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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시모음
2017년 12월 28일 21시 38분  조회:2871  추천:0  작성자: 죽림

<시간에 관한 시 모음>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시인, 1939-) 

+ 하루의 시간 

오늘 하루는 
내 생애의 축소판.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잘 때까지 
하루 종일 희망을 말하는 사람, 

그게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권대웅·시인, 1962-) 

+ 세월이 가는 소리 

싱싱한 고래 한 마리 같던 청춘이 
잠시였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서른 지나 마흔 쉰 살까지 
가는 여정이 무척 길 줄 알았지만 
그저 찰나일 뿐이라는 게 살아본 사람들의 얘기다 

정말 쉰 살이 되면 아무 것도 
잡을 것 없어 생이 가벼워질까. 

쉰 살이 넘은 어느 작가가 그랬다. 
마치 기차 레일이 덜컹거리고 흘러가듯이 
세월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요즘 문득 깨어난 새벽, 
나에게도 세월 가는 소리가 들린다. 
기적소리를 내면서 멀어져 가는 기차처럼 
설핏 잠든 밤에도 세월이 마구 흘러간다. 

사람들이 청승맞게 꿇어앉아 기도하는 
마음을 알겠다 
(오광수·시인, 1953-) 

+ 시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 죄가 아니다 
시간을 허비한 것도 죄가 된다 
빠삐용이 죽음 직전까지 가서 
깨달았던 것도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한 낭비죄였다 

내일은 언제나 올 것 같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최선이란 말이다 
(윤수천·아동문학가, 1942-) 

+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나폴레옹의 이 말은 10년 동안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송곳이었다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내 많은 실패를 돌아볼 때마다 
송곳은 가차없이 찌르고 찔러왔다 

모든 불행엔 충고의 송곳이 있다 
자만치 말라는, 마음 낮춰 살라는 송곳 
불행의 우물을 잘 들여다보라는 송곳 
바닥까지 떨어져서 
다시 솟아오르는 햇살의 송곳 

송곳은 이제 지팡이처럼 내게 다가와 
신들린 듯 거친 바다처럼 밀어간다 
(신현림·시인, 1961-) 

+ 하루의 위대한 탄생 

그 어떤 사건들보다 가장 나를 흥분케 하는 것은 
'하루'의 탄생이다. 
하루의 탄생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충만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하루는 24시간 동안 매 순간 깨어나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의 눈에는 하루의 탄생이 
어린 아기의 탄생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태어날 것이다. 
내일 나는 다시 한번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 시간의 탑 

할머니, 
세월이 흘러 
어디로 
훌쩍 가 버렸는지 모른다 하셨지요? 

차곡차곡 
쌓여서 

이모도 되고 
고모도 되고 
작은엄마도 되고, 

차곡차곡 
쌓여서 

엄마도 되고 
며느리도 되고 
외할머니도 되었잖아요. 

우리 곁에 
주춧돌처럼 앉아 계신 
할머니가 그 시간의 탑이지요. 
(유미희·아동문학가) 

+ 참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일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 걸렸다. 
(박희순·아동문학가) 

+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작은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만 있다면 

예쁜 병 속에 
한 시간만 담아서 
아빠 가방 속에 
살며시 넣어 드리고 싶다. 

아무리 바쁘신 아빠도 
그걸 꺼내 보시면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으시겠지?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 만들어 
아빠 가방 속에 몰래 
넣어 드리고 싶다. 
(정구성·아동문학가) 

+ 서정시 

2년 후 
아카시아는 시들어 있겠지 
주가는 떨어지고 
세금은 올라 있겠지 
2년 후 
방사능은 더 늘어 있을 거야 
2년 후 
2년 후 

2년 후 
양복은 누더기가 되고 
진실은 가루가 되며, 
유행은 바뀌어 있겠지. 
2년 후 
아이들은 애늙은이가 되어 있을 거야. 
(요세프 브로드스키·러시아 시인, 1940-1996) 

+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강윤후·시인, 1962-) 

+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고 
우리가 살만큼 살다가 
갈 곳이 어디인가를 
소리 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이끼 낀 기와지붕 위로 열린 
푸른 하늘도 한번쯤 쳐다봐라. 
산마루에 걸린 구름, 
숲 속에 서린 안개에 눈을 줘보라. 
그리고 시냇가에 가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가보라. 

차고 부드러운 그 흐름을 통해 
더덕더덕 끼여 있는 
먼지와 번뇌와 망상도 함께 
말끔히 씻겨질 것이다. 
(법정·스님, 1932-) 

+ 멈추어 쉬는 시간 

인생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길을 가라고 재촉하지만, 
우리에게는 멈추어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에 멈추어 서서 
삶을 되돌아볼 만큼 여유를 지닌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예를 들어 갑자기 병이 찾아왔거나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인생이라는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갖게 된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 

+ 그 시간 

어느 날, 
내가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기도하고 있었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의 모두를 
이해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 마음이 
샘물처럼 맑고 호수같이 잔잔했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한없이 낮아지고 남들이 높아 보였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 손이 나를 넘어뜨린 사람과 
용서의 악수를 하고 있었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 마음이 절망 가운데 있다가 
희망으로 설레기 시작했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 눈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었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정용철·작가, 『마음이 쉬는 의자』) 

+ 30초 규칙 

인생은 늘 끊임없는 
결정의 순간을 갖고 있지. 
30초 규칙이란,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섰을 때 
딱 30초만 더 생각하라는 것일세.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라네. 
어떤 결단의 기로에 섰을 때, 
30초만 더 자신에게 겸허하게 물어보라는 것일세. 
이 결정이 내 삶과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신중하게 판단해 보라는 거지. 
(호아킴 데 포사다·엘런 싱어,『마시멜로 이야기』) 

+ 세월 

한 올 한 올 느는 
새치 속에 
내 목숨의 
끄트머리도 저만치 보이는가 

더러 하루는 지루해도 
한 달은, 일 년은 
눈 깜짝할 새 흘러  

바람같이 멈출 수 없는 
세월에게 
내 청춘 돌려달라고 
애원하지는 않으리 

그래도 지나온 생 뒤돌아보면 
후회의 그림자는 길어 

이제 남은 날들은 
알뜰살뜰 보내야 한다고 

훌쩍 반 백년 넘어 살고서도 
폭 익으려면 아직도 먼 
이 얕은 생 깨우칠 수 있도록 

세월아, 
너의 매서운 채찍으로 
섬광처럼 죽비처럼 
나의 생 내리쳐다오 
(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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