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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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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윤동주와 영화 "동주" 그리고 그의 시 15편
2018년 12월 21일 23시 46분  조회:2970  추천:0  작성자: 죽림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對答)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내일은 없나니

 

 

 

눈 감고 간다

 


태양(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었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 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 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 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흰 그림자


황혼(黃昏)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사슴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 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젋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둣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들, 들,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을 살아온 나는
풀포기 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서시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줄 모르고 
한층 두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의 수평선을 향하여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쉽게 씌어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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