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2월 일본 신문에는 일본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민족 문화를 되찾은 간송의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일본에 살다가 영국으로 귀국하려던 변호사 존 개즈비(John Gadsby)가 당시 자신의 소장품을 팔고자 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간송이 직접 일본에 건너가 협상을 벌였던 것이다. 많은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간송의 애국적인 태도에 감동해 개즈비의 청자와 백자들이 간송에게 양도되었고,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소장품들이 고국인 한국으로 가게 되어 매우 기쁘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를 위해 간송은 공주에 있던 2백석지기의 농장을 팔았는데, 당시 개즈비의 소장품으로는 국보 제65호 청자 기린형 뚜껑 향로, 국보 제66호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국보 제74호 청자 오리 모양 연적, 국보 제270호 청자 모자원숭이 모양 연적, 보물 제238호 백자 박산형 뚜껑 향로,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일본에 유출된 국보 제135호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을 파격적인 고가에 다시 사왔고, 1768년에 심사정이 그린 촉석도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산 가격만큼의 거금을 들여 보수를 다시 맡기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간송의 소장품에는 회화, 도자, 금속 공예, 불교 조각, 전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보급 문화재들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2011년 3월에는 12점이 국보로, 12점이 보물로, 4점이 서울시 지정 문화재가 되었고,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송의 활동에 깊게 관여하였던 오세창은 1938년에 우리나라 최초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 미술관) 지석에 “서화는 심히 아름답고 옛 골동품은 자랑할 만하다. 이곳에 모인 것들은 천추의 정화로다. 근역에 남은 주교로 고구 검토할 수 있네.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하세.”라는 글을 남겨 간송이 모았던 소장품의 가치를 알려 주었다.
간송의 소장품은 우리 문화의 정수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간송의 뜻과 업적, 열정을 대변해 주는 것이며,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대변해 주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간송 미술관의 소장품은 연중 봄·가을 두 차례 특별전을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간송 전형필이 되찾은 우리문화유산)
1.청자 기린형뚜껑 향로
종 목 국보 제65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향로로 높이는 20㎝이다.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상상속의 동물인 기린이 꿇어 앉아있는 모습을 한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는 윗부분이 넓게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고 짐승모양을 한 3개의 다리가 떠받치고 있다. 몸통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었고 윗면 가장자리에도 세 곳에 구름무늬가 배치되었으며, 그 위에 뚜껑을 덮도록 하였다. 뚜껑 한복판에는 뒤를 돌아보고 있는 기린이 조각되어 있고, 기린이 앉아있는 자리의 옆면에는 번개무늬가 돌아가며 음각되었다. 기린의 머리에는 뿔이 돋아있으나 부러져 있는 상태이고, 목뒤의 부분은 곱슬곱슬하게 표현하였다. 눈은 검은색 안료를 사용해 점을 찍었다. 구조상 향의 연기는 벌려진 기린의 입을 통하여 뿜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
비취색 특유의 은은한 광택이 향로 전체를 품위있게 감싸고 있다.12세기 전반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이와 같이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2.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종 목 국보 제66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고려 전기의 청자 정병으로 높이 37.0㎝, 밑지름 8.9㎝의 크기이다. 원래 정병은 불교에서 모든 악을 씻어 버리는 의식에서 사용하던 용기의 하나로 중국을 거쳐 전해진 서방 양식이었으나, 고려에 와서 가장 세련되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유물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으로 청아한 담록색 계통의 비취색 유약에 백토(白土) 상감만으로 새겨진 버드나무와 갈대, 연꽃, 원앙새 1쌍을 회화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 병 목에는 앞뒤 양면에 모란꽃을 하나씩 상감했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8각으로 기품있게 만들어 병 목 위에 수직으로 세워 놓았다. 물을 넣는 아가리는 둥근 어깨 한쪽에 아담하게 붙어 있는데, 원래 뚜껑이 있었으나 없어진 상태이다.
대체로 초기의 상감청자는 유약이나 바탕흙이 매우 정선되어 있고, 청아한 비취색 유약이 세련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색인데, 이러한 바탕 위에 상감무늬가 곁들여졌던 만큼 한층 더 장식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정병 또한 이러한 초기 상감청자의 하나로 매우 정제되고 세련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3.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종 목 국보 제68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고려 매병은 중국 송나라 매병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12세기경에 이르러서는 고려만의 풍만하면서도 유연한 선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이러한 고려 매병의 양식은 이 작품에서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높이 42.1㎝, 입지름 6.2㎝, 밑지름 17㎝의 크기의 매병의 아가리는 작고 낮으며 밖으로 살짝 벌어져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가리 아랫부분에는 꽃무늬를 둘렀으며 굽 위로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몸통 전면에는 구름과 학을 새겨 넣었는데, 흑백상감한 원 안에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학과 구름무늬를, 원 밖에는 아래쪽을 향해 내려가는 학과 구름무늬를 새겼다.
학의 진행방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은 도자기 표면이라는 일정한 제약을 넘어 사방으로 공간을 확산시켜 짜여진 구획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듯하다. 이같은 표현상의 변화 추구와 함께 문양처리의 능숙함에서 고려 도자기의 우수함과 고려인의 창의력을 엿볼 수 있다.
4.훈민정음
종 목 국보 제70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이 책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하였다는 해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본이다.
5.동국정운 권1,6
종 목 국보 제71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세종 때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의 명으로 편찬하여 세종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6권 6책이며, 활자본이다.
중국의 운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이 책은 세종 29년(1447) 9월에 완성되자 간행하라는 임금의 명이 있었고,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 11월에 성균관, 사부학당 등에 보급되어, 이 책이 간행되고 보급되었던 시기를 알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전 6권 가운데 1권과 6권만이 남아있다. 내용을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이고, 작은 글자와 서문의 큰 글자는 갑인자이다. 글자체는 큰 글자가 진양대군의 글씨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가 된다.
6.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종 목 국보 제72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삼국시대
커다란 하나의 광배를 배경으로 중앙에 본존불과 양 옆에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있는 삼존불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불상 전체 크기에 비해 크고 높게 표현되었다. 미소를 띤 갸름한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으며, 어깨와 가슴은 약간 좁은 듯 하지만 둥글고 강인하게 처리되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정면으로 V자형 옷주름이 있으며, 좌우로는 새의 깃같은 옷자락이 뻗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이 위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은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손가락 2개를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양 옆에 배치한 협시보살은 광배의 끝에 매달리듯 표현하였으며, 세가닥으로 올라간 보관을 쓰고 있다. 신체 표현은 본존불과 비슷하지만, 앞면에서 X자로 교차하고 있는 옷주름과 손모양이 다르다.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가는 선으로 장식한 광배는 끝이 뾰족한 배 모양으로, 본존 주위에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도드라지게 새기고 그 안에 연꽃무늬, 덩쿨무늬, 인동초무늬를 새겼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는 바닥이 밖으로 퍼진 원통형이며 연꽃이 새겨져 있다.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제85호)의 양식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불상은 광배 뒷면에 새겨진 글에 의해 백제 위덕왕 10년(563)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