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읍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1936.12. (추정).
윤동주 시인의 시 "편지"는 죽은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내용입니다.
윤동주에겐 사실 누나가 없는 걸로 저자는 알고 있습니다.
밑으로 여동생 "혜원"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꼭 이 詩에서 말하는 누나는 친누나가 아니라고 합시다...
물론 교과서 식으로 말한다면
누나는 "조국"이란 의미도 되겠지만..
저자는 "조국"을 제외한 상태에서이야기 하겠습니다...
(청년 윤동주에게도 애틋한 로맨스가 분명히 있었다는
아니면 어린시절 연민의 대상이 있었다는 가정하에)
이 詩의 소년의 누나는 분명 소년이 있는 곳을 떠나 있습니다
소년은 너무나도 그리운 누나에게... 보낼 편지로 누나가 좋아하던..
눈을 담아 보내고 싶습니다
"글씨도 쓰지 말고/우표도 붙이지 말고/말쑥하게 그대로/편지를 부칠까요
하지만 누나는 편지가 닿지 안는 곳에 있습니다...
그리운 이에게 ... 소년은 그렇게 편지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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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그의 나이 19세 무렵 쓰여졌다 하겠다 .
누이가 가신 나라에 눈이 오지 않아 그 누이 같이 희고 고운 눈을 보내고져 하는 시인의 동심적인 글.
군더더기 없는 하얀 눈처럼 덧 붙침 없이 말쑥하게 부칠까요? 하고 물어보는 시인이 누이에 대한 배려.
일방적인 자기 생각으로만 강요하는 세태에 비하면 얼마나 말쑥한가.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 하며 늘 시 마다 부끄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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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동시작가 박두순]
세상에는 없는, 시에서나 존재하는 편지. 민족 시인 윤동주가 쓴 시 편지이다. 글씨 대신 눈만 한 줌 넣은 사연의 '편지', 윤동주가 어린이에게 남긴 동시 선물 37편 중 한 편이다. 어린이처럼 맑은 심성을 지녔기에 이런 동심의 '편지'를 쓸 수 있었던 윤동주. 올해가 탄생 100년이다. 그에게 우표를 붙이지 않은 말쑥한 '눈 편지'를 보내고 싶다.
윤동주는 누나를 몹시도 그리워했다. 얼마나 절절한 그리움인가. 눈 안 오는 나라로 갔으니 눈이 무척 보고 싶을 거야, 봉투에라도 담아 보내고 싶을 정도다. 우린 윤동주를 그리워한다. 이런 아름다운 시인을 가졌다는 건 큰 자랑거리이다.
일본이 죽인 윤동주, 역설적이게도 많은 일본인이 윤동주를 사랑한다. 시의 힘이다. 정지용 시인은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했다'고 그의 서거 50주년 기념 시집에다 썼다. 서울 자하문 언덕의 '윤동주 문학관'을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2017. 2. 1. 자 조선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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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읍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이 시는 누나가 간 나라에는 눈이 안 온다는 말을 듣고 누나에게 눈을 한 줌 넣고 편지로 부칠까 물어보는 내용이다.
그런데 누나가 ‘가신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일 가능성이 높다.
‘글씨도 쓰지 말고 / 우표도 붙이지 말고 / 말쑥하게 그대로 / 편지를 부’치려 하기 때문이다.
글씨를 쓰지 않아도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편지를 쓸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세상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누나가 간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나라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화자의 누나가 가신 나라는 눈이 오지 않는 나라로 겨울이 없는 더운 나라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 시는 시대 상황과 관련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간 누나.
그러나 시대 상황과 연관 시킬 단서가 이 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나가 가신 나라가 어디를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단지 화자가 누나를 그리워하면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전한성
윤동주 할아버지
왜떡이 씁은 데도
자꼬 달라고 하오.
이 시는 할아버지가 왜떡이 쓴 데도 자꾸 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무엇을 말하는 시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왜떡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를 ‘밀가루나 쌀가루를 짓이겨서 얇게 구운 과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떡이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마 유추하면 이는 ‘센베이’를 말하는 것같다.
‘센베이’는 ‘일본에서 온 건과자(乾菓子)의 하나.
밀가루나 찹쌀가루, 달걀, 우유 따위를 묽게 반죽하여 구워 만든다.
맛을 내기 위해 깨나 김, 파래 가루를 섞기도 한다.’라고 되어 있다.
아니면 ‘모찌떡’으로 떡 가운데에 단밭을 넣은 떡이다.
이 둘은 화자가 말하듯이 ‘씁는 데’가 아니라 오히려 달다.
‘왜떡’을 ‘센베이’나 ‘모찌떡’으로 보면 이 시는 시대적 상황을 비판하는 가장 짧은 시가 된다.
‘왜떡’은 일본 떡으로 맛은 달지만 결국은 우리 민족에게 쓴 맛을 줄 것인데,
그 사실을 모르고 왜 자꾸 입에 달다고 일본 것을 받아들이느냐는 내용의 시가 된다. ///전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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