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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영화 검열로 삭제됐던 장면이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통제와 간섭을 받았던 한국 영화가 '표현의 자유'를 얻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선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영화 '자유부인'은 대학교수 부인이 젊은 남자와 춤바람이 난다는 내용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키스 장면이 잘린 채 상영허가가 났습니다.
'피아골'은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소위 '반공법' 위반에 걸려 내용을 바꾼 뒤 극장에 걸릴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 절망과 좌절 등의 표현이 금기시됐던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가장 많이 가위질당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감독이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의 계몽영화로 바꾸겠다는 각서까지 제출했습니다.
한국영화는 탄생 초기부터 간섭과 통제를 받았고 1996년 '사전 심의'가 위헌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한순간도 검열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장호 / 감독 : 검열보다 무서운 게 자기 검열이에요. 검열을 의식해서 나도 무장이 돼서 미리 작품을 고르며 검열을 하게 되고 이런 장르는 안되고 촬영할 때 밀 빼버리고.]
서슬 퍼런 검열의 역사를 신랄하게 증언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한국 영화가 표현의 자유를 얻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는지 생생히 보여줍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보관 중이던 필름 자료를 디지털화해 광주민주화운동의 표현 장면 등 1950∼70년대 검열 삭제 영상을 최초 공개했습니다.
당시 배우와 감독들의 실감 나는 증언을 들을 수 있고, 70년대 검열실을 재현해 놓은 곳에서 검열로 삭제된 필름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종원 / 영화사학가 : 이렇게 부끄러운 우리 시대가 있었다는 부끄러운 초상을 우리가 볼 수 있다라는 것. 그걸 통해서 우리가 자성의 마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통제와 간섭으로, 때로는 정치적 도구로 70년 넘게 '검열'로 점철됐던 한국영화, '창작과 표현의 자유'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내년 3월까지 계속됩니다.
YTN 김선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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