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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을 소재로 한 시(모음)
* 백합, 백합, 백합 -김언희-
자웅동체 암수 한 몸 지척지간 한배 새끼 나는 나와 생피 붙는다 (불륜의 향기는 코를 찌르고 목을 조르고 눈구녕을 후벼파고) 씩씩거리는 향기의 여섯 발굽에 비끌어매여 이토록 찢어지고 있는 육시처참의 나는
* 백합의 말 -이해인(수녀 시인)-
지금은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나 되살아난 목숨의 향기
캄캄한 가슴속엔 당신이 떨어뜨린 별 하나가 숨어 살아요.
당신의 부재조차 절망이 될 수 없는 나의 믿음을
승리의 향기로 피워 올리면
흰 옷 입은 천사의 나팔 소리
나는 오늘도 부활하는 꽃이에요.
* 백합 -송연우-
모시빛 햇살이 꽃술 속에 앉아 속삭인다
발바닥이 간지러워 제 몸의 무늬 밟으며 꽃으로 피어나고
눈부신 오월 누군가 꽃으로 나팔을 분다
풀벌레, 새 울음에도 시나브로 나는 향기 긴긴 하루
* 백합 -이금순-
뜰 안의 모란 지고 나면 6월이 기다려진다오.
심신이 지친 이들의 영혼을 달래 주려고 경적을 울리는 나팔을 불어 동서남북으로 불어라. 축배의 노래를 불어라. 행진교향곡을 불어라. 찬송가를 부르자.
갈증을 삼키고 침묵의 소리로 홀연히 피어나는 한 떨기 백합이여! 이 세상 무엇과 비길 것이랴! 홀로 영광과 높음이어라.
* 베란다의 백합 -배인환-
백합 같은 아내가 약혼을 하고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백합을 한아름 안고 왔다.
시집올 때에는 구근을 가지고 와서 화단에 심었다. 단독주택 화단에서 잘 자라 향기 짙은 꽃을 매년 피웠다.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백합은 화분에 심겨 옮겨졌다. 처음 몇 년은 향기 없는 꽃을 피웠다.
(첫 눈이 내리는데 아내는 겨울 모자를 눌러 쓰고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간다)
봄이면 그래도 실낱같은 줄기를 계속 밀어올린다.
내년 봄에는 퇴직을 하면 작은 구근을 캐내 야생화 옆에 심어야겠다.
* 백합의 미소 -유응교-
그대가 때때로 고단한 몸으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백의의 천사가 되어 조용히 그대 곁에 있는 시간이 저는 무척 행복합니다.
그대가 때때로 외로운 몸으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때 하얀 미소를 보내며 정겹게 그대 곁에 있는 시간에 저는 무척 보람을 느낍니다.
그대가 때때로 즐거운 맘으로 창가에 서서 노래를 부를 때 저도 한껏 가슴을 열어젖히고 나팔을 불 수 있는 제 모습에서 저는 삶의 기쁨을 누립니다.
* 백합 향기 -권달웅-
버스가 화원 앞 정류장을 지날 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백합 한 다발을 안고 올라왔다.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본다. 새하얗게 언 차창으로는 앙상한 플라타너스가 지나가고 버스에 탄 몇은 쿨룩거린다. 갑자기 버스 안은 백합 향기가 난다.작업복을 걸친 젊은이가 일어나 노인을 부축한다. 콩나물 봉지를 든 아주머니가 흐뭇하게 웃는다. 그 아주머니를 보고 책가방을 든 학생이 웃는다. 나는 그 학생을 보고 웃는다. 변두리로 가는 버스에는 앙상한 플라타너스가 흔들리고 고단한 몇은 웃는다. 누구에게 주려는 백합일까. 밖은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버스 안은 온통 백합 향기로 가득하다.
* 백합 -정연복-
땅 속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빛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천사인가
네 앞에서 세상의 어둠은 슬슬 뒷걸음치고
네가 있어 아직 세상은 희망의 빛으로 충만하다.
너의 티없는 맑음으로 내 마음 물들고 싶어라
너의 지고한 순수로 내 영혼 멱감고 싶어라
너처럼 너의 모습처럼 깨끗한 사랑을 하고 싶어라.
제아무리 짙은 어둠보다도 더 밝은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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