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경칩이 지나자 이곳 청도성양구는 완연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양지쪽의 언덕에는 어느새 민들레와 냉이들의 새잎사귀가 파랗게 커가며 기지개를 켜고 있고 거리에는 이름모를 나무들이 개화기를 맞이하여 서로 앞다투어 아름다운 꼿을 피우며 봄의 향기를 짙게 하고 있다.
거리에 나서 여러가지 꽃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다 용케 살구나무꽃을 가려내는 순간, 저도모르게 관자노리 아래에서 시큼한 감각이 느껴 온다. 고향 연길의 살구나무꽃은 4월하순 부터 피기 시작하여 5.1절에 이르러야 그 환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이곳은 연길에 비해 봄이 3,40일은 더 이른것 같다.
아, 흐르는 시간은 빠르기도 하다. 또 새봄을 맞은 것이다.
이곳, 청도에 온지 거이 일년시일이 되여 온다. 이곳에서 너무 이르게 봄을 맞아 봄의 향기에 취하고 보니 웬지 마음은 싱숭생숭해진다. 그런김에 며칠 한번씩 꼭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딸집으로부터 5분사이에 가닿는 성양구시민 운동장이다. 지난해 성양구정부에서는 거금을 들여 낡은 운동장의 시설들을 새롭게 개조하였다. 파아란 인조잔디를 편 축구장과 주황색륙상코스는 대형경기를 치를 수 있는 수준이다. 그외 가지가지 운동기구들을 설치하여 시민들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운동장 주변에는 여러가지 나무들을 빼곡히 심었다. 하여 여름철에는 시민들에게 서늘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겨울철에는 바람막이가 되여 안온한 감을 준다. 시민들이 휴식의 한때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봄을 맞아 이곳도 여느 곳에 뒤질세라 여러가지 꽃나무들이 환하게 웃음짓고 사람들을 반긴다.
여러가지 꽃나무들과 더불어 이곳은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휴일에는 축구를 비롯한 구류종목과 광장무에 취미가 있는 젊은 축들이 많이 찾아들고 평일에는 로인과 어린애들, 그리고 걷기운동을 즐기는 분들이 찾고 있다.
사람의 눈과 감각이라는 것은 이상하다. 가끔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소풍하며 시간을 보내는 많은 분들이 보이는데 유표하게 눈길을 끄는 분들이 있다. 그들의 옷차림이나 혹은 걸음걸이를 보고 저분이 우리 민족이 구나 하고 판단하면 8,90프로는 맞아 떨어 진다. 아마 같은 민족이여서 차림새나 정서적으로 공동한 점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이런 경우를 두고 피는 속일 수 없는가 보다.
그래서 요즘 화창한 봄을 맞아 운동장 출입이 잦아지며 여러명의 우리 민족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년령때가 비슷하고 언어가 통하는데다 하나같이 황혼육아로 청도에 온 분들이라 얼마 안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남자들이 셋이상 끼리끼리 모이면 서로간 덕담을 나누는게 일상이다. 헌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이야기가 우선 화제로 오간다.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늘 마나면 국내정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웃나라의 정치까지 거론하며 한바탕 이렇쿵저렇쿵 쟁론을 하다 결과는 싱겁게 끝난다. 다음 화제는 말로하는 축구다. 축구를 론하는걸 들어보면 모두가 축구에는 전문가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중국축구가 쉽게 아세아를 넘어 월드컵에 나설것 같다. 정말 못 말리는 우리 민족의 축구 사랑이다. 축구를 론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그 다음 화제는 옛날 고향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마 모두가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으니 쉽게 추억에 빠지는가 보다.
재미있는것은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고향은 서로 다르지만 살고 있었던 곳들은 모두가 벼농사를 짓는 벌방이라는 것이 공동한 점이였다. 그러니 벼농사는 동북3성 그 어디서나 우리 민족선인들이 선도해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다.
모두가 벼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어 그런지 오고 가는 말들이 자연스럽고 서로가 수긍하는 면이 많았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는 와중 언제부터 궁굼게 하나 있었다. 6,70년대 우리 연변은 벼농사를 짓는 곳이였지만 량식고생을 엄청 했었다. 벼무당 산량은 그 어느 곳들보다 훨씬 높았음에도 말이다.
예전 ‘안쪽’에서 살았던 분들을 마주했으니 이참에 시원히 물어보기로 했다. 그당시 연변의 량식표준은 국가에 바치는 징구량을 완성하는 전제에서 벼걷곡으로 인당 450근 표준이였다. 헌데 ‘안쪽’에서는 순입쌀로 인당600근 표준으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료녕성에서 온 분이 시무룩히 웃으며 그곳에는 토지대장에 기입된 수전면적보다 기입되지 않은 면적이 훨씬 더 많았다고 했다. 오, 그랬었구나! 그러니 연변에서의 량식고생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운동장에서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만남이 잦아지자 어느날 자연스레 술자리를 함께하게 되였다. 남자들이란 여러번 술자를 함께하면 서로가 닫고있던 장벽이 스르르 무너지며 거리가 좁혀져 허물없이 지내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어렵게 부르던 호칭이 갑자기 형님동생으로 변하며 우정을 다져 간다. 이곳에도 례외가 아니다. 이래서 술이란 참, 신비하고 좋은 ‘물건’이 아닌가 싶다.
매번 운동장에서 걷기운동을 즐기는 분들의 장면은 참, 가관이다. 타원형으로 만들어진400메터 륙상코스에는 사지가 펀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걷는가하면 뇌졸증으로하여 거동이 불편하여 쩔둑 거리며 걷는 사람도 있다. 또 애들의 유모차를 밀고 땀흘리며 힘겹게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두 발로 걷지 못하자 아예 휠체어에 걸터 앉아 타인의 도음으로 륙상코스를 도는 로인들도 있다. 지어 전동휠체어에 몸을 간신히 의지하고 륙상코스를 빙 도는 사람들도 있다.
갑자기 휠체어에 의지해 돌고 있던 로인 부부가 멈춰선다. 그리고는 안로인이 바깥로인을 조심히 부축하여 내려 간신히 몇걸음을 걷다 다시 휠체어에 오른다. 얼마나 땅을 딛고 걷고 싶었으면 저러랴, 가슴이 뭉클하는 장면이다. 그러고보니 아직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걸을 수 있는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솔직히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륙상코스를 도는 모습은 보기에 좀 민망스럽고 안스럽다. 한편 오죽하면 그몸으로 걷는 시늉이라도 하며 존재감을 과시 할가하고 생각하면 그분들의 심정을 리해하게 된다.
기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불편한 사람들이 정상인에 비해 걷는 속도나 질은 차이가 있겠지만 걸어가고 있고 돌고 있는 방향만은 정상인들과 일치한 것이다. 그러니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정상인들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같은 방향을 향해 긍정적인 마인드로 움직이고 있다는 자체가 참, 존경스럽고 대견스럽다. 이 정경을 보며 이곳이야 말로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사는 또 다른 아름다운 진풍경이 아닌가 싶다.
오늘 따라 이곳 청도의 봄날은 유난히 따스하다.
3월하순이 거이 지나 가며 기온이 급상승하여 령상20도를 훨씬 넘어선다. 그러자 운동장 주변의 가지가지한 나무들의 꽃들이 개화기의 절정에 이르는 상 싶다.
온 운동장엔 봄기운이 가득차 흐른다. 그 속에 열정에 넘치는 가지가지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가지가지한 운동을 즐긴다. 노래 ‘하늘길’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운동장에 울려퍼지며 녀인들이 신바람나게 광장무를 추고 있다. 몇몇 젊은이들은 아예 운동장 잔디우에 대자를 그리고 누워 태평스레 포근하고 따뜻한 봄의 향기를 만끽하고 있다.
3월의 봄은 아릅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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