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시와 인간의 바른 삶과의 조망
권혁률(문학박사, 길림대 외국어학원 교수)
1.
문학은 인간의 삶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환언한다면 문학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춘추시대의 공자는 흥관군원(興觀郡怨)(<論語 陽貨>)으로 문학이 우리에게 미적 감상뿐만 아니라 사상을 풍부히 하고 바른 삶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데서 가지는 의의를 천명했다. 문학과 인간의 삶에 관하여 한 나라의 왕충(王充)은 보다 선명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던 바 즉, "위세용자, 백편무해; 부위용자, 일장무보(爲世用者, 百篇無害; 不爲用者, 一章無補)"(<論衡` 自紀>라고 했다. 근대에 이르러 백화문으로 문학혁명을 주장하고 나섰던 신문학의 선구자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열띤 관심을 보였다. 1917년 호적(胡適)은 <문학개량추의(文學改良芻議)>에서 문학개량을 "8사(八事)"로부터 착수할 것을 주장했는데, 거기에 "언지유물(言之有物)"과 함께 "무병신음(無病呻吟)"에 대한 거절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자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시학>)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문학이 인간과 그들의 삶에 본령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고금중외 문학에 관한 이론들을 일별하여 본다면 예외 없이 문학은 반드시 인간과 그들의 삶과 연관을 맺어야 비로소 존재의 가치와 생명력을 확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 배경은 시의 창작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시 역시 '인간을 모방'한 창작이라고 했을 때 서사시는 인류발전사의 한 기록이 될 것이고, 서정시의 경우 인간 정서의 한 표현형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문학은 어떠한 시각에서든지 인간의 삶과 이러저러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때로는 적극적인 역할을, 때로는 소극적인 심지어 부정적인 역할을 일으키기도 하게 된다. 다시 말한다면 문학은 창작자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인간의 현실적인 삶에 작용하는 형이상학적 존재이다.
문학과 인간의 삶에 관한 이러한 연원들을 살펴보는 것은 시인 김철호의 작품세계를 조명해보기 위한 예비 작업이 된다. 소설로 문단에 발들 들여놓고, 다시 시 창작으로 전환한 시인 김철호는 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해야겠다. 문인들 중 시로 등단하여 소설로 자신 창작세계의 최고 경지를 개척한 사례는 적지 않지만 시인 김철호는 그 정반대의 향방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시인에 대한 관심 또는 호기심의 기인(起因)은 자연 시인의 창작물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진단에서 찾아야 할 터이다.
2.
시인 김철호의 시작(詩作)은 겸손의 자세를 어렴풋이 보이고 있다. 이는 시인 작품집의 이름이 <우리는 다 한 올 바람일지도 모른다>와 같은, 단지 표면적인 현상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진정 작품이 자연스럽게 풍기고 있는 뉘앙스이다. 이는 동시에 정을 붙였던 시인에게 나타난 고유한 특성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시인의 동시마저도 단지 동시로만 취급하기 어려운 점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어의 사용과 같은 형식문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동시에서도 어느 정도의 사회적 관심, 즉 인간의 삶에 대한 집요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로도 이해 가능하다.
1) "작아도/저놈이 엄마새란다"(<참새>)
2)"해종일 똑딱똑딱/구술땀 똑똑… 와ㅡ 돌속에/멋진 소년이/있었댔구나"(<석공>)
3)"구름이며/바람이며/다 가졌던 하늘/눈이며/비며/다 차지했던 하늘…다ㅡ버리고/가장 높은 하늘 되였다.(<가을 하늘>)
4) 이 나무의 이슬…/이 산의 이슬을…/이 세상의 이슬…/다-아 모아보면/호수만한/큰 이슬 될거야!(<이슬 1>)
위의 몇 편의 동시는 동시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단지 동시에만 그치지 않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의 경우 소꿉놀이 장면을 상기시키는 시구인데 "엄마 새"가 "애기 새"를 먹여주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책임을 맡은 바이라면 모름지기 책임과 역할에 최선으로 충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2)의 경우는 "고생 끝에 낙"이라는 민족의 속담을 떠올리는 시구로서 오로지 진지한 노력만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해독이 가능할 것이다. 3)의 경우 공리적인 욕심을 버리기만 하면 최고의 성공을 이룩할 수 있음을 예시하는 시구이다. 4)는 역시 또 하나의 속담 즉 "티끌모아 태산"과 연관을 지을 수 있는 시구로서, 어느 때나 전통적인 미덕의 하나인 절약정신 또는 단결정신에 대한 시인의 동시적 해석으로 간주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입수한 시인의 동시작품의 양적 제한으로 그 전모를 살펴볼 수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위의 동시의 편린들에 흐르고 있는 시인의 깊은 시적 고민은 여전히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동시의 형식에 기대고 있지만 그것은 천진란만한 어린이들의 즐겨 읽을 수 있는 시어, 문구라는 의미 외에도, 성인들에게까지 일정한 삶에 관한 계시를 전달해주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더구나 개미조차 "그 하늘에선 하나의 태양이다"(<룰>)는 1)의 "엄마새"와, "자신을 가장 낮춘 무리들이 모여서 가장 큰 힘 만든다"(<바다3>)는 모든 소유욕을 버리는 3)의 경우와 일맥상통하는 시인의 시적 상상의 세계로 귀납시켜야 하지 않을까. 요컨대, 시인은 창작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었던 동시에서 이미 보다 넓고 깊은 시적 상상의 세계에 대한 지향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환언한다면 동시의 세계가 시인 창작의 초심을 이끌어낸 수석(秀石)이고 창작세계의 터를 마련하는 주춧돌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시인의 성숙된 주옥의 작품세계를 조명할 필요가 있게 된 것이다.
3.
전술했던 바와 같이 시인의 작품에 대한 양적 입수의 제한 때문에 부과된 본고의 작업에는 일정한 애로가 없지 않는 실정이다. 하지만 감히 일엽지추(一葉知秋)의 판단이라도 서슴치 않으려는 본고는 진정 시인의 한정된 작품에 그만큼 깊은 감동을 얻었다는 데에 그 근거를 둔다.
김철호 작품에는 생명의 존엄에 대한 경외심이 유난히 돋보이고 있다. 앞에서 시인의 시작(詩作)은 겸손의 자세를 어렴풋이 보이고 있다고 했던 바인데, 바로 동일한 맥락의 이해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세상이 얼마나 큰지 모르기에 무지막지한 떠벌이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겸손은 타자의 존경심을 자아내고, 경외는 타자의 존경심을 불러온다. 시인 김철호는 이 두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생명의 모든 것을 존경시하면서 경외의 마음으로 생명의 모든 현상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시인의 초심이라고 할 정도이다.
작은 생명이래도
그건 하늘보다 더 큰 숨
…(중략)
저기 기여가는 개미도
그 하늘아래선 하나의 태양이다
-<룰>의 일부분
저 큰 하늘보다
더 크게 눈빛 빼앗아 가는
노란 숨!
-<나비>의 일부분
"개미"와 "나비"는 미물임에 틀림없다. 미물이지만 하나의 생명임에도 틀림없다. 시인은 바로 이러한 미물적인 존재도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점에서 배려하고 존경심을 인색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미 역시 "바다를 품"을 수 있고, "하늘을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같이 모두 "숨"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우리 하나의 숨으로/살고 있다는 걸" 과연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이다. 미물조차도 생명체로서 주목하고 배려하는 시인의 초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명체에 대한 시인의 존경과 경외심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지옥의 덮개인 흰구름 딛고
두개의 태양이 떴다
피안(彼岸)을 향한 걸음은 언제나 시작
설마 천당을 고별한다 할지라도
태양은 구을러간다
우리 이렇게 걸어왔다
우리 이렇게 하늘 떴다
저기 기여가는 개미도
그 하늘에선 하나의 태양이다
-<두개의 태양> 전문
"저기 기여가는 개미도/그 하늘에선 하나의 태양이다", 이 시구는 시인의 두 작품에서 그대로 두 번 반복 사용되고 있다. 시인은 바로 자연계의 미물인 '개미'를 앞세우는 수법으로 실제로 만물의 주재자로 군림하다시피 한 인류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미물에 월등한 인간의 생명은 "자음과 모음이 섞이여야" 비로소 완정한 "삶"이 되는 바, 그 '무서운 힘'은 '남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황홀한 궁전'에서 '대문을 닫아걸고' 은둔자로서 남자와 '힘과 힘의 만남 숨과 숨의 겨룸'(<東牟山>) 속에서 온양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에 대한 시적 탐구라고할 수 있는 시인의 발상인데, 시인의 특유의 수사법에 의해 은유적이지만 과감하고 기발하며 참신한 시인의 작품세계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다. 생명의 존엄에 대한 존경과 경외감은 시인으로 하여금 모든 시적 상상력을 인간의 생명체 또는 삶과 연관을 짓고 있다.
수자를 처음 알았을 때,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초견()의 진리를 깨달았을 때의 경이로움의 소년, 전은 팬티속에 무서운 힘이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희나리>의 일부분
위의 인용에서처럼 시인은 생명체의 원초적인 힘에 주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니다, 생리가 시작되었다/붉은 피줄 일어선다"(<12월 맨마지막 날의 일기>); "바람이 눈을 뜬다/파도가 잠을 깬다"(<바다 5>); "일몰은 죽음이 아니다/서서히 오는 탄생은 어둠/새로운 생명이 숨어있다"(<바다>) 등 삶의 현장의 특징적인 생명현상들에 대한 집요한 주목으로써 생명에 대한 더 없는 경외의 마음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시인의 작품세계에 흔하게 보이는 의인화 수법의 인용 역시 인간의 삶에 대한 시인의 배려와 경외심, 그리고 모든 것들을 인간의 삶과 적극 연관시키려는 시적 상상력을 함께 보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4.
생명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시인이었기에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수 있었다. 시인 미당(未堂)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생명의 원동력을 일컬어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화사>)라고 했다. 시인 김철호는 또 과연 생명에 대한 얼마나 커다란 고민을 갖고 있었기에 이토록 인간의 삶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삶에 대한 시인의 집착과 관심은 삶을 옹위하는 환경과 그 배경에 대한 주목으로 이어진다. 자연의 상관물에서 일부 미물들에 대한 시인의 주목이 인간이란 지존의 생명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시적 상상의 전략이었다면, 생명체 삶의 환경에 관련된 자연 상관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불(大佛)은 때투성이야
수수백년 때 한번 씻지 않았으니
와우, 냄새가 지독하구나
(중략)
눈을 찔러대는 누런 파도는
페를 싹 좀먹이고 있어
-<바다.1>의 일부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바다, 인파로 넘실거리는 사람의 바다, 인간 생존환경 일각의 모습이다. 인정으로 넘친다고 할 수는 있어도 아직 현대문명 또는 현대지성이 닿지 못하는 황막한 곳이다. 유구한 역사적 자산일지라도 인간의 현실적 삶에 기여할 수 없는 것은 단지 '지독한 냄새'만 풍겨 오염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으며, 현대적 문명이 미치지 못하는 사막은 그대로 인간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현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열악한 삶의 환경일지라도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욕망은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동시에 보는 것은 "손을 뻗쳐 바다자락"을 잡아당기는 여인, 그러한 바다와 결투에서 결국 "바다가 찢어지면서 혈흔을"을 드러내도록 강인한 인간의 모습이다.
네명 악사들의 현악합주가 들린다… 이날에는 다이야몬드목걸이도 하나의 돌맹이에 불과했다… 그 민족은 바다였다. …피가 모여 먹물이 된 바다… 자신을 가장 낮춘 무리들이 모여 가장 큰 힘 만든다. 영원한 생명되였다.
-<바다.3>
영화 <타이타닉>의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한 장면이다.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며 자신의 역할에 몰두하는 악사들, 인간의 생명 앞에서는 하나의 돌맹이에 지나지 않는 다이야몬드, 바로 이러한 생명지존, 생명의 가치를 최상의 재부로 삼고 있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기에, 바다는 "자연외의 것을 다 버린"(<바다.5>) "금빛 찬란한 세상"을 지향하고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그래서 가장 순수미를 지닌 '민족의 바다'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냄새가 섞인 바다/그래서 바다의 냄새를 냄새라고만 할수 없다", 그것은 정녕 "서서히 오는 탄생", "새로운 생명이 숨어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며 희망의 소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의 현장으로서의 현실은 상처투성이고 괴로움 투성이다. "탈선한 렬차", "각도가 비뚤어진 명(明), "살점을 뜯는 바람", 이는 모두 "탄생은 아픈것이다"(<뇌출혈.1>)는 진리를 방증하는 사례들이다. 따라서 시인은 "시는 덜미를 쥔채 쓰러져 운다/웃는다"고 부르짖는다. 희비가 엇가리는 삶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덜미를 잡힌 시, 그래서 그 시는 정녕 "쉽게 씌어지는 시"(윤동주)가 아닌 것이다. "내장이 텅 빈 잉어"(<盜伐>)를 만들어내는 이 현실 속에서 시인은 자신 나름의 끈질긴 노력으로 "쉽게 씌어지지 않는 시"를 견인불발하게 써 나가고 있다. 왜냐, 바로 "하늘은 눈 뜨고 보고 있다"는 굳은 신념이 있기에,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의 가치, 시의 생명력이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의 작품은 인간의 삶에 참여하고 참된 삶과 시적 조망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5.
문단에서 바야흐로 활약상을 보이는 중견 작가에 대한 평가는 신중을 기한다. 그것도 한정된 시편에, 공감을 자아낸다는 이유로 부과된 소임을 행해야 하는 본고는 그야말로 누란(累卵)의 위기를 찾아가고 있는 작업인 듯하다. 텍스트에 대한 해독은 여러 가지 이론, 방법이 동원될 수 있다. 본고는 한 독자의 나름대로의 일가견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무병신음'을 멀리하고 '언지유물'을 위해 대담한 판단을 하는 것으로서 맡은 바의 소임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자는 목적을 이루었다.
시인 김철호는 인간의 삶에 입각한 시적 상상력에 근거한 견인불발한 창작을 멈추지 않고 있다. 소설의 내면화에 보다 더 필요한 시간적 요소 때문에 시 창작에 임하였을 수도 있지만, 그는 시종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에 주목하고, 인간의 삶에 관한 시적 상상력을 과감하게 동원하고 있다. 원초적인 생명력의 시화(詩化), 삶에 대한 반동적인 요소들에 대한 비판에 더 비중을 증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면 시인은 삶의 과정을 시의 창작으로 간주하는 정도의 집념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도 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쉽게 씌어지지 않는 시"임에 틀림없으니, 보다 확장되고 여유 있는 시공간의 확보에 기대를 걸어야 할 터이다. 시인의 새로운 정진과 건투를 빌면서 맺음말을 대신한다.
(“도라지” 2018년 제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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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외8수)
김철호
과거로 가는 길은 색갈을 지우는 일이다
분홍립스틱을 지우고
금빛 머리카락 지우면
검은 것과 흰 것만 남는다
50년 전, 100년 전이 탄생한다
두 가지 새갈만 있었던 세월
눈 감으면 검고 눈 뜨면 하얗던 세월
밤은 검기만 하고 낮은 하얗기만 하던 세월
흰 것과 검은 것 외엔 다른 색갈이 필요없었던 세월…
희고 먼 하늘,
검은 이파리의 떡갈나무,
검은 눈동자엔 흰 눈빛이 반짝인다
흰 미소가 입가에 배달려있고
검은 분노가 가슴에 엉켜있다…
그러나 눈 감고 색갈들을 살살 지우면
찬란히 환생하는 흑백의 세계,
거기서 우리의 과거가 웃고 있다
그 어떤 칼라로도 가리울 수 없는 우리의 과거가
검은 파도 흰 파도로 출렁인다
같은 맛
바다의 맛과 눈물의 맛은 같다
그러니 눈물을 흘릴 때 바다가 흐르는 것이다
그것이 작은 아픔이래도
보잘 것 없는 슬픔이래도
바다다
눈물의 맛과 바다의 맛은 같다
그러니 바다가 출렁거릴 때 눈물이 출렁거리는 것이다
그것이 큰 파도래도
하늘 같은 통곡이래도
눈물이다
저고리
잔디를 다 덮고
하늘을 다 감싸
뿌리 깊은 나무 숨겨주고도
남는 품
욕심 많은 저 작은 가슴에서
뜬 별 얼마일가
새버린 해 달 얼마일가
노을 물 묻혀 쓴
천년의 이력서에는 꽃씨의 숨
고름줄을 쥐고 주춤거리는 짐승을 밀쳐라
흰 달덩이는 하늘 것이다
삶과 죽음
삶이 죽음 보고 말한다
넌 왜 이렇게 곁에 딱 붙어서서 떠날념 안하는거니? 조금만 한눈 팔면 앞에 나서려 하니 괘씸하구나
죽음이 대답한다
참 답답하다 우린 쌍둥이로 태여난 친형제란다 네가 딱 막아서서 앞에 나서지 못하지만 암 때건 너를 져쳐버릴 것이다
삶이 다시 말한다
우리를 쌍둥이로 낳은 하느님이 원통하구나 난 니가 정말 질색이다 싫어 못 살겠다 너를 피하느라 갖은 고생이다만 세월 갈 수록 네 힘에 밀리우는구나
죽음이 다시 말한다
네가 앞에 있대서 내가 없어지는게 아니구 내가 앞선대서 니가 없어지는게 아니다 니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니가 있다
삶이 돌아서며 죽음의 어깨를 잡자
죽음도 삶의 어깨를 잡으며 웃는다
그래, 우리는 친형제지!
그렇다, 우리는 한몸이다!
해골
눈동자가 없는
빈 눈집
코바루가 없는
빈 코집
아ㅡ사람의 입은
아궁이였구나
입술로 곁치례만 안했더면
한솥의 밥 단숨에 들어갈
굴 같은 아궁이였구나
섬
나비야, 넌
파란 하늘 작은 뭍
가닿을 수 없는 먼 눈빛
놓쳐버린 예쁜 자리
못난이는 자신의 둥지
항상 스스로 빼앗긴다
날아가는 나비를
쫓지 말어라
나비는
바람 따라 가는 숨 아니다
나무
나무는 참으로 먼 곳에서 오래 온 것 같다
한번 쉬기 시작하니 떠날 생각을 안한다
밟아본 기분인 듯 늘 하늘 한 자락 쓰고 있다
아무리 가는 바람이래도 나무에게 들키면
꼼짝 못하고 예쁜 심음(心音)을 보인다
동서남북상하를 향한 푸른 입들은 늘 벌려져 있고
별이며 달이며 구름이며 태양이며 이슬이며를 끝없이 탐식한다
하나의 커다란 날개를 만드느라
서서히 오래오래 머물며 꿈을 익히는 망(网),
자취 없는 나래질 소리를 념(念)하는 깊은 숨을 아무도 모른다
푸득! 나무는 오늘도 나래의 힘을 가늠해본다
뿌리
칼퀴손이
땅을 꽉 붙잡고 있다
날개 굳은 커다란 새
날기 위해 키워온 힘
한번도 써보지 못하고
날가말가, 날가말가
퍼덕인다
오늘도 동이 트는 하늘
빨간 불덩이 향해 윽벼르더니
어둠의 그물에 걸려
어깨 내린 새
태공을 날 꿈 잊지 않고
백년을 버티는 억센 갈퀴손
땅에 꽉 박고 떤다
차(茶)
ㅡ물의 고백
당신을 맘껏 피워주기 위해
나 한껏 끓으리
당신의 몸에서 노란 향기 우러나
내 속에서 춤 출 때
한 모금 꿈으로 설레리
끓어, 팔팔 끓어
내가 통째로 당신으로 꽉 찰제
당신은 온통 나로 넘실거리려니
당신과 나는 드디어 한 몸 되여
하늘에 가 구름과 비의 만남을 보리
새로운 우주를 만들기 위해
하나의 숨 속에 들어있는
당신은 차(茶),
나는 물!
(2018년 "도라지" 제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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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박힌 가시(외8수)
김철호
내가 아이 때 엄마는 아버지를 욕한다는 것이
“니 애빈 승얘(승냥이)네라, 승얘네라!”
친구들 모아놓고 북 대신 미닫이문 밀고당기면서
타닥탁탁… 둥둥둥둥…
달 떨어지는줄 해 돋아나는줄 모르고 술 마셔대고 담배 피워대며
애들 반찬까지 말끔히 먹어버리는 아버지가
승냥이같기도 하였겠지만 봉금날이면 과자봉지 사탕봉지 안고오는
아버지가 아버진 아버지여서 우린 많이 따랐는데
엄마 보다 애들을 더 고와하는 아버지가
엄마 눈에는 왜 승냥이로 보였을가?
때때로 방에서 흘러나오는 승냥이 울음소리가
엄마의 목소리임에도 엄마는 아버지가 승냥이라고 하는 일
무척 궁금하고 야릇했지만 바스락소리 하나 없이 귀 열고 잤었다
“니 애빈 승얘네라, 승얘네라!”
엄마에겐 아버지가 승냥이가 맞긴 맞길래 죽을 때 마지막 하는 말이
“절대 그것(아버지) 곁에 안 갈테니 그냥 태워서 날려보내달라” 했겠지!
그래서 그렇게 했다!
꺼먼 연기가 검은 가시처럼 하늘에 박히는 화장터의 굴뚝 바라보며
어떤 한이 있었길래 죽어 만나지 않겠다고 악을 쓰셨을가?
그런 한으로 우리 다섯 남매를 어떻게 배고 낳았을가?
엄마의 승냥이 울음소리는 진짜 승냥이 울음소리였단 말인가?
하늘에 박힌 저 가시가 과연 무얼가?
아아… 회석된 검은 연기처럼 이젠 영원히 알수 없는 하늘의 저 숨!
구절초
열여덟살,
입술로 뜯은 꽃이파리
그것이 왜 그렇게 따가왔을가
물리운 듯, 덴 듯
왜 또 아프기도 했을가
지금도 나를 흔들어주는 것이
나를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 바람이라면
나 바람되여 달려가련만…
열여덟살,
그때 나를 흔들어준 바람은
톡 터지면 볼 빨간 봉선화도 아니였다
먼 바자굽서 수줍어 하던 철모를기꽃도 아니였다
시선을 잡고 놓지 않는 백일홍도 아니였다…
너무 흔해빠지고 향기롭지도 않아
귀한줄 몰랐던 아픈 꽃의 숨 한 모금
나의 년륜에 찍힌 고마운 흰 점 하나!
바위
바위를 옮겨다 시(詩)를 새기니 시비(詩碑)가 되였다
시비(詩碑)가 된 바위는 자기가 바위였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도고해졌다
새겨진 시(詩) 때문에 옷자락 여미는줄도 모르고
자기 앞에서 경건해지는 사람들 눈길을 업신 여기였다
어느날 시비(詩碑)앞에서 시비(是非)가 붙었다
시(詩)가 나쁜 시(詩)이니 지워야 한다느니
까부셔야 한다느니
시(詩)가 좋은 시(詩)이니 다치지 말아야 한다느니
영구보존해야 한다느니…
시비(是非) 끝에 시비(詩碑)를 잠시 그냥 놔두기로 했다
가슴이 철렁해난 바위는
식은땀을 한바탕 흘렸다
흉터가 나는 건 둘째치구 하마트면
풍지박살날번 했잖았구 뭔가!
무섭구나!
무섭구나!
바위는 자기 몸에 새겨진 시(詩)가 어떤 시(詩)인지 무척 알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였다
시비(是非)가 있는 시비(詩碑)
시비(詩)碑에 있는 시비(是非)
바위는 산에 돌아가 친구 바위들과 어울리는 그냥 바위이고 싶었다
운명
쥔 것이 가시나무 가지일지라도 놓지 말아라
힘 줄 수록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더라도 놓지 말아라
놓는 순간, 순간을 잃어버릴 것이다
피로 꽃을 피워주는 가시,
가시 끝에 맺힌 꽃의 숨,
피는 물이 아니다!
찔림을 두려워 하고
아픔을 못 참으면서
뭘 얻으려고 말아라
널 깊이 찔러 네 피의 온기를 안 다음
영원한 한 몸으로 될 꿈 주는
아픈 사랑만이 사랑인줄을
찔려보지 않고서야 어찌 알랴!
찔리여라, 힘 꽉 줘라!
쿡쿡쿡…
한 손아귀에 가득 필 예쁜 피의 꽃을 위하여…
들국화
서리 내린 풀숲
네가 앉았던 자리
아침 볕 빨간
이슬이 맺혔다
너는 없고
갈꽃만 흔들먼들…
마가을 솔숲
청설모 약빠른 길 우에
숨어버린 예쁜 숨
어데 있나?
어데 있나?
눈 씻어도 없다
우연히 바라본 하늘
아ㅡ하
니들 모두가
하늘에 올라 있었구나
뿌리
눈이 있다, 뿌리에게는 밝고 예리한
눈이 있다, 뿌리에게는 마음 찌르는
눈이 있다, 뿌리에게는 빛을 이기는
눈이 있다, 뿌리에게는…
그래서 어둠을 모르고
그래서 멈춤을 모르고
그래서 광음을 모른다
수십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수백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미로의 암흑속에서
숨을 찾아 뻗고 또 뻗는
뿌리에게는
피를 거르는 염통이 있다!
오늘
오늘,
오늘도 당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당신은 죽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
오늘도 계속하여 오늘인 당신은
영원히 영생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오늘의 숨이 오늘을 받쳐주어
한 그루의 나무로
한 송이의 구름으로
하나의 하늘로
별로
달로
태양으로
흙으로
돌로
이슬로
뿌리로
이파리로…
오늘을 만들어주고 있나니
오늘,
오늘이 있는 당신은 영원을 산겁니다
불사(不死)의 오늘에 안겨
당신 곁의 눈빛을 응시하면서
명암(明暗)을 나누는 이가 있기에
오늘도 오늘이 당신의 것 되였습니다
오늘,
오늘이 있는한 사랑하세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 님을,
그러면 래일도 모레도 글피도
오늘이 될겁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별이 자는 밤, 손을 뻗어 허공을 만진다
검은 종이쪼각 빨깍빨깍 소리난다
한가닥 빛같은 오솔길로 예까지 걸어왔지
따라온 눈물자국들 새가 되여 날아갔지
나혼자, 나혼자, 나혼자…
남은 건 나혼자뿐, 내가 살아야 할 리유는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밤을 사랑한다, 나를 위하여
낮은 사랑한다, 나를 위하여
술을 사랑한다, 나를 위하여
너를 사랑한다, 나를 위하여
이 세상 출발점과 종점은 나다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에게서 끝난다
내가 태양이다. 내가 우주이고 세상이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다 행성에 불과하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 지구의 핵이 없어지고
우주의 중심이 허물어질 것이다
이 세상이 존재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나를 사랑한다
동그라미
엄지와 식지를 동그랗게 만든 후 나머지 손가락을 펴보이면 OK라는 뜻이 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동그란 눈동자로 보이는 이 세상은 생명으로 가득하다. 둥근 지구가 우주를 굴러갈 때 둥근 달은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지구를 에돌면서 달리고, 메추리새끼가 동그란 알 속에서 부리로 딴딴한 껍질을 쪼을 때 생명의 진동소리는 우주를 흔든다. 정자가 동그란 란자를 만나는 순간 동그란 어머니 자궁은 생명의 집이 되여 우주를 낳을 준비를 한다. 흐르는 강, 넘쳐나는 바다, 쏟아지는 비, 수억의 물방울이 모여 이루어진 저 물의 세계를 찬찬히 보라, 파도 되여 반공중에 뜰제 방울방울의 찬란한 동그라미들은 태여날 때의 모습으로 웃음 짓는다. 내가 쓰는 이 시에도 수많은 동그라미들이 춤추고 있다. 가장 많은 동그러미, 그러나 똑똑히 그릴수 없는 동그라미를 동그랗게 그릴줄 알게 되는 그때 우리는 동그라미의 참뜻을 알 것이다. 동그라미가 동그랗기 때문에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동그라미 속으로 들어가면 도망칠 수가 없다. 도망칠 틈이 막혔기 때문이다. 당신의 동그라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당신도 나의 동그라미 속으로 들어오라. 그러면 우리는 다 서로의 동그라미에 갇힌 동그라미가 될 것이다. 오늘도 당신을 향해 엄지와 식지를 꼭 붙인다. 좋아요! OK!
<연변문학> 2018년 제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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