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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은 잎새속에서
고 빠알간 살을 드러내 놓고,
할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밭머리에서 어정거리고
손가락 너어는 아이는
할머니 뒤만 따른다.
<고추밭 전문>
비오는날 저녁에 기왓장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웁니다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고추밭’과 ‘기왓장내외’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손주와 할머니의 정겨운 풍경이 미소를 자아내는 ‘고추밭’과 달리 ‘기왓장내외’에서는 식민지 시대를 사는 청년의 암울한 시대 인식이 드러나 보입니다.
‘고추밭’은 윤동주가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르지 않고 4월 서울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뒤 9월에 쓴 동시이고, ‘기왓장 내외’는 1936년 3월 평양 숭실학교 자퇴 직전 쓴 작품입니다.
이들 동시 작품이 각각 쓰인 시대적 배경을 고찰하면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북간도 이민족 사회에서 모처럼 동족 사회로 전입한 윤동주의 밝고 즐거운 평양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가 갈수록 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숭실학교 맥큔(George Shannon McCune, 한국명 윤산온) 교장은 일제의 신사 참배 요구를 끝내 거부했습니다. 결국, 평남도지사는 1936년 1월 18일 자로 맥큔의 교장 인가를 취소했습니다. 이틀 후에는 총독부가 맥큔의 숭실전문 교장 인가까지 취소했습니다. 해임된 맥큔은 연금에 가까운 감시를 받다가 그해 3월 21일 조선을 떠났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왓장내외’는 숭실 자퇴 직전 쓴 동시입니다. 시대 인식이 강렬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시기입니다. 시대의 모순을 그린 ‘이런 날’ ‘꿈은 깨어지고’ 등이 대표적입니다.
혹독한 시대의 무력감, 절망감과 함께 불안과 공포에 짓눌린 시인의 정서가 드러난 ‘산림(山林)’ ‘가슴1’ ‘가슴2’ ‘가슴3’도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그러던 윤동주가 철저히 시대 인식을 기피하게 됩니다.
윤동주는 맥큔 추방 후인 4월 초 숭실을 동맹 자퇴하고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합니다. 용정으로 돌아온 윤동주는 북간도 연길에서 발행하던 잡지 <가톨릭 소년>에 ‘용주(龍舟)’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동시 제작 쏠림 현상이 나타납니다. <윤동주 시 깊이 읽기>(소명출판 펴냄, 2009년)의 저자 권오만 전 서울시립대 교수가 분류한 제3단계(1936.9~1940 전반)의 시작(詩作) 시기입니다.
특히 3단계의 첫 무렵에 쓴 작품 대부분이 동시였는데, 이는 시대 인식을 기피하는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권오만 선생은 “윤동주가 의도적으로 동시 형태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시작품들이 시대의 문제에 뛰어들 가능성을 고의로 차단한 기미를 농후하게 보여 준다”고 봤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젊은이로서 자신을 자유롭게 성장, 발전시키고 자유롭게 표현하기가 얼마나 지난 한 과제였던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증표”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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