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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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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아를 속박하고 있는 억압을 끊임없이 해방시켜야...
2017년 07월 24일 06시 14분  조회:1868  추천:0  작성자: 죽림


    이 밤 죽은 자를 태운 배가 내 집 앞에 도착했다
   새벽이 오기 전 그 배에 불을 질러 
   더 먼 바다에 떠나보내야 한다
   그 배가 삐걱이며 내 잠 속으로 가라앉아버리기 전에
   죽은 자들과 한 모든 계약을 끝마쳐야 한다



   식인 상어와 암초들을 피해 어렵게 흘러든 해안
   간신히 잠에서 빠져나온 내가 눈을 비비고 일어서면
   희미하게 밝아오는 창문 저편
   죽은 자를 태운 배는 서서히 떠나고 있다



   -남진우「검은 돛배」부분



  죽은 자를 태운 배가 집 앞에 당도했다고 믿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의식은 세계를 인식하는 그의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를 지배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 사로잡힌 망령은 지극히 병적이다. 그에게 공간은 죽음을 인식하는 기제에 불과할 뿐 그가 죽음을 인식하는 공간이 도시이거나 그의 집 혹은 그의 내부이거나 하는 것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간 역시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시적 환경에 불과할 뿐 시간이 주는 의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집요한 죽음에 대한 천착은 그러나 우리들 의식 저 편 깊숙히 허무로 자리잡고 있는 세계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 외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무의식 속에서 역동적으로 파동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고 침묵적이다. 

  남진우가 우리들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세계를 비정하게 파헤치며 음울의 벽화를 통일성 있게 그려내고 있다면 유추의 언어로 건조한 서정을 펼치고 있는 송찬호는 비약과 절제 같은 지적 조작을 통해 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시는 감정을 최대한 감춘 채 대상을 장면화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시는 시적 해석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한편 이러한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조합을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맥락화시키고 보다 심원하게 의미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고소하고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러가는 달빛처럼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송찬호,「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전문



  송찬호의 서정은 고정되어 있는 사물의 관념을 일탈시키며 시적 주제까지 관습적 의미로부터 탈골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의 시는 언어가 서로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텍스트 내 숨기거나 허구화된 관념을 코드화시킨다. 이로 인해 그의 시는 현실이 현실로서 읽히지 않은 채 우리에게 새롭게 부가되는 낯선 힙들을 강화한다.「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도 마찬가지다. 이 시 역시 우리의 보편적 인식을 거세시키며 관념들이 빚어내는 추체험 인식을 요구한다. 그의 시는 명료성을 유예하는 대신 의미를 다중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는 언어가 빚어 내는 미적 세계로 관습적 시 문법에 감금되어 있는 담화 방식을 깨뜨린다. 송찬호가 언어적 상상력으로 낯선 힘들을 강화는데 비해, 박형준은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불화를 드러내며 자아를 속박하고 있는 억압을 끊임없이 해방시키고자 한다. 



   자전거를 타고 방죽에 왔다.
   들끓는 잎의 물결이 바퀴살에 갈라져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섬을 지고 있는 거북처럼 논 사이에서 
   파닥거리는 수금 방죽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



   침례교도들이 차가운 물을 헤치며
   소름이 돋는 몸을 움직여 세례를 받는다.


   (····················)
   아침 방죽을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거닌다.
   산책만이 살아 있는 유일한 형식,
   누군가 모과나무 사이에서 바라본다면 좋으리라



   -박형준,「수금 방죽」부분



  박형준 시의 균형은 자아와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며 상호 교환적 태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자아와 대상이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습합되고 있는 그의 시는 흥분이나 과장 대신 치밀한 질서를 계량하고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되살려 놓는다. 이완과 긴장을 번갈아 가며 시의 전면에 펼쳐는 그의 서정은 시적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불순과 모멸을 정화시킨다. 그의 세계관은 우울하면서도 힘이 있다. 자아의 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음울하게 드러나는 그의 시는 우리의 감성적인 에너지를 자극하며 자아의 내부에서 충돌하고 있는 정서를 스팩타클하게 보여준다.

  남진우, 송찬호, 박형준의 시는 자아 내부에서 일고 있는 감정을 감춘 채 현실에서 유추된 세계를 언어 미학적으로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의 시는 현실의 세계가 거의 거세된 채 상상력과 추체험적 인식들로 채워지는 은유 구조를 갖는다. 비록 생경스럽지만 우리 시의 관습에서 벗어나 현대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시는 우리 시의 영역을 한층 더 넓히며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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