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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현실화된 유토피아’
2021년 09월 01일 10시 17분  조회:1016  추천:0  작성자: netizin-1
[대림칼럼]
코로나 시대의 ‘현실화된 유토피아’  

이미옥


우리는 어둡고 밝은 면이 있고 
제각기 높이가 다르며 계단처럼 올라가거나 
내려오고 움푹 패고 불룩 튀어나온 구역과, 
단단하거나 무르고 스며들기 쉬우며
구멍이 숭숭 난 지대가 있는,
사각으로 경계가 지어지고 이리저리 잘려
얼룩덜룩한 공간 안에서 살고, 죽고, 사랑한다.  
 
  인간이 불안하듯 공간도 불안하다. 미셀 푸코의 이 말은[ 미셀 푸코 저·이상길 역, 『헤테로토피아』, 2014, 문학과 지성사. ],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 곳에서 살고 있는 지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해준다. 얼마 전 모 학회에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패기 넘치는 한 연구자의 발표를 들으면서 헤테로토피아 즉 공간에 대해 다시금 사유하게 되었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낯선, 혼종 된’이란 의미로 일상의 공간과 ‘다른 공간’ 장소이면서 동시에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을 의미한다.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일상의 장소들을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환기시키는 장소, ‘현실화된 유토피아’. 미셸 푸코는 최초의 정원을 헤테로토피아라고 칭했지만, 사실 그런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 나만의 포근한 침대, 침묵만 흐르는 고요한 사원, 처음 간 여행지의 매혹적인 광경. 내 마음을 빼앗기는, 그래서 시간의 흐름마저도 잊게 되는 초(超)공간적인 장소를 우리는 간절히 원하고 매순간 찾게 된다. 무덤처럼 더 이상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 헤테로토피아도 있고 무한의 시간이 쌓여가는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헤테로토피아도 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의 공간, 어떤 의미에서든 코로나 이후의 공간은 커다랗게 구획되고 말았다. 함께 모여서 떠들던 광장은 사라지고 개인의 밀실만 남았다. 비좁은 개인의 밀실에서 어떤 사람은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대개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며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를 찾기 시작했다. 연결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만 했고 그것이 온라인이라는 무형의 세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줌으로 통화하고 줌으로 회의하고 줌으로 강의를 듣고 또 줌으로 친목을 도모한다.
 
미셸 푸코도 아마 온라인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숫자 1와 0으로 이루어진 컴퓨터 인터넷 공간이 ‘현실적인 유토피아’가 되다니! ‘현실적인’라는 용어 안에 가상의 공간이 포함된 것이다. 매일 들여다보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온라인 세상에 접속한다. 온라인 세상에서 즐거움을 얻고 행복을 찾고 관계를 도모한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도 온라인 세상에서는 모호해진다. 코로나 1년 반 동안, 현실의 공간은 철저히 단절된 대신 온라인 공간은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됐던 가상의 세계가 도리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여섯 시 이후 2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는 요즘에는, 오프라인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벤트가 되었다. 가족이나 동거인, 정말 친한 지인이 아닌 이상 쉽게 만나자고 운을 뗄 수도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코로나 시대, 2년이 안된 시간이지만 이미 많은 변화를 가져왔듯, 앞으로 우리는 더욱 공간을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만의 “공간”하면, 과거엔 물리적인 질료로 만들어진 공간을 떠올렸다. 딱딱한 벽이 있고, 내 허리를 받쳐주는 등받이 의자가 있고, 내 한 몸 뉘일 수 있는 나만의 침대 그리고 부드러운 이불 같은 것들이 내가 소유한 공간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제 나만의 공간은 새롭게 구상되고 구성되어져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의해서, 내가 알고 싶은 것들에 의해서, 내가 접속하고 싶은 것들로 폴더들이 생성되고 링크가 저장된다. 권력과 위계에 의해 철저히 구획된 현실 속 공간이 사라지고 내가 주체가 되어 닿고 싶은 곳을 향해, 무형의 팔을 힘껏 뻗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아프면 병원에 가야 되고, 외로움을 달래려면 누군가를 만나야 하겠지만 그것조차도 내 의지에 의해서 최소화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역할, 체면이란 가면을 쓰고 억지로 수행해야 하는 모임들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공권력, 제도권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광장”의 부재로 인해, 포획할 수 있는 그물망은 전보다 헐거워졌다. 온라인의 세계는 모종의 의미에서 자본주의 세계보다 더 열려있고 사회주의보다 더 평등하다. 나를 구성하는 관념의 씨앗들을 자유롭게 끌어 모을 수 있고 또 심을 수 있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 결과물을 수확할 수도 있다. 어떤 주제라도 검색 가능하고, 백수든 재벌이든 원한다면 누구라도 1인 기획자가 되어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변화를 향해 힘껏 달려가고 있다. “코로나 감옥”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집단의식보다는 개인의식이 더 성장할 수밖에 시대적 환경을 부여받은 것이다. 누군가는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과거의 따뜻한 공동체 경험을 여전히 그리워 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투사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만의 정신적 지도를 그려 나갈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집단주의의 옷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개인주의의 속살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개체로 남을 지는 여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렇게 별처럼 무한 거리를 두고 흩어진 개인들이 어느 곳에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더욱 단단해진 정신적 공동체가 되어 우주의 은하수처럼 밝게 빛날 것이다.
 
동북아신문
 
 

이미옥 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책임연구원, 재한조선족작가협회 평론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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