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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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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방석
2013년 05월 24일 15시 35분  조회:982  추천:1  작성자: 리광학

하얀 꽃방석

안해는 시집을 오면서 하얀 꽃방석 두개를 가지고 왔다. 30여년전에는 결혼식을 앞두고 우리 민족 처녀들이 준비하는 여러가지 혼수감가운데의 하나가 바로 꽃방석이였다. 초가삼간 신혼방의 간소하고 초라한 살림살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것은 그래도 노르스름한 색상을 올린 나무농짝우에 소복이 얹은 원앙이불과 이불우에 씌운 하얀 이불보 그리고 또 이불보우에 쌍으로 가지런히 곱게 올려놓은 하얀 꽃방석이였다. 보기에는 너무 간단하고 소박한 꾸밈새였지만 신혼방으로 하여금 포근하고 안락한 감을 느끼게 하였다.

결백한 하얀색을 즐기는 우리 민족이여서인지 꽃방석 역시 거죽으로부터 속까지 모두 하얀 색을 가진 감으로 만들었다. 하얀 무명실을 골라 코바늘로 꽃을 수놓아 거죽을 만들고 속은 하얀 천과 하얀 솜을 맞춤하게 싸서 포근하고 보기 좋게 만들어져 보기에도 참 좋은 사치품이였다. 그 모양은 원형으로 된것도 있고 정방형으로 된것도 있었다. 원의 모양은 인생을 둥글게 정방형의 모양은 네변이 똑 같듯이 반듯하게 살라는 의미였을것이다.

꽃방석은 결혼식이나 혹은 웃방에 귀한 손님을 모실 때 사용되기도 하고 직장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사무용걸상에 얹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나는 안해가 선물한 하얀 꽃방석을 교직생활을 하면서 딱딱한 나무걸상에 얹어 사용하였는데 너무 편하고 따뜻하였다.

고향마을 처녀들은 시집갈 나이가 차면 거의 모두가 코바늘을 갖추고 뜨개질을 배웠다. 이는 그 당시 우리 민족 처녀들의 류행으로 되였다. 아줌마들은 처녀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처녀들의 정성어린 솜씨와 순정이 슴배인 꽃방석만 보고도 손쉽게 처녀의 손재간과 그 성품을 읽을수 있었다고 하니 뜨개솜씨야말로 처녀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니였나싶다.

우리 마을 처녀들은 늘 자그마한 보꾸레미나 가방을 챙겨가지고 다니면서 일터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뜨거운 해볕과 바람을 피해 밭머리의 우묵진 곳이나 나무그늘 또는 생산대회의실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짬이나 농한기에 초가삼간의 따뜻한 아래목과 조용한 안방에 앉아 부지런히 코바늘을 날름거리며 뜨개질로 결혼식에 쓸 혼수감을 마련하였다.

마을 처녀들은 특별히 수줍음을 탔던것 같다. 처녀들은 꽃방석을 뜨면서 늘 주변 아줌마들의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거나 “총각이 누구냐?”와 같은 악의없는 놀림을 당했다. 그러면 처녀들은 쑥쓰러운 나머지 거의 모두가 눈을 흘기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리고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 발그스레한 홍조가 어리군 하였다. 아줌마들은 처녀들이 부끄럼을 탈수록 더 신이 나 골려주군 하였다. 그때는 웬지 수줍음을 타는 처녀가 총각들에게는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것으로 보였다. 너무 개방적이고 왈패스러운 처녀들은 총각들이 추구하는 신부감이 아니였던것 같다.

처녀들은 조용한 환경에서 꽃방석을 한코 한코 뜨며 그 시각만큼은 그 어디에 있을 오직 자기에게만 속할 백마왕자를 그려보기도 하고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살아갈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꿈꾸었다. 또 코바늘을 붓으로 삼아 한번 먹은 마음 영원토록 변치 말자는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하얀 꽃방석에 새겨넣었을것이다.

그렇게 처녀들마다 결혼을 앞두고 마음을 다스리고 키워서인지 그때는 처녀총각들이 일단 가정을 이루게 되면 책임과 의무감이 강했고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세월, 넉넉하지 못하고 째지게 가난한 환경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가정의 사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곤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며 가정을 용케 영위하였다. 지난 70년대 내가 살았던 고향마을은 300여세대 인가가 살았었다. 짝을 찾고 결혼하여 새 가정을 이룬 젊은축들이 비교적 많았지만 리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 민족 처녀들이 꽃방석을 뜨며 소박하게 결혼 혼수감을 준비하던 정겨운 풍경은 우리의 시선에서 멀어져가며 소리없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결혼을 앞두고 결혼혼수감에 공 한푼 들이지 않고 돈만 있으면 하루이틀 품을 들여도 쉽게 장만할수 있는게 요즘 세월이다.

얼마전 큰 례식장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에서 신랑신부를 마주 세우고 허리굽혀 맞절을 시키며 사용하는 정방형으로 만들어진 큰 꽃방석을 본적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꽃방석은 처녀들의 정성어린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기계로 틀에 맞추어 만들어진 완성품이였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모든것을 능률과 리윤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흐름속에서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절주는 너무 빠르고 너무 거침없이 진행되고있다. 젊은이들은 치렬한 삶의 경쟁속에서 숨가쁘게 돌아치고있다. 이런 실정에서 처녀애들에게 예전처럼 안방에 앉아 따분하고 숨막히게 뜨개질이나 하라면 기절초풍할지도 모른다.

시대의 맥박이 빠르게 뛰고 하루 다르게 변해가는 환경속에서 현대인들의 사랑과 련애관 그리고 인생을 사는 가치관도 너무 빠르게 변화되는것 같다. 사랑을 위한 의무나 책임, 희생따위의 거창한 말들은 낡은 초가삼간의 뒤마당에 밀려난지도 오래된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 빠르게 사랑을 하고 너무 쉽게 등을 돌리고 너무 가볍게 포기하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가하게 꽃방석을 뜨며 사랑과 혼인에 대한 마음의 다스림과 같은 일들을 반복할수는 없겠지만 세월이 아무리 변할지라도 옳바른 사랑관념과 삶의 가치관 그리고 가정과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굳혀야 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것이라 믿는다. 결혼식의 혼수감이였던 하얀 꽃방석에 슴배인 우리 민족의 티없이 맑고 결백한 사랑의 마음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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