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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꼬치의 의문의 1승(궁금이)
2020년 05월 08일 10시 07분  조회:1556  추천:0  작성자: netizin-1

북경시가 4월 30일 0시부터 방역 등급을 1급에서 2급으로 낮추면서 5.1절련휴기간 인원 류동이 다소 회복세를 보였다.  5월 1일,  2일,  3일 쇼핑센터를 비롯한 실체상업을 대표로 하는 북경시 인원 류동 회복률은 각기 49%,  46%,  47.3%에 달했다. 

한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방역지침을 잘 지켜가고 있다. 방역의 일상화가 종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바로 이런 경각성을 계속 확보하라는 의미이기도 한다. 그런데 필요한 생산과 생활은 이어져야 되니 2급 방역에서도 1급처럼 과잉대응을 할 필요는 없다. 

1급일 때에도 자동차 바퀴를 소독하는 등 과잉 소독은 필요없다고 루차 얘기해 왔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일상 환경에서도 일정 량의 세균은 존재하며 이런 세균은 사람의 면역력으로 통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모든 세균을 다 죽여버리면 우리의 면역계통이 취약해지는 페단이 생길 수 있다. 우리가 야생에서 사는 새한테 먹이를 갖다주는 심성은 착하지만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먹이로 하여 새의 먹이활동 능력에 영향줄 때는 오히려 역작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도리다. 

지난 3개월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이미 많이 자각적이 됐다. 북경시는 소식발표회에서도 발표인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대중교통, 공원이나 학교 등 규정된 장소 외의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그래도 아직 밖에 나가면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이 극히 드물다. 좋은 현상이다. 아침에도 지하철역에서 나오면서 마스크를 벗었는데 마주오던 행인이 머리를 90도로 돌려서 피해간다. 고무적인 행동이다.

한국은 어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속 거리두기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제기된 게 밥상문화의 개변이였다. 쉽게 말하면 숟가락을 섞지 말고 반찬은 개인 접시에 담아 먹자는 취지다. 국이나 찌개가 많은 우리 음식의 특성상 냄비 하나에 숟가락 여러개가 들락날락하는 게 전에는 그렇게 기피 대상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 시기를 겪고 나면서 식사습관이 많이 바뀌여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꼬치는 썩 이전부터 이 지침을 잘 지켜오는 모범이였다. 누구도 양꼬치 하나를 반만 훑어먹고 나머지 반은 옆사람한테 쥐여주며 먹으라는 일은 없다. 아무리 닭살 련인 사이라도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숟가락과 저가락도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없는 게 또한 양꼬치이다. 물론 다양하게 시켜놓고 먹다보면 쓸 수도 있겠지만 양꼬치집에서 한정식을 차릴 일은 없다.

그 사이에 양꼬치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미식가들을 배려해 포장은 물론 꼬치를 구울 수 있는 가마까지 가정집에 들어오는 사진들을 모멘트에서 심심찮게 봐왔다. 아직까지는 무난하게 밖에서 모여 회식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만큼 꼬치 애호가들은 더욱이 그제날의 양맥을 그리워했다. 양맥은 치맥을 본받아 양꼬치+맥주 이렇게 해서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어학자분들께는 실례되는 일이지만 본 위챗에서만 류통하는 내부용어로 대외로는 무효함을 밝혀둔다. 

양꼬치의 추억은 지난세기 80년대 중후반으로 거슬러간다. 다른 데서는 언제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살았던 곳에서 처음 접했을 때는 저맘 때였다. 가격도 싸고 고기도 큼직하게 꽂았고 가마도 지금처럼 연기가 밑으로 빠지는 그런 선진 설비가 아니였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에 와서 연기에 그을은 그 맛이 더 정통맛이였던 걸로 여겨진다. 심지어 지금은 숯불도 아니고 전기로 바뀌여서 자욱한 연기 속에서 먹었던 그 시절 그 맛이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북경에서 양꼬치는 처음에 주로 신강음식점에서 많이 만났다. 신강꼬치는 전의 고향의 후더운 인심 때보다도 비교가 되지 않게 컸다. 고기토막도 컸고 꼬챙이도 굵고 길었다. 물론 가격도 그에 비례한다. 고향에서 만든 양꼬치 홍보영상에 의하면 우리의 양꼬치도 신강양꼬치에서 계발을 받고 개발되였다고 한다. 청출어람 성어람이라더니 유래는 거기에서 했지만 훨씬 거족적으로 발전시켜 종류를 수십가지로 개발했고 맛도 다양하게 승격됐다. 

북경에서 우리 민족이 경영하는 양꼬치집은 초기에는 다 작은 규모였다. 특히 여름에는 길거리에서 쪽걸상에 앉아 맥주를 병채로 들고 즐기는 로천양꼬치도 적지 않았다. 당시 한국인들은 양고기를 저렇게도 해먹는다고 신기하게 생각했고 불결한 음식으로 여겨져 다가가기 주저했다. 그런데 한번두번 가더니 다음부터는 자기네가 먼저 가자고 손을 잡아끄는 정도에까지 이른다. 나중에는 한주에 한두번 정도 찾지 않으면 생각날 정도로 양꼬치를 선호했다. 지금은 서울에서도 조선족이 집거해있는 곳은 물론 국회의사당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도 자그마한 양꼬치집을 본 적이 있다. 간판도 중국어를 음역해서 달았다. 양꼬치의 생명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였다. 짠지 장사로부터 시작해 대도시에 진출한 조선족의 근면성과 생존력은 충분히 인정을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방역 등급이 조절되면서 딱 한번 후배들하고 꼬치집을 찾았는데 너무 기대하다가 갑자기 만나서 그런지 아니면 이제 집에 박혀 있는데 습관되여 그런지 모르겠으나 기대치에 부응할만한 그런 맛과 효과가 나지 않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더니 우리가 못 먹어본 건 아니지만 그동안 너무 오래동안 양꼬치와 헤여져 있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상의 간격도 불가피하다더니 이게 양꼬치와의 인연에서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광고혐의상 양꼬치집의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체인으로 된 이 음식점은 구조가 컨테이너를 개조한 형태로 되여 있어 사회적 거리든 생활속 거리든 자연적으로 두게 되여 있는 우점을 갖추고 있다. 옆 테이블과 금방 붙어앉은 것 같은데 유리로 격리되여 마스크보다도 더 확고한 안전장치로 된다. 그리고 웃부분은 또 틔여있어서 밀페된 공간도 아니다. 물론 선견지명이 있어서 이렇게 설계한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주 유리한 구조로 되여 양꼬치의 의문의 1승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전에 어른들은 숟가락으로 떠야 할 밥을 저가락으로 헤집으면 식사례절이 없다고 교육시켰다. 저가락에 문외한인 서양인들은 한때 포크에 초점을 두고 저들의 음식문화만 선진적인양 근거없이 떠들었던 적도 있다. 지금도 양복 웃주머니에 수건을 꽂고 잘 익지도 않은 고기를 칼로 썰어야만 신분 있는 식사로 각인시키는 드라마 장면을 볼 수 있다. 한편 양꼬치는 이런저런 화두에 오를 필요가 없이 저가락, 숟가락, 포크에서 자유로운 음식으로 되였고 생활속 방역에서도 상대방의 음식에 손이 갈 일이 없는 독립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연기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먹던 양꼬치한테 오늘과 같은 날이 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세상사는 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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