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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아, 나와 놀쟈...
2017년 07월 24일 05시 39분  조회:2105  추천:0  작성자: 죽림

 

 

백합을 소재로 한 시(모음)

 

 

백합백합백합               -김언희-

 

자웅동체

암수 한 몸

지척지간 한배 새끼

나는 나와

생피 붙는다

(불륜의 향기는 코를 찌르고 목을 조르고 눈구녕을 후벼파고)

씩씩거리는

향기의

여섯 발굽에 비끌어매여

이토록

찢어지고 있는

육시처참의

나는

 

 

백합의 말                  -이해인(수녀 시인)-

 

지금은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나

되살아난

목숨의 향기

 

캄캄한 가슴속엔

당신이 떨어뜨린

별 하나가 숨어 살아요.

 

당신의 부재조차

절망이 될 수 없는

나의 믿음을

 

승리의 향기로

피워 올리면

 

흰 옷 입은

천사의 나팔 소리

 

나는 오늘도

부활하는 꽃이에요.

 

 

 

백합                    -송연우-

 

모시빛 햇살이

꽃술 속에 앉아

속삭인다

 

발바닥이 간지러워

제 몸의 무늬 밟으며

꽃으로 피어나고

 

눈부신 오월

누군가 꽃으로 나팔을 분다

 

풀벌레새 울음에도

시나브로 나는 향기

긴긴 하루

 

 

 

백합                    -이금순-

 

뜰 안의 모란 지고 나면

6월이 기다려진다오.

 

심신이 지친 이들의 영혼을 달래 주려고

경적을 울리는 나팔을 불어

동서남북으로 불어라.

축배의 노래를 불어라.

행진교향곡을 불어라.

찬송가를 부르자.

 

갈증을 삼키고

침묵의 소리로

홀연히 피어나는 한 떨기 백합이여!

이 세상 무엇과 비길 것이랴!

홀로 영광과 높음이어라.

 

 

 

베란다의 백합                -배인환-

 

백합 같은 아내가 약혼을 하고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백합을 한아름 안고 왔다.

 

시집올 때에는

구근을 가지고 와서 화단에 심었다.

단독주택 화단에서

잘 자라 향기 짙은 꽃을

매년 피웠다.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백합은 화분에 심겨 옮겨졌다.

처음 몇 년은 향기 없는 꽃을 피웠다.

 

(첫 눈이 내리는데

아내는 겨울 모자를 눌러 쓰고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간다)

 

봄이면

그래도 실낱같은 줄기를

계속 밀어올린다.

 

내년 봄에는 퇴직을 하면

작은 구근을 캐내

야생화 옆에 심어야겠다.

 

 

 

백합의 미소                   -유응교-

 

그대가 때때로

고단한 몸으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백의의 천사가 되어

조용히 그대 곁에 있는 시간이

저는 무척 행복합니다.

 

그대가 때때로

외로운 몸으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때

하얀 미소를 보내며

정겹게 그대 곁에 있는 시간에

저는 무척 보람을 느낍니다.

 

그대가 때때로

즐거운 맘으로

창가에 서서 노래를 부를 때

저도 한껏 가슴을 열어젖히고

나팔을 불 수 있는 제 모습에서

저는 삶의 기쁨을 누립니다.

 

 

 

백합 향기                        -권달웅-

 

 

 버스가 화원 앞 정류장을 지날 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백합 한 다발을 안고 올라왔다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본다새하얗게 언 차창으로는 앙상한 플라타너스가 지나가고 버스에 탄 몇은 쿨룩거린다갑자기 버스 안은 백합 향기가 난다.작업복을 걸친 젊은이가 일어나 노인을 부축한다콩나물 봉지를 든 아주머니가 흐뭇하게 웃는다그 아주머니를 보고 책가방을 든 학생이 웃는다나는 그 학생을 보고 웃는다변두리로 가는 버스에는 앙상한 플라타너스가 흔들리고 고단한 몇은 웃는다누구에게 주려는 백합일까밖은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버스 안은 온통 백합 향기로 가득하다.

 

 

 

백합                   -정연복-

 

땅 속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빛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천사인가

 

네 앞에서 세상의

어둠은 슬슬 뒷걸음치고

 

네가 있어 아직 세상은

희망의 빛으로 충만하다.

 

너의 티없는 맑음으로

내 마음 물들고 싶어라

 

너의 지고한 순수로

내 영혼 멱감고 싶어라

 

너처럼 너의 모습처럼

깨끗한 사랑을 하고 싶어라.

 

제아무리 짙은 어둠보다도

더 밝은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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