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줄기 끝에
걸린 노오란 또아리
물 긷는 누나 머리 위에
얹어주고 싶은
둥근 또아리.
해님이 들여다보고
까아만 점을 찍는다.
(허지숙·아동문학가)
+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여 들어
집으로 온다.
(윤동주·시인, 1917-1945)
+ 해바라기 사랑
해바라기처럼 살고 싶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주홍빛 얼굴로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해 살고 싶다.
언젠가 다시 저물녘 어둠이
내려와
따사로운 햇살 내 곁을 떠나가도
고개 숙이고 가을로 솟아오르는 해바라기
해바라기처럼 살고 싶다.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서 있는
영원한 해바라기 사랑이고 싶다.
(김기만·시인)
+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시인, 1914-1946)
+ 해바라기 연가
내 생애가 한 번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 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해바라기의 기도
해를 바라보다 해를 닮았나 보다
하루 진종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구 한 바퀴
이 세상 어둡고 아픈 곳만
두루 살펴왔는지
기억의 뒷굽엔 진창만 묻어 있고
세상 어질고 약한 이들의 한숨 소리만
잔뜩 제 안에 옮겨놓고
햇빛에 날 세워 벼린
눈물 젖은 화살기도 쏘아 올리다
제 가슴은 까맣게 타버린 줄도 모른다
가슴에 맺혀오는 사연이 너무도 많아
슬픈 이름 알알이 까마득히 호명하다가
제 가슴은 새카맣게 숯이 되는 줄도 모른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서
그렇다, 죽는 줄도 모르면서 죽는다
해바라기는
(홍수희·시인)
+ 해바라기
사랑하고 있어요
나, 까맣게 까맣게
그리움의 씨앗을 여물며
그댈 향해 가슴을 열었어요
긴긴 낮 햇살의 어르심으로
가슴에 피어난 여린 꽃잎마다
손 내밀어 준 당신
당신과의 눈맞춤으로 노란
꽃물이 들어 꽃 빛 물든 마음에
오소소 돋아나는 그리움의 씨앗들
비로소 내 안에서 별꽃이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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