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시인 정현종은 물질화된 사회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인간의 순수한 영혼에 대해 노래하며,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1939년 12월 17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으로 이사 가서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중 ·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과 음악, 발레, 철학 등에 심취했다.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으며,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84년 5월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았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과 8월에 각각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을 완료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1966년에는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했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5년에 정년 퇴임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오르고, 1972년 첫 시집 『사물의 꿈』을 출간한 이후 지금까지 쉼 없는 창작열과 언제나 자신의 시 세계를 갱신하는 열정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했다. 초기의 시는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 반면, 1980년대 이후로는 구체적인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했다. 2008년 내놓은 아홉 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 역시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들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를 갈망하게 된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사물의 있음 그 자체, 움직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적 화자의 자세에 저절로 주목하게 되는 작품집이다.
1990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외 6편의 시로 ‘제3회 연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 「한 꽃송이」로 ‘제4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 1995년 「내 어깨 위의 호랑이」로 ‘제40회 현대문학상’, 1996년 「세상의 나무들」로 ‘제4회 대산문학상’, 2001년 「견딜 수 없네」로 ‘제1회 미당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의 시선집을 상자했다. 또한 독특한 시론과 탁월한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을 펴냈으며, 시 번역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예이츠, 네루다, 로르카의 시선집을 번역 출간했다.
정현종의 초기 시가 전후의 허무주의와 토착적 서정시를 극복하고 현실의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했다면 2000년대를 기점으로 현실과 꿈의 갈등보다는 생명과의 내적 교감, 자연의 경이감, 생명의 황홀 등에 천착한 새로운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런 점에서 2001년 '제1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을 표제작으로 한 시집 『견딜 수 없네』는 정현종의 시력에 그어진 새 획을 가늠해볼 수 있는 핵심적인 시들이 묶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집 『견딜 수 없네』를 관류하는 정서는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것을 끌어안는 거대한 포용, 자연과 합일된 경지다. 정현종은 시간의 흐름에 마모되는 존재들을 민감하게 발견해내며, 고요하게 바라본다"(우찬제, 신판 해설 「어스름의 시학」) 시인은 모든 감각을 망라하는 관음의 눈으로 세계를 보며, 자연의 생리를 왜곡하지 않고 자체의 숨결과 교감을 시도한다.
"한국 현대시가 이룬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인 정현종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이다. 정현종의 시들은 삶 자체의 근원을 탐색하려는 의욕과 열정으로, 때로는 지극한 찬탄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한 능청스러움으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이번 시집 『광휘의 속삭임』 역시, 의식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복잡한 의미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사물의 있음 그 자체, 움직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적 화자의 자세에 주목하게 된다. 시인은 이제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들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를 갈망한다. "파동이나 숨결로 시인에게 무언의 전언을 보내오는 사물들의 숨겨진 비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몸 전체를 텅 비워"내고 있다는 평론가 박혜경의 지적대로, 정현종 시인은 사물에 의미를 들씌우려는 해석적 권위를 버리고, 사물의 천진한 유희자가 되어 사물들 속으로 잠입하고 있다.
정현종 시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시선집 『섬』이 '정현종 문학 에디션'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됐다. 시인이 만년필로 쓴 육필, 직접 그린 그림들과 함께 '자유로운 언어'로 표현한 34편의 시가 채워져 있다. 투박하지만 정감 넘치는 터치와 필치가 독자들에게 너울 깊은 파동을 전한다. 고통의 무게가 클수록 오히려 인간의 날아오르려는, 상승의 의지는 클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은 정현종 시인의 자유 혹은 자유인의 삶 또한 결국 고통스러운 하강의 시련을 뼈저리게 느낀 후에야 영혼의 상승과 비상의 행위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러한 삶의 의지는 「고통의 축제 2」에서 "무슨 힘이 우리를 살게 하냐구요? / 마음의 잡동사니의 힘!"으로 표현된다. 시인은 근원적으로 마음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다. 또한 시인은 변화하고 소멸되는 시간의 법칙에 연연하지 않고,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추억에 잠기는 회한의 탄식 대신 인생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임을 일깨우기 위해 목소리를 돋운다.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인문 정신의 치열함 속에 언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는 산문집이다. 시인이 30년 넘게 써온 글들 중에서 정수만 가려 뽑은 산문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리의 삶에 유연하게 스며든다. 『날아라 버스야』는 세상의 무거움을 통과해 날아오르는 경쾌하고 자유로운 언어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철학적인 사유와 무한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시어로 우리 현대 시사(詩史)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해온 정현종 시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한 권의 시론집으로도 손색없을 만큼 탄탄한 사유와 밀도 높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예술과 인문 정신이 결합된 산문의 한 진경을 보여 주는 이번 산문집은 육중한 바윗덩어리를 비집고 나오는 샘물처럼 가볍고 맑다. 시론이 곧 인생론이고 시와 삶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시인의 글들은 어둠 속의 별처럼 환하게 빛난다.
=====================덤으로 더...
문단에 갓 나온 김현이 젊은 시인 정현종(鄭玄宗, 1939~ )을 포장도 채 되지 않은 서울 신촌 거리에서 처음 만난 것은 1965년께의 일이다. 첫 만남을 통해 김현은 ‘춤’을 사랑하고 ‘형이상학적 초월’을 꿈꾸는 ‘에피큐리언’쯤으로 정현종을 이해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게 이해한 것이다. 김현이 정현종에게서 본 것은 “미식취(美食趣), 멋냄, 연애 취미, 재치있는 담화”였고, 이런 대목은 그의 이해를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김현은 머지않아 젊은 시인의 가볍고 날렵해 보이는 쾌락주의 밑에 깔려 있는 ‘고통의 축제’를 보고 자신이 이해한 바를 수정한다. 젊은 시인이 지닌 의식의 맨 밑바닥에 깔려 있던 것은 다름아니라 ‘죽음’이었고, ‘바람’에 대한 시인의 탐닉은 그것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자 하는 의식의 반작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진다. 시인은 ‘고통의 축제’를 주관하는 꿈의 사제다.
정현종은 1939년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관청 병참계 판임관이라는 공직에 있었다. 그는 천주교를 믿는 부모들에 의해 갓난아기 때 부근의 약현성당에서 영세를 받는다. 아버지의 근무지가 바뀜에 따라 그가 세 살 나던 해에 그의 가족은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화전으로 이사한다. 그는 1946년 덕은국민학교에 입학하고, 5학년 때 6·25를 겪는다. 그는 전란 때 모래밭에서 죽은 사람의 뼈를 치켜 들거나 막대기에 해골을 꿰어 든 채 마을 아이들과 함께 벌거벗고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놀던 기억을 갖고 있다.
1953년 기독교 재단에서 설립한 대광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는 화전에서 서울로 기차 통학을 한다. 이 무렵부터 그는 책읽기에 깊이 빠져드는데, 김내성의 『마인(魔人)』이나 방인근의 『벌레 먹은 장미』 같은 대중 소설부터 학생 잡지 『학원』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읽어 치운다. 왕성한 책읽기를 통해 그는 답답하게 닫혀 있는 듯한 현실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몽상의 천국’을 맛본다.
그는 사춘기에 그 나이 때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육체의 욕망과 그것을 억압하는 종교적 계율 사이에서 강박 관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강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즈음 그는 서양 고전 무용을 소재로 한 「로얄 발레」라는 영화를 중앙극장에서 관람한 뒤 전율과 함께 육체의 정화를 체험한다. 그는 영화 속의 춤을 통해 “비로소 육체의 아름다움에 눈떴고 육체의 빛”을 보며 “육체에 대한 경멸로부터 일시에 벗어”나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칙칙한 성적 억압을 떨쳐낸다. 그것은 ‘육체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김현은 그것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발레와 만나며 욕망과 금기 사이에서 싹튼 강박 관념을 털어버린 그는 고등 학교에 올라가서는 『사상계』를 애독하고 함석헌의 글들을 읽으며 감동하기도 한다. 1959년 진로 선택에 따르는 고뇌 없이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간다. 이듬해인 1960년 6월 그는 1년 6개월 동안 복무하는 학보병으로 자원 입대한다. 근무지는 경기도 양평이었는데, 그는 행정병 비슷한 보직을 맡아 비교적 편하게 군대 생활을 한다.
1962년 군에서 제대한 뒤 복학한 그는 『연세춘추』의 기자들과 어울리며 학교 신문에 시와 산문을 발표하고, 실존주의 사상가들과 보들레르 ·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책을 읽으며 지낸다. 『연세춘추』에 실린 시들이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있던 박두진의 눈에 띄어, 정현종은 대학 4학년 때인 1964년 5월에 『현대문학』의 1회 추천을 받는다. 이 때 추천받은 작품이 「화음(和音)」과 「주검에게」다. 우아한 곡선을 그으며 하늘로 솟구치는 춤의 아름다운 동작을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초기 시에는 시인이 청소년기에 몰입한 고전 발레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이것은 순수한 초월을 꿈꾸는 그의 시 공간에 펼쳐지는 비상의 세계에 대한 깊은 열망을 암시한다.
위의 시는 『현대문학』 추천 작품 가운데 하나인 「화음」이다. 정현종은 이렇게 처음부터 한국 시의 주류로 대접받던 서정주 · 박재삼의 토속적 미학의 세계나 허무주의, 그리고 1960년대에 한국 시의 큰 흐름을 이룬 채 사물의 외관을 통해 내면 탐구의 이미지를 추구하던 시인들과 다른 제 나름의 길을 개척한다. “연애와 무모(無謀), 알코올과 피의 속도, 어리석음과 시간”에 취해 고통스런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을 탐색하던 시인은 유추에 의해 서로 암시하고 환기하는 이미지를 중첩시키며 서구적 조사법(措辭法)으로 그것을 독특하게 끌어낸다. 그를 시단에 소개한 박두진은 이런 것을 “특이한 지적 예리성”으로 받아들인다.
1965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신태양사’에 정식으로 들어간다. 정현종은 같은 해 『현대문학』 3월호에 「독무(獨舞)」라는 시로 완료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그는 「독무」에서 “지금은 율동(律動)의 방법(方法)만을 생각하는 때, / 생각은 없고 움직임이 온통 / 춤의 풍미(風味)에 몰입(沒入)하는 / 영혼(靈魂)은 밝은 한 색채(色彩)이며 대공(大空)일 때!”라고 춤의 풍미에 온통 빠져든 영혼의 찬란한 상태를 노래한다. 여기서 시인은 목표가 따로 없는 순수한 도약의 몸짓을 마룻장에서 새들이 가볍게 날아오르는 이미지로 묘사하고, 발레리나의 율동에 도취된 상태를 “살이 뿜고 있는 빛의 갑옷”으로 파악한다.
시인은 「화음」과 「독무」에서 비상하는 영혼의 환희를 드러내며, 그 “서늘한 승전” 속으로 망명하고 싶은 욕망을 고백한다. 이런 욕망은 그가 발 딛고 있는 대지가 궁극적 구원의 세계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시인의 대지에 대한 초월 의지는 춤으로 표출되고, 초월의 상태인 무도에 취해 있을 때 영혼은 환희로 가득 찬다.
1966년 정현종은 황동규 · 박이도 · 김화영 · 김주연 ·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에 참여한다. 『사계』는 5집까지 나온 뒤 『68문학』으로 바뀌면서 발전적으로 해체된다. 1970년 그는 신태양사에서 나와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자리를 옮긴다. 드디어 1972년에 들어, 선배와 동료 문인들이 제작비를 부담해 펴낸 그의 첫 시집 『사물의 꿈』이 ‘민음사’에서 나온다.
『사물의 꿈』의 세계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 즉 존재의 상승과 하강을 표상하는 ‘춤’과 ‘죽음’의 대립 구도 위에 서 있다. 그는 삶의 자리인 대지를 어둠과 죽음의 장소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는 언제나 대지를 초월할 방법을 꿈꾼다.
한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보편적으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달라진다. 한 사회의 집단 무의식과 죽음 또는 삶의 일회성에 대한 그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 이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 방식과 그들이 향유하는 삶의 패턴에 공통적인 힘으로 작용하며,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문화의 기초를 이룬다.
“의식의 맨 끝은 항상 / 죽음이었네.”라고 선언한 시인은 삶의 불가항력적 조건인 죽음을 삶의 한계이자 절망과 좌절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역설적으로 삶의 밝음과 환희를 더욱 극명하게 표출시키는 능동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삶을 ‘고통의 축제’로 파악하고 있는 그의 인식론의 바탕을 이룬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본능으로서의 고통과 유희적 본능으로서의 축제가 결합된 삶에 대해 허무주의적 낙관론을 갖고 있다. 죽음을 긍정하면서 이룩한 이런 낙관적 세계 인식은 자연스럽게 그를 에피큐리언적인 상상력의 세계로 이끈다. 초월 또는 존재의 극치에 이르기 위한 도취의 방법으로 시인은 무도와 술과 관능적 쾌락에 몰입한다.
「무지개 나라의 물방울」은 시인이 왜 도취에 그토록 몰입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인은 이미 「사물의 정다움」에서 “허나 구원은 또 항상 / 가장 가볍게 / 순간 가장 빠르게 왔으므로”라고 노래한 바 있다. 시인에게 구원 또는 삶의 극치는 언제나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삶의 대부분의 시간은 권태로운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이다. 그만큼 일상은 따분하고 권태롭고 무미 건조하다. 시인에게 ‘물방울’이란 존재의 빛나는 상태 또는 상승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미지다. 물방울은 연애, 무모함, 알코올, 피의 속도, 어리석음에 취해 있다. 시인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심연 앞에서도 태연하게 낙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도취’ 덕분이다. 물방울들은 취해 있는 순간 하강해 소멸될 제 운명을 잊은 채 존재의 정상에서 눈부신 형상으로 떠 있다. 마치 우리가 “마침내 가장 낮은 어둔 땅”으로 떨어질 비극을 잊어버리고 있듯이.
시인의 초기 시 세계에서 ‘춤’과 함께 자주 나타나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바람’이다. 바람은 “숨을 번쩍이며 끓게” 하고, “불의 심장에 기름을 부어”주는 어떤 것이다. 숨과 불은 생명력 또는 존재의 상승을 추진하는 원동력을 상징한다. 바람은 뜻없이 되풀이하는 일상을 넘어서도록 의식을 부추기고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치열하게 타오르도록 만드는 역동적 힘의 표상이다. 이와 대립되는 것이 모래와 사막, 밤의 이미지다. 이런 것은 건조하고 척박하며 불모적인 삶의 조건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따라서 ‘바람’은 원초적 생명력, 불멸 상태, 절대 자유, 무한, 초월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시인의 역동적 의식을 보여준다.
1974년 정현종은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와 국무부가 함께 주관하는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이 때 그의 시 15편을 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있던 김우창이 영역해주는데, 이 인연은 1974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고통의 축제』에 붙인 김우창의 뛰어난 해설로 이어진다. 『서울신문』에서 나와 1975년 『중앙일보』 월간부 기자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77년 서울예술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임용된다. 그는 1982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갈 때까지 이 학교에서 재직하며 예비 작가와 시인들을 길러낸다.
정현종은 『사물의 꿈』과 『고통의 축제』 이후 『나는 별아저씨』(1978) ·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1984)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같은 시집을 펴내며 중견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다. 그의 시 세계가 변화의 낌새를 보인 것은 1980년 광주항쟁의 전개 양상과 관련이 깊다. 세상의 거칢과 반생명적 폭력에 질린 그는 이 무렵부터 ‘초록 풀잎’의 생명성을 눈여겨보고, 생명 현상에 고여 있는 기쁨을 노래하는 시편들을 내놓는다.
막 나가는 ‘반생명적 문명’의 속도와 광포함에 질린 시인은 부쩍 ‘자연’ 쪽으로 기울어간다. 시인의 마음은 이내, 자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관습과 제도가 억압할 수 없는 것, 이를테면 사랑 · 생명 · 자유 같은 것과 연애에 빠지며 한껏 고양된다. 자연에 든 그 마음은 다름아니라 선적(禪的) 자유의 경지에 든 마음이다. 이런 마음만이 따뜻한 달걀 하나를 손에 쥐고 「새로 낳은 달걀」에서처럼 감격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우주를 품어 안는 관능적 서정성 속에 무르녹아 있는 생명의 외경감에 대한 거듭되는 새로운 각성의 시편들은 ‘죽임의 행위’에 의해 열린 1980년대의 제도와 관습을, 그 속에 깃들여 있는 독과 같은 그 모든 ‘죽임의 문화’를 외설과 추문으로 낙인찍는다. 물론 이런 것은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은, 숨어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정현종의 시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따로 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아주 극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생명 시편’들을 읽으면 “살아남음의 가장 야비한 형태는 죽임의 행위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시인은 고통의 현실을 뛰어넘어 초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상상력의 샘이 마를 줄 몰라, 『한 꽃송이』(1992) · 『세상의 나무들』(1995) · 『갈증이며 샘물인』(1999) 같은 시집을 잇달아 내놓는다. 이런 시집에 빈번하게 나오는 것은 나무 · 꽃 · 새 · 구름 · 시골 · 기운 · 숨 · 길 · 바람 · 공기 · 하늘 · 산 등이다. 정현종의 시적 화두가 ‘죽음’에서 ‘자연’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한결 분명해진 것이다. 생태학적 관심이 꾸준히 부풀어올라 그는 마침내 “인간은 만물과 더불어 인간이며, 더구나 시인은 만물과 더불어 시인이다.”라고 선언하게 되며, “시인이, 생물권(生物圈) 안에서의 인간의 인간 중심주의나 인간 우월주의와 결별하는 첫 번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새긴다.2) 자연에 깃들인 뭇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날로 깊어지고, 이와 같은 자세는 시인을 생태 근본주의자로 거듭나게 만든다.
시인의 이런 관심의 범주와 세계관의 변모에 대해 김주연은 “사물신(事物神)으로부터 자연신(自然神)으로의 귀환”이라고 말한다.3) 정현종은 뛰어난 시인일 뿐 아니라 자기 이론을 확고하게 정립한 시론가이며, 빼어난 시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시론가로서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1975) · 『숨과 꿈』(1982) · 『관심과 시각』(1983) · 『생명의 황홀』(1989) 같은 책을 내며, 시 번역가로서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와 로르카의 시집 『강의 백일몽』 등을 옮겨 펴낸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