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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기청제(祈晴祭)의 유래?...
2018년 08월 19일 23시 39분  조회:5277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대 고려
성격 제사
유형 의식행사
분야 생활/민속·인류

요약 장마가 연일 계속되어 피해가 예상될 때 나라에서 비가 멎기를 빌던 제사.

 

내용

‘영제(禜祭)’라고도 한다. 원래 ‘영(禜)’이란 산천신에게 빌어 수재·한재·여역(厲疫)을 물리치는 제사를 말한다.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지속된 농경의례의 하나로 주로 입추(立秋) 뒤까지 장마가 계속되어 흉년이 예상될 때에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이다. 따라서, 음력 7, 8월에 가장 많이 행해졌고 그 다음이 6월, 그리고 이밖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도 비가 그치기를 빌었다.

기청제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에 나오는 천상제(天上祭)와 사성문제(四城門祭)에서 나타난다. 사성문제는 대정문(大井門)·토산량문(吐山良門)·습비문(習比門)·왕후제문(王后梯門)에서 지냈고, 부정제(部庭祭)는 양부 사천상(梁部四川上), 곧 견수(犬首)·문열림(文熱林)·청연(靑淵)·박수(樸首)에서 지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사』 세가(世家) 권제4 1022년(현종 13) 10월조에 “장마로 비가 그치지 않아 날이 개기를 군망(郡望)에 빌었다.”라는 내용을 비롯하여, 정종 1년(1035), 문종 27년(1073)·31년, 숙종 3년(1098)·4년, 예종 1년(1106)·5년·8년, 인종 7년(1129), 공민왕 19년(1370)·20년·21년 등에 그 기록이 보인다.

제의는 기우제와 비슷하게, 천상(川上)·북악(北嶽)·송악(松嶽)·박연(朴淵)·상하신기(上下神祇)·태묘(太廟) 및 제신묘(諸神廟)·묘사(廟社)·팔릉(八陵)·사직(社稷)·군망·산천(山川)·불우(佛宇) 등에서 지냈는데, 이로 보아 그 방법이나 양상이 다양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 『고려사』 지(志) 권제17에는 비가 오랫동안 내리면 국문(國門)에 영제를 지내는데 이때 제사를 지내는 풍사단(風師壇)·우사단(雨師壇)과 같은 큰 규모의 제단들에 대한 언급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실록』 1404년(태종 4) 7월조에 “산천단(山川壇) 및 불우·신사(神祠)에 기청했다.”는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대문에 영제를 지낸 기록이 고려 때보다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영조와 고종 때 가장 많이 나타난다. 1421년(세종 3) 6월 조에는 “예조에서 아뢰기를 고려 『고금상정례(古今詳定禮)』에 이르되, 장마가 그치지 않으면 서울 성(城)의 여러 문에 영제를 올리는데 각 문마다 3일 동안 매일 한 차례씩 하고, 장마가 그치지 않으면 이에 산천·악진(岳鎭)·해독(海瀆)에 3일 동안 기도한다.

그래도 그치지 않으면 사직과 종묘에 기도하며, 주현(州縣)에서는 성문(城門)에 영제를 지내고 경내(境內)의 산천에 기도한다.”고 하며, “장마가 오랫동안 덮쳐서 벼를 손상시켰으니, 국문과 주군(州郡)의 장마비가 많이 온 곳에 영제를 지낼 것을 진언하여 그대로 시행했다.”는 비교적 구체적인 기록도 전한다. 이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예(禮)를 그대로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제의 장소 및 형식은 고려시대와 비슷하나 조선시대에는 주로 도성의 4문, 곧 숭례문(崇禮門)·흥인문(興仁門)·돈의문(敦義門)·숙정문(肅靖門)에서 많이 행해졌다. 『춘관지(春官志)』 권1 향사총재(享祀總載) 영제조(禜祭條)에 따르면, “4문에 당하3품관(堂下三品官)을 보내어 연사흘 기청제인 영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3차에 걸쳐서 다시 4문에서 거듭 행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전회통(大典會通)』 권3 예전(禮典)에 따르면 “사문영제(四門禜祭)는 문 위에서 설행(設行)하되 개폐(開閉)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정원(政院 : 승정원)에서 군명(君命)을 받아 열고 닫는다.”고 하였다.

기우제가 거의 연중행사였고 해에 따라서는 수차 거듭되는 데 비하면, 기청제는 드문 편이기는 하지만 어진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표방하던 농본국의 중대한 제정(祭政)의 한 부분이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기청제는 민간에서도 지냈고, 의식은 기우제와 비슷했다고 하나 민간의 전승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덤으로 더...
 

요약 전근대시대 때 장마가 그치고 날씨가 맑아지기를 기원하는 제사.

 
기청제
기청제

ⓒ 연합뉴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영제라고도 한다. 중농국가에서는 기우제와 함께 중요한 제사였다. 일반적으로 7, 8월 이후 입추까지 장마가 계속되어 흉년이 예상될 때 지냈다. 삼국시대부터 국가에서 기청제를 지낸 기록이 있다. 국가에서 행하는 기청제의 의식은 기우제와 비슷했다.

4대문에서 먼저 지냈는데, 그밖에 절과 송악·박연(朴淵) 등 명산대천, 종묘 등에서도 행했다. 고려의 〈고금상정례 古今詳定禮〉에서는 장마가 그치지 않으면 서울 성문에서 매일 1차례씩 3일 동안 지내고, 지방의 산천·악진에서 3일 동안 제사하며, 그래도 효험이 없으면 사직과 종묘에서 기도하며 주현에서는 성문에서 영제를 지내고, 경내의 산천에서 기도하도록 규정했다.

조선의 경우도 이와 유사했다. 도성의 4문에 당하삼품관을 보내 3일간 영제를 지내고 효험이 없으면 3번 다시 지냈다. 사문영제 동안은 성문을 닫는데 부득이 열어야 할 때는 승정원에서 왕명을 받아 개폐했다. 기청제는 민간에서도 행했는데, 역시 기우제와 유사했다고 한다.

=====================///덤으로 더 더...
 

지금도 큰비가 내리면 재산 손실이 나거나,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생깁니다. 천재지변이라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큰비를 뜻하는 '대우(大雨)'라는 낱말이 무려 960번 나오며, 비가 오지 말게 해달라고 하늘에 비손하는 '기청제(祈晴祭)'라는 낱말도 225번이나 보입니다.

우선 큰비가 왔다는 예를 보면 세종 9년(1427년) 큰비가 내려 경북 상주에서 산사태가 나 묻혀 죽은 사람이 7명, 떠내려간 집이 43채이고, 선산·의성·함창·군위에서 떠내려가 죽은 사람이 23명, 산사태 난 곳이 무려 6,779군데나 된다고 나옵니다. 지금도 비가 오면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때는 더욱 처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가 계속해서 내리면 기청제를 지내지요. 특히 벼가 익어갈 무렵 오랫동안 내리는 비는 임금이 크게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태종실록》 36권(1418년 8월 7일자)에 "예조에서 아뢰기를, '백곡(百穀)이 결실할 때인 지금 오랫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니, 8일에 기청제를 행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청제를 하는 동안에는 성 안으로 통하는 물길을 막고, 성 안의 모든 샘물을 덮으며, 물을 쓰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되었습니다. 기청제 전날 밤에는 비를 섭섭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는 금지되는데 심지어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습니다. 또 이날 음(陰)인 부녀자는 시장 나들이를 일절 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았습니다. 큰비에 백성이 피해를 볼까 걱정하는 임금의 마음이 느껴지나요?
===================덤으로 더 더 더...
 

입추

 

24절기 중에 열세 번째인 입추(立秋)는 음력 7월의 절기에 오기 때문에 양력으로는 8월 7일이나 8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135도에 위치하는 날로서 입기일이다. 입추는 ‘가을(秋)로 들어서는(入) 절기’임을 의미하는 날이다. 동양력(東洋曆)에서 가을은 ‘입추 날부터 입동 전까지의 3개월’로 규정한다.

 

아직은 늦더위인 잔서(殘暑)가 진을 뺄 정도로 괴롭히면서 기승을 부리는 까닭에 가을을 실감하기 어려워도 밤이면 선선한 기운이나 바람이 조금씩 일기 시작한다. 무더운 여름 뙤약볕도 아랑 곳 하지 않고 매달려야 했던 고된 농사일에서 한걸음 옆으로 비켜서서 숨을 돌릴 여유가 주어지는 관계로 더욱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한가로운 틈새의 순간이다. 이런 이유에서 ‘7월은 어정 어정거리다가 보면 지나간다.’는 뜻으로 예부터 ‘어정 칠 월’이라는 별칭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그 옛날 선조들은 입추 보름 동안을 닷새씩 나누어 3후(候)라고 규정했다. 이 중에서 초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차후)에는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말후에는 쓰르라미가 운다고 했다.

 

입추에 즈음해 전해지는 중요한 풍속은 기청제(祈晴祭)를 들 수 있다. 입추 전후의 시기는 벼가 출수(出穗)를 하면서 한편에서는 한창 여물어가는 계절이다. 그런 중요한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입추를 자나고도 대책 없이 비가 계속 내린다면 벼가 제대로 여물이 들지 않거나 영글지 못해 그 피해가 막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이 입추를 지난 뒤에도 닷새 이상 비가 연이어지는 경우 예상되는 재앙을 막기 위해 조정이나 마을 공동으로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를 지냈다. 이를 성문제(城門祭) 혹은 천상제(川上祭)라고도 불렀다. 비가 꼭 필요한 시기에 가뭄이 끝없이 지속될 때 정성을 다해 모시던 기우제와 일맥상통하는 풍습이다.

 

중국의 고문헌인 춘추번로(春秋繁露)에 기청제를 ‘영(榮)’이라고 정의하면서 제를 지내는 방법을 세세히 열거하고 있다. 먼저 성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길을 완전히 틀어막는 한편 성 안의 모든 샘물을 덮는 것으로 제를 모실 채비를 한다. 그리고 제를 지내는 동안 성에 사는 모든 사람은 물을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생리적인 배설인 소변도 보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하도록 했다. 결국, 이 기청제를 지내는 동안 비를 떠올리는 어떤 유사한 행위도 일체 용납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심신이 정갈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심지어는 남녀 사이의 방사(房事)까지도 금지시켰으며, 제를 지내는 기간에는 부부도 서로 다른 방을 쓰도록 엄하게 규제했다는 기록이다.

 

농경사회에서 입추 무렵이면 의례적으로 해오던 농사일이나 고유한 습속을 살핀다. 보통 입추를 지나고도 늦더위의 위력은 여전히 대단하지만 보일 듯 말듯 그 기세가 꺾이면서 참깨나 옥수수 같이 일찍 수확한 작물이 자라던 밭에는 가을에 김장에 쓰일 무나 배추 씨앗은 물론이고 구황작물로 재배하던 메밀도 그 무렵에 파종했다. 아울러 벼가 무럭무럭 자라 결실기에 드는 시기이기 때문에 병충해에 대한 대비는 물론이고 논에 물대기와 물빼기 작업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에 비가 잦아 궂은날이 지속되거나 장마가 물러가지 않고 뜸을 들이면 벼의 이삭도열병이, 반대로 높은 고온이 지속되면 멸구 같은 해충이 기승을 부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야무진 대비가 필요했다.

 

그 옛날 농사는 하늘에 많이 의존할 밖에 도리가 없는 환경이었다. 전체적으로 수리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우순풍조는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조상들은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데 비와 바람이 많이 동원되었는데 입추에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면 입추에 ‘동풍이 불면 풍년이 든다.’라거나 ‘비가 조금 오면 풍년이 든다.’는 식으로 풍흉을 점쳤던 습속은 정겹기도 하다. 그렇지만 절박한 삶의 내면적인 진솔한 욕심을 여과 없이 겉으로 드러낸 것 같아 눈물겹기도 하다.

 

가난했던 조상들의 삶에서 일 년 중에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춘궁기로 알려진 보릿고개(麥嶺期)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음력 3월에서 4월에 이르는 기간은 겨울을 나며 식량이 동이나 초근목피로 어렵사리 연명하거나 굶는 날이 많아 부황이 드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허다했다. 춘궁은 분명히 어려운 시기였지만 새로 돋아난 나물이나 풋보리 바심을 하더라도 기근을 버텨냈다는 견해도 있다.

 

춘궁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음력 7월경이 더욱 궁핍해서 견디기 어려웠다는 얘기이다. 이 시기를 일컬어 ‘칠궁(七窮)’이라고 했으며, ‘7월에 드는 궁핍한 시기’라는 정도의 뜻이 되리라. 칠궁 무렵에는 만만하게 뜯어다 먹거나 꺾어 먹을 나물이나 소채가 거의 없고 풋바심할 보리 같은 곡식도 없어 가난한 사람들은 보릿고개보다 더 고통스러웠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보리는 ‘이삭이 팬’ 뒤에 스무날 정도 지나면 풋바심해서 먹을 수 있다. 그에 비해서 벼는 ‘이삭이 팬’ 다음에 최소한 한 달 반 정도가 지나야 풋바심이 가능해 칠궁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는 견해이다. 이런 시절을 대변하는 뜻이었을까. ‘칠궁은 춘궁보다 무섭다.’라는 말까지 전해진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절기’인 입추를 맞는 농민의 감회는 특별했을 것이다. 이른 봄부터 끝없는 일에 헤어나지 못하고 고된 농사일에 찌들어 허둥대면서 쇠잔해진 심신을 추스르며 잠시라도 숨을 고를 틈이 마련되었다는 이유에서 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가을걷이 채비를 빈틈없이 한다면 마냥 가볍고 흐뭇하며 기껍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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