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템문화와 토템시(1)
조글로미디어 2020년7월30일
1.달, 영구한 생명력의 상징
현춘산
인간에겐 환상과 상상이라는 꿈이 있다. 꿈이 있는 인간들만이 삶과 죽음이란 이 심각하고 원천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
밤하늘에 높이 솟아 휘영청 빛 뿌리는 달, 해처럼 뜨겁지 않고 별처럼 차지도 않으며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둥글었다가 기울어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달은 몽롱하고 신비한 베일에 가리워있다. 삶과 죽음이란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는 인간이 달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하였을가.
달은 둥글었다가 기울어지고 때로는 인간들의 가시권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것을 달의 죽음과 재생으로 보았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인간들은 달의 반복되는 삶과 영구한 삶이 부러웠을 것이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달에다 초라하기 짝이 없을 자기의 "1회용"삶을 비추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달과 같이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달을 두고 "천년만년 살고지고"라는 노래도 나왔고 원을 이루었다가 풀어지고 풀어졌다간 다시 원을 그리는 흥겨운 "강강수월래"춤도 생겼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부드러운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흰옷차림 녀인들의 "강강수월래", 그것은 정녕 달의 원리를 상징하는 춤이 아니였던가.
고대인류의 관념세계에서 우주는 무생물들의 물리적, 기하학적 공간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천체들의 생명공간이였다. 우리의 조상들은 해와 달에, 저 무수한 별들에 생명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달이 우선 숭배의 대상으로 된 것은 바로 달의 신비한 삶 때문이였으리라. 둥근 달이 점차 이지러지다가 마침내 조각을 이루고 그 조각이 조금씩 줄어들다가 사라져 버리고 다시 조각달로 소생하여 점차 커지다가 둥그러지는 달의 삶이야말로 영구한 삶이였을 것이다. 죽음을 초월하려고 모지름을 쓰는 인간에게 있어서 달이 지닌 신비한 생명의 원리와 생명의 힘은 무엇보다 친절하게 안겨왔을 것이다. 이 달의 원리에 의해 원초의 물인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고 이 달의 원리에 따라 녀인들에게 생리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달과 인간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켰고 그래서 달은 지상만물과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토템으로 되여왔던 것이다. 이같은 인류의 신화적 사고는 달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 이집트의 오리시스신화나 우리 민족의 세오녀신화를 낳기도 했다. 이 두 신화에서 달의 정령인 주인공들이 사라지자 달도 빛을 잃고 주인공이 돌아오자 달이 다시 빛을 내고 있다. 이는 달의 주기적 운행을 죽음과 재생이라고 본 고대인류의 신화적 사고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영원히 동경하는 달의 정령의 매력이자 토템으로서의 달에 대한 숭배였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달"에서의 달의 이미지도 바로 달의 원리에서 비롯돤다.
"둥그러짐은 이지러지기 위함이요/이지러짐은 둥글어지기 위함이라/둥그러지고 이지러짐은 영생으로 통한 산길이다-"에서는 달의 둥글음과 이지럼에다 생명의 반복과 영생이라는 철리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강강수월래"를 묘사한 시구"풍요의 원리는 이에 따라 밀물이 되고/모성의 원리는 이에 따라 회전이 되고/생명의 원리는 이에 따라 연장이 된다"에서는 달과 물, 인간(녀인)의 일치한 원리를 천명하므로써 영구한 생명을 지닌 달은 결국 만물과 인류의 위대한 어머니라는 토템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