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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홀제 그리워난다.
2021년 03월 30일 10시 06분  조회:511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할머니가 홀제 그리워난다.

고향란



“할머니! 할머니!” 산소호흡기를 단 채 눈도 뜨지 못하는 할머니를 부르다 이불을 차며 벌떡 일어났다… 다행히 꿈이였다. 어제 영상통화를 하면서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 얼굴이 내내 마음에 걸려 이런 꿈을 꾼 게 아닌가 싶다.
녀자의 눈물은 진주와 같이 값지니 쉽게 흘리면 안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시더니 이젠 웬만한 일에도 쩍하면 눈굽을 적시는 할머니다. 꿈자리가 하도 어지러워 할머니와 함께 한국에 계시는 아빠한테 당장 전화를 하고 싶었는데도 새벽 세시를 가리키고 있는 벽시계를 힐끔 보고 나서 주춤했다. 아빠가 더 놀랄 것 같아 그렇게 뜬눈으로 날이 새기를 기다렸는데 일각이 삼추 같이 지루내났다.
1940년 11월의 엄동설한, 당시 8살이였던 할머니는 전쟁의 피해로 장애자가 된 증조할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해왔다. 재산이라야 집구석을 탈탈 털어 장만한 비단 몇필뿐이였다. 할머니가 13살 때 증조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임무는 고스란히 할머니가 짊어지게 되였다.
한창 자랄 나이에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으면서 가난이란 게 뭔지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거치른 시절이였다. 기댈 만한 친척 하나 없으니 그 고달픔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남들이 붓을 날리며 멋을 부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한끼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끼니가 걱정인 세월에 언제 그런 사치를 꿈꿀 수 있었겠느냐며 할머니는 옛일을 떠올릴 때마다 얼굴에 허구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절에도 할머니는 야학에서 눈을 비벼 우리글을 다 익혔고 학교 문은 들어가보지 못했어도 누구보다 인품 좋고 대바르게 살아왔다.
맏손녀여서인지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커왔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 녀자애들은 귀하게 키워야 한다면서 주방에는 아예 드나들지 못하게 아꼈다. 그러면서도 녀자인 만큼 집안살림은 똑부러지게 해야 한다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작식을 조금씩 배워주었다.
사범학교입학통지서를 받던 날, 이제부터는 객지에서 홀로 서기를 해야 하니 기본은 꼭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바느질과 이불거죽을 벗겨서 씻는 법부터 가르쳐주었다. 할머니의 바느질 솜씨는 마을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는데 동네 처녀들의 결혼 한복과 이불은 거의 할머니가 도맡아하다보니 우리 집은 일년 내내 이웃들로 흥성거렸다.
할머니는 지금도 가끔씩 바느질, 뜨개질을 해서는 여기저기 선물하는데 그 때마다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어릴 때부터 그 흥겨운 가락을 듣고 자라서 그랬던지 나도 입만 열면 〈노들강변〉, 〈도라지〉, 〈태평가〉, 〈한강수타령〉 등 민요들을 술술 풀어냈다. 동네 분들은 나만 보면 어쩜 말투에 이어 걸음걸이까지 그렇게 할머니를 쏙 빼닮을 수 있냐며 신기해한다. 내가 음악교원으로 될 수 있었던 데는 할머니의 음악정서를 많이 물려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촌민들이 마을에 모여 회의를 할 때마다 할머니는 손녀를 자랑하고 싶어 등에 업고 다니면서 재롱을 마음껏 부릴 수 있도록 힘껏 밀어주었다. 사범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개인이 피아노를 사는 걸 허락한다는 말을 어망결에 한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그 당장에서 손녀의 피아노는 이 할미가 사준다고 통쾌하게 승낙했다. 처음으로 겪는 객지생활이여서 그랬는지 사범학교에 다니는 내내 나는 시름시름 앓군 했다. 어느 한번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있는 내가 걱정스러운 나머지 할머니는 그렇게 말리는데도 손녀를 꼭 봐야겠다며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서 갈비뼈를 심하게 다쳤다. 그 후유증으로 할머니는 지금도 한쪽 어깨가 약간 기울어져있다.
할머니는 내가 우러르는 외유내강의 조선족녀성이였다. 12년전 피부암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는데도 할머니는 하루를 살아도 멋진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서 아침마다 의족에 의지하여 운동을 놓지 않고 이이갔다.
1992년, 중한수교를 계기로 한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코리안드림’을 겨눈 조선족들의 출국붐이 본격화되자 아버지의 형제들이 함께 한국행에 나서게 되면서 큰고모네 자식 둘, 작은고모네 자식 하나, 작은아버지네 자식 하나, 거기에 우리 3형제까지 모두 당시 60세를 넘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게 되였다. 할머니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우리 사촌형제 7남매를 모두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우리 사촌들은 그렇게 7년이나 한집에서 살면서도 할머니의 곧은 교육하에 언제 한번 티격태격 다투는 일이 없이 화목하게 잘 지냈다.
2000년에 이르러 우리가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게 되자 할머니는 한국에 있는 자식들 곁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한국에 가게 되면 할머니 곁에 누워서 옛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더듬는 시간을 가지군 한다.
할머니는 거의 반평생을 홀로 자식들을 키우면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험난한 세월의 강을 건너왔다. 요즘따라 영상통화만 하면 눈가가 촉촉히 젖어드는 할머니를 볼 수 있어 애잔해난다. 다른 가족들은 다 한국에 자리 잡아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데 나 혼자 이곳에 남은 게 마음이 아파서란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한국에 가지 못하니 세상과 고별하기 전에 나의 얼굴을 한번 더 볼 수나 있을지 하면서 탄식을 한다.
해마다 한번씩은 꼭 한국에 가서 할머니한테 목욕도 시켜드렸는데 작년 한해는 코로나로 국내에 박혀있다보니 할머니가 더 그리워난다. 할머니가 그토록 반기는 송편도 직접 빚어드리고 감자부침개도 부쳐드리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되니 곱절로 안타깝다.
아흔이 넘은 년세에도 할머니는 통화할 때마다 시부모한테 효도하고 남편 공대 잘하며 사업을 열심히 하고 어디 가서나 겸손하고 허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 때마다 나를 이토록 훌륭하게 키워주신 할머니한테 더없이 고마워진다.
동이 트자 바람으로 아빠한테 영상통화를 보냈다. 할머니가 밤새 안녕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서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할머니가 응급실에 누워있는 꿈을 꾸었다고 전해드렸더니 “꿈은 흔히 거꾸로인 거야. 근데 어쩌지, 너무 오래 살면 큰일인데…” 하며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면서 롱담을 건넸다. 코로나사태가 풀리는 대로 당장 날아갈 테니 그 때까지 꼭 건강해야 한다고 했더니 할머니의 얼굴에 금시 웃음꽃이 활짝 피여났다. 워낙에도 조글조글한 주름이 웃음 때문에 더 선명하게 안겨왔지만 오늘따라 할머니가 유난히 이뻐보이니 나도 덩달아 해시시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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