> 전문.
수련화(水蓮花)
수록색(水綠色) 깊은 고궁(古宮)
묵은 연못에
수련화 피었네 활짝 솟았네.
백(白).
황(黃).
홍(紅).
이렇게 잎사귀들이 첩첩히 엉킨 검은 물위에
목욕 단장을 한 시인의 애인들이
여름의 수레를 몰고
일년 한번 외떠러진 고궁을 찾아 왔네.
변함이 없이 변하는 나의 가슴
물기는 가시고 남은 한자리
여름이 쏟아지는 대낮
그늘이 없는 수심(水深)에
물자마리처럼 나는 떠 있네.
백.
황.
홍. -조병화, <수련화> 전문.
수련(垂蓮)
수려(秀麗)하구나
추(醜)는
옥빛 물결에 감추고
미(美)만 드러낸 채
영롱여옥(玲瓏如玉)
이슬 머금은 입술.
감히
하늘을 향해
추파를 던지며
웃고 있다니
오만(傲慢)하구나. –정용진, <수련> 전문.
수련
꿈을 긷는 당신의 못(池) 속에
수줍은 듯 떠다니는
한 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아침 이슬 속에 피어나서
오후 햇볕 속에 잠드는 당신
다소곳한 한 송이 수련이 되어
당신의 꽃으로 살게 하소서
겹겹이 쌓인 평생의 그리움
푸른 물 위에 풀어놓고
밤마다 별을 안고 합창하는
어두움의 심연에서 건져내게 하소서 -임충빈, <수련> 전문.
백합이 기독교의 상징적 꽃이라면, 연꽃은 불교의 상징적 꽃이다. 불교에서 극락세계(極樂世界) 연화대(蓮花臺)란 의미도 큰 뜻을 내포하고 있는듯하다. 잎과 고귀하고 자애로운 꽃은 진흙을 뚫고 물을 솟구치고 올라와 고결한 모습으로 피어난다. 그래서 그런지 꽃말도 “순결”이다.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에 가 있을 때 객고에 시달리던 중 한 미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는데 충선왕이 연경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연인에게 사랑의 표시로 붉은 연꽃을 선물하였는데 그 미희(美姬)는 연꽃을 남기고 간 충선왕을 오매불망(寤寐不忘) 생각하며 정절을 지키고 먼 후일 이익제(李益齊)가 돌아오는 편에 시한 수를 적어 보내니 “ 떠나실 때 주신 연꽃이 처음에는 붉더니 얼마 안가 떨어지고, 이제는 시드는 빛이 사람과도 같도다.
( 贈送蓮花片 初來灼灼紅 辭枝今幾日 憔倅與人同) 이라 읊었다는데 이는 마치 함경도사로 있을 때 사랑에 빠진 연인 홍랑을 두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최경창에게 홍랑(洪浪)이 건네준 시 한편 ” 묏버들 가려 꺾어 님에게 드리노라 자시는 창밖에 심궈 두고 비온 후 잎 피거든 날인 듯 보옵소서“ 요지 음은 이런 기생들의 낭만과 시정이 없이 악어 핸드백에 몸을 마구 벗어 던지다니, 고결한 선비와 시심을 곁들인 옛 기생들의 모습이 애틋하다.
수련은 연꽃의 동생같이 보이는 애교스러운 꽃이다. 그의 꽃말 “신비”가 의미하듯 빨강, 노랑, 분홍, 흰 꽃이 연못 위에 떠서 연 초록 잎들과 함께 실바람에 춤을 출 때는 넋 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바라볼 뿐 할 말이 없다.
달밤에 물위에 떠있는 애잔한 모습, 과연 신비에 가깝다. 수련이 달빛을 받으며 아련히 떠오르면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동화 속에 젖게 되는데, 물방울을 구슬처럼 굴리며 물위에 떠있는 연꽃은 싱그러운 처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선인들이 그 이름을 부용(芙蓉)이라 부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