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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안데르센" - 강소천
2018년 11월 17일 21시 24분  조회:2601  추천:0  작성자: 죽림
 

어린이들의 영원한 벗…
삶 자체가 한국아동문학사

 

'한국의 안데르센' 강소천 

30여년간 동요·동시 240·동화 150편 남긴 거장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하늘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태극기>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 같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들 같이…'<어린이 노래>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코끼리>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금강산>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스승의 은혜> 

한글을 깨우치고 나서 귀가 닳도록 듣고, 입이 닳도록 불렀던 동요들이다. 지금도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흥얼거리게 되는 동요. 이 동요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지은 이가 바로 '한국의 안데르센'이라고 불리는 아동문학의 대가인 강소천이다. 

한 때 '초등학교 음악교과서는 강소천 개인소장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동요 노랫말 가운데 3분의 1이 그의 작품이었다. 그가 30여년 동안 남긴 동요와 동시는 240여편, 동화는 150여편에 달한다. 그를 빼고 한국아동문학사를 논할 수 없는 이유다. 

소천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 근처인 고원군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전인 1915년에 과수원을 운영하는 부잣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 솜씨가 유난히 좋았던 소천은 16살(1930년)에 이미 '아이생활'이라는 잡지에 동시 '버드나무 열매'를 발표했다. 이듬해 함흥에 있는 영생고보에 진학하면서 그 해에만 '봄이 왔다', '무궁화에 벌나비' 등 총 9편의 동시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한다. 

1933년에 조선어연구회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한 뒤 일제의 한글탄압이 심해지자 그는 간도로 활동영역을 옮긴다. 그의 나이 스무살 때 외삼촌이 살고 있는 용정으로 넘어가 윤동주와 교유를 하면서 조선중앙일보 9월3일자에 '호박꽃 초롱'을 발표한다. 

'호박꽃을 따서는/무얼 만드나/무얼 만드나/ 우리 애기 조그만/초롱 만들지/초롱 만들지/반딧불을 잡아선/무엇에 쓰나/무엇에 쓰나/우리 애기 초롱에/촛불 켜 주지/촛불 켜 주지.' 

1년만에 간도에서 돌아온 소천은 영생고보를 졸업한 뒤 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향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8년동안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일을 하면서 우리말과 우리글로 된 동시 집필에 더욱 매진한다. 그의 나이 23살때인 1937년에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작품이 소천의 대표작인 '닭'이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보고.' 

소천은 후일 회고록에 윤석중의 원고청탁을 받고 물을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는 닭을 보면서 고향 하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아동문학사에서 소천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일제의 한글탄압이 극에 달했던 1941년에 순 한글로 된 동요 시집인 '호박꽃 초롱'을 출간했다는 점이다. 아동문학가 서석규는 "호박꽃 초롱은 일제 말기의 강압적 국어말살 정책 아래서 우리말 우리글로 펴낸 창작동요 시집이라는 점에서 강소천 문학의 기대에 찬 출발을 선언한 뜻있는 금자탑"이라면서 "이 동요시집에 실린 33편의 동요시와 2편의 동화는 그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 아동문학사에 길이 남을 귀한 보석"이라고 평가했다. 

소천의 삶에서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찾아오는 것은 6.25전쟁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소천은 공산주의를 피해 1950년 12월에 혈혈단신으로 월남한다. 흥남철수 당시 마지막 배를 타고 월남한 소천은 부산에서 만난 지인의 소개로 문교부 편수국에 근무를 하게 된다. 소천은 1951년에 육군 정훈부대인 772부대의 문관으로 근무하면서 대전으로 올라와 대전일보 1951년 3월28일자에 '자라는 대한'이라는 월남 후 첫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그 작품을 계기로 대전 진잠에서 피란중이던 윤석중을 만난 소천은 대전지역 문인들과 자연스럽게 교유하게 된다. 

1952년에 부산으로 다시 내려간 소천은 본격적으로 어린이문학활동에 나선다. '어린이다이제스트'라는 월간잡지를 만들어 전쟁 통에 읽을거리가 없던 어린이들에게 우리말로 된 어린이동화를 들려줬다. 이후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소천은 1957년에는 어린이의 복지와 건강을 지켜주기 위한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는 등 11개항으로 구성된 어린이 헌장은 1923년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과 더불어 어린이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 

소천은 아동문학의 체계화에도 앞장 섰다. 국정교과서 편찬위원으로 활동하던 1959년에 이화여대에서 아동문학 강좌를 처음으로 개설해 직접 강의를 하기도 했다. 

소천은 아동문학의 이론적 저변을 확대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세상을 떠나기 1년전인 1962년에 김동리, 박목월, 조지훈 등 기라성같은 문인들과 함께 부정기 간행 잡지인 '아동문학'을 창간했다. '아동문학'은 매호마다 아동문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주제로 심도있는 지상 심포지엄을 여는 등 아동문학의 이론을 정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1963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소천은 30여년동안 동시와 동요, 동화를 쓰면서 살았다. 어린이만을 위한 외길인생을 살아온 소천의 높은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정부는 1985년에 아동문학가로서는 최초로 소천에게 국민훈장 대통령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올해는 소천이 세상에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아동문학계에서는 '강소천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해오고 있다. 소천아동문학상 운영위원회는 '꽃신을 짓는 사람을 그리며'라는 강소천 탄생 100주년 기념 글모음을 발간했으며, 지난 5월28일에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강소천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리기도 했다. 대전문학관에서도 이달 말까지 '아동문학전-책 밖으로 나온 문학세상'이라는 기획전시를 통해 소천의 삶을 되돌아보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또한 탄생100주년을 맞아 소천의 대표 동요시집인 '호박꽃 초롱'을 비롯해 '꽃신', '꿈을 찍는 사진관', '조그만 사진첩', '진달래와 철쭉' 등 9권의 동화집도 복간된다. 

단국대문예창작과 박덕규 교수는 최근 발간한 '아동문학의 마르지 않는 샘 강소천 평전'을 통해 소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단시대를 강소천의 문학을 즐기지 않고 살아낸 한국인은 없다. 그게 문학의 전부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다른 아동문학이 없지 않았지만, 강소천만큼 아동문학 전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강소천의 문학 전반은 한국 아동문학 그 자체를 대변하고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중략).강소천의 문학과 생애를 이해한다는 건 한국 아동문학 전부를 이해하는 것 만큼의 효력이 있다." 

 

///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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