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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티필름의 도전
2020년 05월 12일 08시 20분  조회:405  추천:0  작성자: netizin-1

수필

 

스파티필름의 도전

 

      (연길)연서

 

  돌돌 말린 하얀 꽃송이가 파릇파릇한 잎사귀 사이로 솟구쳐 고개를 내민다. 청초하고 우아한 자태로 베란다의 정원을 아름답게 아우르고 있었다. 몇년 동안 푸른 잎만 무성해서 꽃을 피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래도 겉흙이 마르면 듬뿍 물을 주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전은 작열하는 태양처럼 강렬했다. 급기야 따스한 해빛 세례를 받으며 수줍게 움추렸던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반듯한 자태는 견정해보이기까지 했다.
 

 마침내 성공이다. 그동안 어두운 흙속에서 얼마나 많은 용솟음을 시도했을가. 겨울 내내 삭막하던 베란다에서 이제 막 꽃대를 올리며 아름답게 피여난 스파티필름은 함초롬히 여유로운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은 더없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한송의 꽃을 피우는게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시도 끝에 얻을수 있었던 보귀한 성공이다.
 

 진한 초록색 잎과 뽀얀 하얀 꽃의 조화가 주는 싱그러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순간 도전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과연 나는 그동안 어떤 도전을 해왔던가? 그리하여 삶의 당당한 주인공이라고 할수 있나. 뒤돌아보면 자신만의 길을 찾아 헤매느라 갈팡질팡하며 살아온 듯 싶다. 명예로운 삶을 소유하고자 아등바등 애를 쓴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좋은 직장, 빠른 승급, 높은 월급을 위해 치렬하게 살아왔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숭고한 리상을 위한 도전 뒤로하고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충만된 어깨가 무겁기만 했다.
 

 딸애를 가슴에 품은채 엄마란 이름으로 마주한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완벽한 세상을 만날수 있는 것이 못되였다. 매순간 책임감과 강박감사이에서 맴돌고 있었다.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고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강박에 몰아넣고 있고 그래도 불안감이 엄습하면 다시 자신을 다독이며 행진했다. 하지만, 스스로 생계를 위한 도전은 결코 록록치 않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목숨줄에 위협 가한채 랭혹한 현실을 맴돌고 있다. 나락으로 떨어진 내게 한송이 스파티필름꽃의 거침없는 도전은 희망의 꽃으로 다가왔다.
 

 도전앞에서 식물인 꽃도 인간과 흡사하다. 한떨기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며 줄기며 쓰디쓴 인내의 고달픔을 견뎌야 했다. 모든 식물이 생명을 다해 꽃을 피우고 꽃을 통해 최고의 매력을 발산한다. 심지어 꽃이 피여있는 동안은 뿌리와 줄기와 잎도 꽃을 위해 진력을 바치며 희생한다. 나 역시, 딸애를 온전히 지키고자 나의 삶은 땅속 깊숙히 묻어두었다. 소중한 시간들을 한가한 취미생활에 할애할 여유도 없었고, 수북히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겨를조차 없이 바삐 돌아쳤다. 오로지 딸애를 보다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시도 쉴틈이 없었다. 풍요로운 성장환경이 못되여 스스로 딸애를 풍족하게 키우기에 력부족이지만, 그래도 빈틈없이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고저 했다.
 

 다행히 부족한 보살핌에도 딸애는 씩씩한 모습으로 자랐다. 틈틈히 밤을 새가며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을 해오면서 빈곤함을 메우려고 애썼다. 서둘러 아침을 준비하고 딸애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그렇게 다시 일터로 향하고 다시 퇴근하여 딸애를 집에 데리고 오면 하루가 금새 저물어갔다. 어머니 날, 부족한 사랑을 따뜻한 밥으로 대신할 요양으로 이른 새벽 일찌기 부엌에 들어섰다. 순간 식탁에 언뜻 곱게 접은 편지가 보였다. 어둠을 몰아낸 새벽빛에 보이는 것은 ‘엄마 그동안 키워줘서 고마워, 사랑해!’라고 삐뚤삐뚤 써놓은 딸애 필치였다. 그옆에는 노오란 카네이션꽃도 정히 놓여졌다.
 

  평소 표현이 서툰 딸애에게 사랑 고백을 받으니 코마루가 찡해났다. 아마도 어제 학교를 마치고 오던 길에 미리 준비해놓았으리라. 마냥 철부지 같았던 딸애가 이젠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정도로 성큼 성장한 것 같아 대견했다. 딸애의 친근한 표현은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밤샘작업에 빠져있어도 지칠줄 모르는 활력소가 되였다. 무거웠던 시간들은 정처없이 흘러갔다.
 

  딸애의 성악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힘찼다. 처음 시작하면 끝까지 견지하는 아이인지라 성악가수가 꿈인 딸에게 진중한 선택이였으리라. 그렇게 딸애의 힘찬 도전이 시작되였다.
 

 운동대회날,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꼬마가수로 된 모습이 제일 먼저 안겨왔다. 소소한 공연이였지만 실수 한번 없이 풍부한 음성으로 우리 민요를 열창했다. 엄마의 소홀함에 딸애는 자신을 지키고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터득하였을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부단히 자신을 이기고자 도전하는 자세는 당당하고 용기가 넘쳤다.
 

 딸애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마치 스파티필름가 싱싱하게 자라듯 활기로 넘쳤다. 집에서도 이번 무대를 준비하고자 녀석은 많은 시간을 무던히 련습했다. 딸애의 당찬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떠안고 빙빙 돌고 있는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한 동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춤하여 자신을 은페시키고 있었다. 실은 차가워 보이는 현실의 벽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차마 그 벽을 정시하지 못하고 생소한 것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여있었을 뿐이였다. 스파티필름의 화려한 출현과 딸의 용감한 도전이 나의 잠재웠던 열의을 불타오르게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수놓은 꽃송이의 자태는 싱그럽다. 흙 속에서 내내 머물렀다면 어찌 해빛찬란한 세상을 만날수 있을가. 이제 딸애에게 나의 도전을 보여 줄 차례이다. 움츠렸던 어깨를 쭉 펴고 앞날을 향해 도전의 씨를 뿌려본다.

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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