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碑를 마주할 때면 그 앞에 서서 詩를 읽곤 한다. 돌에 생채기를 내며 촘촘히 새겨진 시어의 낱말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시집에서 읽던 시와는 새삼 다른 풍취를 느낀다.
시는 감성의 언어로 우리를 자극한다. 복잡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시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치유효과가 있다. 사실 시 한 편을 음미하며 차분히 읽을 시간조차 없는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 싶다.
지난주 라디오에서 들었던 우리네 큰 병 중의 하나가 ‘자연결핍증’이라고 했다. 산과 강, 들판이 있는 곳에서 하루를 만끽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연은 우울증을 치료하고 인간의 본래 감성을 자아내게 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시도 그와 비슷한 ‘감성결핍증’을 치유하는 특효약이라 생각한다. 좋은 시를 읽다보면 마음속에 닫혀 있는 우울증이나 화병, 남을 비난하거나 욕하는 나쁜 감정들을 누그러뜨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원시성을 회복한다고나 할까. 여러 곳에서 ‘감성회복과 치유의 詩 읽기’ 강좌가 개설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올봄 오사카와 교토를 배낭여행한 적이 있다. 지난 1991년 무렵 한 번 이곳을 들린 적 있으니 27년만의 여행이다. 그 때는 논문 때문에 자료를 구하러 간 데다 당시엔 이런 시비가 없었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문화공간을 찾아보고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눈여겨본다. 문화도시 광주를 좀 더 살찌우고 싶은 욕심이라고 하겠다. 주요 관심사는 문화콘테츠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그런 생각으로 여행 중에 교토의 동지사대학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대학은 붉은 벽돌로 된 나지막하고 오래된 건물이 많아 인상적이었다.
그런 건물이 있는 한 복판에 윤동주와 정지용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한글과 일본어로 새겨진 詩碑를 보면서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그들을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시인의 이름만으로 그들과 한 공간에 있다고 여겨졌다.
윤동주의 ‘서시’,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나 읽었던 그 시를 다시 읽어본다. 참으로 애달프다. 정지용의 ‘압천’, 사실 ‘향수’는 읽은 적 있지만 이 시는 처음 접해본다. ‘압천’은 정지용이 교토 시절에 쓴 시 가운데 대표작이다. 정지용 시비는 고향인 충북 옥천의 화강암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시비는 교토대학에서 세웠다. 윤동주는 1995년에, 정지용은 2005년이다. 두 사람이 교토대학 출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의 시비를 일본의 대학에서 세운 것 자체가 경이로울 정도이다.
광주에 詩碑는 몇 개나 있을까. 한 번 조사를 해봤다. 모두 42개이다. 이들 詩碑는 너릿재 詩碑공원에 21개로 가장 많고 다음이 광주공원과 사직공원, 그리고 중외공원 등에 있다. 일부는 시 외곽 곳곳에 있다.
1970년 광주공원에 ‘영랑 용아 시비’가 처음 건립된 이래로 48년 동안 42개가 세워진 셈이다. 그 과정에 일부 詩碑 작품의 수준 문제도 거론되는 가운데 선정 원칙이나 시대적인 고려 없이 조선시대부터 근•현대 시인까지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다. 광주와의 연계성이 높지 않은 시인도 상당수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詩碑를 찾아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 발견한 것이 우선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이왕 세울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고 기억하며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있다. 광주시가 이런 詩碑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대부분의 시비가 광주시나 일선 구청이 관리하고 있는 공원지역에 건립되어 있다.
그렇다면 민간단체가 세웠다고 할지라도 허가를 받아 건립한 것일 게다. 그런데도 광주에 詩碑가 몇 개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되어 있고 관리도 허술하여 기단부 훼손이 심한 비석도 있다. 글씨가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 ‘문화도시 광주’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서구청에서 풍암호수공원에 목판으로 만든 시화 35점이 설치되어 이곳을 찾은 하루 3천여명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또 눈여겨보면 알 일이지만 5개 구 가운데 서구 관내 200여 버스정류장마다 시화가 붙여져 있어 문화도시 체면을 조금이나마 세워주고 있다.
광주시는 다른 일선 구청과 협력하여 기존의 詩碑 관리를 이참에 팔 걷어붙이고 해야 할 일이다. 서구처럼 목판 시화를 설치하거나 정류장 시화를 부착하여 언제나 시와 그림을 읽고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길 바란다. 감성의 도시 광주이길 바란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