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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납활자로 책을 만든 출판사, 광인사
1884년 3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신문으로 일컬어지는 <한성순보> 제15호에는 여지껏 볼 수 없었던 짤막한 내용의 기사가 보인다. 시내에 광인사(廣印社)라는 곳이 있는데, 민간인의 자본을 모아 세운 곳으로 장차 서적을 출판하여 이익을 얻는 한편 문화 창달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 기사는 물론 한문으로 작성되었다.
이 기사는 다름 아닌 최초의 출판사인 광인사가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오늘날의 출판사 설립 보도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문화 창달에 기여할 수 있는 출판업을 하겠는데 이윤도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광인사는 최초의 출판사로서 신문의 취재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광인사를 출판사의 효시로 보는 이유는 첫째, 종래의 인쇄 방법인 목활자 인쇄가 아닌 납으로 만든 연활자를 사용하여 책을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둘째, 서적을 대량으로 인쇄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했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서적의 제작을 기획에 의해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점은 종래의 출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일이었다. 말하자면 광인사는 근대적인 출판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설립 시기는 그해 2월로 추정된다. 기사 내용으로 볼 때 광인사는 민간인이 세운 합자회사 형태의 출판사로서, 출판사업을 개화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광인사에서 펴낸 책을 보면 그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맨 처음 출판한 책은 「충효경집주합벽(忠孝經集註合璧)」이고, 그밖에 「농정신편(農政新篇)」과 「고환당집(古懽當集)」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이 정도이나, 광인사의 시설이나 연조로 볼 때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서적을 출판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 종류의 책만을 참고하더라도 광인사의 의도는 민중을 교화하고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여, 부강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농정신편」은 안종수가 지은 것으로, 과거의 농업 전문서적과는 달리 근대과학을 토대로 한 식물학적 견지에서 씌어진 것으로, 농업기술서로서는 당시에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안종수는 4년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농업의 과학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돌아와 그에 입각해 저술한 것이 바로 「농정신편」이었다.
「고환당집」 역시 그 출판 의도는 「농정신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책은 개화해야 산다고 주장한 강위의 문집이다. 그는 일찍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곳의 문사들과 사귀며 신문물에 눈을 떴고,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에도 그곳에 들어와 있는 서양문물을 직접 목격한 바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한 그의 주장은 국리민복과 관련된 것이었다.
광인사의 이러한 출판 의도는 당시로서는 서적을 펴낸다는 차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것이었다. 개화의 한 수단으로 출판을 했다는 점이 역력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광인사에서 발간한 책들은 본문 용지가 한지이고, 제본도 전통의 방법인 한장(韓裝)으로 했다. 종이의 수급이나 제작상의 미비점으로 볼 때 그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광인사의 시설은 꽤 규모를 갖추었던 것 같다. <한성순보>를 찍었던 관영 인쇄소 박문국이 갑신정변으로 인해 불에 타자 광인사에 와서 <한성순보>를 인쇄하려 했기 때문이다.
광인사는 1880년대 말까지 존속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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