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로 재구성한 윤동주의 삶과 시
만주 용정에서의 중학교 시절 일본어 낙제 점수 받아
창씨개명에 고뇌하던 시절 '자화상' '서시' 등 대표작 남겨
가무극의 하이라이트는 토해내고 절규하는 '별 헤는 밤'
창작가무극은 서울예술단이 주도하는 한국형 뮤지컬의 형식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1945년 2월 16일 일본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숨졌다. 윤동주의 국적은 한 번도 조선인 적이 없었다. 조선이 망한 뒤 일제가 점령 중이던 만주에서 태어났고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 일본 열도에서 죽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윤동주는 평생 조선어로 시를 썼다.
룽징에 가면 윤동주가 스무 살에 편입해 2년간 다녔던 광명중학교가 있다. 이름은 중학교이지만 지금의 고등학교다. 이 학교 본관 건물 앞에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를 새겨놓은 시비가 서 있다.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광명중학교에서 윤동주의 성적은 의외로 평범했다. 특히 일본어 실력은 낙제 수준이었다. 제일 잘 받은 점수가 62점이었고, 40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참회록’ 1연, 1942년 1월 24일.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윤동주, 달을 쏘다.’에는 모두 9편의 윤동주 시가 등장한다. 8편이 전편 인용되고 1편이 부분 인용된다. 노래에 쓰인 시는 없다. 작곡을 담당한 오상준은 “윤동주의 시 안에 음악적 선율이 내포돼 있다는 생각에 시는 독백과 낭독으로 표현하고 음악은 시의 감성과 비슷한 결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오상준 작곡의 설명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윤동주의 시는 굳이 멜로디를 얹지 않아도 음악성을 띤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윤동주의 시를 스스럼없이 암송하는 까닭이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모두 여덟 번 되풀이된다. 시어는 같지만 행마다 감정이 다르다. 처음엔 서글프다가 나중엔 복받친다. 올해 공연에서 처음 윤동주 역할을 맡은 배우 온주완은 오프닝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온주완 배우의 대본을 보면 치밀했던 고민이 뚝뚝 묻어난다.
영원히 슬프겠으니 영원한 복을 달라는 자학적인 바람이었다. 여기에 윤동주 시의 미학이 있다. 윤동주의 시는 염결한 기독교주의에서 기인한다. 할아버지 대부터 윤동주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도 윤동주의 짧은 생애를 다뤘다. 그 영화로 많은 사람이 윤동주의 동갑내기 고종사촌 송몽규의 존재를 알게 됐다. 영화를 보면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이다.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공부도 잘했고 먼저 등단했다. 무엇보다 만주에서 독립군 활동을 했다. ‘윤동주, 달을 쏘다.’에도 둘 사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슬쩍 끼워져 있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윤동주는 원래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시집을 출간할 작정이었다. 하나 사정이 생겨 포기하고 정병욱에게 원고를 넘겼다. 정병욱이 건네받은 시편은 19편이었지만 다른 유고를 더 모아 모두 31편으로 시집을 묶었다. 서문은 생전의 윤동주가 존경했던 시인 정지용(1902∼50)이 썼다. 정지용과 윤동주는 도시샤 대학 동문이다. 정지용이 쓴 서문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무시무시한 독방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시대에 날뛰던 부역 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뱉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윤동주가 애초에 생각했던 시집 제목은 ‘병원’이었다. 윤동주는 제가 쓴 시로 병든 세상을 치유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1941년 11월 20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쓰면서 윤동주는 이 시의 제목을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시집에 제목을 넘긴 시는 대신 ‘서시(序詩)’가 됐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쓴 무렵은 일제의 창씨개명 강요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한 달쯤 앞둔 시점이었고 그는 유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역시 시는 고뇌의 산물인가 보다. 이즈음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비롯해 ‘십자가’ ‘별 헤는 밤’ ‘참회록’ 등 주요 작품 대부분을 생산했다.
# 달을 쏘다
유년 시절부터 민족적 학교 교육을 받아 사상적 문학서 등을 탐독하고 치열한 민족의식을 품고 있었던 바, 우리의 조선 통치 방침을 조선 고유의 민족문화를 절멸시키고 조선 민족의 멸망을 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 독립운동의 소지를 배양할 수 있도록 일반 대중의 문화 앙양 및 민족의식 유발에 힘써야 한다고 결의하기에 이르렀으며 … 문학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행복 추구의 견지에 입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민족적 문학관을 강조하는 등 민족의식의 유발에 부심함.
그러니까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을 가서도 조선어로 조선의 정서를 담은 시를 쓰다 처벌된 것이었다. 윤동주의 독립운동 이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주장처럼 윤동주는 만주 벌판에서 총칼 들고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윤동주는 그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무기를 들고 일제에 맞섰다. 윤동주의 무기는 ‘시’였다.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달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놀랐던 물결이 잦아들 때 오래잖아 달은 도로 살아난 것이 아니냐.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얄미운 달은 머리 위에서 빈정대는 것을…. 나는 꼿꼿한 나뭇가지를 끊어 띠를 째서 줄을 메워 훌륭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산문 ‘달을 쏘다(1938. 10)’에서 부분 인용
시인은 무사의 마음을 먹고 갈대로 화살을 삼아 달을 쐈다. 부질없는 짓이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다. 하나 정지용이 윤동주의 시집 머리에 쓴 것처럼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가무극의 제목이 이 산문에서 발췌됐고, 2시간 30분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노래로 활용됐다.
이 마지막 20분을 위해 2시간을 기다렸다는 평이 쏟아졌을 만큼 ‘별 헤는 밤’의 장면은 강렬했다. 윤동주의 잔잔한 시어가 이렇게 폭발력이 있을 줄 몰랐다. ‘별 헤는 밤’ 장면이 있어서 ‘윤동주, 달을 쏘다.’는 윤동주를 빌린 작품이 아니라 윤동주와 어울린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는 윤동주가 일본 유학 시절에 쓴 5편이 포함돼 있다. 조선의 친지에게 우편으로 부친 시다. 윤동주는 일본에서도 부지런히 시를 썼다고 전해지지만, 이 5편 말고 추가로 발견된 작품은 없다. 아직도 어느 깊은 책장 구석에 윤동주가 눈물로 쓴 노래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윤동주의 유학시절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쉽게 쓰여진 시’ 일부를 옮긴다. 윤동주의 말마따나 그래, 사는 것은 늘 부끄러운 것이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평양예술단이 서울에서 공연을 했다. 평양예술단의 총체극에 자극을 받은 정부는 대형 종합예술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1986년 ‘88서울예술단’을 창단했다. 91년 지금의 이름이 됐고, 현재 문체부 산하 재단법인이다.
서울예술단은 출범 취지에 맞게 한국적 음악과 춤, 한국적 소재를 활용한 한국형 가무극 창작에 집중했다. 그 대표작이 ‘윤동주, 달을 쏘다.’다. 2012년 초연, 2013년 재연, 2016년 3연에 이어 올 봄 4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라 할 수 있다. 가무는 한국적이지 않지만 소재가 한국적이다. 네 차례 공연 모두 윤동주 역을 소화한 박영수 배우가 이 작품으로 스타가 됐다.
서울예술단 작품의 특징이 있다. 총체극에서 출발한 전통을 이어받아 집단 안무가 강하다.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도 공연팀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무대 뒤편에서도 제 역할을 소화했고, 안무가 일사불란하고 동선이 컸다. 하지만 일본 욱일기를 흔드는 장면에선 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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