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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시적 화자는 분명히 다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들을 떠올려 보세요. 대개 사랑과 실연의 아픔을 표현한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실제로 사랑에 빠졌거나 실연을 당한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이별의 아픔이 없는 사람도 있고 사랑에 빠져 있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마치 실제로 그런 상황에 놓인 것처럼 기쁘거나 슬픈 표정을 짓지요.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노래가 우리 마음을 흔들 수 없겠지요. 혹은 무대 매너가 별로라고 인기가 곤두박질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노래가 가수의 실제 경험이 아닌 줄 알면서도 가수가 노래에 실감나게 감정을 담아 부를 때 큰 감동을 얻습니다. 물론 노래가 끝나면 가수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상으로 되돌아옵니다.
시인과 시적 화자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일 뿐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시 속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노래를 하는 아이돌처럼 시의 상황에 흠뻑 취하고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만 시인은 시라는 무대가 아닌 작품 밖에, 즉 삶 속에 머무르는 생활인입니다. 무대 밖에서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는 작곡 · 작사가처럼 말입니다.
물론 가수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노래할 수 있듯이 시인도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시로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시인이 자기 이야기만 쓴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작품을 쓰기가 곤란해질 것입니다. 소재도 떨어지고 자기가 쓴 시 때문에 실제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제약도 생길 수 있지요. 시인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허구적인 대리인을 내세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시적 화자라고 부르며 또 다른 말로는 ‘서정적 자아’라고도 하지요.
시적 화자는 소설의 서술자처럼 복잡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서술자는 1인칭과 3인칭으로, 다시 1인칭은 주인공 · 관찰자 시점으로 3인칭은 관찰자 ·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복잡하게 구분이 되지만 시적 화자는 이보다 훨씬 단순하게 나뉩니다. 시적 화자는 시 안에 직접 나타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눌 수가 있지요.
두 편의 시를 보면 시적 화자가 어떻게 다른지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 작품모두 시적 화자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작품은 ‘나’가 직접 작품 속에 등장하지만, 두 번째 작품에서는 시적 화자가 직접 드러나지 않습니다. 소설의 3인칭 관찰자처럼 객관적인 상황만 제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적 화자가 1인칭인 경우, 시인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과 정서를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이별의 슬픔이 그토록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나’라는 화자의 감정이 ‘나’의 입을 통해 섬세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지요. 반면 시적 화자가 3인칭인 경우, 독자들은 시적 상황과 대상을 좀 더 사실적이고 현장감 있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박목월의 「나그네」에서 나그네의 외로운 정서는 시에 나타난 강나루, 밀밭, 구름 등 사실적인 소재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현대 시에서 화자는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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