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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선택방식을 통한 시 창작 교육* 즉, 제6차 교육과정 문학과목의 주안점이 문학 작품의 이해와 감상에 있었다면 지난 2000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문학 작품의 수용과 창작으로 비중이 옮겨가면서 창작이 문학 과목의 중요한 내용으로 설정되었다.
이는 창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이 훈련에 의하여 향상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된 기획이라 판단된다. 창조적인 표현과 비유는 상상력에서 연유한다. 이미지는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같은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고서도 사람들이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상상력 때문이다.
코울리지는 상상력을 수동적인 사물(the passive things)과 능동적인 정신(the active thoughts)을 결합하는 매개적 정신능력(the intermediate faculty)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인간의 직관적 인식능력과 관련된 일차적인 상상력과 대상에 대한 인식을 언어로 창조하는 이차적 상상력으로 나누고 이 중 이차적 상상력은 시인의 체험을 자각적으로 언어화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문학교육에서의 상상력은 시인인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고 이를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학 작품 창작에서의 상상력'과 실제 문학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작용하는 '문학 작품 수용에서의 상상력'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 창작 교육의 장에서는 창작과 수용에 작용되는 두 가지 상상력을 통합, 신장시켜주는 모델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도 창작교육의 과정에서 창작과 수용의 상상력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우선 필자는 백석의 텍스트 중 [北新]을 선택하고, 여기서 사용된 창작 방식이 후대 시인들인 문태준, 기형도, 김영남의 텍스트에서 창작주체들의 경험과 수용방식에 따라 개성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밝히며, 수용자들에게 이 방법을 활용하여 창조적인 표현으로 텍스트를 생산시키기 위한 교수 학습방법과 평가 방식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들 논의는 문학작품의 표현방식을 귀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표현 방법이 결합되어 있음을 밝힌 사례라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작가나 작품을 통해 귀납적으로 추출해낸 표현 방식이 보편적인 표현방식으로 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창작교육에 관한 최근의 논의로서 주목되는 것은 정끝별의 것인데, 그의 일련의 연구는 패러디, 알레고리, 환상(판타지), 그로테스크 등 시학의 변화에 힘입어 부상하게 된 새로운 규범들이나 장치를 통하여 시 교육 방법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정끝별의 논의는 새로운 시도로서 충분한 의의를 지니고 있지만, 새로운 문화 경향에 대한 이해와 그 문학적 적용에 무게가 놓여 있고, 상상력을 부추기고 창작욕구를 유발하는 그런 핵심화의 원리에는 아직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전자가 내재적인 관점이라면 후자는 외재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본고는 이런 연계화의 방법을 통해 학습주체들에게 우리 시사의 전통을 함께 체험할 기회를 가지도록 함으로써 외재적인 관점이 가지고 있는 단점도 넘어서려 한다.
교육의 대상자들은 대학 국문학과(국어교육과) 내지 문예창작학과 1학년생들이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도록 수준을 조정하였다. 아울러 본고는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의 원리가 각 단계와 이행과정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보다 정교하게 내재화되는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문학교육의 지향은 이해의 측면에서 학습자가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하는지에 초점이 놓여져 왔다.
본고에서 텍스트의 생산, 즉 창작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려는 데 기인한다.
그러나 백석의 이런 창작경향은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 온 감이 있다. 이숭원은 이런 시적 경향을 포함한 백석 시의 특징을 '訥辯의 美學'이라는 말로 통칭하고 그의 시에 주로 사용된 비유법이 주로 직유이며, 이 때 직유는 세련된 비유가 아니라 일상어가 되어버린 관용적 표현이거나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것이며, 보조관념은 土俗的인 事物들이 대부분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백석 시의 비유 구조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권혁웅에 이르러서 이루어지는데, 그는 '은유적인 병렬'과 '제유적인 종합'으로 백석 텍스트의 구문을 읽어내면서 고향의 세부를 탐색하면서도 공동체의 특질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미지의 선택방식에 대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작의 측면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창작주체에 의하여 어떻게 이미지가 선택, 구축, 배열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선 한 편의 텍스트를 통해 그 특징을 검증해 보기로 한다.
이 시 역시 가장 백석다운 시적 표현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돗바늘 가튼 털"을 비롯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 "농짝같은 도야지" 등의 직유를 통해 어떤 세련된 표현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렬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수용자를 압도한다. '농짝/도야지'의 대비는 그 자체로 이미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의 결합으로 효과를 배가시킨다. 네 다리가 묶인 채로 거꾸로 걸려 있는 돼지의 모습은 몸피는 굵고 다리는 짧은 농짝과 흡사한 유사성을 지닌다.
이런 이미지를 통해 수용자는 토실하게 살이 올라붙어 굵어진 몸집과, 짧은 다리를 가진 돼지의 모습을 어느 것보다도 선명하고 익살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는 또한 집안의 가축과 기물, 무생명과 생명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도 마찬가지다. 후각의 동일성을 통해 수용자는 작품 [국수]에서 나타나듯 식물(모밀)과 어진 인간(정갈한 노친네)을 하나로 결합, 인간미 있는 삶의 체취를 환기해 내려는 창작주체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이 시는 1, 2연의 은유적 병렬을 3연의 제유적 종합으로 이끌어내어 의도된 전체 의미로 대상을 초점화하고 있지만 수용자의 입장에서 눈여겨 볼 가장 중요한 창작원리는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의 원리에 있다.
그럼으로써 백석의 시는 수용자에게 순박하고 평화로운 전통세계와 유년에 대한 그리움을 실감 있게 조응해낸다. 아래의 평가는 이같은 모더니스트로서의 백석 시의 특질을 적실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러한 백석 시의 방법론을 적용시켜 창작한 다음의 텍스트를 통해 이 창작법이 어떻게 후대 창작주체들에게 활용되고 있으며 또 실제창작에서 수용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모든 비유가 주변의 소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석 시의 이미지 선택방식과 같은 맥락을 띠고 있는 이 텍스트는 다른 수용자의 눈에도 백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읽히고 있다. 즉, 이 텍스트는 소년시절부터 담장 너머로 봉산댁의 알몸을 지켜보며 자라온 '창작주체'인 나의 성장사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텍스트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공간 속에 놓여진 소년의 은밀한 엿보기의 양태를 간직한다.
또래집단의 이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웃집 나이 많은 '여자'를 통해 성을 깨달아가는 소년의 성장과정으로 시를 이끌어감으로써 이 창작주체는 백석의 영향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독자적인 개성과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여기서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의 모습과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춘 개미의 유비이다. 봉산댁의 검은 피부와 가는 허리, 젖꼭지, 땅에 짚은 두 팔과 다리의 모습에서 기어가다 멈춘 개미의 모습을 읽은 창작주체의 눈에서 수용자는 매우 희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양가성과 함께 현장적 생동감 또한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수용자는 이야기적 요소가 가미된 이 텍스트에서 화자인 '나'뿐만 아니라, 나의 눈에 비친 봉산댁이라는 인물의 입체성을 또한 살필 수 있는데, 그녀는 투박하고 거칠지만("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외롭고 고단한("해 다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새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삶을 살아가는, 고향공간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인물로 드러난다. 봉산댁 역시 백석의 [여우난곬族]등에서 드러나는 가난과 슬픔으로 얼룩져 평탄치 못한 삶을 영위하는 인물들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이미지의 선택 및 조직 방식 쪽으로 논의를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단순하다면 단순한 방식을 통해서도 창의적 표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법을 활용한 장점은 (창작과정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시가 선명하게 되고 초점도 뚜렷하게 되고, 또 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풀려져 나올 수 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원리를 잘 모르고 거창한 소재와 이야기를 끌어오려 하면서 시의 초점이 흐려지고 난해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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