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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토속적인 방언으로 영원한 시의 지평을 열어야...
2017년 10월 13일 20시 36분  조회:1708  추천:0  작성자: 죽림

유명 화가의 미술 작품들 (6) : 밀레 Jean F. Millet (1814~1875)

 

토속적(土俗的)인 방언(方言)으로 영원한 지평을

 

 

 

 

 

씨 뿌리는 사람

 

밀레는 1849년 파리 근교 퐁테느블로 숲속에 자리한 바르비존이란 작은 마을로 찾아든다. 이 마을엔 밀레말고도 자연을 동경해서 찾아든 화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미술사에서는 바르비존파(派)라고 부르고 있다. 바르비존을 무대로 한 자연파 화가들의 명칭이었다. 밀레의 농민 화가로서의 활동도 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본격화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많은 대표적인 농민화 들이 여기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건초를 묶는 사람들>과 같이 1850~51년 살롱에 출품한 것으로, 씨를 뿌리는 남자의 역동감 넘치는 포즈는 약간 비뚜름한 지평선의 불안한 배경과 어울려 극적인 상황을 예시해 주고 있다. 대지와 인간의 관계가 흥미롭게 드러나고 있다.

 

 

 

 

파르당 부인의 초상

 

1837년 고향 세르브르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나온 밀레는 들라로시의 아틀리에에서 지도를 받는 한편, 루브르를 자주 방문하면서 주로 미켈란제로와 푸생 등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고전 작품을 연구했다. 그가 처음으로 살롱에 입선한 것이 40년이니까 파리에 나온 지 3년 후가되는 셈이다.

 

이 시기 밀레의 작품은 주로 초상화와 신화(神話)를 테마로 한 그림들이었으며, 검은 색을 주조로 하면서 백색의 효과를 살리는, 전통적인 수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고향 세르브르에 돌아와 주문받은 초상화 가운데 하나로, 검은 색을 기조로 하면서 뉘앙스가 풍부한 수법을사용, 인물의 내면의 섬세한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태도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아가씨

 

1845년경 밀레는 목가적인 연인들을 테마로 한 몇 점의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도 그러한 목가적(牧歌的) 분위기를 띠고 있는 그림이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현실보다는 신화에 가깝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입과 반쯤 뜬눈의 꿈꾸는 듯한 표정이 더욱 그런 분위기를 나타낸다. 초기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단정하고도 엄격한 수법을 엿 볼 수 없고, 터치가 즉흥적이면서 다소 거칠게 나타나 있다. 일련의 누드화에서도 그렇지만, 밀레의 눈은 호색적(好色的)이지 않다. 그가 나중에 로코코 화가들을 특히 호색적인 면에서 비판하고 있음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외제니 카노비유 부인이 초상

 

첫 번째 부인 포리느가 죽었을 때 이들 부부가 아사(餓死) 직전에 있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인지 초기의 초상화에는 짙은 술픔의 그림자가 화면을 덮고 있다. 이 초상화의 여인도 슬픈 눈을 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검은 옷에 화려한 레이스는 어딘가 모르게 정숙한 품격을 자아내게 하는데, 앞으로 포개어진 두 손과 얼굴을 연결하는 목걸이 선이 눈길을 끈다. 어두운 배경에 인물의 얼굴만은 부각시키는 고전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엄격한 데생에 의한 인물의 포착은 초상화가로서의 그의 단단한 기법을 말해 주고 있다.

 

 

 

 

海軍士官의 초상

 

역시 밀레 초기의 작품을 대표하는 초상화중의 하나, 첫째 부인과 사별하고 재혼한 밀레가 1845년 잠깐 동안 르아브르란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항구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 초상은 당시에 그렸던 주문화 가운데 하나다. 이 때는 밀레의 명성도 점차 상승되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이 부호나 미술 애호가, 해군 사관, 선장들에게서 많은 주문이 쇄도해 왔다. 파르당 부인의 초상과 같이, 검은 제복을 입고 양팔을 낀 사관의 표정은 밀레의 더욱 자신 있는 수법의 원숙을 통해 생동감을 더해 주고 있다.인물과 배경의 부드러운 조화라든지, 검은 옷 빛깔과 황금빛의 장식과의 격조있는 대비 등은 인물의 성격과 함께 화면의 짜임새를 더욱 돋우어 주고 있는 듯 보인다.

 

 

 

 

 

루크르트와 부인의 초상

 

지하다시피 밀레는 노르망디의 한 한촌(寒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만년(晩年)에 명성을 얻을 때 까지 누구보다도 많은 고생을 하였다. 특히 청년 시절은 빈한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부인인 포리느오노가 죽 은 것도 병약(病弱)한 때문이었다.그래서 인지 초기의 초상화들에서 알 수 없는 우수가 화면을 덮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이 초상은 아내 포리느의 언니, 아니면 동생을 그린 것인데, 초기 밀레의 초상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촉촉한 눈을 보이고 있다. 단정한 자세와 화면에 들어 차는 구도의 밀도는 초기 밀레의 초상화가로서의 뛰어난 일면을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다.

 

 

 

 

 

채석장

 

농민화와는 다소 다른 소재의 그림이지만,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티브의 애착은 밀레의 작품 밑바닥을 관류하고 있다. 후기의 농민화에서 보는 정태적(靜態的) 묘사와는 달리, 여기서는 동적(動的)이면서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돌 틈바구니에 꽂은 지렛대에 매달려 있는 두 인물의,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동작은 화면에 사선(斜線)으로 달리는 시각적 이동으로 인해 단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 시기 밀레는 특히 미켈란젤로가 묘사한 인물의 데생에 관심을 기울 였는데, 그것은 인간의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고통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밀레의 작품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활기와 박진감을 주고 있다.

 

 

 

 

 

귀가중인 양떼

 

초기에서 점차 농민화로 전향해 가던 중간쯤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그런만큼 이 작품엔 누드화를 주로 다루었던 시기의 제반요소와 농민화로서의 소재적 관심이 함께하고 있다. 아이를 업고 있는, 상의를 벗은 여인의 모습은 누드화의 연장 선상에서, 그리고 오른편으로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양떼는 농민화로서의 연결을 시상해 주고 있다. 아이를 업은 여인과 어깨에 농구(農具)를 진 남정네와 양떼를 몰고 있는 앞 쪽의 아이가 가운데 공간으로 집중되면서, 한 가족의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의 밀도를 엿보여 주고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양떼들이 화면 가운데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농민화가 밀레의 세계가 확립되어진다.

 

 

 

 

水浴

 

밀레는 농민 화가로서의 자기 위치를 찾기 이전 초상화와 신화화(神話畵)를 그렸고,또 일련의 노동자들의 일 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작품은 그 소재가 다소 예외 적이긴 하나,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룬 그림과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체의 억센 형체감을 살리려고 한 의도가 노동자들의 그림들과 일치된다. 작품은 남녀가 멱을 감는 정경에서 취재된 것인데, 물에서 올라오는 여인을 남자가 안아서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두 인체가 마치 격투라도 벌이고 있는 듯한 억센 동감으로 표현되고 있다. 밀레가 미켈란젤로에게 매혹되었다고 하는 설이 이 그림을 통해 뒷받침된다.

 

 

 

 

양치기와 양떼

제작년대 미상 캔버스 유채 45X55Cm

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

 

 

 

어린 양치기

 

밀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가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 농가에 들어가 생애를 농민 화가로서 보냈다. 이 깊숙한 농민 생활의 체험은 그의 그림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입장이 아니라 언제나 모티브 깊숙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몸으로부터 우러나온 자연스러움이 그림 속에 배여 있다. 어린양치기의 모습과 양떼의 조화는 순진한 이미지의 동일성에서 밀레의 화인(畵因)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다.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의 모습과 지팡이에 기댄 어린 양치기의 땅과의 밀착된 관계가 돋보인다.

 

 

 

 

키질하는 사람

 

1848년 이후, 밀레는 지금까지의 초상화와 신화적 테마의 범주를 벗어나 농부나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직접 묘사하는 새로운 전환을 시도했다. 이른바 농민화가(農民畵家)로서의 밀레의 출범을 알리는 전환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시기에 제작된, 농민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 해 살롱에 출품한 최초의 농민화 이기도 하다. 그의 태반의 농민화가 그렇듯이 이 작품의 소재도 너무나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고티에는 이 소재의 단순함을 칭찬해 마지 않기도 했는데, 바로 이런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 속에 농민과 농촌 생활의 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두운 곳간에서 키를 까불고 있는 남자의 프로필이 일하는 이의 감동을 잘 포착하고 있다.

 

 

 

 

나무켜기

1850-52년 캔버스 유채 57.2X81.3Cm

런던 빅토리아 엔드 알버트 미술관 소장

 

 

 

 

 

나뭇가지

 

벌채한 나무를 두 사람이 운반하고 있는 이 그림은 인물에 비해 주변의 자연이 크게 설정되어 있는 특성을 엿볼 수 있다.말하자면 자연 속의 극히 일부로서 인물의 모습이 떠오르게 배치하였다. 나무를 끌어내리고 있는 두 시골 여인네의 마주 본 자세와 기다란 나무로 연결된 구성적 배려가 기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밀레의 태반의 농민화 들이 그렇듯이 여기서도 움직이는 인물들을 통해 노동의 실감을 전해 주고 있다. 더욱이 텁텁하고 난폭한 터치와 명암의 대비를 통한 무대적인 화면의 구성은 농민들의 생활상을 리얼하게 묘출해 주고 있음을 말한다.

 

 

 

 

나뭇군

 

<키질하는 사람>과 비슷한 구도의, 나무를 패는 모습을 붙잡은 작품이다. 산 속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화면 가운데 나뭇군이 배치된다. 나뭇군의 앞과 뒤쪽 주변에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산 속에서 만난 평범한 나뭇군의 생활의 한 단면을 붙잡은 것으로, 쿠르베를 연상시키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는 리얼리스트의 태도가 역력하다. 나뭇군과 그 배경과의 관계, 원경의 숲과 앞 쪽의 정경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명암의 강한 대비가 이 단순한 정경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수평과 수직의 구성적 배려가 미묘하게 느껴지는 밀레의 독특한 시각이 있다.

 

 

 

 

건초를 묶는 사람들

 

밀레가 바르비존으로 오면서 그 해 살롱에 출품한 작품으로, 점차 농민화의 전경을 드러내고 있다. 밝게 쏟아지는 햇볕 속에 건초를 묶고 있는 두 남자와 왼편에 건초를 긁어 모으는 여인의 모습은 일하는 즐거움과 노동의 신선함을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명암의 강한 콘트라스트가 주는 긴장감과 더불어 거대한 자연과 투쟁하는 인간의 숭고한 모습이 극적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하겠다. 밀레의 농민화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요소 역시 자연과 인간의 대비적이면서도 조화 있는 관계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의 초상화에서는 볼 수 없는 거칠고 투박한 표현이 농민화의 특성에 더욱 걸맞는 효과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물통의 물을 옮기는 여인

 

밀레의 농민화에서 발견되는 노동하는 남자들은 한결 같이 당당하고 늠름하게 묘사되고 있으나, 농가의 여성들은 조용하고도 우아한 모습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라도 그 동작은 크지 않고 여성 특유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보는 여인도 그 동작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동작이나 표정이 다소곳하면서도 수줍은 듯한 여성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두 개의 물통에 물을 붓고 있는, 약간 구부린 여인이 정직하게 화면 가운데 자리잡고, 그 배경으로 농가의 뒤뜰이 보여 주는 정적이 오히려 정답기까지 하다. 저쪽 문 쪽으로 뒤뚱거리며 가고 있는 집오리의 모습도 농가의 한가로움을 더욱 실감시켜 준다.

 

 

 

 

누워 있는 누드

 

농민 화가로서의 뚜렷한 방향을 잡기까지 밀레는 한때 누드 그림도 그린 적이 있다. 초상화에서 농민화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커튼을 열어젖힌 안쪽 침대에 등을 돌리고 있는 나체의 여인 모습이 보인다. 침대의 흰 커버와 흰 이불 속에 드러난 알몸의 여인은, 그러나 그 정황에 비해 짙은 관능성(官能性)은 찾을 수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 중의 한 단면이라고나 할까. 모델로서의 누드가 갖는 흥미는 그렇게 드러나 있지 않다.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눈이 탐욕스럽지 않다 고나 할까. 그러면서 초기의 초상에 비해 보면, 농민화에서 드러나고 있는 기법이 역력하다.

 

 

 

 

어머니와 아들

 

밀레가 옮겨가 산 바르비존은 가난한 한촌이었다. 밀레도 이 마을의 가난한 농부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아마도 밀레의 농민화가 너무 나도 비참하게 보인다는 평도 어쩌면 이 가난한 마을의 정경을 솔직하게 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밀레는 두 번째 아내 카트리느와의 사이에 9명의 자녀를 두었다. 아내 카트리느는 아내로서 뿐 아니라 어머니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밀레는 갸륵한 어머니로서의 카트리느와 그 아이들을 모델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다. 견고한 돌문 사이로 아이와 어머니의 모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드러나고 있다. 두 아이의 천진한 동작과 어머니의 보살핌이 밀레의 눈을 통해 영원화되고 있다.

 

 

 

 

 

만종(晩鐘)

 

<이삭 줍기>와 함께 밀레의 대표작 가운데하나. 밭에서 일을 끝내고 저녁 종이 울리는 가운데 부부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 장면은, 단순히 노동에서 오는 기쁨뿐만 아니라 삶의 진실과 기쁨을 전해주고 있어 쉽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먼 지평선에 황혼이 물들어 가고, 이 빛을 받은 부부의 경건한 자세는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교화의 새로운 양식이라고 칭송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작품은 처음 1천프랑에 국외로 팔려 나갔으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시 프랑스로 팔려 왔을 때는 그 8백 배가되는 80만 프랑으로 올랐다는데도 이 그림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1906년에 루브르에 기증되었다.

 

 

 

 

소와 농부

 

<이삭 줍기>, <만종>, <양치는 소녀> 등에서 불 수 있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한 구도이다. 화면 3분의 2에 해당되는 대지와 3분의 1에 해당되는 하늘 부분의 안정된 구도에서 인간과 대지와의 밀착된 관계를 엿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만종>이나 <양치는 소녀> 와 같이 황혼녘의 들 풍경을 붙잡은 것이다. 역광(逆光)을 받은 소와 여인의 모습이 더욱 견고한 양감(量感)을 보여 주고 있다. <이삭 줍기>에서와 같이 가난한 농부의 모습이 역력하다. 1859년 살롱에 출품하여 찬사를 받았으나,한편으로 이 해 살롱 평을 쓴 보들레르는 밀레가 그리는 농민은 너무도 비참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루의 끝

 

이 그림은 원래 <하루 중 네 개의 시간>이라고 이름 붙은 4부작 가운데 하나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윗도리를 입고 있는 한 농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예의 수평구도에다 대지에 우뚝 선 인물의 설정이 인간과 대지와의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황혼이 깃들고 서서히 저녁의 어스름이 덮인 대지를 걸어 가고 있는 하루 일을 끝낸 농부의 표정은 실루엣의 견고한 양감(量感)을 통해 대지에 굳게 뿌리 박고 있는 느낌을 준다. 밀레는 점차 초상화는 거의 그리지 않고, 단지 일하는 농민들의 순간의 정경을 즐겨 다루었는데, '아름다움은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전체에, 또 어떤 주제의 액션에 어울리는 가운데서 빛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도 모티브의 기호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달밤의 목장

 

달밤에 양떼가 들어오는 목장의 장면이다. 달은 먼 지평선에 떠오르고 그 은은한 빛은 대지로 번져가는데, 목장으로 들어오는 양떼와 양 몰잇군의 검은 실루엣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밤의 야외 정경은 다소 특별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밀레는 이같은 모티브로 다룬 두 개의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하나는 1856년의 것이고, 또 하나는 1861년작인 이 작품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전작은 인물이나 동물이 하나하나 분명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태반의 작품에서와 같은 견고한 조형성을 보여주는 반면, 후자의 이 작품은 달밤의 은은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덮고 있어 더욱 시적(詩的)인 느낌을 주고 있다.

 

 

 

 

풀을 태우는 여인

 

쟁기를 들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은 마치 대지 위에 솟아오른 한 그루 수목을 연상시킨다. 이 너무도 단순한 인물의 자세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지표(地表)로서의 기념비같이도 생각된다. 수평의 대지 위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있는 이 강인한 포즈는 밀레의 노동하는 여인들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예외적이다. 그녀의 부동의 자세는 대지에 대한 무한한 친근성과 신뢰에 가득 차 있어, 어떤 노동하는 자세보다도 더욱 일 하는 이의 숭고함을 갖게 한다. 고호는 밀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그 초기 작품에서는 밀레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다. 인간을 수목과 같이 다룬 예도 그 하나이다.

 

 

 

 

 

낮잠

 

일련의 농민화 가운데 하나지만, 이 작품은 여느 그림과는 달리 대범한 모티브 선택이면서도 다소 특이한 구도의 대담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일을 마치고 낮잠을 즐기는 농부의 부부를 약간 아래쪽에서 비스듬한 구도로 붙잡고 있다. 발 쪽에서 비스듬히 상체가 보이는 인물의 포착은 어떤 포즈보다도 까다로운 것인데, 밀레는 이 평범한 한순간을 포즈의 특이한 설정을 통해 흥미 깊게 포착하고 있다. 남자의 상체에 기대어 자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반쯤 드러나 있는 정겨운 모습은 농가의 평화로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파스텔 특유의 경쾌한 데생 처리가 순간의 포착에 더욱 어울리는 것을 엿보여 준다.

 

 

 

 

 

거위를 지키는 소녀

 

역시 농가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한 작품. 앞 쪽에 개울이 있고, 이 개울로 통하는 길이 화면 중심으로 나 있다. 거위 떼들이 개울로 몰려들고 있으며 오른쪽 언덕빼기엔 한 소녀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화면은 밀레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3분의 2에 해당하는 위치에 지평선을 설정하고, 아래쪽에 대상물들을 배치하였다. 밀레는 거위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여러 장 그렸는데, 파스텔로 속사(速寫)한 것도 있다. 그는 이 파스텔 그림들을 그날의 식량을 얻기 위해서 팔았다. 이 작품은 1867년 살롱에 출품된 것으로 점차 무르익어가는 시골 생활의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늘로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놈, 물에 떠 노는 놈, 물가에서 쉬고 있는 놈, 소리를 지르면서 물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놈, 각양의 표정이 흥미롭게 포착되고 있다.

 

 

 

 

 

돼지를 잡는 사람들

 

농가의 일기와 같은 장면의 기록이다. 돼지를 잡기 위해 두 사람의 남정네가 입에 끈을 묶어 잡아당기고 있고, 한 남정네가 뒤에서 돼지를 떠다밀고 있다. 나오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돼지를 향해 먹이를 쏟고 있는 여인네, 그리고 저쪽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엿보인다. 돼지를 향해 집중되고 있는 시선과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또 하나의 눈, 화가의 눈이 합쳐져 화면의 중심이 강해지고 있다. 밀레는 이 작품을 1867년에 시작, 완성까지 상당한 시간을 보냈는 데 그만큼 힘을 쏟은 작품임을 시사한다. 미국인 화가 빌라이트가 그의 처와 같이 바르비존을 방문, 찬사를 아끼지 않자, 밀레는 즉석에서, '부인 이것은 하나의 드라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극적인 순간임이 분명하다.

 

 

 

 

 

밀레는 사계의 시리즈를 몇 장 그린 바 있다. 이 작품도 사계 중 봄의 풍경이다. 알사스의 실업가 프레드릭 알트망으로부터 주문받아 그린 것이다. 농가의 사계는 더욱 자연의 풍부한 변화를 보여 주는데 만년에 갈수록 자연이 갖는 하나의 서사시로서 엮고 있다. 아마도 화가로서나 인생으로서의 완숙과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닌가 본다. 수평의 구도적 맥락을 보여 주면서 신비한 기운이 한층 짙게 깔려 있다. 과수들이 선 사이로 난 길 저쪽엔 목책이 수평으로 가로 지르고, 그 뒤쪽으론 수목이 울창하다. 이제 막 비가 개이는 듯 한쪽 하늘엔 무지개가 반원을 그리며 하늘에 걸려 있다.

 

 

 

 

 

세탁하는 농부

 

어두운 실내에서 빨래통에 물을 붓고 있는 시골 아낙네의 모습을 붙잡고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조로와서 모티브로서도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게 보이는 데도, 밀레는 이를 드라마틱하게 처리하고 있다. 전체가 단순하면서도 명암에 의한 대상의 견고한 형태와 볼륨이 모뉴멘탈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같은 조각적 조형은 고전주의가 즐겨 사용한 대상의 파악이나, 밀레는 고전주의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시골 아낙네의 일하는 모습에서 숭고한 어떤 것을 각인(刻印)하려고 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시류적(時流的)인 고전주의와는 그 발상에서부터 궤(軌)를 달리 한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롱고스 작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그리스의 전원 시적(田 園時的)인 소설 '다프니스와클로에'에서 취재된 그림 으로, 코르마르의 은행가 토마의 의뢰에 의해서 제작된 것이다. 사계(四季)를 나타낸 3점(봄, 가을, 겨울)의 타블로와 1점(여름)의 친정화 가운데 <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농민화가로서의 밀레에게는 다소 특이한 신화적 주제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초기파리 시대의 신화적 소재의 그림에서는 엿볼 수 없는 인물이나 배경이 고전적인 완벽함을 보여 주고 있다. 밀레는 이 작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후에 몇 장의 소품으로 남기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섬세한 필치와 아름다운 색채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그레빌의 교회

 

밀레는 노르망디 세르브르에 가까운 그뤼시에서 출발하였다. 그레빌의 교구(敎區)이다. 밀레의 작품 가운데는 고향 마을의 풍경들이 몇 점 있는데, 가령 <그레빌 근처의 십자가>니, <그레빌 촌의 한 모퉁이>등이 그것이며, 이 작품도 이 속에 포함된다. 그의 부친은 교회의 합창 지휘자였으므로 이 교회는 밀레에게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일 것이다. 따스한 양광(陽光)을 받고 서 있는 교회당의 조용한 풍경은 그가 언젠가 돌아가야 하는 그런 향수가 감돌고 있다. 수평의 대지 위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교회와 맑은 배경의 하늘, 거기엔 끝없는 평화가 잠겨 있을 것이다.

 

 

 

 

 

자, 입을 벌려요

 

이 작품의 원제는 쪼아 먹다 [bwcquter]에서 나온 명사 'La becquee'이다. 어미새가 새끼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듯, 그러한 정경을 인간 세계로 가져 왔다. 마치 어미새가 새끼새에게 주둥이로 먹이를 먹여 주듯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숟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다. 자매인 세 어린이가 나란히 앉아 있고 어머니는 막 가운데 막내인 듯한 어린애에게 숟가락을 건네고 있다. 왼쪽 아이는 곧 자기 차례가 올 것을 대기하고 있는 자세이고, 오른쪽 아이는 언니답게 '자, 먹어.'하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부모와 자식간의 정애(情愛)가 실감있게 묘출되고 있다. 밀레 자신의 가족이 모델이었을 것이다.

 

 

 

 

우유를 휘젓는 여인

 

1847년경부터 다루어온 소재인데, 이 파스텔 화는 70 년에 제작된 것이다. 농가의 생활 단면을 아무런 꾸밈 없이 극히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붙잡고 있다. 이런 그림은 화가가 방안에 들어와 모델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스스럼 없는 시각을 느끼게 되는데, 밀레의 농민 화가로서의 뛰어난 점도 이런 소박성에 있음이 분명하다. 화면에 있어서 별다른 구도적 배려도 찾을 수 없다. 화면 가운데 큰 통을 앞에 두고 우유를 젓고 있는 시골 여인의 약간 거친 표정이 일하는 사람의 건강한 야성미(野性美)로 대치된다. 우유를 휘젓고 있는 막대기는 이상하게도 <어린 양치기>나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쟁기와 연결되는, 대지에서 솟아오른 듯한 상징적인 의미를 드러내주고 있다.

 

 

 

 

마거리트 꽃송이

 

밀레 만년의 특이한 작품이다. 이 무렵 밀레는 병상에 있으면서 잠깐 본격적인 유화작업을 쉬고 가벼운 스케치나 파스텔 화를 주로 그렸는데,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아마 병상에 누워 바라보는 창 쪽 어디쯤인가 있는 정경을 포착했을 것이다. 두꺼운 나무 창틀이 화면을 수직과 수평으로 육중하게 분절(分節)해 주고 있고, 화면 중심에는 화병이 가득히 들어차 있다. 화면 오른쪽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소녀의 표정이 어두운 배경에서 이상한 요기로움을 풍겨 주고 있다. 소녀의 앞에 바느질 도구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잠시 바느질을 쉬고 있는 순간인 듯하다. 경쾌한 파스텔의 무드가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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