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페염과 같은 시기는 물론 평소에도 사람의 속을 긁는 부면적인 내용은 가급적이면 언급하지 않기로 자신을 자제하기에 애써왔다. 같은 값이면 서로가 웃을 수 있고 더욱이 지금처럼 어려울 때에는 마음이 한결 밝아지는 내용을 찾으려 노력하고 참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옆에서 들리는 여론들이 심경을 불편하게 만들며 가만 놔두지를 않는다.
아픈 다리에 찜질 한다는 뜻의 한어의 성구가 혹시 우리말에 대응되는 사자성어가 있지 않을가 싶어서 설마 하면서도 검색해 봤다. 아니나 다를가 떡하니 나와 있었으니 “낙(락)정하석”이다.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기는 커녕 도리여 괴롭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비슷한 사자성어로 하정투석도 있다.
그야말로 옥편 하나를 옆에 놓고 한어의 모든 성구를 대역하면 없는 사자성어가 과연 있을가 라는 의구심도 든다. 이렇게 봤을 때는 우리말에 한자어가 70%를 웃돈다는 학설도 너무 보수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쉽게 즐기자는 취지의 한국 연예프로에 봐도 저렇게 어려운 사자성어를 써놓고는 그게 또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괄호를 치고 한자를 적어놓는다. 그러다보니 죽을 사자와 죽일 살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하는 자막도 보인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페염에 대한 초창기 보도에서 우리나라의 성 이름을 한어발음으로 표기하다 보니 한국의 개별 언론은 호북성(후베이성)을 하북성(허베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봤다. 애매한 하북성이 순식간에 여론의 초첨이 될 번 했다.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예민한 이 시기에 하북성으로서는 환장할 일이다. 호북성과 하북성이 헛갈리는데 그럼 산서성과 섬서성은 어떻게 구분할지 심히 걱정된다. 하기야 또 뒤에 한자를 적어놓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학교 때 은사님 강의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공식 문서에 찍는 도장을 지칭하는 우리말 단어 “공인”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음 ‘공장’을 그대로 갖다 써놓고는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뒤에다 다시 한자를 밝혀놓는 신문을 봤습니다.”
도장의 뜻으로 우리말에 “공장”이라는 단어가 없는 건 제쳐놓고라도 언어의 경제성으로 봤을 때도 괄호에다 한자까지 합치면 지면에서 네개 음절을 더 차지하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가. 하물며 우리말로 된 신문은 독자가 한자를 한글자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글이 완성되여야 한다. 그렇다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접했을 때 뒤에다 괄호를 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해서 그게 배려일가. 독자가 알아보지 못하거나 다른 뜻으로 리해할가봐 념려하는 배려심이나 로파심은 가상하나 언어문자도 엄연한 과학이다. 사전에 있든 없든 내가 편한대로 적어놓고 다시 한자를 밝혀놓는 식이면 길거리에 뿌려지는 전단지를 만드는 지하구멍가게도 언론이다.
최근 서울 시장이 2015년 메르스사태로 서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북경시가 도와줬다며 이번에는 서울이 도울 차례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그에 앞서 삼성과 LG도 선뜻이 성금을 내놓으며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 마당에 또 한국의 개별적인 “정의”의 언론이 가만있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개괄하면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의 걱정을 할 때냐는 거다. 다시 말하면 국내 수급도 어려운데 왜 남의 일에까지 신경쓰며 퍼주냐는 비난이다. 그럼 2015년에 북경시는 돈이 남아돌고 물자가 썪어나서 도왔을가. 명색이 기자인데 생각을 좀 하고 기사를 쓰자.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일찍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고 했고 최근에는 “코로나-19”라고 밝혔음에도 왜 일부 언론은 아직도 굳이 “우한페렴”이라고 고집하는지 그 의중이 무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마당에 옆에서 동정하고 우려해주는 건 좋은데 꼭 신규확진자와 사망자수에만 눈이 아홉이 돼서 공포를 조성하는 심리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사선을 넘나들며 고생하는 의료진을 포함해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과 희생은 잘 보이지 않고 아픈 곳만 꼬집고 사정이 있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만 부풀려 보도하는 언론이야 말로 백신이 시급하다.
그럼 여기서 나는 중국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 사니까 이 나라의 룰에 따르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열번 양보한다 치자. 그런데 이런 나라에 가 있는 개별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또 괜히 그쪽 립장에 서 있는 걸가. 그러고는 자기는 아주 알권리가 잘 보이는 높은 곳에라도 서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이른바 “안타깝게” 바라본다. 뭐 또 백번 양보해서 많은 시간을 그 나라에서 커왔으니 생각이 바뀔수도 있다고 치자. 그래도 낳은 정이라는 게 있는데 이 조국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해서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중국에 살 때는 안 그랬었는데 그 나라에서 살면서 그런 말만 듣고 그런 그림만 접하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끌려가게 되나 보다. 그런데 항상 잘난 척 하는 그 나라도 대범하고 투명한 것처럼 떠들지만 번마다 지나오고 보면 결국에는 저들의 리익을 위해 우리를 공격한 것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먼 례를 들지 말고 국가 안보를 리유로 우리나라 통신장비업체 화위를 공격했던 미국은 다른 나라의 정보를 하나도 빼내지 않고 성역에서만 살아왔을가. 아쉽게도 미국이 “크립토AG”라는 스위스의 암호장비 회사를 통해 수십년간 다른 나라 심지어는 동맹국의 기밀정보까지 빼냈다는 사실이 최근에 드러났다. 이 스위스 암호장비 업체의 실소유주가 바로 미국의 모 기관이였다. 이건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도한 게 아니고 워싱턴포스트가 독일의 ZDF방송사와 함께 모 기관의 비밀자료를 입수해 밝힌 보도이다. 그럼 이 대목에서 또 서방의 달이 더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나빠서 악의적인 보도를 한다고 두둔해 나선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그 나라에서 꿩을 기어코 닭이라고 하겠다면 그건 그 나라의 마음이라고 치자. 그런데 그 나라에는 살고 있지만 국적이 우리나라인 사람들까지 덩달아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출 필요까지야 있을가. 아무리 애를 써서 그들의 힙합 장단에 맞춰 흐물거려도 우리의 아리랑 뿌리는 어디 가지 못한다. 괜히 용을 쓰지 말자. 사촌이 기와집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누가 사촌이고 누가 남인지 정도는 가리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이 시기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훼방은 놓지 말자.
그게 인간 도리의 최저 양심이다.
글 궁금이/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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