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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스1) 안서연 기자 = “어머, 저기 좀 봐.”
9일 오전 11시쯤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해안도로에 한 남성이 등장하자 지나가던 관광객들의 눈이 한 곳으로 쏠렸다.
남성의 옆으로는 두 귀를 쫑긋 세운 당나귀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고, 당나귀 등 위에는 라이더 자켓을 입은 강아지 2마리가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항상 이 풍경을 지켜본다는 카페 ‘그초록’ 직원에 따르면 이들이 해안도로를 걷기 시작한 건 2017년 가을 무렵부터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곤 네 식구가 빠짐없이 해안도로를 나왔고 하루 많게는 4시간 가량 행원리부터 시작해 월정리, 다시 세화리까지 산책을 했다.
당나귀가 마실 물을 카페 마당에 떠다준 뒤 강아지 2마리와 함께 카페에 들어선 조상민씨(44·제주시 구좌읍)는 겸연쩍은 얼굴로 식구들의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다.
당나귀의 이름은 ‘당연히’(암컷), 나이는 8살이다. 연히는 지난해 6월 주변 지인이 잡아 먹으려던 것을 조씨가 극구 반대해 데려다 키우게 됐다.
태어난 지 120일 가량 된 강아지들의 이름은 개누리(숫컷)와 개유리(암컷)다. 조씨가 데려다 키우던 유기견이 낳은 새끼들로, 이들의 부모는 출산의 기쁨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에 치여 숨졌다.
조씨의 품에서 함께 자란 연히와 누리, 유리는 서로가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서로 딱 붙어서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어미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 새끼들을 위해 분유까지 타먹였다는 조씨는 “이제는 이 녀석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면서 함께 산책을 나서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지난해 여름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친 조씨는 손해사정사 일을 그만둬야 했고, 이후 재활을 위해 걷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째. 신기한 광경에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알아봐주는 이들도 제법 늘어났다.
“참 보기 좋아요”라는 관심을 보내줄 때마다 삶의 활력이 생긴다는 조씨.
그는 동물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도민과 관광객들이 동물에게 보다 따듯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유리와 누리의 부모뿐 아니라 이전에 키우던 16살 난 개도, 애완 앵무새도 모두 차에 치여 숨을 거뒀기에 조씨의 마음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내도 아니고 시골마을인데 차들이 서행하지 않고 쌩쌩 달리는 바람에 동물들이 죽었다. 나까지 교통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이제는 트라우마까지 생겼다”며 “제주도가 동물들과 함께 살기 좋은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면서 유기견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꼬집으며 “사람이 생명을 버린다는 게 말이 안된다. 본인이 개로 태어나봐야 버려지는 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생명의 가치에는 경중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꾸준히 산책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조씨는 “앞으로 동물게스트하우스를 차려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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