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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이번에는 제가 배울 차례입니다"...
2019년 02월 16일 23시 54분  조회:3564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 떠난 날에

조선일보 
 2019.02.16 

 

스물여섯 살에 죽은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는 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하자 이를 비판하는 시를 씁니다. '지도 위 조선 나라에 새까맣게 먹물을 칠하면서 가을 바람을 듣는다. 누가 나를 피스톨 갖고 쏴주지 않으려나 이토처럼 죽어 보여주련다.' 시인 백석(白石·1912~1996)은 이시카와를 좋아해 '석(石·이시)'을 이름으로 삼았다네요.

후배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는 이시카와 시를 인용하고 이렇게 씁니다.
'일본어가 밀어내려 했던 이웃 나라 말 한글/
어떤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한글/
용서하십시오/
땀 뻘뻘 흘리며 이번에는 제가 배울 차례입니다.'

이바라기는 윤동주를 사랑해 한글을 배웠다네요.
'너는 왜 이제야 왔나/
윤동주가 부드럽게 나를 꾸짖습니다/(중략)/
젊은 시인 윤동주/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그대들에게는 광복절/
우리에게는 항복절인/
8월 15일이 오기 겨우 반년 전 일이라니/
아직 교복 차림으로/
순결을 동결시킬 듯한 당신의 눈동자가 눈부십니다.'

이번 주 새로 나온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집 '처음 가는 마을'(봄날의책)에서 읽었습니다.
오늘(16일)이 윤동주 시인이 떠난 날이네요.

증오 가득찬 정치인의 말에서 사랑 넘치는 시인의 말로 바뀌는 날은 언제 올까요.
이바라기는 씁니다.
'틀어진 모든 것을/
시대 탓하지 마라/
자기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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