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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한 그릇
2014년 06월 25일 09시 42분  조회:940  추천:0  작성자: suseonjae


뚝배기 한 그릇
 
 
 
 
 
 
“오늘 대전에서 잘 거지?
이따 다섯 시에 대흥동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기다려.”
중학교 3학년 고입체력장 전날 옆 반 담임이신 사회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예.”라고 대답을 하고서도 우리 담임도 아니신 분이 무슨 일로 보자 하실까 의아했다.

소규모 시골학교라서 학생과장을 겸임하셨던 그분은
엄격하시기로 유명한 분이셔서 학생들이 무서워하는 선생님이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대덕군 관내에 있었고
체력장은 1시간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유성중학교에서 시행되었다.

대전에 사시는 고모 댁에서 자고 아침에 유성으로 가기로 하고는
고모 댁에 들렀다가 시외버스터미널에 나가 선생님을 기다렸다.
곧 선생님께서 오시더니 따라오라신다.
한참을 가시더니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신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라서 자장면 한 그릇 사서 먹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고급 한식당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하며 선생님을 따라 앉았다.

검은 뚝배기 그릇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처음 본 음식이 한 그릇 나왔다. 
“이 집은 우족탕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야.
돌그릇을 불로 달구어놓고 탕을 담아주니 다 먹을 때까지 뜨거울 거야.  
조심해서 천천히 다 먹어.”
유난히 숫기가 없었던 나는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 뜨거운 우족탕을 천천히 맛있게 먹었다.
선생님께서는 맞은편에 앉아서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의 가정 사정을 잘 아셨기에,
학비가 없는 금오공고에 진학을 권유하시면서 학교장 추천을 받아주셨다.
그 학교는 10월에 따로 무시험 전형을 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첫 부임지가 그 학교가 있는 구미였다면서 함께 가 주셨다.
그리고 교통비와 숙식비를 모두 다 내주셨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합격을 했다. 
 
그리고 대전고에도 원서를 내보라고 하셨다.
시험보기 전날, 선생님께서 대흥동 버스터미널 앞에서 기다리라 하셔서 나갔더니,
이 분도 나를 데리고 그 우족탕 집에 가셔서 우족탕 한 그릇을 주문하셔서
또 나만 먹게 되었다.
역시 고맙다는 말씀도 못 드리고 묵묵히 먹었다.
 
대전고에도 합격하여 선생님들이 많이 기뻐하셨다.
대부분 선생님들은 내가 대전고보다는
학비를 내지 않는 금오공고에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셨는데,
영어 담당 선생님께서는 대전고로 진학할 것을 권유하셨다.

그 선생님은 당뇨병이 심하셨고 귀가 어두우셔서 보청기를 끼셨다.
일제 시대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셨지만,
학도병에 다녀오시지 않아 졸업장을 받지 못해서 평생 평교사로 지내셨다.
편찮으시면서도 참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그분은 내가 가정형편 때문에 대전고를 포기하는 것이 안타까워
그 고장 출신이면서 공화당 원내총무였던 어느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서
장학금제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러 다녀오시다가
뒤에서 오는 기차소리를 듣지 못하시고 사고를 당하실 뻔하기도 하셨다.
 
유난히 허약해 보였던 제자가 힘내서 시험을 잘 보라고,
함께 드시지 못할 정도로 가격이 부담스러웠을 우족탕을 사주셨던 사회선생님께서는
많지 않은 연세에 돌아가셨다.
대사동에 사시면서 새벽에 보문산 등산을 즐기셨는데,
어느 날 새벽 여느 때처럼 등산 가시다 쓰러지셔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댁으로 데리고 가셔서 한 가족처럼 대해주셨고
나도 스스럼없이 선생님 댁에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소집되어 군대에 갔는데,
대전에서 근무하면서 종종 선생님 댁에 다니곤 했다.
그러나 제대하고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제대로 뵙지 못했다.
그리고 영어선생님께서는 정년퇴임 후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5공화국 시절이어서 대학생들의 과외가 금지되어
체육과 교수님들의 자료를 번역해 드리며 공부했는데,
무리하였는지 몸이 많이 아팠다.

졸업하고 인천으로 발령을 받은 후에 대수술을 했고,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다.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놀 줄도 모르고,
항상 무슨 일에든 몸과 마음이 매여 무겁게 살아와서인지,
우울증환자가 되었다.

마음은 있어도 실행이 되지 않았다.
‘감사’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 우족탕과 함께 그분들의 제자 사랑이 떠오르고,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교사로 학교에 근무하면서 그 선생님들께서 베푸셨던 그런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그 선생님들 생각이 나면 죄스러운 마음이 크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아이들 앞에 제대로 서지 못했다. 
 
올해는 시간을 내어서 대전에 살고 계실 것이라 생각되는
옛 담임선생님을 수소문하여 찾아 뵐 것을 다짐해본다.  

내리 사랑이라고, 그분들이 베푸신 은혜를 똑같은 형태는 아닐지라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베풀어보고 싶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을 때 베풀어 주셨던
세 선생님들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되신 사회, 영어선생님이셨던
두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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